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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의 서재입니다.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7,676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1.04.10 07:00
조회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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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7-21

DUMMY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학 신입생으로서의 시간은 이신애의 삶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신애가 눈을 감고 음악의 리듬에 맞춰서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주변은 이신애를 찬양하고 경배하라고 소리 지르는 늑대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얼마나 몸을 흔들어 댔는지, 이신애는 어느 순간 목이 말라서 춤을 멈추고는 한 발짝 중심에서 멀어져 나왔다.

아직 3월의 밤은 쌀쌀한 기온이었지만, 춤을 추고 난 이신애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이신애가 불을 제대로 지핀 것인지, 장작불 앞에는 원시 시대의 부족민들처럼 소리 지르며 몸을 흔들어 대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각자만의 춤에 빠져든 학생들은 이신애가 자리를 피하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젊음을 즐기고 있었다.


“땀이 많이 흘렀네요. 자, 여기요.”


뒤쪽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손에는 작은 수건과 캔 맥주가 들려 있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시원한 맥주 한잔하면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춤추는 걸 보니까, 많이 춘 솜씨는 아니지만 에너지가 넘치네요. 보기 좋았어요, 신애 씨.”


강도수였다.

딸칵.

이신애가 말없이 수건을 받아서 땀을 닦고, 캔 맥주를 열어서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상쾌했다.


“어때요? 상쾌하죠? 춤춘 후에 땀을 식히는 데는 시원한 맥주가 좋더군요.”


“흥, 이런 식으로 몇 명의 여자들에게 수건과 맥주를 건네주신 걸까요? 과거가 화려하다는 소문이 신입생의 귀에까지 들리던데요?”


“하하하, 글쎄요. 과거에 만났던 여자들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젊을 때야, 서로 호감을 느껴서 만났다가 감정이 다 하면 헤어지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말이지요. 나에게 호감을 느낀 여자들이 많았던 건, 강도수라는 인격이 아니고 내 부모님의 재산에 호감을 느낀 여자들이 많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우리 집이 재벌이라는 소문도 들으셨겠죠?”


“바람둥이라는 소문에 재벌가 일원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오기는 하더군요.”


“나는 재벌 3세로서의 강도수가 아니라, 인간 강도수로서 이신애 씨 당신의 호감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 볼 계획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나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서 말인가요?”


이신애가 던진 도발적 발언에 강도수가 잠시 말을 잊고는 이신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도수가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맞아요. 이신애 씨 당신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사실 한, 두 번 실패하면 포기해버리고 말거든요. 과거의 저는 그랬어요. 어차피 나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신애 씨는 조금 다릅니다. 뭐라고 딱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힘든데, 이신애 씨 당신은 희소가치가 있어요. 커다란 다이아몬드처럼 빛이 납니다. 평생을 갖고 싶어지는 다이아몬드처럼요?”


“나는 하룻밤을 즐기는 남자를 찾고 싶지도 않고, 이미 마음에 둔 남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과한 관심은 끊어 주셨으면 좋겠군요.”


“지난번에 만났던 그 남자인가요? 키 크고 잘생긴? 아, 경호원을 데리고 있는 걸 보니까 집에 돈도 조금 있는 듯하더군요. 신애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그 사람이라면 나는 그와의 경쟁에서 이길 겁니다.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모든 것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그 남자와의 경쟁에서 이겨서, 신애 씨 당신을 쟁취할 겁니다. 반드시.”


경쟁과 쟁취를 이야기하는 강도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찬바람으로 땀이 식고, 어느새 강도수가 건네준 캔 맥주를 모두 비운 이신애는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는 이제 숙소로 들어가야겠어요. 다음에는 굳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 돈을 쓰실 필요 없어요. 그건 모두 헛돈이 될 테니까요. 오늘 술과 고깃값으로 나간 돈처럼 말이지요.”


말을 마친 이신애가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뒤에 남은 강도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흥, 건방진 계집.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기도 오랜만이군. 호텔 침대에서 내 밑에서 발버둥 치면서 소리 지른 후에도 그렇게 도도하게 나올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강도수의 입에서 내뱉어진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숙소는 난방이 가동되었는지 따뜻했다.

따뜻한 실내로 들어서자 그동안 멈춰있던 취기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듯, 이신애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방에는 벌써 누워있는 여학생들이 몇 보였다.

주량이 약한 학생들은 초저녁부터 뻗어서 잠들기도 했다.

가족의 잔소리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더 빠르게 취하게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이신애가 스스로가 비틀거린다는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서 벽을 짚었다.

벽을 짚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서 가방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 이신애가 가방의 지퍼를 열고 동전 지갑을 꺼내 들었다.

방문 앞에 놓여있는 식수대에서 냉수를 한 컵 들이켜 마시자, 조금은 정신이 차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방문 앞에는 이신애가 벗어놓은 신발들 말고도 여러 사람의 신발들이 뒤섞여 있었다.

취기가 급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제 신발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신애는 아무거나 발에 밟히는 슬리퍼를 챙겨 신었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중전화는 숙소 동에서 조금 떨어진 관리인이 머무는 건물에 있었다.

낮에 숙소로 들어오면서 봐 두었던 것이 생각난 이신애가 방에 들러서 챙긴 동전 지갑을 들고 공중전화까지 어렵게 걸어갔다.


뚜~우.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넣자 신호음이 생겨났다.

이신애가 취한 와중에도 생각나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기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기집애, 무슨 통화를 이렇게 길게 하는 거야? 아, 취한다.”


이신애가 공중전화 옆에 쭈그려 앉아서 팔짱을 끼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에 가까운 둥근 달이 이신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조영 오빠 보고 싶다. 오빠랑 이런 데 여행 오면 재밌을 텐데······.”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조영의 이름을 읊조리던 이신애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앗, 깜짝이야.”


얼마 동안을 졸았는지, 졸면서 흔들리는 몸에 깜짝 놀란 이신애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뿐이었다.

꼭 쥐고 있는 오른손에는 동전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제서야 전화를 걸러 나왔었다는 것을 기억한 이신애가 취한 몸을 일으켜 세워서 공중전화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따르릉. 따르릉.

이번 통화 연결은 성공이었다.

적어도 통화 중이라는 신호가 나지는 않았다.

상대는 몇 번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기집애가 잠들었나?”


지친 이신애가 전화를 끊을까 말까 망설이기 시작할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기집애야. 늦은 시간에 어디에 그렇게 길게 통화를 하는 거야? 전화하러 나왔다가 잠들 뻔했잖아.”


[아, 신애구나? 재밌어? 근데 술 많이 마셨니?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응, 술은 좀 마셨지. 달이 예쁘니까, 술이 술술 들어가네. 흐흐흐. 집은 별일 없고? 무섭지 않아?”


[응, 괜찮아. 전화 여러 번 했어? 미안해. 여 팀장님하고 통화가 조금 길어졌네. 화장실 갔다가 오느라고 잠깐 끊었던 건데, 타이밍 좋을 때 전화했네. 역시 이신애야. 호호호.]


“그러게 집에 혼자 있지 말고, 고향 집에라도 다녀오라니까, 기집애. 괜히 무서우니까, 여 팀장님한테 전화했구나?”


이신애와 김말숙은 흑석동의 주택에서 둘이 살고 있었다.

김말숙은 큰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다며, 이신애가 지난달에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는 고향 집에 내려갔다가 왔었다.

오늘도 MT 안 가면 안 되느냐, 내가 따라갈까 등으로 떼쓰다가 이신애가 밤에 전화해준다는 조건으로 MT를 허락(?)해 주었었다.

이신애는 김말숙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취한 몸을 끌고 전화를 하러 나온 것이었다.


“여 팀장님이 달려온대? 여자 친구가 무섭다고 하면 당장 쫓아와야 하는 거 아냐?”


[기집애, 상황 알면서 그래. 팀장님 있는 곳이 차로 한, 두 시간 거리도 아니고 어떻게 오라고 하니?]


“그러게 말이다. 임이 있으면 뭐하냐?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화기만 붙잡고 있게 만들고. 에~휴......”


[신애야, 무슨 일 있었어?]


술을 마시기는 했다고 해도, 평소와 다른 이신애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눈치챈 김말숙이 다정하게 물어왔다.


“아니야. 무슨 일은. 그냥......”


[기집애, 무슨 일 있었구만?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봐.]


차분한 김말숙의 목소리에 넘어간 이신애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실은 오늘 MT 와서.......그래서, 지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 취하기도 하고, 너 무섭다고 한 것도 생각나고, 달 보니까 보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나고....”


이신애가 MT 와서의 일들, 경영학과와 만난 이야기, 강도수와 인사를 나눈 이야기 등을 두서없이 김말숙에게 떠들어댔다.


[그랬구나. 그래서, 멀리 있는 임이 보고 싶어진 거구나, 신애가? 호호호.]


“임은 무슨....나 혼자 생각인 거지. 흐유~ 그냥 한숨만 나오다가 네 생각나서 전화했다. 친구야.”


[그래, 아침에 술 깨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술에 취한 데다가 달빛이 예뻐서 센치멘탈해진 거라고. 그래도, 내 생각해서 전화해줘서 고맙다, 친구야.]


“그래, 김말숙. 이 기집애. 내 친구. 나는 이제 들어가서 자야겠다. 동전도 이제 없어”


중간에 통화가 길어져서 무려 40원이나 더 집어넣었지만, 통화 시간의 끝이 다가왔다.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 밤바람은 아직....]


김말숙의 안부 인사가 끝나는 것을 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에효....동전도 다 쓰고, 이제 들어가서 자야겠다. 아이, 머리 아파.”


이신애가 비틀비틀 숙소를 향해 몇 걸음 걸었을 때, 옆에서 나타난 따뜻한 손이 이신애를 부축해 주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신애? 박신애였나?”


“90학번 이신애입니다. 그런데....누구세요?”


“아, 나는 87학번 복학생인 손현준. 지난번에 잠깐 인사는 했었는데, 기억 안 나?”


“아, 선배. 죄송해요. 제가 지금 취해서 기억을 잘 못 하겠어요.”


“괜찮아, 나는 원래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서. 하하. 술 많이 마셨나 보다? 내가 숙소까지만 부축해 줄게.”


“괜찮아요...괜찮은데······.”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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