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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님의 서재입니다.

여주가 XX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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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뉴야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0
최근연재일 :
2022.07.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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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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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탁란공녀 창세기

DUMMY

화를 내며 복도로 뛰쳐나온 나스챠는 방문에 기대어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던 룬과 눈이 마주쳤다.


나스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서 자신의 선실로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출항 후 이틀이 지나자, 선실에서도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기오르스가 실질적인 지휘관인 세이튼과 한스 그리고 룬을 불러모은 후, 먼저 한스와 세이튼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는 배를 처음 타보는 것이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말한 레기오르스가 룬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병력을 둘로 나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설명은 이랬다.


지금 킨케이드의 전력은 자신에게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상적인 전략은 자신을 포함한 정예병력이 게릴라 전을 통해 반군들을 몰아넣고 결집된 반군을 기사단이 일순간에 쓸어버리는 것이다.


해서 너희 중 가장 움직임이 좋은 룬과 내가 함께 움직이고, 너희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보좌해라.


세이튼은 가만히 그 설명을 듣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속은 그렇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적은 지리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 상대다. 그런 상대를 두고 전력을 나눈다?


애초에 기본부터 틀려먹은 전략이다.


‘대체 아버님은 무슨···아, 생각이야 뻔하시군.’


그런 그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레기오르스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이튼을 향해 말했다.


“표정 숨기는 법을 좀 더 공부하는 것이 좋겠구나 아들아. 내가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레기오르스는 그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펼쳐진 해도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위치에는 발헴령의 항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단 두 개의 정박지밖에 없었다.


“너도 눈이 있다면 보이겠지.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걸.”


지금 발헴으로 향하는 킨케이드의 선박은 도합 12척이다. 배를 붙이고, 떼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에, 레기오르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결국 세이튼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명분은 생각해 놓으셨다는거군.’


“이해했다면 그 싸가지 없는 표정을 좀 치워줬으면 좋겠구나. 조금만 더 지켜보다간 무심코 패버릴 거 같으니.”


그렇게 세이튼이 동의를 끝으로 병력 편성이 완료되었다.


룬 또한 지휘관의 한 명이었지만, 애초에 그녀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결국 룬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룬이 작전에 동의한 듯 보이자 레기오르스가 화색하며 대답했다.


“길어야 열흘, 그리고 이상적인 기한은 일주일이다”


일주일.


반군을 진압하는 데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지난 일 년간 반란군이 악명을 떨쳤다 할지라도 이곳은 본래 킨케이드의 영역이 아니고, 군대가 오래 머물수록 다른 가문과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병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작전을 빠르게 수행해야 한다.


즉,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레기오르스의 전략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룬 또한 납득한 듯 자신의 말을 듣기 시작하자 레기오르스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도 납득한 것 같으니, 다음으로는...”


그 이후로 이어진 군사회의에서 레기오르스는 세이튼에게 기사단을 맡기고, 한스에게는 일반 병력의 통솔을 맡겼다.


그리고 나머지 설명은 룬과 어떤 작전을 수행할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군사회의 도중 세이튼은 군사적인 판단을 들먹이며 몇 번이나 자신과 룬의 부대변경을 요청했지만, 룬의 실력과 세이튼의 경험 부족을 이유로 모두 기각되었다.


군사회의가 끝나자 레기오르스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을 향해 눈짓하자, 동시에 큰 호종소리가 킨케이드의 병력을 실은 선단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


가장 먼저 육상에 도착한 것은 기사단에서 선발된 스무 명의 기사들, 그리고 레기오르스와 룬 일행이었다.


레기오르스는 스무 명의 기사를 다시 열 개의 조로 나누어, 자신과 룬을 포함한 열 한 개의 조를 완성했다.


그리고 기사들을 불러모은 후 지도를 활짝 펼치고서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사들에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즉시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 조가 자리를 뜨자 작전을 회의하기 위해 만든 임시 천막에는 룬과 레기오르스, 그리고 열한 개의 조 중 하나였던 나스챠와 렌스만이 남게 되었다.


기사단이 떠나갈 때마다 지도 위에 있던 동그라미 표식에 X 표를 치던 레기오르스가 마지막으로 남은 동그라미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향할 곳은 적의 본거지다. 나와 렌스가 전위를 맡는다.”


그리고 레기오르스가 이미 X표 처리가 된 장소들을 가리키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기사들은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다. 그러니 우리는 저쪽에서 피해가 나기 전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파이리의 멱을 딴다. 질문 있나?”


단순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전이었다.


아무런 질문이 돌아오지 않자 레기오르스는 대기 중이던 말에 올랐고, 룬과 렌스 그리고 나스챠까지 차례로 말에 올랐다.


“이랴!”


히히힝!


레기오르스의 힘찬 채찍질과 함께 투레질한 그의 애마가 힘차게 땅을 박찼다. 그렇게 킨케이드의 가주와 룬 일행은 모래바람을 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


산 중턱이 이르자 레기오르스는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손바닥으로 말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말은 주인의 의도를 이해한 듯 고개를 돌려 달려온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룬은 레기오르스와 같이 말의 엉덩이를 때렸지만, 말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룬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해했다.


덩달아 룬도 어리둥절해하자 레기오르스는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보는 눈처럼 말 또한 잘못 고르는구나. 아느냐? 남자와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네 조만간 네게 가르침을 줄 것이니 감사히 여기거라."


그렇게 말한 레기오르스는 렌스를 자신의 조롱에 동참하길 기다렸지만, 렌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상시에는 자신의 똥구멍이라도 핥을 기세로 비위를 맞추던 렌스의 변화에 레기오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그 사이에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밀려오는 익숙한 불안함에 레기오르스가 룬을 휙 돌아보았다.


그러나 룬은 처음 타보는 말이 신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에는 보기 힘든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의 갈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기오르스가 안심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멀리서 팔짱을 끼고 있는 나스챠를 향해 말했다.


“나스챠, 가져온 음식을 준비해라”


레기오르스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스챠가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내려놓은 뒤 가방 속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룬은 가방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마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공간 가방인가?’


지금 나스챠가 꺼내놓은 짐만 하더라도 가방의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아공간 가방이 특이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룬이 의문을 가지는 점은 가방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저 가방은 마법사라 할지라도 쉽게 들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이다.


이유인 즉슨, 더럽게 비싸기 때문이다.


'왕립 아카데미에서도 돈 많은 집안 애들이나 들고 다니는 걸 왜 재가?'


룬은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에 의문이 밀려왔지만, 곁에 레기오르스가 있음을 깨닫고 즉시 의문을 털어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지.’


룬은 그렇게 생각하며 레기오르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레기오르스는 나스챠가 음식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계획에 대한 확신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 사실에 레기오르스가 흡족함을 느끼며 룬을 돌아보자, 어째선지 룬이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너도 직감하고 있는구나. 여기가 네 끝이라는 것을.’


룬은 총명한 아이다.


짐승조차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는 데, 저 아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분명 룬은 이미 자신에게 재앙이 닥쳐올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예쁘게만 있어라. 너는 그것이면 된다.’


“다 됐어요.”


들려온 나스챠의 목소리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나스챠가 꺼내놓은 수프들이 차례대로 놓여 있었다.


레기오르스는 정해진 대로 맨 처음에 있는 수프를 그대로 들이키고는, 세 번째에 있는 수프를 들어 룬에게 건넸다.


“먹어라.”


수프를 들이밀자 룬의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가 레기오르스를 향한다.


“이게 뭐죠?”


그러나 레기오르스는 개의치 않고 그릇을 룬을 향해 더 들이밀었다.


“마나 순환을 도와주는 약초가 들어있다. 비싼 물건이니 남기지 말고 들이켜라.”


그 말에 룬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한번 찡그리고는 그릇을 들어 천천히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고, 렌스와 나스챠 또한 남은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기오르스가 대놓고 웃음짓기 시작했다.


'이제 변수는 없다.'


레기오르스는 입가에 수프를 묻힌 채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는 룬을 보며 터질듯한 흥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내 자신의 흥분이 표정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눈치챈 레기오르스가 호흡을 길게 내쉬며 과열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아직은 때가 아니지.’


"곧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전열을 갖춰라."


레기오르스는 렌스를 앞세운 뒤 렌스를 빠르게 죽여버리고, 나스챠와 함께 룬에게 노예서약을 받을 셈이었다.


본래는 렌스 또한 이 계획의 수혜자였지만, 방금의 건방진 태도가 레기오르스의 심기를 거슬렸다.


그리고 애초에 이 계획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십 분을 조금 넘게 걷자 네 사람은 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은 굳이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었지만, 룬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허리춤에서 단검 두 개를 뽑으며 동굴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레기오르스는 전율했다.


'알고 있었는가!'


모든 계획을 간파하였고, 그 끝에 승산이 없음에도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훌륭하다!’


그는 더는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유독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나스챠와 렌스의 눈빛이 거슬리긴 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일만 마무리되면 그 건방진 시선부터 처리해주마.’


레기오르스는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차분히 룬과의 전투를 상상했다.


룬이 보여줬던 경이로운 기술은 경계함이 마땅했지만, 검강이라는 것은 기술로 막히는 게 아니다.


룬과 자신 사이에 있는 결정적인 차이는 체급이다.


여자와 남자. 어른과 아이. 엑스퍼트와 마스터. 그리고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권력까지.


이 압도적인 체급차이를 극복한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일이 조금 꼬이더라도, 이미 룬은 마나를 흐트리는 독을 복용했다.


제 스스로가 강하다고 믿고 있는 저 계집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지어보일 표정을 생각하자, 익숙한 흥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팔다리 하나 정도는 상관없어. 다만...’


다만 이전에 자신을 튕겨낸 그 힘만큼은 주의하여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저 미지의 힘은 어떤 변수를 만들지 모른다.


‘그러니 그 힘을 쓰기 전에 제압한다.’


레기오르스는 허리춤에서 검집을 들어 올려 검을 뽑은 후, 검집은 땅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오랜 습관은 그에게 전투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레기오르스는 온 몸을 휘감는 긴장감을 음미하며 천천히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치적거리는 검집을 치웠음에도 막상 좁은 동굴로 들어서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그 사실에 레기오르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감탄했다.


‘무기를 선택하는 것부터 이 장소를, 아니 나를 고려했다.’


머리를 잘 굴렸지만, 그것이 엑스퍼트의 한계.


마스터의 경지를 경험하지 못한 그 아이로서는 그 압도적인 위력을 몸으로 알지 못하리라.


그 아이의 계략은 오히려 자신의 경계심만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룬을 악수를 둔 셈이다.


‘정말로 나를 이기고 싶었다면 뒤에서 기습이라도 했어야지’


하지만 그 의지만은 존중함이 옳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지닌 아이가 그것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짜릿하다.


“내 며느리야! 네가 그토록 내게 진심이니, 나 또한 예를 다하마.”


경지의 벽은 기술로 뛰어넘을 수 없다. 레기오르스는 이번 기회를 통해 룬에게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예정이었다.


“최선을 다해 따먹어주마.”


그 순간, 동굴의 한구석에서 룬의 기척이 포착되었다.


‘거기냐?’


레기오르스는 곧바로 마나를 끌어 올리며 검강을 형성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코어가 굳은 듯이 마나가 모여들지 않았다.


당황한 레기오르스의 뒤로, 룬의 청명한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버님?"


동굴의 전방향에서 일정하게 들려오는 룬의 목소리에 레기오르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전사로서의 본능이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익숙한 상황이다. 그러나 보통 레기오르스는 잔꾀로 적을 희롱하는 입장이였지,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의 세포들에 저장된 기억이 머릿속에 치닫기 직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레기오르스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레기오르스는 그것이 코앞에 와서야 단검이라는 걸 알고는 급하게 고개를 숙여 피했다.


“이런 미친!”


단검을 피한 즉시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텔레포트?’


레기오르스의 의문에 답할 새도 없이 룬은 자신이 던진 단검을 잡은 후 공격을 이어나갔다.


룬은 왼손으로 허리를 숙인 레기오르스를 향해 단검을 찍어 내리면서, 오른손으로는 단검을 쥐어, 레기오르스의 손목을 향해 베어들어간다.


티잉!


외손의 단검과 레기오르스의 검이 맞닿으며 청명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레기오르스는 밀어냄과 동시에 룬의 허벅지를 베려 했지만, 무게를 실은 것인지 생각보다 공격이 무거웠다.


쉭.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오른손의 단검은 여전히 레기오르스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레기오르스 또한 이른 나이에 마스터에 오른 것이 허명은 아니었다는 듯,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기울여 왼손의 단검을 튕겨냄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절묘하게 몸을 비틀었다.


피잉!


룬의 오른손에 쥐어진 단검이 아슬아슬하게 레기오르스의 손목을 스치며 귓가를 저미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레기오르스의 시선이 손목을 빗겨간 단검을 향하는 순간, 동굴로 달빛이 들어왔다.


등뒤로 달빛을 받은 룬의 모습에, 레기오르스는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자신이 한눈을 판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룬 또한 그런 레기오르스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를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챙!


룬과 레기오르스의 공방이 오간다.


본래라면 장검과 단검의 싸움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누가 봐도 장검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룬에게 간격을 허용한 시점에서 레기오르스는 이미 장검의 이점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레기오르스는 룬과 검을 맞댈 때 마다, 조금씩 자신의 마나가 룬에게 흡수된다. 정말 빌어먹게 불합리한 힘이었다.


결국 킨케이드 가문의 가주이자, 갈파고스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는 직감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제서야 레기오르스에게 익숙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포 완숙한 전사인 레기오르스의 집중력을 끌어올렸음에도, 아직 그의 검에서는 미약한 검기만이 방출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챙-!


“씨발!”


룬의 단검이 아슬아슬하게 목젖을 스친다.


한계까지 코어를 쥐어짜 내도 룬을 쳐낼 수 있을 만큼의 마나가 모여들지 않았다. 레기오르스는 이 간격에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즉시 자신을 압박하려 다가오는 룬에게 순간적으로 침을 뱉었다.


“퉤!”


레기오르스는 룬이 그 모습에 진심으로 당황하는 것을 느꼈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레기오르스는 순식간에 들고있던 검을 룬에게 던져버렸고, 어떻게든 룬과의 간격을 벌릴 수 있었다.


룬은 시정잡배나 쓸법한 기술을 활용하는 레기오르스를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레기오르스는 그 시선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이대로 삼 분만 버틸 수 있다면 룬은 마나를 운용할 수 없게 된다.


“빌어먹을 년아, 곧 그 콧대를 뭉개주마.”


레기오르스는 룬이 자신의 밑에 깔려 울부짖는 걸 상상했다. 그러자 레기오르스의 하복부에서 뜨거운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레기오르스는 처음엔 그것이 익숙한 욕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평소와는 다른 감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


왼손으로 자신의 복부를 짚어보자 이미 많은 피가 복부에서 흘러나와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레기오르스의 코어는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미친 듯이 마나를 방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출되는 마나에도 검으로 모여드는 것은 한 줌에 불과했다.


'이건 마치...'


“아하하!”


그 순간, 불길한 가능성이 벼락같이 레기오르스의 뇌리를 강타했다.


검강이 형성되지 않는 자신의 이상한 몸 상태에 아직까지도 룬의 상태는 쌩쌩하다.


중독되어야 할 상대는 멀쩡했고, 자신에게서는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


이 상황이 가르키는 바는 명확했다.


"언제부터?"


레기오르스가 허망하게 룬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룬은 그런 레기오르스를 바라보며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정말 재밌는 소리를 하시네.”


룬은 밀려나오는 웃음을 잠재우듯 단검을 들어 입술을 툭툭 건드렸다. 날카로운 쇠의 감촉과 함께 다시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몰라야 했나요? 그렇게 티를 내고 다니셨으면서?"


레기오르스는 조용히 기회를 가늠했다.


‘나를 조롱하고 싶어한다.’


방심은 언제나 기회를 부른다. 기회를 틈타 품속의 단검을 찔러넣을 수만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레기오르스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대화를 유도했다.


"네 모든 행동은 감시되고 있었다. 언제냐, 언제 이런 준비를 한 게야?"


레기오르스는 대화를 통해 방심을 이끌어 내려 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룬이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늘 제약이 따랐고, 그 행동마저도 감시가 붙었다. 그 모든 것을 피해서 자신의 계략을 파악하고, 그 계략을 역으로 이용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룬 또한 레기오르스의 의문을 짐작한 듯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저를 감시하는 사람이 누구였나요 아버님?"


룬의 말과 거의 동시에 레기오르스는 동굴로 들어오는 두 명의 인기척을 느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내셨네요, 룬."

"아가씨로서는 늦게 끝내신 겁니다 나스챠."


기척의 주인공은 렌스와 나스챠였다.


‘렌스까지?’


레기오르스는 렌스까지 자신을 배신한 모습을 보며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품속의 단검을 꺼내 쥐고 있었다.


그것이 가까워지는 죽음의 불안감에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레기오르스는 그 모습을 보며 룬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룬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은 날이니, 설명해 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그렇게 룬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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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5 45 0 14쪽
11 10화-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0 0 24쪽
10 9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4 46 0 16쪽
9 8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6 1 18쪽
8 7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3 54 2 16쪽
7 6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59 2 13쪽
6 5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2 62 1 14쪽
5 4화 - 탁란공녀 창세기 22.05.11 74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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