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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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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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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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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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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설마, 너 같은 계집애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티아매트가 창대를 들어 땅을 찍었다.


그러자 돌진하던 룬의 발밑에서 검은 가시가 돋아나 공격의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룬과 거리가 벌어진 티아매트는 이번에는 창끝을 세워 자신을 찔러 배를 갈랐다.


갑작스레 자해하는 악마에게 당황한 룬이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갈라진 소년의 배 위로 크게 난 구멍에서 불길한 마력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악마의 동태에 룬은 곧바로 자신의 검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검에 마나가 실리자 주변의 마력도 동조하여 함께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을 머리 위로 들었을 때는 이미 검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지면을 녹이고 있었다.


룬은 세상을 가르던 전사를 떠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일전에 한 번 시도해 보았던 탓일까, 이전보다는 빠르게 일체감이 몰려왔다.


웅-


그 전사는 하늘째로 세상을 베어버렸다.


‘그 사람처럼은 못해도.’


그래도 눈앞에 있는 악마 정도는 베어버릴 수 있으리라


그렇게 룬은 망설임 없이 악마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악마를 향해 쏘아진 검강이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분쇄하며 나아간다.


하지만 룬의 검강이 악마에게 직격하려는 순간, 또 다시 불길한 마력이 검강을 감싸기 시작했다.


악마의 마력은 룬의 검강을 해체하듯 표면에서부터 하나씩 마나를 분해하더니, 소년의 배를 가르며 튀어나온 거대한 손이 창을 잡아 검강을 파쇄시켰다.


꾸득.


검강을 파쇄한 그 손은 소년의 배를 움켜쥐고는 크게 벌리더니, 이내 소년의 몸을 찢어버렸다.


꾸드득


그리고 찢어진 소년 사이로 처음에는 팔이, 그 다음에는 머리가 나오며 이내 거구의 악마가 기어나왔다.


"이번 운명의 아이는 성격이 급하구나."


본래 소년이 휘두르던 창은 그의 키에 비해 큰감이 있었지만, 이 거구의 악마에게는 딱 들어맞는 듯 보였다.


긴 흑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머리 위로는 커다란 뿔 두 개가 존재감을 과시했고, 보라색 피부 위로는 마치 원주민의 문신과도 같은 기이한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기뻐해라, 내 본신을 마주하는 인간은 300년 동안 네가..."


"악마란 건."


룬이 자신의 말을 끊어버리자 티아매트가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상투적이네.”


그 말을 끝으로 룬은 다시 한 번 티아매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으로 헤치지 못한다면 검을 직접 쑤셔 박을 뿐이다.


룬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면의 세계에서 검을 뽑아냈다.


키이잉.


그 모습에 당황한 티아매트가 눈을 부릅뜨며 룬을 바라보았고, 룬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티아매트와의 간격 사이로 파고들었다.


티아매트는 뒷걸음질치며 룬을 향해 창을 찔러넣었지만, 룬은 그 창을 되려 밟아서 티아매트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미친!”


검을 향해 극한까지 이동시킨 무게 중심이 티아매트의 목을 향해 다가간다.


이에 티아매트는 오히려 고개를 비틀어 뿔로 룬의 검을 흘리고는 창대를 끌어당겨 룬을 감싸 안으려 했다.


‘끝이다, 이 오만한 것아.’


뛰어드는 순간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감히 체급 차이가 나는 상대에게 온 체중을 실은 공격?


오만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 순간, 티아매트는 룬의 눈동자가 슬며시 뒤편을 향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에 대응하기도 전에 룬은 내려친 검의 반동을 이용해 티아매트의 머리 뒤로 몸을 날려 공격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티아매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창을 어깨에 걸쳤다.


"괴물 같은 애새끼 같으니. 좋다. 너를 전사로서 인정하겠다.”


“그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전사가 아니라 수다쟁이 같은데.”


“예의 없는 아이야, 과거에는 전사끼리는 이름을 대는 것이 예의였다. 나는 절망의 권속 티아매트다."


티아매트가 선심을 쓰듯 룬에게 자신을 소개했지만, 룬은 그저 싸늘하게 웃기만 했다.


"병신, 내 이름은 물어 어디다 쓰게?"


그 말에 악마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어린아이치고는 생각이 깊구나,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게 말한 티아매트는 창대를 들어 땅바닥을 찍었다.


룬은 가시가 솟구치는 것에 대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격에 대비하는 룬을 본 티아매트가 그 모습을 비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아이들은 모르겠다만 이건 전사의 의식이다.”


그 때, 룬을 향해 뜻밖의 음성이 들려왔다.


-위쪽이다.


룬은 곧바로 티아매트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간발의 차이로 하늘에서 내리 꽂히는 창을 피해낼 수 있었다.


티아매트가 창을 피해내 룬을 보며 똥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계승자란 것들은 하나같이 지독하구나."


티아매트는 땅에 박힌 창을 들어 올려 룬을 향해 겨눴다.


두 악마의 말이 겹쳐서 들려왔다.


"어차피 빨리 끝내지는 못하겠구나, 메피스토텔레스."

-어차피 빨리 끝내지는 못할 거야, 티아매트.


두 악마는 이미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룬은 자신을 가득 채웠던 흥분감이 점차 더해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방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울 것만 같은 흥분감이 아니었다.


옅은 긴장감과 함께 현실 감각이 돌아오며 메피스토텔레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들리나 룬?


‘응, 미안, 잠깐 이상해졌나 봐.’


-저 마력의 영향이다. 저 마력이 네 계승자의 혼과 기억을 자극시킨거겠지.


메피스토텔레스의 마력이 전해지며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룬, 도망쳐라. 그것으로 모든 것은 해결된다.


티아매트는 메피스토텔레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를 조롱했다.


"내가 놓치기라도 할 것 같은가. 나는 본래가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메피스토텔레스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저 아이나 나나 자네가 만든 판에서 놀아나는 중이지 않은가. 솔직히 내 입장으로는 자네의 변덕을 이해하기 힘들군."


-듣지 마라. 저놈은 나만큼이나 혓바닥이 긴 놈이니까.


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 룬의 표정에는 누가 보더라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티아매트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너는 몰랐던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이리로 오거라. 내 모든 진실을 말해주마. 장담컨대 내 길고 무료한 삶 속에서 이 정도의 제안을 하는 것은 흔치 않았다."


멍하니 티아매트를 향해 걸어가는 룬을 보며 메피스토텔레스가 당황한듯이 외쳤다.


-룬 설마 이정도의 계략에 흔들리는 건...


"그래 아이야. 그게 인간이지. 계승자라 해도 결국은...커헉."


티아매트를 향해 걸어가던 룬은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곧바로 검을 세워 검강을 폭쇄시켰다.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했던 티아매트는 그대로 룬의 검강에 노출되었고, 짙은 보랏빛을 띄던 악마의 피부가 검게 그을렸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나를 우롱해?"


그 말에 룬은 흐드러지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았다.


"역시 악마들은 상투적이란 말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레기오르스의 회전참격을 펼치며 티아매트를 향해 쇄도했다.


쾅-!


검과 티아매트의 창이 맞닿으며 커다란 폭발음이 광장을 메운다.


렌스는 눈으로 감지도 힘들 만큼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는 렌스와 거대한 악마의 싸움에 진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했다.


‘보조, 아니 보조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자신의 역할은 보조원도 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렌스는 룬과 악마의 전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

티아매트의 허리춤에 룬을 유도하듯 크게 공간이 비었다.


악마의 공격에 계속해서 뒤로 밀려가던 룬은 간만에 찾아온 악마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이 맞닿기 직전, 렌스는 티아매트가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러서세요 아가씨!"


렌스가 룬을 향해 소리쳤지만, 전투에 몰입 중이던 룬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검이 닿기 직전, 마치 메피스토텔레스와 대면할 때처럼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악마는 룬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룬의 감각은 이대로라면 티아매트의 창날이 자신에게 먼저 닿을 것임을 경고했다.


-그렇게는 두지 않는다.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다시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룬은 본능적으로 티아매트의 허리춤으로 휘두르던 검과 함께 몸의 중심을 앞으로 당겼다.


티아매트의 창날이 룬의 검신을 기어오르며 손잡이에 도달한 순간, 룬은 그대로 몸과 검을 반대로 튕겨 반동으로 창날을 쳐냈다.


챙-!


룬의 어깻죽지를 꿰뚫으려던 티아매트의 창날은 간발의 차이로 작은 상처만을 남기고 비켜간다.


투구닥! 투구닥!


동시에 뒤에서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말발굽 날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정체는 정찰대와 합류한 킨케이드의 기사단이 그들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달라오며 내는 소리였다.


그 모습에 소리에 티아매트가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버러지들까지 몰고 다니다니, 이번 아이는 정말 특이하기는 하구나.”


티아매트는 그 말과 함께 창을 높게 들어 보였다.


룬은 그 모습을 확인한 즉시 기사단을 향해 소리쳤다.


"안 돼! 물러서!"


힘껏 소리쳤지만 말발굽 소리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기사단 대부분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죽어라 버러지들아.”


티아매트는 기사단을 향해 창대를 내려찍었고 기사단의 밑에서 수백 개의 검은 가시가 돋아났다.


반절이 넘는 기사가 아무런 전조 없이 돋아난 가시에 꿰뚫렸다.


그중에는 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있던 세이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검은 가시가 세이튼의 허벅지를 관통해 복부와 가슴을 찌른다.


세이튼을 보자마자 그를 향해 달려나갔지만, 룬은 세이튼이 낙마하고 난 뒤에야 떨어진 그의 곁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세이튼은 입에서 연거푸 검은 피를 흘려보내며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흥분감이 휘발되고 익숙하게 눌어붙은 그을음이 가슴을 덮기 시작한다.


"'...왔구나"


세이튼은 눈이 보이지 않는 듯 몇 번 헛손질을 한 뒤에야 룬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이것조차도 익숙하다는 사실이 룬을 괴롭혔다.


할렌의 때와 같았다.


룬은 세이튼의 죽음을 확신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빚이 있었기에, 어쩌면 세이튼과 자신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세이튼이라면 서로의 빚을 저울 위에 올렸을 때, 모른 척 점진을 빼며 자신의 무게를 덜어줄 것임이 분명했다.


딱 그 정도의 배려만 있다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은 세이튼의 낙마와 함께 사라졌다.


떨어지는 그의 영혼과 함께 룬은 세이튼의 영원한 가해자가 되었다.


‘빌어먹을!’


룬에게는 항상 찰나의 시간이 부족했다.


할렌이 죽기 전에는 오 분의 시간이, 조금 전에는 십 초면 충분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운명은 룬에게 필요한 시간만을 주었다.


주어진 시간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룬의 몫이었고,


그 선택의 결과는 지금 눈앞에 있다.


억울하다.


“살아”


어째서 내 선택의 결과는 이런 것인가.


“나를 위해서라도. 너는. 살아야만 해.”


"룬은-"


미약하게 세어나오는 읊조림에 룬이 간절한 마음을 그를 향해 바치듯 무릎을 꿇고 세이튼의 입가를 향해 귀를 가져다 댔다.


"-멍청한데 욕심까지 많구나."


언젠가 들어보았던 울림이 룬의 머릿가를 울렸다.


커다란 종이 사납게 머리를 울리는 것만 같다.


세이튼은 손이 룬의 뺨을 타고 올라와 귓바퀴를 쓸었다.


천천히 룬의 얼굴을 만지던 그의 손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룬의 머리칼이었다.


세이튼은 힘겹게 룬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러니까 내가 두고 보자고 했잖아, 결국...우리는..."


룬은 세이튼의 손아귀에서 힘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더는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정신차려라 룬, 이대로라면!


초조한 메피스토텔레스의 음성이 룬의 귓가를 울렸지만, 전혀 들어오질 않았다.


"절망했구나 운명의 아이야."


티아매트는 싸늘하게 읊조리며 룬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틀림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괴물 같은 아이는 절망에 빠져있다.


그리고 절망하는 존재는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


"네 절망은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메피스토텔레스와 티아매트가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 사이에도 룬은 오직 세이튼만을 생각했다.


좋게 말해도 시작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미리엄을 잃은 세이튼이 애써 슬픔을 감춰가며 자신에게 애정을 갈구할 때는 그저 들어주었다.


가련하고 멍청한 아이에게서 부모를 앗아간 건 잔혹한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덧 세이튼은 룬의 곁에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분수에 맞지않는 욕심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답지 않은 비틀림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은 세이튼의 생명과 함께 추락해버렸다.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죄책감과 후회만을 남겨버렸다.


룬은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세이튼의 무게만큼 절망했다.


그리고 룬이 절망하는 만큼 탐욕스러운 악마는 웃음 지었다.


'빌어먹을 운명이야'


이렇게 빌어먹을 것이 운명이라면, 차라리 이대로 운명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소리치는 메피스토텔레스가 시끄럽다. 그래서 룬은 연결을 끊고서 하늘을 향해 자신을 바치듯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전환.


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리야 룬은 서서히 주변을 둘러본다. 시선이 지평선을 반쯤 갈랐을 때, 머릿속으로 기억들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정리되자 룬은 익숙한 슬픔이 밀려왔다. 이름없는 사내는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다. 일리야 룬은 태양 따위가 아니다. 달도 아니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건 흐릿한 잔영에 불과하다.


“당신이 틀렸어. 이 빌어먹을 운명에 답 같은건 없는거야.”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룬의 귓가에 자신과 닮은 음성이 들려왔다.


-맞아, 빌어먹을 운명이지


주머니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온다.


손을 넣어 주머니를 확인하자,

언제 넣어둔 것인지 모를 황금색 구슬이 마지막 생명을 태우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나아가는 걸 멈춰선 안 돼


“마지막까지 발악하는구나”


그 빛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티아매트가 달려와 창날을 박아넣으려 했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빛 기둥이 내려와 룬과 악마를 내리쬐었다.


“아아악!”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향연은 악마의 가죽을 태웠고,

티아매트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렀다.


룬은 거대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스며드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해, 룬."


룬의 것이었지만 룬이 아닌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방황하지 않으면 자각할 수 없어."


룬은 자신의 몸에 깃든 에리나의 혼을 느꼈다.

그리고 룬의 코어에 스며들었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코어를 휘감은 불길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전신이 불꽃에 휘감겨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냐?"


티아매트가 불안함을 느끼며 에리나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그저."


키이잉!


에리나가 조용히 읊조리자 허공에서 사나운 불꽃이 튀며 그녀의 손에서 건틀릿 하나와 룬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검이 만들어졌다.


"나아가는 사람들."


룬의 몸을 빌린 에리나는 검 손잡이를 건틀릿과 함께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에리나의 날개 뼈 뒤로 거대한 불길의 날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밖에 보여줄 수 없네, 룬."


룬의 입을 통해 뱉어진 말이 다시 룬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연결은 나아가 감각을, 기억을, 그리고 에리나의 영혼까지 확장되었다.


꿈 속의 전사처럼 에리나가 근육을 팽창시키는 것이 전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룬은 자신이 했던 것이 그저 모방에 그친 것임을 깨달았다.


에리나의 자세에서 룬은 끝없는 힘의 팽창을 느꼈다.


웅-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에 공기가 떨려온다.


"마지막 수업이야."


그 말과 함께 에리나는 티아매트를 향해 돌진했다.


***


억울하다.


티아매트는 그저 작은 마을 하나에 강림해 적당히 놀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계집애는 분위기가 변할 때마다 강해지더니, 지금은 아예 괴물이 되었다.


특히 저 날개를 펼친 순간부터는 인간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공포에 잠식되는 순간 승부는 결정되는 것


그래서 티아매트는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눈앞에 있는 괴물을 향해 창을 겨눴다.

그리고 있는 대로 마력을 끌어모아 창대를 내리찍었다.


쿵!


그러자 에리나의 발밑에서 이전보다 거대한 가시 수십 개가 일제히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가시 수는 적었지만, 그 하나하나의 강도와 굵기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에리나는 단 한 번의 회전으로 그 모든 일격을 회피하고는, 곧바로 날개를 펼쳐 다시 티아매트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티아매트는 날아오는 에리나를 보며 지면에 있던 창을 회수해 그녀의 검격을 막아냈다.


쾅!


창대 너머로 느껴지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검압


'저 빌어먹을 건틀릿 때문인가?'


확실하다.

저 건틀릿에서는 악마인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신비가 있다.


‘이대로면 먹힌다.’


창대로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강해지자 티아매트는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도주를 선택했다.


그는 곧바로 텔레포트 주문을 외워 에리나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곧바로 티아매트가 이동한 자리에는 에리나의 오러가 날아들었다.

불꽃의 형태를 한 에리나의 검기는 꺼질 생각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티아매트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그 통증을 털어내려는 듯,

티아매트는 계속해서 자신을 압박해오는 괴물을 향해 눈을 부릅 뜨며 격정적인 포효를 내질렀다.


"이 개 같은 년이!"


티아매트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에리나의 불꽃을 떨쳐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에리나는 티아매트가 준 잠깐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티아매트에게 날아가 검강을 폭쇄시켰다.


용암과도 같은 열기를 머금은 에리나의 검강은 티아매트의 오른 어깨와 오른팔을 절단시키고도 모자라, 오러에서 피어난 열기가 티아매트의 강대한 육체를 갉아먹는다.


'죽는다!'


티아매트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고대부터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해온 이 악마는 도주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기억해두겠다, 빌어먹을-'


그 순간,

잠깐 고개를 돌려 에리나를 바라본 티아매트는 무언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에리나는 티아매트를 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묵묵히 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검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상단 베기의 자세를 한동안 유지했다.


티아매트는 본능적으로 저 검술이 위험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몸을 돌려 도망치려던 그 순간,

티아매트는 에리나의 눈동자 너머로 거대한 눈동자 하나를 마주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노란 눈동자를 자신을 응시하자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뱀 앞에 놓인 쥐 신세가 된 것만 같다.

다리에 힘이 풀려간다.


그리고 에리나가 차지한 룬의 몸으로 낙영도에 있는 모든 마력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쨍!


높게 치켜든 검이 살짝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대기를 찢는 파공음이 울려퍼진다.


어째선지 익숙한 모습.


검을 든 소녀의 모습은 처음 악마로서 계약을 맺은 날, 그가 꾸었던 꿈과도 닮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티아매트는 악마들에게 전해지는 익숙한 구전 하나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리고 전율했다.


“...하하, 메피스토텔레스 네놈이 맞았구나.”


그리고 자신을 향해 인간들이 그러했듯이, 고대부터 존재해온 악마는 인간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두려움이 지나간 곳에는 오직 나만이 남을 것이니, 오랜 기다림의 끝이 찾아왔구나.”


악마는 공포에 떨면서도 눈앞에 있는 존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기다림이란 목적 없는 항해와도 같으니, 우리는 태풍 속에서 목동을 기다리는 어린 양이요, 방황하는 목자일지니, 어느 날 정당한 심판자가 내려와 우리의 죄를 부르짖을 때!”


있는 힘껏 공포를 털어내며 입을 벌린다.


“우리에게도 안식이 찾아오리니, 오오, 기다림의 끝이 찾아온 것에 경배하라."


그리고 그를 향해 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쳤다.


“그의 임재와 떠남에 축복하라!”


그 말에 화답하듯 에리나의 검이 휘둘러졌다.


휘둘러진 검 끝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상 끝에 존재하는 것은 티아매트와 오러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동등하게 대치하고 있던 티아매트와 오러 사이에서, 점점 오러는 티아매트를 향해 그 세력을 넓혀 나간다.


오러들이 모여 검기가 되고, 검기들이 모여 검강이 이뤄진다.


이기적인 검강들은 세상 속에 자신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듯, 방해하는 것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오만한 빛을 내뿜으며 티아매트와 검 사이로 펼쳐진 길을 향해 나아간다.


티아매트는 서로가 서로를 누르며 밀어닥치는 오러의 파도와, 그 파도들이 만들어 낸 빛의 향연들이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랜 신앙에 대한 경외심을 누르고 두려움이 그 고개를 드러냄과 동시에, 작은 세계에는 죽음이 찾아왔다.


그렇게 에리나에게서 뻗어나간 거대한 검격은 티아매트를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분쇄시켰다.


그러고도 넘치는 힘을 주체못한 검강의 파편이 티아매트의 뒤로 존재하던 마을을 분해하며, 악마가 되어버린 마을 주민들과 오염된 마을을 소멸시킨다.


폭발의 여진이 가시고 내리는 재의 비들 사이에 선 소녀.


그리고 사라진 악마.


그렇게 티아매트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쥐고있던 창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폭풍에 휘말렸던 창이 지면에 닿으며 전투의 종지부를 찍는 듯한 잠기는 듯한 소리를 내뱉는다.


악곡의 종지부를 장식한 음이, 그 시작을 결정하듯이.


창이 떨어지는 소리가 시작을 알려온다.


울림이 지나가자, 한 기사가 저도모르게 룬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이내 모든 이들이 룬을 향해 무릎을 꿇고 멍하니 룬을 바라보았다.


"마누스 벨라토르···"


한 기사의 중얼거림에, 다른 기사들이 같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마누스 벨라토르시여..."”""


룬인지 에리나인지 모를 소녀는, 그저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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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XX를 못함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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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2 14 0 11쪽
33 32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6.01 16 1 13쪽
32 31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31 12 0 13쪽
31 30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30 10 0 12쪽
30 29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9 12 0 17쪽
29 28화 - 거짓과 함께 춤을 +1 22.05.28 16 1 11쪽
28 27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8 14 0 19쪽
27 26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7 19 0 12쪽
26 25화 - 거짓과 함께 춤을 22.05.26 20 0 13쪽
25 2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27 0 20쪽
24 23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5 39 0 21쪽
» 22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4 46 0 22쪽
22 2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3 19 0 15쪽
21 20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1 0 19쪽
20 1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22 23 0 15쪽
19 18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21 34 0 15쪽
18 17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20 28 1 14쪽
17 16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9 29 0 18쪽
16 15화- 탁란공녀 창세기 +1 22.05.18 64 1 15쪽
15 14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7 44 0 21쪽
14 13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8 0 20쪽
13 12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6 39 0 16쪽
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1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7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7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4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0 2 13쪽
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2 1 14쪽
5 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1 74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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