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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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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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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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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굴러 들어올 자리를 욕심 내서 가문을 뒤집어?"


한스의 거친 목소리에 룬이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은 깨었지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스챠가 준 수면제가 지나치게 강한 탓인지, 무언가가 머리 안쪽을 기어 다니는 듯한 통증에 룬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으..."


미약한 소리에 한참을 떠들어대던 한스가 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룬을 향해 다가온 한스는 양손으로 룬의 오른손을 감싸쥐며 상태를 확인했다. 동시에 막사로 세이튼이 들어오고, 한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세이튼이 입꼬리를 비틀며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미친 새끼. 이제는 막 나가는구나.’



세이튼은 성큼성큼 다가가 한스가 감싼 룬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룬의 손을 이불 위로 돌려놓았다.


'근데 이 빌어먹을 새끼가...'


자신조차 허락받지 못한 룬의 손을 제멋대로 주물러댄 배신자의 목을 쳐버리고만 싶다.


그러나 세이튼은 지금이 참아야 하는 순간임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전쟁터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스를 처리할 방법이 너무 많았다.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쇼.’


아무리 형제라고 하더라도, 가문을 배신한 이상 한스는 곱게 죽지 못하리라.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나스챠는 대놓고 서로를 경계하는 킨케이드 형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릴 뻔했지만, 그녀의 들썩임을 감지하고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렌스덕에 겨우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


그렇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룬은 병상에서 일어났고, 그날 밤 전 병력의 도하를 끝마친 킨케이드 원정군은 낙영도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레기오르스가 살아있었을 때 킨케이드의 병력은 하나로 단단하게 뭉쳐진 정예군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방이 불분명해진 이후에 킨케이드 원정군은 급속도로 세 집단으로 나뉘었는데, 한스를 따르는 킨케이드 내부의 기득권층, 세이튼을 따르는 신흥세력, 그리고 룬을 따르는 중도세력으로 권력이 분화되었다.


‘계획대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룬의 계획과 들어맞았다.


비록 지금은 킨케이드 형제와 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가진 바를 보여준다면 저들은 룬을 따르게 될 것이다.


‘다 좋은데 말이야···저건 뭐지?’


분명 계획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유없이 불안하다. 정말로, 아무런 이유가 없이.


특히 그 불안함은 낙영도의 방향에서 불어왔다.


적보다 월등히 많은 병사들과, 그보다 큰 차이가 나는 기사 전력.


모든 상황이 원정군의 승리를 말하고 있었지만, 룬의 기감만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일리야 룬과 두 동료, 그리고 킨케이드 원정군은 각각 압도적 승리에 대한 설렘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가지고서 낙영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


킨케이드의 전 병력은 행군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되지 않아 낙영도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반군이 지형의 이점을 살린 게릴라 전을 시도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포위를 완성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낙영도에서는 포위가 끝날때까지 개미 새끼 한 마리 기어 나오지 않았다.


포위를 끝마치자 한스는 곧바로 진입하는 것을 주장했지만, 룬과 세이튼은 곧바로 낙영도로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어째서? 전력차이는 압도적일텐데.”


한스의 물음에 세이튼이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그 압도적인 전력차는 아버지가 있을 때 이야기고.”


룬은 싸워대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세이튼 말이 맞아. 그리고 여기부터는 민간인 영역이야. 가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그렇게 낙영도에 진입하는 것은 핵심 결정권자 중 두 명이 반대함으로써 연기되었다.


룬은 자신의 불길함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낙영도에 진입할 생각이 없었고, 세이튼은 본능적인 정치감각으로 자신의 편을 하나 늘리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정 안되면 군대를 물려서 돌아가도 돼. 어차피 가주가 되는 것은 나야.’


세이튼은 레기오르스가 사라진 시점에서 한스가 가문을 이을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한스를 추종하는 세력과 한스 본인 또한 알고 있었다. 한스는 초조한 듯 세이튼과 룬을 번갈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정말 병신처럼 살아야한다.’


정쟁에서 밀린 장남이 멀쩡한 삶을 영위할 확률?


적어도 한스가 아는한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실력으로 승부했을 때 자신이 동생을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동생의 의중을 파악한 지금, 한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전쟁에서 공을 올려 가주가 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 뿐이다. 아니, 설사 세이튼이 가주가 되더라도 한스를 지켜줄 세력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킨케이드 막사에서는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에, 하루가 지났다.


한스는 기껏 포위해놓고 계속해서 시간만 죽이는 세이튼과 룬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빌어먹을, 아버지만 있었다면...’


레기오르스만 건재했다면 이 전투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밖에서 적당히 원조만 해준다면 기사단과 레기오르스가 적진의 내부를 헤집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중진의 투항을 받아냈을 것이고, 투항하지 않더라도 방어진이 무너진 적을 무너뜨리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진을 헤집을 수 있는 핵심 인력이 없다. 섣불리 적진에 진입한다면 험한 꼴을 피할 수 없으리라. 최대한 레기오르스를 기다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있을 때 이야기란 말이다!’


나스챠의 정보대로라면 적군은 이미 레기오르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셈이었고, 진입을 미룬다면 세력을 형성할 시간만 주게 되는 꼴이었다.


‘이걸 말할 수도 없고.’


실제로 그들이 이틀의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낙영도에는 이백이 넘는 장정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과거 선정을 베풀었던 발헴 영주의 이름을 대며 반군에 합류했지만, 한스는 그들 또한 떨어질 콩고물만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저들이 아니야.’


지금은 단지 눈치가 빠른 이들이 모여들고 있을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정말로 과거에 발헴에 충성했던 이들이 몰려들지도 몰랐다.


지금 몰려든 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 쉽게 몰려들었고, 그만큼 쉽게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과거에 발헴에 충성했던 이들이 몰려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대세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킨케이드는 이제껏 쌓아왔던 것들을 많이 일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킨케이드 원정군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이제 4 일밖에 없었다.


'대체 저놈들은 무슨 생각인거야?'


한스의 속내처럼, 세이튼은 그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세이튼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고, 그것보다도 룬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룬이 학교를 그만둔 이후, 처음에 단순한 변덕이라 여겼던 세이튼은 이내 룬의 재능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확실하다. 저 아이는 언젠가 세이튼이나 한스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또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젠가 세이튼은 제 쓸모를 다하고 룬의 걸음을 쫓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세이튼은 그 순간에는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룬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세이튼은 변화를 시도했다. 한스가 가르쳐준 이상한 여자 꼬시는 법을 더는 시도하지 않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비록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룬 또한 달라진 세이튼을 수용했고, 세이튼과 룬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서로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룬은 조금 다른 생각이겠지만.’


하지만 최소한 언젠가 룬이 자신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갔을 때, 단 한 번만 그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은 남는다.


처음 야망으로 시작했던 세이튼의 감정은, 집착이 되었고 이제는 감정이라고 하기도 힘든 어떠한 태도가 되었다. 그 태도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맹목일 것이다.


맹목.


지금의 세이튼은 어떠한 사내와 닮아 있었다. 일리야 룬을 위한다는 점과 이유를 짐작하기 힘든, 아니, 납득하기 힘든 맹목이 그랬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뭐 형님은 지금쯤 불안해서 미치기 직전이시겠지.’


아마도 자신의 형님은 지금 킨케이드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이튼의 생각은 달랐다. 레기오르스라는 가문을 좀먹는 한량이 사라진 지금 킨케이드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낙영도에 몰려든 병력?


좋다. 이번 기회에 다시 발헴에 영토를 내주는 것보다 겨우 쌓아온 룬과의 관계를 잃는 것이 훨씬 손해다. 일리야 룬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 룬이 불길함을 느낀 다라...’


그래서 세이튼은 지금의 상황 대신 룬이 불길함을 느낀다는 부분에 집중했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룬이 불길함을 느낀다면 정말로 낙영도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레기오르스가 병영으로 복귀했을 때, 그와 함께 진군해도 늦지 않았다.


만약 레기오르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음 날 저녁까지는 이대로 전선을 유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세이튼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한스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똥줄 좀 타시겠군.'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세이튼과 한스가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에, 룬은 가만히 낙영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지켜보아도, 안개에 가린 낙영도에서는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었다. 몰려든 병력으로 소란스러워할 섬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웅.


불어오는 바람에 피냄새가 섞여 있다. 룬은 기감을 확장시켜 바람의 파형에서 이질적인 부분들을 조합시키고, 만들어낸 소리를 머릿속에서 재생시켰다.


-끼야아아악!

-살려줘!


비명소리였다. 틀림없다. 낙영도에는 룬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가 거닐고 있다. 미약하게 흔들리는 안개에서 뿜어나오는 마나에서 느껴지는 불길함 또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룬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한다?'


고민을 이어가려는 순간, 메피스토텔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들어가지 마, 아직은 아니야. 너를 위해서 하는···


그리고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말과 함께 연결이 끊어졌다.


간절해 보이기도 하는 목소리에 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의문과는 별개로 룬의 머리는 그 의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조언을 한 거지?'


메피스토텔레스라는 방임주의다. 대가를 받아야 하는 일 이외에는 룬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메피스토텔레스가 룬을 말리는 이유는 분명 낙영도에 들어갔을 때 그가 대가를 받는 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룬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지금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네.”


카르마니 뭐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악마가 리스크를 감수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최소한 마스터에는 올라야 해.'


룬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비한 힘이 담겨 있는 구슬을 떠올렸다. 그러자 주머니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구슬을 꺼내어 확인하자 이전에 흡수한 레기오르스의 마나 탓인지, 이전보다 살짝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이건 찝찝해서 쓰기 싫었는데.”


레기오르스의 마나만 사용한다면 룬은 진작 마스터에 오를 수 있었다. 다만 마나의 순도가 옅어지는 것을 경계해 그러지 않았을 뿐이었다.


황금의 기운을 통해 흡수한 마나에는 불순물이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에, 룬은 굳이 혼탁한 레기오르스의 마나를 흡수해가면서까지 마스터에 오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별수 없나.”


그리고 정말 운명인 것인지, 레기오르스의 것을 흡수한다면 딱 마스터에 오를 정도의 마나가 모이게 된다.


그 사실에 룬은 몸서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기분 나쁘게시리."


그렇게 말한 룬은 코어 속의 마나를 회전시키며 전신으로 올려보냄과 동시에 레기오르스의 마나를 머금은 구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황금의 기운이 레기오르스의 마나를 분해하며 룬에게 전송하기 시작했다.


킨케이드 가문에는 기사들을 위한 비전의 마나 수련법이 존재했지만,

룬은 그것을 배우지 않았다.


세이튼이 자신의 수련법을 몰래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룬은 그 제안도 거부했다.


룬이 보기에는 킨케이드의 마나 수련법은 열등한 수련법이었다.


레기오르스의 무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건 마나 수련법의 고등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순수하게 무재를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굳이 좋지도 않은 것을 배울 필요는 없지.'


일반적인 마나수련법은 피부나 호흡으로 대기 중 마나를 흡수하여 이를 코어 속으로 저장시킨다.


아주 단순한 과정이지만 이것조차 원활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마나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마나의 길이란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우주와도 같았다.


이 작은 우주 속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전 대륙에서 뒤져도 손에 꼽았고, 당연히 마나를 전송하는 데는 극심한 효율의 차이가 있었다.


마나의 길을 타고 흐르는 마나는 저항을 받게 되고 제대로 길에 합류하지 못한 마나는 체내에 쌓여 불순한 마나가 되고, 몸속에 불순한 마나가 많을수록 기사의 신체는 녹이 슬은 기계와 같이 삐걱거리게 된다.


결국, 마나 수련이라 함은 호흡을 통해 마나를 흡수하고 불순물을 태우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최상급의 마나 수련법을 재능있는 기사가 익혔을 때 대기 중에 있는 마나의 5할 정도를 흡수할 수 있었고, 그중에 반 정도는 불순물이 되었다.


하지만 룬의 마나 수련법은 그 궤를 달리했다.


룬은 자신의 코어 속에있느 황금의 기운을 활성화시키면 대기의 마나가 룬에게 동조했고, 그 마나는 곧바로 룬의 소유가 되었다.


자신의 기운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마나를 흡수할 수 있었고, 불순물또한 전혀 남지 않는다.


마법학회에서 알게 된다면 까무러칠 일이었지만, 룬은 자신의 특별함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 그것만을 생각했다.


웅-


레기오르스의 마나가 더해진 코어가 회전하며 주변의 마나가 동조한다. 그 과정에서 밖으로 삐져나간 마나들이 마력과 동조하며 피부를 찢는 듯한 압력을 만들었다.


‘큽!’


순간적으로 거세진 압력에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무게중심이 머리로 이동한 듯한 이질감에 적응한 룬은, 대기 중의 마나와 체내의 마나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연결된 마나는 룬과 세상 사이에 마나의 길을 만들었고, 코어와 마나의 길을 매게로 룬의 몸속에서는 커다란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쿠구궁.


머릿속에서 석벽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불순물이 없던 룬의 몸은 마나를 쉽게 받아들였지만, 머리로 통하는 길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머리를 터야 해.’


머리로 향하는 마나의 길을 여는 것. 마스터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


룬은 곧바로 체내의 모든 마나를 코어속으로 밀어넣었다.


쉬이익.


빈 마나의 길들에서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쉬이잉-!


코어 속에서는 주전자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코어의 한계를 견디지 못한 마나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하며 제 멋대로 움직이며, 장기들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꿀걱.


룬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피기침을 삼키며, 빠져나온 마나들을 코어 속으로 인도한다. 그러자 한계까지 압축된 코어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잉-!


회전음이 가장 강렬해진 순간에, 룬은 머리로 향하는 마나의 길을 두드린다.


쿵.


석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그와 동시에 룬의 머릿속에서 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환상 속에서 룬은, 한 석문 앞에 있다.


석문을 본 룬은, 달려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려가서, 석문에 몸을 부딪힌다.


쿵.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던 석문의 문이 살짝 뒤로 밀렸다가, 다시 돌아온다. 살짝 밀려난 석문에서 빛이 세어들어왔다.


그 모습에 룬은 다시 달려간다.


쿵.


다시, 달려간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반복한 것인지, 손바닥을 펼쳐보니 피로 적셔져 있다. 온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피로에 절어 뻑뻑한 눈은 깜빡일 때마다 아파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의문이 밀려온다. 도대체 나는 왜,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헌신하는 것인가?


자아를 확립한 시점에서, 일리야 룬과 이름없는 사내는 동등했다.


그럼에도 이름없는 사내는 일리야 룬을 향한 맹목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인가?


쿵.


그것 외에는 지닌 것이 없어, 목이 메이기 때문인가?


쿵.


아니다. 할렌은 내게 의지를 남겼고, 킨케이드 일가는 내게 복수를 남겨주었다. 세상이 내게 주어진 것을 말하라면 온종일도 떠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일리야 룬의 주도권이 더 강해서 그런 것일까?


쿵.


아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건 내 의지다. 나만의 의지다!


쿵.


나는 한 번 더,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보고 싶다.


쿵.


태양이 뜨기 위해서는, 달은 져야만 한다.


쿵.


부활을 위한 걸음은, 죽음을 위한 추락이니.


할렌이 맞았다.


쿵.


나의 걸음은 긴 장례식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부셔진다. 앞으로 중심이 쏠린 룬의 몸이 석문 밖으로 쓰러진다. 금방이라도 꺼져갈 것 같은 룬의 의식에, 빛이 와닿는다.


‘빛?’


의문과 함께 고개를 들자, 복잡한 길로 연결된 석실의 한 가운데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 거대했던 태양은 이내 회전을 거치며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룬이 가지고 있던 황금색 구슬의 크기만큼 작아졌다.


룬은 홀린듯 작은 태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룬은 작은 태양 위로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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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23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6 0 22쪽
22 2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3 19 0 15쪽
21 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1 0 19쪽
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3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4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8 1 14쪽
»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30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15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4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9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7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7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4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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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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