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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785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1.02.19 2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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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4화

DUMMY

"거기. 난 죽어도 못 싸우겠다는 한심한 겁쟁이들은 어디서 뭘 하건 신경 끌테니까, 가급적이면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쳐박혀있고. 조금은 용기가 있는 놈들은 날 따라와주면 좋겠군."


루시퍼의 노골적인 무시에 싸우지 않는 것을 선택한 교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안젤라와 루시퍼, 그리고 몇 명의 교사들이 도착하자 학생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었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루시퍼가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조금 전에 제법 되는 인원이 엿들었으니 지금쯤이면 대부분은 자세한 사항까지 알 거라 생각하고 설명은 생략하지. 모르는 놈은 대충 옆에 있는 놈한테 물어봐라."


루시퍼의 말에 몇 명의 학생이 움찔했지만, 오히려 설명할 시간을 아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나나 안젤라가 세 개의 결계석을 모두 맡는 게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나의 결계석이 비게 되면 다른 결계석을 담당하던 사람에게 마력이 역류하게 된다. 그럼 본말전도지."


이만큼 대규모의 결계를 유지하던 마력이 역류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필시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세 개의 결계석을 동시에 무효화시켜야 한다. 마력이 역류하는 과정에는 딜레이가 있으니, 1분 정도 안에 세 개의 결계석을 모두 무효화시키면 결계는 해제되고, 연결될 곳을 잃은 마력은 허공으로 흩어지겠지."


루시퍼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말했다.


"그러니 아무 곳이나 단 하나의 결계석만 맡으면 된다. 인원은 많을수록 좋아. 그러는 편이 생존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가겠지. 지키는 인원은 적어지고, 공격할 인원은 많아지니까 말이야. 검은 액체에 먹히는 것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 있는 안젤라가 되돌릴 수 있는 것 알고 있겠지."


루시퍼가 옆에 서있던 안젤라의 정수리를 살포시 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놈들은 죽지만 않으면 된다. 꼴에 교단 직속 학교고, 치유 기적은 신성력을 사용할 때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거니 의료진은 차고 넘치겠지."


확실히 치료의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안젤라나, 겔피온 선생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체 부위가 절단되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치유할 인원은 차고도 넘쳤다.


"그러니 살고 싶으면 싸워라. 여기서 가만히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 결계만 무효화시키면, 외부의 구원이 온다."


루시퍼의 말에도 학생들은 침묵을 유지했기에,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알기가 힘들었다.


"..."


딱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기에 루시퍼도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유지했고,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 그러니까 우리더러 저거랑 싸우라고?"

"애초에 너희들로는 죽일 수도 없는 놈이고, 또 적극적으로 쫓아가란 소리는 하지도 않아. 그저 결계석을 점거하고 있는 희생자만 어떻게든 떼어내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그게 뭐가 어렵지? 여기 있는 안젤라만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아나? 네놈들 중에도 신성력을 제법 다룰 수 있는 놈들이 있지 않나. 저 괴물은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금방 흡수해 버리지만 신성력은 저놈에게 있어서 쥐약이나 다름 없다. 신성력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이 검은 액체들을 물리는 동안에 결계석을 점거한 희생자를 어떻게든 떼어내면 될 일이다."

"무, 무리야. 저런 어마어마한 물량이라면 내 신성력 수준이라면 30초도 못 버틴다구..."

"하아...환장하겠네 진짜."


루시퍼의 압도적 능력으로 인해 학생들의 사기가 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루시퍼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앙에 의해 학생들이 느끼고 있을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귀족가의 자제로 지금까지 전투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기에, 느닷없이 대련도 아니고 실전에서, 그것도 저런 정체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맞서 싸우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호승심이 끓어 오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것이었다.

결국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에 의해 의견은 양자의 의견은 통일될 수 없었고, 그저 힘만으로 쌓아올린 카리스마에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루, 루시퍼군은 강하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거야."

"그런데 애초에 혼자서 돌파라니. 그런 게 가능해?"

"만약 어떻게든 우리끼리 결계석을 무효화시킨다고 해도 루시퍼군이나 안젤라양이 실패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데."


작은 속삭임으로 시작한 균열은 눈덩이처럼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가며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의 공기는 그래도 역시 싸울 수는 없다는 흐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른들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아직 어렸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그 자신은 떠오르는 대세에 거부하고 싶어도 다른 학생들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배척하고, 도태시켰기에 한번 여론이 형성되어 버리면 그것을 뒤집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루시퍼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에 대놓고 루시퍼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퍼의 얼마 안 되는 인내심을 깎아내기에 충분했다.


"하. 이 핏덩어리들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루시퍼가 눈을 감으며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학생들은 아직 루시퍼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떠들고만 있었다.


"가뜩이나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인명 구조니 뭐니 해서 짜증나 죽겠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이따위 반응이라니. 이것 참."


애초에 루시퍼는 폭식의 권능에게 먹힌 학생들 따위 쳐내버리고 당장 탈출하자는 의견이었건만, 양보한 결과가 이 모양이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 채 루시퍼가 조용히 오른 무릎을 들어올렸고, 다음 순간 바닥에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꺄아아악!"


그러자 사방으로 마기가 퍼져나가며, 학생들의 무리를 쓸고 지나갔다. 마기에 노출된 학생들이 느낀 것은 모두 같았다. 그것은 바로 공포. 지금 이 순간, 보호막 밖에서 우글거리는 폭식의 권능에 대한 공포보다, 그들의 바로 앞에 있는 루시퍼에게 더욱 큰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야. 니네들 전부. 죽고싶냐?"


그렇게 말하며 루시퍼는 눈을 떴고, 보랏빛으로 빛나는 안광이 포식자를 눈앞에 둔 사냥감처럼 얼어있는 학생들의 등골을 달렸다.


"아, 안 돼요 루시퍼!"


그리고 그 때, 또 혼자서 루시퍼가 방출한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안젤라가 루시퍼에게 매달리며 외쳤고, 갈루에 선생은 학생들의 앞에 가서 말없이 서며 루시퍼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쳇.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그래. 내가 여기서 저 새끼들을 다 죽여버리면 본말 전도지. 안 한다. 안 해."


루시퍼는 혀를 차며 등을 돌려버렸고, 그제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얼어 있던 학생들은 참던 숨을 내뱉으며 거칠게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방금 뭐였지?"

"루, 루시퍼군...무서웠어."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공포심을 가지고 루시퍼를 바라봤고, 루시퍼는 그들의 시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안젤라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떡할거냐. 저 새끼들은 저렇다는데. 이 인원으로 폭식의 권능을 뚫고 희생자를 해방하는건...딱 잘라 말해서 불가능해."

"...제가, 제가 해 볼게요."

"하다니. 뭘 말이냐?"

"제가 저분들을 설득해 볼게요."


입술을 깨물며 말하는 안젤라에게 루시퍼가 조소하며 말했다.


"그게 되겠냐? 이미 저놈들의 투쟁심은 죽었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어떻게든 기세를 끌어올리려던 이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러냐. 니 맘대로 해 봐라 그럼."

"...네."


안젤라는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학생들의 앞에 나섰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방금 전의 그 일로 인해 루시퍼를 향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은 루시퍼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불만의 시선은 애꿎은 안젤라도 피할 수 없었다.


"뭐야 안젤라양. 너도 우리한테 설교하려고?"

"안젤라양은 좋겠어. 운좋게 그런 강한 힘을 타고 나서 말이야."


당연히 루시퍼보다는 평소 행실도 얌전하고, 또 신분도 귀족인 그들보다 낮았기에 학생들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안젤라를 향해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얌전히 학생들이 내뱉는 불만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안젤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안젤라의 말에 학생 한 명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안젤라양. 강한 사람은 절대 약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어. 안젤라양은 그렇게 말해도 사실 이 상황에도 아주 여유롭지?"

"여차하면 이 보호막만 쳐도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누군가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깎아내야만 하는 안젤라의 심정은 알지도 못한 채 떠들어대는 학생들이 미울 만도 하건만, 안젤라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저도, 이 힘을 얻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약자의 심정은 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어요."

"그, 그런 걸 어떻게 믿어..."

"어머니께서 아프신데도, 그 달의 월급이 밀려서 약을 사다 드리지 못했어요."


안젤라는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하지만 저는 촌장님께 밀린 월급을 받아낼 수 없었어요.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했기에 말이죠. 결국 어머니께서는 일주일 내내 병으로 앓아누우셨어요."


그리고 안젤라는 고향 마을에서 겪었던 설움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리에 머리카락이 들어갔다며 생떼를 부리는 아주머니에게 얼마 되지 않는 급여로 배상을 해주었던 일, 하나밖에 없는 물동이가 동네 악동들의 장난에 깨졌던 일. 안젤라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모두 철저한 약자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이었고,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을 하던 학생들도 안젤라가 말해주는 이야기의 디테일 때문인지, 아니면 그 당시 겪었던 설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안젤라의 목소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젤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간만에 여행을 가보고 싶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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