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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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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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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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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룬이 달거리를 시작했다.


본래 할렌은 자잘한 수발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모든 하녀를 물리고 수발들기를 자처했다.


할렌은 이것을 계기로 룬과 화해하는 것을 바랐지만, 룬과 할렌 사이에서는 어색한 기류만이 흘렀다.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룬이었다.


"유모, 내가 먼저 말할게."


룬은 크게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것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 주진 않더라도 뜨거운 머리는 식혀 주었다.


일리야 룬으로서의 감정이 가시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룬이 할렌을 향해 말했다.


"유모를 이해해. 하지만 전처럼은 돌아갈 수 없어."


할렌은 단호한 룬의 태도에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룬이 다시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룬의 기감에 복면을 쓴 두 사내가 저택의 담을 넘는 것이 전해졌다.


'하필 이런날!'


오늘은 레기오르스가 가신들과 연회를 여는 날이었다.


본래라면 암살자들을 레기오르스가 있는 방향까지 유도하여 그 처리를 맡김과 동시에 미리엄이 암살을 사주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려 했지만, 그가 자리를 비운 이상 그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아가씨?"


갑작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노려보는 룬을 보며 할렌은 의아함을 표했다.


그 모습에 룬은 복잡한 심경으로 유모를 바라보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유모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유모는 자신을 좋아하기는 해도, 다른 것을 버리고 룬을 선택할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유모는 자신의 적이 될 사람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자신은 유모를 죽여야만 한다.


다만, 할렌 니머라는 사람을 지워내야 하는 것은 이름없는 자신이 아닌 일리야 룬이어야 한다. 나는 일리야 룬의 투쟁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내가 일리야 룬의 투쟁을 방해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사실 이 모든 것은 내 변명 일지도 모른다. 정면에 세워진 이후로는 룬의 감정이 좀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결정을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쓰다듬던 유모의 손길은 거짓이라기엔 너무나 따뜻했다. 차가운 마음과는 달리 그 체온만은 한 줌의 난로가 되어 주었다.


룬이 필요로 할 때, 자리를 지킨 사람은 유모였다.

결국 일리야 룬이든, ‘나’ 든 할렌 니머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판단을 마친 룬이 할렌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유모 방으로 돌아가.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돼."


할렌은 우물쭈물 대며 돌아가는 것을 망설였지만, 룬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모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룬은 다시 한 번 기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 분 내로 습격이 시작된다.'


분명 습격은 미리엄의 방에서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곧바로 한스와 세이튼에게 달려간다면?'


아니다. 한스라면 몰라도 눈치 빠른 세이튼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간파하겠지


'내 실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적당히 버텨줄 수 있는 사람...아, 있다!'


룬은 킨케이드 가문으로 오게 된 후 자신의 호위기사가 된 렌스를 떠올렸다.


렌스는 세이튼의 심복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충분히 자신의 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룬은 고민 없이 곧바로 렌스를 호출하는 종을 흔들었다.


렌스는 일 분이 지나지 않아 룬의 방으로 도착했다.


"어서 와 렌스."


렌스는 난데없이 오밤중에 자신의 기분을 물어보는 룬을 보며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이대의 아가씨들은 사춘기와 함께 자신의 호위기사를 괴롭히는 법을 배우고는 했다.


“요즘 지내는 건 어때?”


"최고지요. 아가씨 같은 주인을 모신다면 누구든 좋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겉으로는 룬을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실상은 인형과 같은 그의 주인을 비꼬는 말이었다.


룬은 렌스의 말에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잠깐 옷 좀 갈아입게 뒤로 돌아줘."


렌스는 이 앙큼한 아가씨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렌스는 용병생활을 하는 동안 이보다 더 노골적인 놀림도 받아보았다.


렌스가 입을 열어 한창때의 소녀를 골려주려는 계획을 실현하려던 순간, 룬이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삼 분 안으로 암살자가 찾아올 거야."


안타깝게도 렌스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룬에게 하려던 짓궂은 농담과 룬의 말이 섞여 빙빙 돌았다.


렌스는 룬의 말을 무언가의 비유라고 생각했다.

옷자락이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가 룬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생각보다 고단수시군.’


룬이 머리를 긁적이는 렌스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니야. 정말로 찾아올거야."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은 룬이 돌아봐도 좋다는 말을 들은 렌스는 뒤로 돌아 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가씨, 이런 장난을 치시다가는 가주님께서 경을 치실 겁니다."


뒤를 돌아 렌스가 바라본 룬은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묶고 있었다.


입에 머리끈을 문채로 백금발이 섞인 검은색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룬은 어느새 레더 아머를 입고, 양 허리춤에는 자신의 무릎까지 닿는 얇고 긴 단검을 차고 있었다.


룬이 거울에 비친 렌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는 내게 비밀리에 검술을 가르치던 거야."


‘장난치고는 너무 본격적인데?’


렌스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룬은 그를 보며 히죽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렌스는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불쌍한 아가씨를 가여워 한 호위기사가 검술을 가르쳐주는 꼴일 것이다.


그리고 킨케이드에서 룬을 향한 동정은 가장 큰 금기이다.


"아가씨 저라고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렌스는 말을 이으려 했지만, 어느새 눈을 샛노랗게 빛내고 있는 룬을 보자니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룬은 가죽 장갑을 손에 끼면서 천천히 렌스에게로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건 권유가 아니야 렌스. 내 제안을 거부하면 너는 죽어. 네 가족과 친구 모두 죽어. 그냥 죽이지는 않을 거야. 이건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렌스는 담담하게 불합리한 제안을 강요하는 룬이 4년간 봐왔던 그 아가씨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룬의 불합리한 제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만약 네가 거부한다면, 나는 적당히 암살자를 따돌리고 네가 암살자와 내통했다고 고발할 거야. 너는 어떤 조사도 없이 고문만 당하다 목이 잘릴 거고, 너도 내가 암살당한다면 그 배후를 추측하는 건 쉽겠지?"


렌스는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파악했다.


이것이 룬의 장난이라고 할지라도 이 모습을 들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었고,


정말로 룬의 말대로 암살자가 찾아온다면 꼼짝없이 자신은 미리엄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미리엄님 이시겠죠. 마님이시라면 분명 저뿐만이 아니라 제 가족까지 처형하실 겁니다."


렌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엑스퍼트의 기세를 내뿜으며 룬을 압박했지만, 룬은 손짓 한 번으로 그 기세들을 없애버렸다.


그 모습에 렌스가 놀란 듯 입을 헤 벌렸다.


"시간 없으니까 잘 들어. 곧 두 명이 내 방으로 들어올 거야. 뚱뚱한 놈이랑 얇은 놈 중에 얇은 놈만 죽이면 돼. 너는 뚱뚱한 놈을 맡아."


렌스는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가까워 지고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최소한 엑스퍼트 상급의 상대가 둘이었다.


사실 12살 먹은 귀족가 아가씨와 그 호위기사가 두 명의 엑스퍼트를 격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렌스는 이 제안을 거절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거기다가 룬이 보이는 기묘한 자신감과 위엄이 렌스를 흔들었다.


그 때, 룬의 기감에 창문을 넘어 테라스로 착지하는 기척 두 개가 감지되었다.


룬은 렌스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명심해 렌스. 첫 일격만 들어간다면 다 해결되는 거야."


본래라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불안했겠지만 렌스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 렌스와는 다르게 룬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심장에서 시작된 고양감을 차가운 머리가 평가한다..


이 전투에서 자신은 죽지 않는다.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경우가 자신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두 괴한의 발걸음이 가까워져 오자 렌스는 방문으로 살며시 붙어 검을 높게 빼 들었고, 룬은 욕실로 들어가 단검을 던질 자세를 잡았다.


룬이 자세를 완벽하게 잡은 순간 문이 열리며 뚱뚱한 괴한이 들이닥쳤다.


괴한이 들어섬과 동시에 렌스는 곧바로 높게 빼 들었던 검을 힘껏 내려쳤다.


쾅-!


괴한이 팔을 들어 공격을 막자 검과 팔이 부딪힌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가 울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결과에 렌스는 당황했지만, 괴한들의 당황보다는 덜했다.


'뭐야, 정보가 다르잖아?'



얇은 괴한은 미리엄이 전해 준 정보와 전혀 다른 반격에 잠시 넋이 나갔다.


그 순간, 욕실에서 은빛 직선이 뚱뚱한 괴한을 향해 쏘아진다.


뚱뚱한 괴한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피해버렸다.


하지만 뚱뚱한 괴한에게 가려져 단검이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던 얇은 괴한의 허벅지 깊이 룬의 단검이 박혔다.


“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괴한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뚱뚱한 괴한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전투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얇은 괴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검을 회수한 렌스의 검격이 뚱뚱한 괴한을 향해 날아간다.


뚱뚱한 괴한은 이번에도 팔뚝을 경화시켜 렌스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기다려도 팔에서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의문을 느낀 뚱뚱한 괴한이 가드 너머로 슬쩍 렌스를 바라보자 렌스가 히죽 웃고 있었다.


마치 달리기를 준비하는 듯한 자세에서 괴한이 의문을 느끼는 순간, 렌스의 다리가 지면을 박차고 검면으로 뚱뚱한 괴한을 밀어냈다.


그러자 튕겨져나간 괴한 사이로 얇은 괴한을 향한 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내던 괴한은 시컴한 욕실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검을 들어 반응했지만, 빠르게 다가간 룬은 순간적으로 몸을 숙여 검의 궤도를 피해 뒤를 잡은 후, 괴한의 양발 목을 베어냈다.


“으아아악! 죽어!”


양 다리를 모두 쓸 수 없게 된 괴한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지만,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순식간에 룬에게 뒤를 잡혔다.


룬의 차가운 단검이 괴한의 목에 닿자 괴한은 즉시 검을 떨어트렸다.


"항복하겠다 우리는 미리-"


-서걱.


룬은 괴한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대로 단검을 그어버렸다.


렌스와 뚱뚱한 괴한이 그런 룬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룬은 그들이 당황한 틈을 타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가 세이튼과 한스를 찾기 시작했다


"세이튼! 한스 오빠!"


룬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달려나온 세이튼과 한스를 향해 달려갔다.


"내 방에 암살자가 찾아왔어! 렌스가 위험해!"


정말 다급해 보이는 룬의 모습에 세이튼과 한스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룬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방에서는 뚱뚱한 괴인이 렌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뚱뚱한 괴인은 자신의 손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키며 렌스를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한스와 렌스의 공격을 양손으로 차례로 받으며 세이튼의 공격까지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궁지에 몰린 뚱뚱한 괴한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 무섭다. 싸움 그만한다!"


그 말에 세이튼이 입술을 비틀며 괴한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와서 무슨.”


그 모습에 공포를 느낀 괴인이 소리쳤다.


“미리엄이 시켰다!”


전방에서 괴한을 압박하던 한스와 렌스는 항복을 선언하기 시작한 괴한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지만, 세이튼은 양 손을 들어버린 괴한 뒤로 다가가 그대로 검을 꽂아 넣었다.


“커..커헉”


그렇게 괴한은 생을 마감했다.


"새끼가 깝죽거리고 있어."


세이튼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투덜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한스는 당황하며 세이튼을 붙잡았다.


"세이튼 어딜 가는 게냐. 상황이 아직..."


그렇게 말하던 한스는 복도에서 양손을 입에 댄 채 절망하고 있는 미리엄보자 더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세이튼은 그런 미리엄과 한스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범인은 이미 나온 것 같은데요."


세이튼은 이제는 아예 무릎까지 꿇고서 두 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미리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의 지독한 어머니에게 염증을 느꼈다.


그리고 룬이 용서한다 할지라도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암살자의 자백을 들어버렸다.


거기다가 평상시 그녀의 행실을 생각하면 암살자의 자백이 아니더라도 이 상황에서 범인을 추려내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계단 밑에서 숨을 참고 있는 저 하녀가 아니더라도 오늘 밤 안에 모든 저택의 사람들이 이 암살사건의 범인을 짐작하리라.


그렇게 판단을 끝낸 세이튼이 렌스를 향해 말했다.


"렌스, 어머니를 모셔라."


세이튼은 냉정하게 말하고는 뒤로 돌아서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들어간 방에서는 물건 깨지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왔다.


미리엄은 멍하게 바라보며 힘이 풀려버린 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채 머리를 복도에 기댔다. 그렇게 허공을 응시하던 미리엄은 이내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스는 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차마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검을 쥘 때 느껴지던 자긍심이 죄책감으로 변해갔다. 그 또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터엉.


그래서 한스는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검과 바닥이 닿는 청명한 소리가 처연하게 울렸다.


룬은 조용하게 피가 묻은 가죽 장갑을 바라보았다.


한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룬을 쳐다보며 힘없이 발길을 옮겼고, 룬은 미리엄을 이송하는 렌스에게 마나를 이용해 음성을 날렸다.


레기오르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음성이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했겠지만, 불행히도 미리엄의 남편 레기오르스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다.


-우린 좀 더 대화가 필요할 거야 렌스.


그 음성에 흠칫 놀라며 경계어린 시선으로 룬을 바라본 렌스가 다시 미리엄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렌스가 미리엄을 감옥으로 이송함과 동시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


렌스에게 필요한 말을 전달한 후 룬은 곧바로 유모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란 무엇인가.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킨케이드의 모자들처럼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았다.


결국 그들을 보며 느낀 것은 일리야 룬에게는 유모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모는 때때로 룬을 귀찮아하고, 불합리한 방식으로 룬을 원망했다.


그럼에도 룬이 필요한 순간에 룬과 함께한 것은 결국 할렌이었다. 룬이 부르튼 입으로 할렌을 찾을 때면 따뜻한 우유와 수프를 가져다주며 함께 울어주었다.


그렇게 늙어버린 유모의 옅은 울음소리는 항상 룬의 가슴을 함께 적셨다. 하지만 이제 할렌 니머가 일리야 룬의 곁에 섰을 때, 방해를 놓을만한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세상의 채도가 올라간다.


룬은 킨케이드 일가가 서로 반목할지라도 그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 수 없는 유대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질투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을 자격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얻어가고, 또 그 사실조차 모른다.


결국 일리야 룬은 사랑이 고픈 아이였다.


억울하겠지.


이 애늙은이는 더 억울해했다.


룬은 솔직히 이 모자들의 결말이 찝찝하면서도 내심 통쾌했다.


가슴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상반된 감정들이 룬을 흥분시키며 심박 수를 더하고 발걸음을 가속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진 이상 킨케이드 내에서 대놓고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유모에게 있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룬은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된다면 다 계승자건 뭐건 아무래도 좋았다.


너무나 짙게 다가오는 감정에, 이름없는 사내는 어쩌면 자신이 진짜 일리야 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 순간, 룬은 어째선지 메피스토텔레스를 떠올렸다.


동시에 룬의 왼쪽 시야에 비현실적인 광경이 들어왔다.


익숙한 모습의 노파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다.


그 모습에 다시 세상의 색이 거무튀튀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흥분된 마음이 추락하며 비명을 지른다. 웅웅거리는 환청에 속이 메스껍고 토가 나올 것만 같다.


심장을 때리며 나온 피가 뇌를 징징 울리고 다시 심장을 때리는 순환이 반복되며 온 몸을 뜨겁게 달군다.


어느새 룬의 눈가에는 미리엄을 모함하기 위해 흘렸던 가짜 눈물이 아닌 진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불안감에 뒤를 돌아 상태를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으으음...”


그러나 등 뒤에서 들려온 꺼져가는 듯한 소리에 룬은 고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달렸다.


왜 유모가 이곳에 누워있는 것인가.


왜 저렇게 많은 피를 흘린 것일까.


룬의 의문에 화답하듯 어느샌가 품속으로 들어온 구슬로 할렌의 마나가 빨려들기 시작했다.


룬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메피스토텔레스!’


불길함을 느낀 룬은 곧바로 할렌에게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룬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며 백금발이 더욱 짙어지며 주변으로 은은한 황금빛이 흘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할렌의 생명력은 구슬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때, 할렌이 피가 섞인 기침을 뱉어내며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룬을 부르는 유모의 음성은 너무 차분했다.


그래서 룬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멈출 수 없었고, 머릿속에서는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느렸던 유모의 심장박동은 이제는 더 느려져 있었고, 움켜쥐고 있는 배에서는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피가 쏟아졌다.


룬은, 아니 이름없는 사내는 총명했다.


결국 싸움에서 살아남은 쪽은 비정한 이성이었다.


일리야 룬의 유모는 이곳에서 죽는다.


이제야 겨우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룬은 긴 터널을 걸었고 그 끝에서는 빛을 마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리야 룬은 그것이 억울하다.


그리고 지금 이름없는 사내에게도, 그 감정이 짙게 퍼지고 있었다.


"응, 나야 유모, 왜 이런데 누워 있는 거야...나이 들어서 이런 곳에서 자면..."


‘하지만 이래서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느라 말을 끝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무언가를 말해야만 했다.


그렇게라도 숨을 토해내지 않으면, 제 숨에 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감기 걸린단 말이야 유모..."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스스로 내뱉은 유모의 버릇과도 같은 말이 바늘이 되어 룬의 심장을 찔렀다.


간사한 운명은 이번에도 룬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룬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룬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과 할렌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울분을 터트렸다.


할렌은 자신의 가슴 얼굴을 묻고 오열하고 있는 룬을 바라보았다.


그새 좀 큰 것 같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이였다.


할렌은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본래 룬과 킨케이드를 맺었던 것은 할렌이었다.


그리고 빌어먹을 운명이라는 놈은 한술 더 떠서 자신까지 덤으로 그 운명에 엮어버렸다.


할렌은 룬에게 원망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그게 어른스럽지 못한 감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문의 비원을 이루기 위해 단지 소모품으로만 사용되는 자신의 처지에 끝까지 솔직하지 못했다.


킨케이드로 떠나온 이후 외롭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할렌을 지탱해준 것은 일리야 룬이다.


결국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을 지켜준 건 이 작은 아이다.


가문의 명예나 어느새 멀어진 자기 아들도 아닌 이 아이만이 할렌 곁에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사실을 죽기 직전에야 눈치챘다.


'다 버려가면서 이곳에 도착했는데..'


자신은 룬에게 있어 결코 좋은 유모가 되지 못했다.


자신의 삶은 거짓으로 가득했지만, 그중에서 진실한 것을 찾으라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룬과 자신의 관계였다.


'아아, 내가 쫓았던 것은 대체...'


룬이 커가는 아이라면, 자신은 다 커버린 아이였다.


할렌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전부였고, 울고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든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이 전부였다.


세상을 저울질하던 할렌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욕심 많은 할렌은 오 분의 시간이 아쉬웠다.


자신과 같이 노련한 유모라면 오 분이라면 이 아이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할렌에게 주어진 기회는 아주 미약한 것이었다.


할렌은 마지막 힘을 다해 룬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늙어버린 자신의 손에 간절히 뺨을 부비는 룬을 보며 순간, 할렌의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흐름이 스쳤다.


그 흐름은 파헬에서 시작되어, 파헬이 아이를 낳고, 파헬을 닮은 아이는 룬이 되었다.


아장아장 자신을 향해 걸어오던 아이는 소녀가 되었고, 소녀는.


소녀는 거대한 빛을 뿜어내는 찬란한 별이 되었다.


그렇게 함께한 모든 기억이 대못이 되고, 희망같은 미래가 망치가 되어 할렌을 두드린다.


그곳에서 생긴 구멍으로 할렌의 혼이 빠져나간다.


그렇게 할렌은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내 아가...”


할렌은 온몸으로 퍼져가는 따뜻한 기운에도 오 분이 아쉬웠다.


그저 자신의 온기가 룬에게도 닿기를 원했다.


'오 분만 더...'


할렌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유모의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멈췄다.


룬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할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리야 룬이 사랑했던 유모는 유언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결국 그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남겨진 쪽의 일이었다.


다만 할렌이 남기고 간 짐을 지기에는, 이름없는 자에게는 무게랄 것이 없었다.


결국 그는 일리야 룬의 빌어먹을 운명을 대신하는 것에 불과했고, 부활한 일리야 룬은 자신에게 닥쳐온 참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건 아름답게 반짝이며, 룬을 할퀼 것이다.


룬을 변하게 할 것이고, 나는···나는 뭘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룬은 창가에 비치는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메피스토텔레스."


그러자 창가 속 룬의 눈이 샛노랗게 빛나며 메피스토텔레스가 강림했다.


"너지?"


룬의 나지막한 물음에 비정한 악마는 침묵했다.


악마는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눈으로 룬을 바라보고 있었다. 룬은 빌듯이 창가에 무릎을 꿇고서는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빌었다.


"돌려줘."


이대로는 안 된다. 일리야 룬이 돌아왔을 때, 이런 광경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돌려달란 말이야..."


룬은 스스로에게 빌듯이 천천히 무너졌다.


알 수 있었다.


이 비정한 악마는 자신의 판정을 결코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연결된 룬의 기감은 잔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일러주고 있었다.


일리야 룬은 어미와도 같은 유모를 잃었고, 이름없는 사내는 일리야 룬을 잃었다.


아니, 이름없는 사내가 잃은 것은 어쩌면 제 자신일지도 몰랐다.


-나아가는걸 걸 멈췄구나 룬.


악마는 그런 룬을 아무런 감정 없이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말했잖아. 후회하게 될거라고.


그렇게 가주가 없는 킨케이드가의 기나긴 밤이 지났다.


미리엄의 테라스에서는 암살자들을 부른 흔적으로 보이는 붉은 손수건이 증거로 채집되었고, 암살자들의 자백을 들은 하인들, 그리고 방에서 사라진 금고는 미리엄을 범인으로 확정 지었다.


그렇게 일리야 룬 암살 사건은 할렌 니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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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2 14 0 11쪽
33 32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1 14 1 13쪽
32 31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31 12 0 13쪽
31 30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30 10 0 12쪽
30 29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9 12 0 17쪽
29 2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1 22.05.28 15 1 11쪽
28 27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8 13 0 19쪽
27 2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7 19 0 12쪽
26 2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6 19 0 13쪽
25 2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26 0 20쪽
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23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5 0 22쪽
22 2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3 19 0 15쪽
21 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1 0 19쪽
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2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3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8 1 14쪽
17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29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15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4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9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6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6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4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59 2 13쪽
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2 1 14쪽
5 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1 74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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