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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782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1.03.09 2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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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2화

DUMMY

그리고 잠시 후, 간만에 만난 안젤라와 세바스는 수도에 위치한 카페에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안젤라는 이제 신수가 부화했으니 오랫동안 입으며 정이 들었던 메이드복과 작별하고 늘 입던 그 수수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세바스는 평소의 흉흉한 갑옷이 아닌 일반적으로 귀족들이 일반적으로 입는 정장 차림이었다.


"..."

"..."


원래 왕국에는 카페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얼마 전부터 커피가 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자연스럽게 카이너스 왕국에도 넘어왔고, 그 결과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카페들이 신장 개업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귀족이지만 사교 활동 같은 것에는 영 흥미가 없는 세바스도 커피가 뭔지는 잘 모른다는 것이었고, 커피같은 최신의 기호품은 커녕 홍차 마시는 법조차 모르는 안젤라는 당연히 커피 같은 건 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세바스는 요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카페라는 곳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약속 장소를 카페로 잡았지만, 커피라는 것을 마시는 예법을 몰라 김을 모락모락 올리고 있는 커피를 눈앞에 두고도 멀뚱히 커피를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었고, 안젤라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세바스가 먼저 커피를 마시기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런 불편한 침묵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었다.


"...음."


하물며 지금은 카페도 막 문을 연 이른 아침. 손님이라고는 안젤라와 세바스밖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법을 흉내낼 수도 없었다. 물론 커피 마시는 예법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걸 모르는 세바스는 눈앞의 검은 액체를 곤란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기...이단심문관님?"

"헛. 네."


언제까지고 눈도 안 달린 커피와 눈싸움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세바스는 안젤라가 먼저 입을 열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고, 안젤라는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는 커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마시는 건 맞는거죠?"

"...아마 그럴 겁니다."


자신 없는 듯한 태도로 대답하는 세바스. 뭔가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있던 카페의 주인이 웃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세바스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한번 마셔보도록 하죠."


결국 예법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한 세바스는 커피잔을 들고 시간을 끄느라 조금 식어있던 커피를 한 입에 털어넣었고, 향 같은 건 음미할 시간도 없이 원샷을 때려버린 그는 커피의 쓰디쓴 맛에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게 은화 한 닢짜리 음료라고? 음...요즘 젊은이들의 소비 문화는 이해가 가질 않는군."


그렇게 말하는 세바스 본인도 젊은 축에 속하지만 말이다.


"아, 안 뜨거워요?"


안젤라는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하는 고양이혀라 약간 식었지만 세바스처럼 원샷을 할 각오는 도저히 없었던지라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고 호호 불어가며 조금 마셨다.


"아. 이거 향이 제법 좋네요."


따듯한 커피를 입 안에서 음미하자 쓴 맛도 느껴졌지만 커피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감돌았고, 안젤라는 그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안젤라의 말을 듣고서야 커피 마시는 법을 깨달은 세바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비어버린 자신의 커피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차...이것도 차와 비슷하게 즐기는 음료였던 것이로군."


애초에 맛으로 즐기는 음료였다면 이만한 양에 그만한 돈을 받을 리 없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 세바스였지만 이미 은하 한 닢짜리 커피는 세바스의 위장 속으로 들어가버린 뒤였기에 세바스는 아쉽다는 듯이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음. 안젤라양. 학교 생활은 좀 지낼 만 합니까?"


저번에 도미니크 저택에서 만났을 때는 세바스가 아이리스의 일을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안젤라도 일단은 미리엘의 일일 메이드로 일하고 있었던지라 한가하게 얘기를 나누지 못했기에 안젤라와 세바스는 꽤 오래간만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학교 생활 자체는 할 만 했는데요...어제 그런 일이 터지는 바람에."

"저도 얘기는 대강 전해들었습니다만, 자세한 연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얘기해 드릴게요."


안젤라는 때때로 커피를 홀짝거리며 폭식의 권능 사건의 개요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고, 얘기를 끝까지 마칠 때 즈음에는 안젤라의 커피잔도 비게 되었다.


"흠. 대죄의 권능...과연 위험하기 그지없군요."

"네. 저도 이번에 뼈저리게 체감했어요."


폭식의 대죄 본체가 직접 강림한 것도 아니고 그 권능의 일부만으로도 이만큼의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안젤라와 루시퍼의 활약 덕에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지만, 만약에 폭식 본체가 직접 학교로 쳐들어왔었더라면 안젤라로서는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저희 교단 측에서 안젤라양에게 큰 은혜를 입었군요. 제가 교단을 대표할 입장은 아닙니다만...교단의 일원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세바스는 그렇게 말하며 깊게 고개를 숙였고, 안젤라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왜, 왜 이러세요. 고개를 들어주세요 이단심문관님."


허둥거리며 점장 쪽을 힐끔 쳐다본 안젤라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동그래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점장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점장은 급히 시선을 돌리며 방금 전에 닦았던 바닥을 계속해서 닦았고, 안젤라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제가 모질지 못했던 탓에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요. 감사 인사를 듣기보다는...오히려 속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빌리언 카이너스군의 일입니까?"


조금 전에 안젤라에게 들었던 얘기에서 나온 이름. 이번 사태의 유일한 희생자라고도 할 수 있었다.


"빌리언군의 일은 유감입니다만, 그 일에 대해서 안젤라양을 책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들 좋으신 분들이라 그렇게 얘기는 해주시지만...저 자신이 납득하기 힘든걸요."


안젤라를 완전히 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안젤라와 함께 다녀본 경험이 있는 세바스이기에 안젤라의 성격을 대강은 알고 있는 그였고, 그렇기에 지금 안젤라가 하고 있는 고민은 그녀 스스로 답을 내리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문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결국 세바스는 안젤라에게 별다른 위로의 말을 해 줄 수는 없었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어, 어색하다. 가뜩이나 풀죽어 있는 안젤라양인데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할 수는 없는데.'


라고 세바스치고는 상당히 기특한 생각을 한 그였지만, 인간관계라고는 동기 이단심문관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경험밖에는 없었던 그였기에 안젤라 또래의 여자아이에게는 당최 뭘 해줘야 기분이 풀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그래! 미리엘! 미리엘이 안젤라와 동갑이었지!'


그 때 여동생의 존재를 떠올린 세바스가 미리엘이라면 뭘 해줘야 기뻐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고, 안젤라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세바스의 표정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보자, 미리엘이라면...'


눈앞에 있는 것이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세바스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세바스 도미니크. 미리엘은 내가 무엇을 해주었을 때 가장 기뻐했나...'


세바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고민을 해 봤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이, 이럴 수가. 미리엘은 내가 딱히 아무 것도 안 해도 기뻐하던데...'


학교에서의 도도한 모습만 보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를 않는 모습이시는 하지만, 극도의 오라버니 바라기인 미리엘은 세바스가 숨만 쉬어도 꺅꺅거리며 기뻐하는 게 일상이었으므로 전혀 참고가 되지 않았다.

세바스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이마의 주름이 짙어지는 모습을 안젤라는 참 재밌다며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세바스는 본의 아니게 안젤라를 즐겁게 해주고는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래도 생각해라. 미리엘이 바라는 것. 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세바스는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고심한 결과 얼마 전에 있었던 미리엘과의 일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 오라버니? 다녀오셨어요?"


그 날은 세바스가 여느 때처럼 아이리스에 관하여 조사를 했지만, 역시나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허탈하고 짜증나는 감정 상태이기는 했지만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으므로 세바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미리엘의 인사에 답해주었다.


"그래. 너도 잘 지냈느냐."

"저, 저야 오늘도 오라버니 덕에 즐겁고 충실한 하루를 보냈답니다."


미리엘의 즐겁고 충실한 나날에 세바스 자신이 보태준 것이 있나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그런데...오라버니. 제가 감히 한 가지 청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평소라면 이쯤에서 얼굴을 붉히며 도도도 달려가버렸을 미리엘이건만, 오늘은 뭔가 세바스에게 용건이 남아 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세바스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녀였다.


"응? 뭐니?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마."

"가, 감사합니다! 그, 그렇다면 저기...그게."


정말 어지간히도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것처럼 미리엘이 손가락을 비비며 우물쭈물거렸고, 세바스는 피곤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미리엘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 저기...오, 오빠...라고, 불러도."


한참을 망설인 끝에 미리엘은 모기만한 소리로 말을 꺼냈고,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세바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뭔가 말했니? 다시 말해줄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옷!"


방금 꺼낸 그 말에 모든 용기를 써버린 듯한 미리엘은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이며 달려가버렸고, 혼자 남겨진 세바스는 미리엘의 영문을 모르겠는 행동에 의문을 느꼈지만, 피곤하기도 했고, 생각할 것도 많은 그였기에 그 행동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머리에서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을 기억해낸 세바스는 익숙치 않은 고민을 하느라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눈앞의 안젤라와 미리엘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결과.


"오, 오빠라고...불러도 된단다."

"...네?"

"어."


세바스는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지었고, 안젤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작가의말

뇌정지가 온 세바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4 즐겨보는자
    작성일
    21.12.21 14:26
    No. 1

    캬 오빠라고 불러도 된데 히힛 나중에 써먹어봐야지
    민정씨는 내가 허락할께 오빠라고 불러도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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