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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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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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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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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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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룬의 암살 사건 이후로 이틀 밤이 지난 새벽, 렌스는 담벽을 넘어 룬의 테라스로 들어왔다.


달빛이 비치는 창가 아래에서, 한 기사와 소녀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처음 기사는 화를 내다가도, 이내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와중 기사의 시선에 이미 세상의 풍파를 겪은 듯 마모된 소녀의 표정이 들어온다.


그 표정에 결국 렌스는 달빛 앞에서 룬을 향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레기오르스를 향하는 모든 정보는 렌스를 거쳤기에, 그의 충성을 얻게 된 룬은 역으로 원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룬은 정보를 통제해가며 레기오르스를 무너뜨릴 계획을 완성해갔다.


그렇게 차근차근 계획을 완성시켜가던 어느 날, 아티 나스챠가 킨케이드 저택으로 찾아왔다.


룬은 유모와 대화하던 흰 머리칼의 소녀를 잊지 않았고, 그녀가 오래전 유모에게 자신의 정보를 사들인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그리고 나스챠와 레기오르스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던 그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차가운 표정에서 룬은 나스챠 또한 레기오르스의 적임을 깨달았다.


확실하다.


저 여자는 분명 킨케이드를 무너뜨릴 열쇠를 찾고 있다.


적의 적은 동지였다.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룬은 곧바로 나스챠를 불러 세웠다.


"우리 유모 알아요?"


냉랭한 목소리에 당황한 나스챠가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기사 정복을 입은 룬이 정문에 기댄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룬은 더는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고서는 나스챠를 스쳐 저택으로 들어갔다. 룬이 스쳐 간 나스챠의 손에는 작은 쪽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시간과 장소만 덩그러니 적혀 있는 쪽지를 확인한 나스챠는 곧바로 그 쪽지를 품속에 감추고는, 주변에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약속의 날.


나스챠는 약속시각 보다 두 시간 빠르게 도착했지만, 룬은 그보다 한 발 빠르게 도착했다.


룬은 갈파고스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벌꿀주를 할렌의 묘비 위로 뿌리고 있었다.


나스챠는 그제야 이곳이 얼마 전 암살 사건으로 사망한 유모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덤덤하게 가라앉은 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오셨네요. 그럴 것 같더라고요."


마치 자신을 기다린 듯한 룬의 모습에 나스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언가 다른 변명거리를 찾으려던 나스챠는 이 자리에 적합한 행동이 아님을 파악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그리고 빠르게 말을 이어붙였다.


"이렇게 된 거 빠르게 가자. 날 어디서 본 거야?”


술병에 담긴 술을 다 털어낸 룬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모한테 제 정보를 사셨잖아요.”


나스챠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니가 처음 여기 왔을 때를 말하는 거면, 농담이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기억력의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나스챠의 추궁하는 듯한 시선에, 룬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감도 좋은 편이라.”


“하, 좋은 건 다 하지그래?”


그 모습에 나스챠는 기가 차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룬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솔직히 이곳에 도착해 룬의 모습을 보기 직전까지, 나스챠는 이것이 레기오르스의 함정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그리고 함정이 아니더라도 룬 본인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면 이 사실을 즉시 레기오르스에게 보고할 작정이었다. 부족한 사람과 일을 도모할 바에야 차라리 레기오르스의 신뢰를 사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스챠의 직관은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복수를 완성할 수 있는 존재임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나스챠는 할렌의 묘 앞에 쪼그려 앉은 룬 곁으로 다가가 한숨을 내쉬며 따라 앉았다.


그와 동시에 룬이 나지막한 목소리가 묘지를 울렸다.


"난 킨케이드를 지워버릴 거에요.”


그 선언에 당황한 나스챠는,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며 룬을 힐끔 바라보며 자신의 표정이 들키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룬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이대로 레기오르스를 찾아가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스챠는 자신을 응시하는 황금의 빛을 보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에는 서투시네요. 레기오르스가 밉잖아요?"


나스챠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룬을 보며 오싹한 기분이 밀려왔다.


킨케이드의 지원이 끊긴 이후 아무런 기반이 없는 어린 마법사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었고, 보신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가면을 써왔다.


그런 나스챠조차도 저 눈 앞에서는 모든 가면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불공정한 거래는 싫어요. 나스챠 당신에게만 위험을 감수시킬 순 없죠.”


나스챠는 위압감에 움츠러드는 정신을 다잡으며 똑바로 룬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 말은?”


“레기오르스는 몇 년을 예상하던가요? 나는 대충 이 년이라고 봐요.”


나스챠 또한 룬과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룬이 말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스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룬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이 년 동안 나를 관찰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요. 그러고서 나를 따르면 돼요.”


이미 결정된 것을 말하는 듯한 룬의 말투에 나스챠가 어이가 없다는 듯 룬을 바라보았다.


룬은 그런 나스챠를 향해 픽 웃어준 후 말했다.


“장담하건대 내 짧은 인생에서 이 정도로 좋은 제안을 하는 건 드물 거에요."


룬은 꼭 나스챠가 자신을 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한 듯했다. 나스챠는 더 이상 룬에게 휘둘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작은 심술을 부리기로 마음먹었다.


“꼭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래, 알겠어. 너를 지켜봐 줄게. 그래도 명심해. 단 한 순간이라도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면, 그 때 이 대화는 그대로 레기오르스에게 전해질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스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스챠의 주변에서 기묘한 마력이 요동치며 나스챠가 사라졌다.


그 모습에 렌스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한 마술이군요. 용병생활 중에 대 마법사를 자처하는 작자들도 저런 건 못했습니다."


룬 또한 나스챠가 사라진 공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렌스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즉시 룬은 표정을 지워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림이야."


"그런데 아가씨 불공정한 거래가 싫으시다면서, 왜 저한테는 그러셨습니까?"


의도가 뻔한 질문에 룬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렌스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던 렌스는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는 룬 따라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부슬비가 내리던 하늘의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늘 비가 내린다.


‘좋지 않은데’


"비 맞으시면 감기 걸리십니다. 저택으로 돌아가시죠."


감기라는 말에 룬이 묘한 표정으로 렌스를 바라보았다.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할렌의 묘비를 툭툭 두드린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여전히 적들은 룬보다 강했고, 룬은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잔뜩 먹을 머금은 하늘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비가 되어 떨어져 내린다.


묘소가 비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며, 룬이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그리고 이 길 끝에서 내가 도달할 곳은...


***


‘여기구나.’


"어떤가요 아버님, 이 정도면 꽤 잘 해내지 않았나요?"


‘이게 일리야 룬의 첫 걸음이구나.’


룬은 레기오르스의 상처 부위를 발꿈치로 꾹 밟으며 말했다.


레기오르스의 비명이 동굴을 울렸지만, 이곳에 그의 편은 없었다.


"육 년은 정말 길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년만 지난다면 일리야보다 갈파고스에서 산 시간이 길어졌겠네요."


룬이 몸서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끔찍해라.”


그리고 그대로 발길질을 피하려는 레기오르스의 명치를 찍어버렸다.


“커허억!”


그러자 레기오르스가 몸을 까뒤집었다.


제압과 동시에 렌스가 그의 사지 근맥을 잘라버렸기에, 레기오르스는 도망치기 위해 바닥을 기었다.


룬은 무릎을 감싸 앉은 채로 턱을 괴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엉금엉금, 거북이 같네.”


그 말에 픽 웃은 나스챠는 도망치는 레기오르스를 천천히 따라가더니, 도망치는 레기오르스의 얼굴 너머로 지팡이를 찍었다.


흠칫 놀랜 레기오르스가 멈춰 서자, 나스챠는 쪼그려 앉아 오른손에 마법 스크롤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멍하니 바라보는 레기오르스를 향해 말했다.


"녹음 스크롤. 지휘권을 룬에게 양도한다는 말만 해주면 돼요."


나스챠는 싱긋 웃으며 고개만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레기오르스에게 통보했다.


레기오르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해준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그에 대한 대답은 룬에게서 돌아왔다.


"편히 죽여 드리지요."


레기오르스는 입술을 세게 물어뜯었다.


그는 이제 제 죽음을 확신했다.


레기오르스는 가증스럽게 미소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스챠와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룬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짓을.’


레기오르스는 자식에게 큰 관심을 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지휘권을 넘기는 것은 저 간악한 계집년에게 킨케이드 전체를 넘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분명 룬은 이 전쟁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룬을 가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날 것이다.


굳이 가주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킨케이드의 권력은 일리야 룬을 향해 이동할 것이고, 일생을 다해 일궈온 킨케이드의 이름은 사라지리라.


자신의 모자란 아들들이 그 흐름을 거스르고 가주가 되는 것?


불가능했다.


그 사실에 킨케이드는 죽음에 대한 확신에 결심을 더했다.


이제 자신이 킨케이드를 위해 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 괴물에게 저주의 말 하나를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룬과 이야기하고 싶다."


렌스가 룬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룬이 그를 제지하며 레기오르스를 향해 다가섰다.


룬이 다가오자 바닥에 엎드린 레기오르스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룬을 향해 말했다.


"미리엄이 옳았어. 그때 너를 죽였어야 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후회하기엔 조금 이르지 않나요?"


룬은 그렇게 말하고서 레기오르스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나는 킨케이드의 모든 것을 빼앗을 거에요. 한스와 세이튼은 가문을 빼앗긴 채 떠돌이로 살게 될 거에요. 미리엄은 저잣거리에 목이 걸릴 거고 그 손자는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살게 될 거에요.”


그 말에도 레기오르스는 여전히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보였다.


룬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빼앗은 모든 것들을 아주 싼 값에 팔아버릴 겁니다. 킨케이드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말이죠. 그렇게 세상에서 킨케이드에서 이름이이 사라지면 나는 갈파고스의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 겨울 바다에 던져버릴 거에요."


룬은 레기오르스의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가장 먼저 빼앗을 건 네 자존심이구요.”


그리고 순식간의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올린 후 다시 속삭였다.


"그러니, 부디. 오래 버텨 주세요."


레기오르스는 룬이 떠드는 동안에, 그녀에게 남길 저주의 말을 고민하고 있었다.


혼이 빠진듯한 레기오르스를 보며 룬은 아쉬움을 느꼈고, 레기오르스는 다급함을 느꼈다.


룬이 발걸음을 돌려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레기오르스는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유모에 대해 네가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 룬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분명 레기오르스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향해, 아니 일리야 룬을 향해 던지는 비수다.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자유가 없다. 내게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일리야 룬을 위한 헌신 뿐이다.


자, 판단해야 한다. 지금 저자가 짓걸이는 말은 ‘일리야 룬’ 에게 필요한 말인가?


아니,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발걸음을 움직여라. 왜 너는 멈춰서서 고민하는 것인가.


‘어쩌면 사실 나 또한···’


고민에 빠져든 룬의 모습을 다르게 해석한 레기오르스가 계속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아, 가여운 룬. 그 추악한 노파를 위해 울음 짓던 너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웃음을 참았는지 아느냐?"


더는 레기오르스의 말을 들어주기 힘든 렌스가 허리춤의 검을 뽑고는 레기오르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모습에 나스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죽이면 안 돼!"


나스챠의 외침에 렌스가 딱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죽여야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진 렌스의 대답에 나스챠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 사정은 어찌 되든 상관없어, 근데 계획을 수정하려면 내 허락부터 받는 게 순서 아니야?"


"하지만..."


"그만, 나스챠가 옳아."


그 말에 렌스는 마지못해 하며 검을 회수했다.

곧바로 룬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둘 다 나가 있어. 오래는 안 걸려."


렌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룬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동굴을 나갔지만, 나스챠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선 불만이 많은 표정으로 동굴 벽에 기대어 있었다.


룬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스챠를 바라보자, 나스챠가 툭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내가 나가면 녹음은 누가 해? 그리고..."


나스챠는 말 끝을 흐리며 염려스러운 시선으로 룬을 바라보았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레기오르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놀고들 있는-"


“-이게 노는걸로 보이는구나.”


그 말에 나스챠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기오르스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러자 레기오르스가 각혈하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고, 그 모습에 룬이 시선으로 나스챠를 추궁했다. 나스챠가 찔린 듯이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마스터잖아. 이 정도로는 절대 안 죽어. 이대로 삼일도 넘게 버틸걸?"


‘삼 일이면 몸을 회복하고, 네년 들을 찢어 죽일 수도 있는 시간이다’


레기오르스는 당장에라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뱉고 싶었지만, 한 줄기 남은 이성의 끈이 그를 말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레기오르스의 표정을 확인한 나스챠가, 그의 복부를 툭툭 걷어찼다. 비웃음을 띄고 있던 레기오르스의 얼굴에 고통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룬이 그 모습을 기괴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나스챠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는 예민하게 좀 굴지 마. 어차피 지나간 이야기야. 지금 이거보다 중요해?”


레기오르스는 비틀거리며 그 발길질을 피하려 했지만, 사지의 근맥이 잘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덜 아프게 맞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룬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도 발길질 때문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답답한 기사도 그래, 거기서 이 새끼를 죽인다고 해서 네가 찝찝한 게 사라지겠니?"


나스챠는 한숨을 쉬며 룬에게 말했다.


"좋은 것만 생각해도 아픈 세상이야. 스스로 상처를 후벼 파지 마. 나쁜 버릇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스챠는 손가락으로 휙 하고 동굴의 출구를 가리켰다.


"룬은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룬은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이 무례한 마법사가 싫지 않았다.


“그래, 너도 레기오르스에게는 빚이 있으니. 처분은 알아서 해.”


룬이 실소를 지으며 동굴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레기오르스가 나스챠를 향해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나스챠 우리는 좀 더 좋은 거래를···”


그러나 나스챠는 듣지 않고 지팡이의 끝 부분으로, 마치 몽둥이를 휘두르듯 레기오르스의 얼굴을 올려쳤다. 말이 지팡이였지, 웬만해선 깨지지 않는 마법 구를 매단 그것은 둔기와 다름이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들던 레기오르스의 고개가, 충격에 의해 돌아가며 입가에서 이빨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레기오르스가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년이, 네가 이러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네.”


“잠깐, 씨발, 이 씨발년아 저리 가!”


나스챠는 이번에는 지팡이로 레기오르스의 고간을 찍었다.


고간을 찍힌 레기오르스가 눈을 까뒤집으며 게거품을 물었지만, 나스챠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더 고간을 찍었다.


"멈추라고 이 미친...끄아아아악! 그만해...그만! 끄아아아악!"


나스챠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러다가는 다 죽어?"


혼자 중얼거리고 킬킬거리는 나스챠를 보며 레기오르스는 죽음을 확신하던 순간에도 겪지 못한 미지의 공포가 밀려왔다.


'이건 진짜 미친년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레기오르스는 자신이 습관처럼 내뱉는 욕설과는 다르게, 나스챠가 진짜배기 광인임을 파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레기오르스는 혓바닥을 끊기 위해 순간적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나스챠는 그 광경을 놓치지 않았고 재빠르게 지팡이를 들어 레기오르스를 향했다. 그러자 레기오르스는 입을 벌린 체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그를 보며 나스챠는 재미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 넷플■스 존나 재밌었는데, 여긴 그런 거 없나?"


레기오르스는 하는 말의 반절 이상을 이해할 수 없는 이 미친 여자가 두려웠다.


"하긴 뭔 말인지도 못 말아먹는 사람이랑 이게 무슨 짓인지.”


나스챠는 두려움에 떠는 레기오르스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있잖아. 사실 이제 니 증언 필요 없다?"


나스챠는 녹음 스크롤을 돌돌 말아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니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표본이 많아졌거든. 대충 짜깁기해서 만들면 멍청한 너희 기사들은 절대 구분 못 할 걸?”


품속에 녹음 스크롤이 든 마법 병을 집어넣은 나스챠는 이번에는 작은 마법구 하나를 꺼냈다.


"근데 내가 왜 너를 살려두고 있는 줄 알아?"


그러면서 나스챠는 양의 피가 들어있는 병을 꺼내 레기오르스의 주변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난 네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라진 않아. 난 그런 변태는 아니거든. 근데..."


병속의 피를 모두 털어버린 나스챠가 병을 던지자 팡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와 파편 일부가 레기오르스의 주변에서 굴렀다.


나스챠는 레기오르스를 발로 밀어 유릿조각이 등에 오도록 만들었다.


유릿조각이 등줄기를 파고들며 끔찍한 자극들이 밀려온다. 레기오르스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나스챠가 걸어버린 마법 때문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넌 나를 박으려고 했잖아. 그럼 나도 공평한 기회를 얻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나스챠는 꺼낸 구슬을 레기오르스의 입속으로 넣어버리고서는 오크의 심장을 그의 심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게 예의고 또 정의라는 거잖아?”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예의를 배워보도록 해 레기오르스."


그 말을 끝으로 나스챠는 단검 하나를 품속에서 꺼낸 뒤 힘차게 들어 오크의 심장과 동시에 그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레기오르스는 그렇게 영문을 모른 채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안심했다.


이 상황에서 고문 없이 죽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레기오르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문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레기오르스는 살아있는 인간을 고문하는 것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 주술과 마법을 동시에 배운 마녀가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희롱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스챠가 꿰뚫은 단검에서 레기오르스의 피와 오크의 피가 역류해 마법 구에 스며들고, 완전히 피가 스며든 마법구는 구슬만 한 크기로 작아졌다.


나스챠는 구슬을 동그란 케이스에 넣은 다음 줄로 엮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목에 걸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티 나스챠는 그런 여자였다.


***


한편 동굴을 나온 룬은 기감을 일으켜 슬쩍 동굴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렌스는 쪼그려 앉아 복수의 여운을 즐기던 룬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구경했다.


처음 룬의 얼굴은 착잡함을 느끼는 듯 굳어 있었지만, 이내 부끄러운 듯 붉어지고는 마지막에는 충격적인 것을 본 듯 새파래졌다.


‘뭐 그런 시기 시겠지’


안타깝게도 렌스는 동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가 어떤 사람을 동료로 맞이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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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23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6 0 22쪽
22 2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3 19 0 15쪽
21 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1 0 19쪽
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3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4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8 1 14쪽
17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30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5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9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7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7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5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0 2 13쪽
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3 1 14쪽
5 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1 75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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