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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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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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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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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처음부터 발헴 파이리가 낙영도에서 환영받지는 못했다.

배은망덕한 그들은 파이리를 챙겨주기는커녕 쉬쉬하며 모른 체했다.


결국 파이리는 자존심을 굽히고 늙은 촌장에게 아부하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발헴 파이리가 자신의 처지를 절망하고 체념할 무렵,

그는 기이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대한 검은색 덩어리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파이리는 특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물을 준비했으니, 뒷산으로 가 봐


처음에는 그것이 환청이라고 생각했던 파이리는 그 목소리를 따라간 장소에 금덩이가 놓여있자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절망의 권속 티아매트라고 하였다.


티아매트는 파이리에게 자신을 위한 재단 하나를 세워준다면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유혹했다.


처음에 파이리는 악마의 유혹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속으로 연모하던 촌장의 딸에게 혼담이 오가자 더는 티아매트를 거부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티아매트가 알려준 장소는 거대한 청어 떼가 모이는 장소였고, 이를 발견한 파이리는 촌장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다.


발헴 파이리는 한 번의 행운에 만족하지 못했다.

불행히도 티아매트는 관대한 악마였고 파이리의 소원을 계속해서 들어주었다.


티아매트는 청어떼를 잡는 방법에서 상어를 잡는 방법까지, 나아가서는 고래를 잡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낙영도의 어획량은 가파르게 증가했고, 말도 안 되는 어획량으로 낙영도는 시가에 반절의 금액으로 물고기를 팔아도 모든 주민이 부자가 될 수준이었다.


그렇게 발헴 파이리는 낙영도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헴 파이리는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아내도 이제는 지겹기만 했다.

자신은 푸른 피를 지닌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였고, 아내는 아름다울지언정 촌부의 딸에 불과했다.


'더 필요하다, 킨케이드 놈들을 짓밟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해'


이대로 몇 년의 시간만 더 있다면 킨케이드에 저항할 세력을 갖추는 것도 꿈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아는 레기오르스는 절대 그 상황을 두고 보지 않으리라


결국 낙영도에는 말도 안 되는 세금 인상이 이루어졌고,

지배권이 흔들리자 파이리는 반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파이리의 초조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찾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던 티아매트였지만,

이제는 파이리가 제단 앞에서 간절하게 찾아도 티아매트는 그를 찾아주지 않았다.


파이리가 거의 갈증에 미쳐갈 무렵,

티아매트가 그를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파이리, 잘 지냈어?


거울을 보며 심란해하던 파이리는 순간적으로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가 샛노랗게 물드는 것을 보며 기쁨에 소리 질렀다.


"티아매트,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파이리는 마치 친구라도 되듯 악마 티아매트를 대했다.

티아매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넨 악마라고 하면 시간이 꼭 무한한 것처럼 말하는군 파이리, 우리도 자네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생물일 뿐이야


마치 인간처럼 말하는 티아매트에게 파이리는 깊은 신뢰와 우정을 느꼈다.


"티아매트 한 번만 우리를 더 도와줘, 킨케이드의 개자식들이 군대를 모으고 있다네 이대로라면..."

-이런, 나도 물론 자네를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알지 않나, 우리는 늘 대가가 필요해


대가만 준다면 계약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파이리는 기쁨에 거의 비명을 질렀다.


“낙영도의 모든 성공은 자네에게서 왔다네, 그 무엇을 가져가든 우리는 개의치 않아!"


-아아, 내 오랜 친구 파이리 자네가 그렇게까지 간절하다면 친우된 자로서 자네의 바람을 들어주어야겠지, 하지만 명심하게 내 길고 무료한 세월 동안 이렇게까지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제안하는 건 자네가 특별하기 때문이야


"아아, 물론이고! 고맙다네 티아매트, 정말 고마워!"


파이리는 자신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잠깐 동안 거울 속 자신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거래내용을 듣기도 전에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파이리, 이번에 내가 자네에게 줄 것은 인어라네


인어를 준다는 소리에 파이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인어는 모든 부위에 성 한 채 가격이 붙는 말도 안 되는 보물이다.


살점은 생명을 연장해 주는 보물이었으며, 마력을 머금은 뼈는 귀한 아티팩트의 재료가 되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핵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혼을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비싼 물건이라는 게 중요하지’


파이리는 곧바로 거래에 동의하려 했지만 티아매트가 거래내용을 읊기 시작하자 파이리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그 대가로서 자네가 알지 못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도록 하지, 동의하는가?


파이리는 순간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낙영도에 와서 얻은 그의 아내?

물론 소중했지만, 자신이 이뤄놓은 이 낙영도 자체보다 소중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파이리는 곧바로 계약에 동의하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입이 바늘로 꿰맨 것처럼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싫다면 관두게, 나 또한 친우와 계약으로 맺어지는 걸 선호하지는...


계약을 무르려는 티아매트의 말에 파이리는 마음이 급해져 소리쳤다.


"좋네 티아매트, 무엇이든 상관없어, 얼마든지 가져가!"


분명 방금까지도 옴짝달싹 않던 입이 어째선지 수월하게 움직였다.

고개를 박은 채 움직일 수 없던 파이리는 거울 속 자신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다는걸 알 수 없었다.


-좋아, 계약은 성사되었다, 내일 새벽 밀물이 밀려오기 전 다섯 개의 바위 앞으로 가라, 그곳에 네가 원하는 게 있을거야


티아매트의 음성이 끝맺어지자 그제야 파이리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맙네 티아매트, 정말 고마워!"


발헴 피어리가 소리치는 와중에 잠에서 깨어난 그의 아내는 남편이 거울을 보며 끔찍한 소리를 외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신을 찾았지만 신은 그녀를 찾지 않았다.


듣지 못하는 악마의 비웃음만이 파이리의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


다음날 파이리는 자신을 따르던 일곱 기사와 함께 다섯 개의 바위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새벽 밀물이 밀려오자 정말로 어린 인어 하나가 뭍으로 기어나와 달빛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어의 모습을 확인한 파이리가 조심스럽게 기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퓽-!


그러자 일곱 기사가 들고 있던 석궁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숙련된 기사들이 발사한 석궁은 예외 없이 인어에게 명중했고,

석궁의 충격에 몸을 비틀며 쓰러진 인어는 달빛이 환한 암초 위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파이리는 조심스레 인어에게 다가갔다.


파이리는 화살이 박힌 채 엎어져 있는 인어를 뒤집었다.

인어는 일곱 발의 화살을 맞았에도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재수 없게’


파이리는 인어의 미소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실성한 듯한 웃음을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흐흐흐”

“아헤헤헥”

“흐히히히”


뒤를 돌아보자 기사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허망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뭐야, 자네들 왜 그러는가?”


뒤를 돌아보자 기사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허망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파이리는 공포감에 슬금슬금 인어에게서 물러나며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기사들은 파이리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천천히 인어를 향해 다가가더니,

이내 인어에게 달려들어 그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아무렇게나 뜯은 인어의 신체들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 역겨운 광경에 파이리는 위장 속을 기름으로 가득 채운 것만 같은 거북함을 느꼈다.


“이런 미친...”


한동안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파이리는


우웨에에엑


결국 제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속을 게워내던 파이리는 속에서 음식물이 아닌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둥그런 형체를 한 그것은 파이리의 기도를 강하게 압박하며 입을 통해 역류했다.


고통에 겨워하던 파이리는 자신이 뱉어낸 물체를 확인했다.


"이건...대체..."


새카만 구슬


그것은 인어의 핵과 닮아있었지만 참을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진다.


‘도망가야 해’


그 불길한 기운과 실성한 듯한 기사들의 모습에 파이리는 도주를 결심했다.

도주에 대한 빠른 결단은 언제나 그를 되살려주었다.


그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마을을 향해 뛰려고 했지만, 그 순간 그의 시야에 현실에는 있을 리 없는 검은 덩어리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는 걸 인식했다.


그 덩어리들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일제히 파이리를 덮쳤고 파이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파이리가 정신을 차린 것은 정오였다.


암초에서 일어난 파이리는 자신에게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에 잠깐 안심했지만, 이내 사라진 일곱 명의 기사가 낙영도에 벌일 일들에 대한 걱정을 시작했다.


발헴의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자신과 함께한 기사들이지만, 살아있는 인어에게 고개를 박아대며 기묘한 미소를 띤 그들은 자신이 알던 기사들이 아니었다.


어느새 파이리는 마을을 향해 다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자신의 다리가 잘 움직이고 위장에서 느껴지는 충만감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다.


쉴 틈 없이 마을을 향해 달려온 파이리는 곧바로 자신의 아내를 찾았다.


“여보!”


그간 지겹고 재미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불안감을 느낄 때, 파이리에게 간절한 것은 자신의 아내였다.


한참을 마을을 뛰어다니던 파이리는 다른 아낙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내를 찾을 수 있었다.


얼굴을 붉혀가며 대화를 나누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왜 저런 여자를 두고...'


일순간 과거의 자신에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앞으로 잘하면 된다는 다짐과 함께 파이리는 아내를 향해 달려갔다.


애타게 자신을 찾는 남편을 확인한 파이리의 아내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파이리의 아내는 오래간만에 자신을 애타게 찾는 남편을 보는 것이 기뻤다.


“아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찾는구먼, 오늘 뭔 일이라도 있수?”

“신혼이자네, 어여 가봐”


그녀와 대화하던 동네 아낙들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남편에게 가보라고 종용했다.


“네”


파이리의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파이리는 아무런 일도 없는 마을과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내를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점차 달리는 속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다.


당황한 파이리의 얼굴이 굳어질 때쯤에는 이미 파이리의 아내가 그의 코앞에 도착해있었다.


파이리의 아내는 남편의 품에 힘껏 안기려고 하고 있었고, 파이리 또한 그녀를 안으려 팔을 들었다.


하지만 팔을 든 것은 파이리가 아니었다.


그제서야 파이리는 자신의 팔에 검은 가시가 자라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팔은 파이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오던 아내를 노리는 것처럼 하늘 위를 향했다.


그의 아내가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파이리는 다급하게 움직이려는 손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팔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새까맣게 변색된 그의 팔은 그의 키만큼이나 길어진 채로 그대로 아내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이리는 환한 미소를 띤 아내의 머리가 공중을 나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먼저 도착한 몸이 지면에 닿으며 고무가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다음에는 좀 더 작은 소리와 함께 환한 미소를 띈 아내의 머리가 흙바닥을 구르고,

지면에 흩뿌려진 새빨간 피들에 반사된 햇빛이 파이리를 찌른다.


비현실적이다.


파이리의 아내는 그렇게 무슨일이 일어난 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파이리는 곧바로 현실을 직시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멍하니 아내의 주검을 바라보다가 아내의 몸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빌어먹을 자신의 몸뚱어리는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다가 아내의 죽음을 보고서야 움직였다.


파아리는 절망했다.


동시에 위장에서 다시 한번 격한 역함과 함께 구토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이리의 입은 하마만큼이나 크게 벌어졌고, 그 속에서는 검은색 덩어리들이 끝도 없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파이리는 자신의 위장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파이리의 입속에서 역류한 검은 덩어리들은 처음에는 기다란 창 하나를 형성했다.

그 다음에는 그 창을 잡고 있는 손이 만들어졌다.


검은 덩어리에 연결된 손이 창대를 위로 들어 올려 힘차게 땅을 찍자, 마을 이곳저곳에서 검은 가시가 돋아나며 주민을 꿰뚫었다.


파이리가 아내를 죽이고 입속에서 무언가를 뱉어내는 것을 바라보며 경악하던 주민들은 그대로 머리가 관통당해 죽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파이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파이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그의 절망에 한층 더 깊이를 더했다.


그러자 그의 입속에서 덩어리가 나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이내 모든 덩어리가 쏟아져 내렸다.


사람 일곱 명을 합쳐놓은 것 만큼이나 거대한 덩어리는 창대를 잡은 팔에 연결되며 사람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창대와 조금 떨어진 부분에서 가장 먼저 심장이 만들어지고 심장을 중심으로 검은 가지들이 뻗어 나가며 팔과 다리를 만들었으며, 마지막으로는 머리를 만들었다.


파이리는 이 기괴한 존재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티아매트...어째서..."

"어째서?"


이제는 완전히 강림한 티아매트는 검은 장발을 늘어뜨리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파이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소년으로만 보이는 이 악마가 만든 상황이 너무나 끔찍했다.


'아니, 이 상황을 만든 건 어쩌면...'

-맞아 파이리, 이 상황을 만든건 너야


티아매트가 발헴 파이리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속삭였다.

그리고 파이리를 향해 픽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불공정한 거래는 하지 않아 파이리, 딱 인어 한 마리만큼의 대가를 받았지"


파이리는 그제서야 티아매트가 무엇을 대가로 가져갔는지 알 수 있었다.


"자네는 멍청하지만"


티아매트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파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파이리의 발밑에서도 검은 가지가 돋아나며 파이리의 몸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비명 하나는 잘지를 것 같았거든"


발밑을 파고드는 가시의 끔찍한 고통에 파이리는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오, 좋아, 그거야 파이리! 나를 위해 좀 더 울어주게!"


티아매트는 그렇게 말하며 마을 밖으로 도망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창을 찍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장난과 같은 행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낙영도의 주민들은 단 한 명도 낙영도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파이리는 자신이 일구어낸 낙영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티아매트는 절망적인 눈으로 죽어가는 주민들을 바라보는 파이리를 향해 광소했다.


"아하하, 파이리 자네가 일구어냈다니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의 말과 동시에 파이리의 머릿속에 그가 알지 못하는 기억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없는 자신은 낙영도를 방문하여 촌장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촌장의 뒤로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발헴이 힘을 잃고서도 자신을 따라준 일곱 기사였다.


촌장과 기사들은 인어가 죽음을 맞이할 때와 같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한 경배를 올리고 있었다.


파이리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이건 꿈이야, 이건...’


"멍청한 파이리, 자네는 언제까지 날 즐겁게 해주는 건가, 자네의 절망은 정말이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어!"


티아매트는 그렇게 말하고서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그러자 촌장의 집에서 넋이 나간 촌장의 나이가 차지 않은 어린 딸이 파이리의 갓난 배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걸어나왔다.


파이리는 이번만큼은 넋 놓고 바라보지 않았다.


"안 돼! 잠깐 기다려 티아매트, 거래를 하자"


소년의 외양을 한 티아매트가 천연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파이리, 다시 거래를 하자고?"

"그래, 내 아들을 살려줘 대신 무엇이든 가져가, 그러니까 제발!"


티아매트는 파이리의 등 뒤로 돌아가 그의 머리채를 잡고서 귓가에 속삭였다.


"파이리 그건 안돼, 하지만 조건을 조금 바꿔줄 수는 있지"


티아매트의 말에 파이리의 힘이 빠졌다.

하지만 이어진 티아매트의 제안은 다시 파이리의 정신을 번쩍이게 만들었다..


"아들 대신 너를 살려주마 파이리, 대신 대가로서 네 모든 것을 받아가겠다"


파이리는 깊은 고민에 들었고 티아매트는 마치 그를 즐기듯 내버려두었다.

결론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자식이라면 다시 만들면 된다,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저 악마가 아들을 살려준다는 보장이 없어'


발헴 파이리에게는 죽음의 직전에 위대해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발헴 파이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기회를 포기해버렸다.


파이리가 선택하자, 티아매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꽝이군’


"좋아 파이리, 약속대로 네게 삶을 줄게"


그 말과 함께 파이리의 다릿속에 박혀있던 가시가 점점 더 자라기 시작했다.

다리를 파고드는 통증에 당황한 파이리가 소리쳤다.


"잠깐 티아매트, 이게 무슨!"

"어떤 식의 삶을 주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잖아"


티아매트가 창대를 들어올려 땅을 찍자 파이리는 더는 말할 수 없었다.

파이리는 검은 가시들이 온몸을 헤집어놓으며 자신을 바꿔놓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파이리의 몸은 기이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너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티아매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는 것 하나는 잘한다고 말했잖아”


티아매트의 말이 끝맺음과 동시에 파이리의 성대와 입을 제외한 모든 기관이 퇴화하기 시작했다.

대신 성대와 입만큼은 아주 커지고 강해진 파이리는 거대한 울림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티아매트 그렇게 말하고서 이번에는 창끝으로 땅을 내려찍었다.

창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은 대지로 퍼져 주민들을 꿰뚫은 검은 가시로 이어졌다.


검은 가시에서 티아매트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주민들이 기괴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신체는 하나같이 어딘가 비틀리고 파괴되었지만, 그들의 팔만은 그들의 키보다도 커지고 강해졌다.



낙영도의 주민을 재료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완전히 변모를 거치자 그들은 하늘에 뜬 달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과거에 파이리였던 악마의 전령 또한 그들과 함께 울부짖기 시작했다.


"음, 좋은 소리야"


티아매트가 만족스러운 중얼거림은 절망의 비명과 함께 낙영도에 울려 퍼졌다.


***


“갑자기 왜 멈춰?”


나스챠가 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멈춘 룬을 향해 말했다.

룬은 그 물음에도 불길한 기운의 중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룬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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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6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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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23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6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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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3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4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9 1 14쪽
17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30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15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5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40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7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7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5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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