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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7,665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1.04.11 07:00
조회
871
추천
6
글자
11쪽

7-22

DUMMY

입으로는 괜찮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도 이신애의 몸은 갸우뚱갸우뚱 중심을 잡지 못해서 비틀거렸다.

이신애의 왼쪽 팔을 잡아준 손현준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럼 숙소까지만 신세 질게요. 근데, 선배 엄청 친절하시네요. 흐흐흐.”


“무슨 웃음이 그래? 꼭 선머슴 같다, 야. 하하하.”


“친절한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었는데······.”


“누가?”


“키다리 아저씨가요....있어요. 키가 크고.....동화 속에서 나온 듯이 나를 도와준······.”


취기가 점점 더 많이 올라오는지 이신애의 이야기는 뚝뚝 끊겨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복학생인 손현준은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군에 입대했었다.

그래서, 87학번 동기들도 손현준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다.

군대에서 3년 복무를 마친 손현준이 대학교 생활을 제대로 해 볼까 하는 마음에 처음 나간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는 여신을 영접했다.

청소년기를 지내오면서 예쁜 여자들을 꽤 많이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손현준이었지만, 이신애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많은 소설과 영화를 본 손현준은 [첫눈에 반한다]라는 표현이 대단히 진부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렇지만, 이신애를 처음 대면한 순간에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했던 손현준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이제 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

평소 내성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고 살아오던 손현준이 국문과 MT에 참석한 것은 순전히 이신애를 보기 위함이었다.

MT에 와서 아쉽게도 조가 달라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이신애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신애가 음식을 만들 때는 옆에서 감자를 까주었지만, 이신애는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었다.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통기타 반주에 합창하던 시간이 끝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커플들을 바라보는 이신애의 눈길도 손현준은 볼 수 있었다.

손현준은 화려해 보이는 아름다움을 가진, 이신애가 사실은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커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신애의 눈길은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보여주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외로움의 눈길이라고 손현준은 확신했다.

불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활기찬 춤사위를 보여주던 이신애가 한 걸음 물러났을 때, 경영학과의 강도수가 다가와서 수건과 맥주를 건네주며 잠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손현준은 지켜보았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도수가 이신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때, 손현준은 결심했다.

아름다운 국문과의 여신 이신애를 지켜주겠노라고.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란슬롯 경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는 기사가 되겠노라고,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맹세했다.

손현준은 이신애가 공중전화로 향하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공중전화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조는 모습도 보았으며, 전화를 끊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틀대는 것을 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났다.


‘나의 귀네비어,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아서왕의 부인. 란슬롯이 사랑한 여인 : 작가 註) 나 손현준이 당신의 란슬롯이 되어 주겠소.’


비틀거리는 이신애의 왼쪽 팔을 잡았을 때, 그녀에게서 아주 좋은 향기가 난다고 손현준은 생각했다.

손현준이 여자 숙소 앞까지 이신애를 데리고 갔을 때, 마침 숙소에서 나오던 고선미와 마주쳤다.


“어? 현준 오빠? 어떻게 신애 언니랑 함께 있어요?”


“응, 선미구나. 신애가 공중전화 앞에서 술에 취해 있길래 데리고 오는 길이야. 방에 들어가기도 그래서, 난처했는데 잘 됐다. 선미 네가 신애 좀 챙겨줘라.”


“그래요, 오빠. 고마워요~. 근데 신애 언니가 꽤 무거운가 봐요?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렸어요, 오빠? 호호호.”


“아? 응? 땀? 그러게.....땀이 났네. 나는 가...가볼게.”


고선미의 말을 듣고 무심결에 오른손으로 이마를 만져보자, 땀이 꽤 많이 나고 있었다.

당황한 손현준이 빠르게 인사를 마치고는 아직 장작불이 타고 있는 운동장 쪽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언니...언니. 정신 차려 봐요. 나는 또 어디 갔나 싶어서 막 찾고 있었잖아요.”


고선미가 몸을 흔들었지만, 이신애는 비몽사몽이었다.

이신애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눕혀주고, 베개를 받쳐주고, 이불을 덮어준 고선미도 땀을 흘렸다.


“우와~ 술 취한 사람 부축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현준 오빠가 땀 흘린 이유를 알겠네, 알겠어. 에이, 나는 술이나 더 마시러 가야겠다.”


차가운 밤바람을 막기 위해 가방에서 잠바를 하나 꺼내든, 고선미도 운동장으로 나가고 방 안에는 잠들어 버린 여학생들 몇몇의 숨소리만이 고르게 울리고 있었다.


* * *


싱가포르 조영의 저택. 22:00.

싱가포르 고위 관료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영이 샤워를 마치고 2층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여한모가 들어왔다.


“보스, 아직 안 주무셨네요?”


“응, 잠이 안 와서 책을 좀 보고 있었어. 무슨 일이냐, 이 시간에?”


읽고 있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조영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 저는 말숙이하고 통화하고 있었어요. 오늘 신애 씨가 대학교에서 1박 2일로 MT를 가서, 집에 혼자 있으니까 무섭다고 하길래 전화 통화로 달래주고 있었지요.”


“아, 신애가 MT 가는 게 오늘이었구나. 며칠 전 통화할 때 들었는데 깜박했네.”


“통화하던 중에 말숙이가 잠시 화장실 간다고 해서 끊었다가, 다시 통화하고 오는 길이에요.”


“통화를 얼마나 오래 하길래, 화장실 갔다 와서 또 해? 하하하. 한모 네가 아예 서울 사무실로 가서 일하는 걸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조영이 책갈피를 집어서 책 사이에 꽂아 넣으면서 고개를 들고 웃었다.


“문제는 화장실 다녀와서 다시 통화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에 신애 씨가 말숙이한테 전화를 했었다는 거죠.”


“MT 가서 재밌게 놀고 있을 신애가 말숙 씨한테 전화까지 해서 챙겨주고, 아름다운 우정이네. 그게 나한테 보고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끝났으면 보스의 독서를 방해하지도 않았겠지요. 문제는 통화하는 신애 씨가 취해 있었다는 거고, 술 취한 신애 씨가 외로움을 토로했다는 것이고요. 더 문제는 그 MT에 한부 건설 강태수의 아들인 강도수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강도수? 작년 겨울에 호텔에서 마주쳤던 그 강도수? 그 녀석 이름이 갑자기 왜 거기에서 튀어나와?”


흥미를 보이는 조영이 책을 밀어내고는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도수가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인데, 국문과인 신애 씨가 MT를 간 민박집 같은 숙소로 경영학과도 MT를 왔답니다. 그곳에서 강도수가 신애 씨한테 아는 체를 하면서 통성명을 했답니다. 게다가 보스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보스를 물리치고 신애 씨를 뺏어내겠다는 선언을 했답니다. 이게 보스의 서재에 찾아오게 된 이유입니다.”


“강도수가 이신애에게 접근했다고? 그것도 나를 물리치고, 신애를 차지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고?”


“그렇습니다. 신애 씨가 말숙이한테 한참을 하소연하다가 전화를 끊었답니다. 아무래도 보스가 조만간 서울에 들어가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흥! 네가 말숙 씨가 보고 싶어진 건 아니고?”


“뭐, 그런 마음이 없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저야, 휴가가 생길 때까지 참을 생각입니다만, 보스는 일정을 조정해드릴까요? 흐흐흐.”


여한모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조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영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내뱉은 조영이 여한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내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


“오늘까지 급한 일들은 처리가 완료되어서, 다음 주는 여유가 좀 있는 편입니다. 3월 24일에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 개장 파티가 예정되어 있으니까, 서울에 들어가서 일을 보시다가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내일 일정은 어때?”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 지금이 몇 시지? 밤 10시가 조금 넘었네?”


조영이 벽에 걸린 시계에 시선을 흘낏 보냈다.


“네, 보스.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는 내일 오후에나 있을 겁니다. 내일 오후로 잡을까요, 아니면 월요일 오전에 있는 정기보고를 마친 후에 가시겠습니까? 월요일 회의는 전화상으로 주요 내용만 보고 받으셔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만.....”


조영이 담배를 피우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본 여한모가 말끝을 흐렸다.

여한모가 조용히 서서 조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모, 신애가 MT 간 곳이 어디인지 기억해?”


“경기도 가평이라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 김포 공항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시간이라....한모, 지금 뜰 수 있는 비행기를 수배해 봐. 내일 아침에 신애를 만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네? 내일 아침에요? 내일 오후 출발이 아니고요?”


“응, 내가 일에 밀려서 자꾸 신애한테 소홀해지고 있었다. 내 책임이야. 결심한 건 바로바로 진행했어야 하는데 나답지 않았어. 나는 바로 준비할 테니까, 알려줘. 너도 함께 갈 거면 가도 되고.”


“알, 알겠습니다. 보스. 오늘 완전 화끈하신데요? 흐흐흐.”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당황함을 감춘 여한모가 서재를 떠났다.

조영이 책을 덮은 후에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한모라면 항공사들을 닦달해서, 공항에 대기 중인 전세기를 바로 준비할 터였다.

읽던 책을 집어들은 조영이 옷방으로 건너가서 갈아입을 옷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 * *


1990년 3월 11일 일요일.

아침 일찍 목이 말라서 눈을 뜬 이신애가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바로 옆에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자고 있는 고선미가 있었다.

숙취로 인한 두통에 머리를 두어 번 주무른 이신애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문 앞의 식수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물컵을 찾았다.

걸어가는 걸음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질서하게 자리를 잡고 잠든 여학생들이 발길에 밟힐까 봐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겨야 했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켜니, 속도 조금 가라앉는 듯하고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여학생 방으로 지정한 곳이었지만, 여기저기에 남학생들도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다들 늦게까지 놀다가 잠든 것인지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지만, 깨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간단하게 세수를 마친 이신애가 가방에서 가디건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여학생 방과 남학생 방의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동기들의 얼굴은 대충 기억하고 있는데, 동기가 아니니까 선배가 틀림없으리라.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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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8-12 21.06.05 70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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