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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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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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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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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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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군계(軍鶏).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군계> 촬영에 할리우드 DP(Director of Photography)를 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친분이 있는 할리우드 DP들이 일본으로 출장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미 할리우드 영화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더한 도제로 돌아가는 것이 일본영화계다.

그래서 환갑을 훌쩍 넘긴 전설의 일본 촬영감독에게 제안했다.

최근 <철도원>, <호타루>를 촬영했는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 다수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다이사쿠 감독이다.


“뭐랄까... 일본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굉장히 도전적인 영화이긴 합니다만.... 이 영화는 내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대담한 젊은 감독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노 감독이 류지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디지털 영화에 대해 거부감을 내비쳤단다.

도쿄다카라가 <이니셜D>로 Eye-MAX 맛을 제대로 봐서였을까.

뜬금없이 오리지널 포맷의 Eye-MAX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소요되는 예산을 대략적으로 알려주자 제안을 바로 철회했다.

그런 후에 제안한 것이 D-Cinema다.

도쿄다카라는 류지호를 통해 본격적인 D-Cinema를 자사 극장에 적용해 보고 싶은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도쿄다카라의 그 같은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네-콰논의 이성연 마케팅 팀장의 말이었다.

그녀는 이봉호 사장의 여동생이다.

씨네-콰논에서 마케팅 업무를 보던 그녀는 WaW 일본 지사에서도 똑같은 업무를 보고 있다.


“손익계산이 끝났겠죠.”


즉 기존의 필름 배급보다 D-Cinema가 배급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사실 <군계>가 망해도 도쿄다카라와 푸지TV는 별다른 타격이 없어요.”

“일본 국내에서 투자금은 회수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군요?”

“도쿄다카라가 일본 내 배급을 꽉 쥐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가온과 수익을 나눌 필요도 없고.”


제작위원회가 유럽권에서 류지호 영화 마니아가 많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해외 배급에는 시큰둥했다.

일본 영화가 가망이 없다거나 갈라파고스화 되었기 때문에 류지호와 합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류지호를 통해 일본 영화계에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합작을 하는 이유는.


- 일본에서 한 번 놀아봐라, 먹히나 보게.


그런 생각이다.

류지호라고 그런 생각을 모를까.

다소 무리다 싶을 정도로 일본합작을 이어가고 있다.

한류가 K-컬처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 아시아를 넘어서기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일본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장이다.

정서적 동질감을 가진 전 세계 2~3위 권 대중문화소비시장을 가진 국가가 양 옆에 있다는 것은 한국에게 축복이다.

일본 특유의 산업적·시장 폐쇄성 때문에 안착이 쉽지 않지만, 안착에 성공만 하면 안정적인 매출을 꾸준히 거둘 수 있다.


“일본 전자회사 제품을 써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진 않죠?”

“일본영화계 사람이었다면 그러고도 남았죠. 감히 미스터 할리우드에게 그렇게까지 경우 없게 굴진 않아요.”


<군계>는 Origin-Ⅱ로 촬영하기로 했다.

4K Evolution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제작비와 일본의 인프라 때문이다.

5억 엔 예산은 일본 영화계에서 꽤나 중대형 영화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해서 4K 제작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4K로 찍어도 도쿄다카라 스튜디오가 감당을 못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촬영팀이 도착한 모양이네요.”


몇 명의 촬영감독에게 거절을 당하고 <군계> 촬영감독으로 낙점 된 인물은...


“어서와. 형.”

“이 동네 무지 비싼 동네 아니냐?”


인사도 생략하고 놀라움부터 표현하는 김영복 촬영감독이다.

통유리 너머, 저 멀리 보이는 후지산에 넋을 놓아버린 김영복이다.

1년에 단 40일 정도만 모리타워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다.

김영복과 함께 류지호를 지원하기 위해서 온 퍼스트는 운이 무척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류지호가 있는 곳은 롯폰기 초고층 랜드마크 모리타워에 입주해 있는 G.O.M International JAP 사무실이다.

54층의 이 건물에는 JHO와 가온그룹 지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인사건 뭐건 풍경 감상에 빠져 있는 김영복을 내버려 둔 류지호가 함께 온 촬영 퍼스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최 기사.”

“잘 지내셨습니까, 감독님.”


촬영 퍼스트 최준모가 깍듯하게 류지호의 손을 붙잡고 몇 번 흔들었다.


“나야 항상 똑같지 뭐.”


<군계> 헤드스태프에 일본 유학파 출신 한중기 프로듀서, DP에 김영복, 포커스풀러 겸 카메라 오퍼레이터 최준모가 참여하기로 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도 데려오려고 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인건비가 책정되어 있어 단념했다.

조감독은 부모가 민단계인 윤박지라는 이름의 재일동포가 합류했다.


“숙소로 안 가고 왜 이쪽으로 왔어?”


최준모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김영복이 했다.


“감독님부터 뵙고 인사드리는 게 기본 아니겠냐?”

“언제부터 예의 차렸다고?”

“마, 우린 그렇게 배웠어.”


류지호가 이성연 마케팅팀장을 가리켰다.


“인사해.”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감독님. 비행은 즐거우셨나요?”

“뜨자마자 내려서 뭐....”


류지호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밥은?”

“비행기에서 간식인지 식사인지를 주긴 하더라. 근데 이 빌딩 몇 층이냐?”

“지상 54층인가 그럴 걸?”

“63빌딩 보다 낮네?”

“촌스럽게 뭘 그런 걸 비교해?”

“인마, 우리가 국가대표로 왔잖아. 기죽어서 쓰겠냐?”

“해외 로케이션 온 거지 무슨 국가대표씩이나....”

“내가 일본 애들 앞에서 쪽 팔아봐라, 충무로 카메라맨을 어떻게 보겠냐?”


김영복이 <군계> 촬영을 한다고 알려지자 일본의 영화잡지에서 비중 있게 다뤘다.

류지호가 한국에서 작업한 영화를 대부분 촬영했고, <쉬리>를 비롯해 다수의 흥행영화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위원회에서도 푸지TV를 통해 김영복의 합류를 크게 포장해 보도하기도 했다.


“하던 대로 해. 오버하지 말고.”


겉으로는 능글거리고 있지만, 부담이 만만치 않을 터.

한국영화를 가지고 해외에 나가서 현지 스태프를 고용해서 작업하는 것과 외국영화에 고용되어 작업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스태프들 사이에서 일본영화가 한국에 오면 한 수 배운다는 자세가 일부 남아 있었다.

이제는 그런 거 없다.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야망을 가진 젊은 촬영기사가 나올 정도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좀 이르지만 저녁 먹으러 가자.”

“한 피디는?”

“프로덕션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지.”

“여기가 사무실 아니었어?”

“씨네-콰논 사무실은 스기나미구.... 시부야라고 들어봤지?”

“응.”

“거기와 가까운 데 프로덕션 오피스가 있어. 형하고 최 기사 숙소도 그 근처고. 일단 그쪽으로 이동하자.”

“여긴 뭐 하는 사무실인데?”

“G.O.M 일본 지사. 그것도 모르고 온 거야?”

“그냥 류 감독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지.”

“암튼, 여긴 형이 따로 인사할 사람도 없어.”


이성연 팀장이 일행을 데리고 스기나미구로 향했다.

과거 사용하던 씨네-콰논 사무실은 임대를 주고 있다.

근처의 신축건물을 새로 얻어서 사용하고 있다.

김영복과 최준모가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자, 한중기 피디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한 피디가 고생이 많아.”

“식당 예약해 뒀습니다.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일본에서 밤에 이뤄지는 유흥접대는 ‘사업의 연장’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사회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일본의 고위급 인사와 만날 때마다 류지호는 특유의 환대문화가 영 불편했다.

환대도 정도껏이지.

상대의 접대를 불편해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니 내색도 못하고.

따라서 김영복이 합류한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이성연 마케팅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일본의 많은 영화인들이 감독님을 주시하고 있어요.”


류지호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되물었다.


“외국인 감독이 일본에서 영화 찍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감독님은 할리우드 톱 감독님이시잖아요. 견고한 제작위원회 틀을 깰 수 있을지가 궁금한 모양이에요.”

“얼마나 지독하기에?”

“WaW가 제작위원회 멤버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감독님도 예외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을 받으셨을 거예요.”

“A-list 감독도 예외가 아니란 말이군요?”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제작되는 일본 메이저 영화에서 감독의 자율권은 제로라고 보시면 되요.”


김영복이 끼어들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다수 배출하고 있는 일본이?

“그들은 제작위원회 시스템에서 한 발 떨어져 있어요.”


메이저 영화를 못 한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지만 열정과 보람이란 성취감.... 후우. 해외에서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라도 제작위원회 시스템 안에서 일하게 되면 여지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일본영화에요.”


그래서 외국에 잘 알려진 유명 감독들조차 드라마도 찍고 다작을 해야만 한다.

먹기 살기 위해서.


“감독님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겠다고 했으면, 아마 도쿄다카라가 발을 뺐을지도 몰라요.”

“....그랬을까요?”

“그들에게 감독의 세계적인 명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 감독이나 데려다가 성공한 원작을 실사화하면 충분히 수익을 뽑을 수 있으니까요. 할리우드 메이저 시스템도 그렇지 않던가요?”


절대 아무 감독에게나 영화를 맡기진 않는다.


“감독들에게 편집권이 없으니까. 스타 캐스팅 문제도 있고. 할리우드에서도 감독은 파리 목숨이긴 하죠.”

“오빠도 그렇지만 저도 외국 프로듀서들을 많이 만나요. 일본의 프로듀서들에게 ‘이런 기획의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면 무조건 ‘누가 주연 배우냐’고 물어요. 그리고 ‘원작이 있느냐?’ 그 두 가지만 묻죠. 반면에 외국 프로듀서는 ‘왜 그걸 찍고 싶냐?고 해요.”


김영복이 또 다시 끼어들었다.


“그건 한국도 그렇지 않나?”


일본, 한국과 해외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타의 영화냐 감독의 영화냐이다.

사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일본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매우 간단해요. 유명 연예인이 나오면 바로 찍을 수 있으니까.”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죠.”


한국영화를 일본에서 배급할 때 한류스타가 아닌 배우나 감독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전개하면 씨알도 안 먹힌다.

국제영화제 수상 이력이 있는 감독을 내세워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한국의 장사꾼들이 일본의 한류 드라마팬을 타깃으로 영화를 제작해 수출한다.

그들이 기대한 대로 일본 극장을 아줌마팬들이 점령한다.

이후로 영화는 뒷전이 된다.

한류스타의 소속사는 일본에서 팬미팅 행사를 여러 차례 진행한다.

비싼 티켓을 팔아 돈을 챙긴 후 한국으로 가버린다.

장사만 있고 그 어디에도 한류를 활용한 장기적인 플랜이 없다.

이 시기가 그런 풍조가 극성을 부리던 때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본 공략을 고민하기보다 당장 반짝 떴을 때 일본에서 한몫 챙기려는 심보가 만연했다.

한류가 한풀 꺾인 여러 요인 중에 한국 기획사들의 무분별한 팬미팅과 한철 장사처럼 바가지 수출가로 방송사를 기만한 것도 한몫했다.


‘이미 대만에서 크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쯧.‘


한국의 업자들이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듯 수출가격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전 삶에서 일본과 대만 매스컴이 한류에 편승하면서도 한편으로 꾸준히 부정적인 뉘앙스까지 함께 내비치는 것은 이 시기 한국 엔터업자들의 어리석은 행동도 크게 작용했다.

이성연의 푸념이 계속됐다.


“일본의 프로듀서들도 영화를 좋아해요. 그러면 뭐 할까 싶은 것이 시스템 속에 갇힌 샐러리맨이나 마찬가지에요. 가장 슬픈 사실은 젊은 감독들이 일본의 그런 방식이 정상인 줄 안다는 거예요. 지금 같은 시대에도 ‘감독하면 가난해진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건 이상하잖아요. 일본에서만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한다는 걸 몰라요.”


사실 남매도 WaW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훨씬 선진적인 트라이-스텔라의 방식까지 알게 되면서 일본영화계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됐다.


“일본 영화에도 과거처럼 존경할 수 있는 선배 감독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홍콩의 두치펑 같은 감독이 일본에는 없어요. 일본의 젊은 감독들이 한국 감독들을 엄청 부러워해요. 슬픈 일이죠. 유명 감독들도 안 좋은 시스템 속에서 돈이 없어서 자기들이 먹고 사는 것에만 신경 쓰게 되고. 젊은 후배 감독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니까. 시스템은 원래 개선되어야 하는 건데, 점점 안 좋아지기만 하는 것 같아요.”


김영복이 류지호를 슬쩍 돌아봤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충무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최근 어떤 프로듀서가 감독은 마케팅이나 돈에 대해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부족하니까 영화만 생각하면 된다는 거지만, 안 좋은 습관이라고 봐요. 이용당하는 거죠. 외국 영화제를 가보면 해외 감독들은 모두 돈 생각을 하고 있고, 모두 돈을 갖고 있어요. 사실 감독님만 해도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하시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는 것이고요.”


류지호가 낮고 또렷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누가 언제부터 주입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술 자체가 지닌 높은 가치 때문에 예술가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가만 생각해 볼 때 수입이 낮아도 직업생활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은 거짓말 같아요. 사실 수입이나 명성 등 모든 게 낮은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예술은 좋으니까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예술 분야의 기풍 때문에 예술가의 '열정'이 예술가에 대한 착취 구조로 이어지는 것이겠죠.”


일본영화 업계에서 수익을 모두 극장과 제작위원회가 챙긴다.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는 정해진 고정 개런티만 받는다.

그 어떤 인센티브도 없다.

몇 년 후 간신히 감독 인센티브가 생긴다.

그 비율이라는 것이 최종 수익금에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화 시장이 훨씬 작은 한국에서조차 최소 3%의 인센티브 계약을 체결하는데.

스태프들 처우는 말 할 것도 없다.

이 당시만 해도 한국보다 기본급은 많이 받는다.

대신 촬영기간이 워낙 짧다보니 전체적으로 박봉이다.

프로덕션 기간이 2달 이상 되는 영화가 거의 없다.

심지어 주류에서 활동하는 스태프 대부분이 3대 메이저 소속이다.

스튜디오에 소속된 월급쟁이이란 의미다.

심지어 연예인들조차 샐러리맨 같다.

제 아무리 유명 영화배우라도 영화만 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는 이상한 구조다.

차라리 드라마를 열심히 찍어야 잘 먹고 잘 살 수가 있다.

일본 영화감독은 영화만 해서는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주연배우들의 경우 영화 몇 편 찍어봐야 드라마 출연료 절반도 안 된다.

참고로 일본 드라마는 보통 11회로 마무리 된다.

당연히 작업기간도 짧다.

그나마 인기배우는 다작을 통해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영화계나 TV 드라마계 모두 많이 이상한데, 더 이상한 것은 일본 연예계가 그걸 또 당연시한다는 거다.


‘한국과 비교해 대중문화 다양성은 장난 아니게 넓으면서 또 어딘지 질서정연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모순이 정상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상한 구조다.

성공한 TV드라마, 만화 원작 실사영화는 대충 만들어도 내수에서 수익이 나는 구조다.

오로지 원작과 주요 배우의 씽크로율만 신경 쓰면 안 망한다.


“할리우드도 무조건 누가 출연하는 가부터 확인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나요?”

“세계 어느 나라나 상업영화 투자의 제1 원칙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일 걸요?”


지독하게 상업주의적인 할리우드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먼저 고민하지, 누구를 출연시켜서 얼마에 만들어내느냐를 가장 먼저 고민하지는 않는다.


“셀링 포인트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죠. 그것이 정해진 후에 그에 어울리는 스타를 캐스팅하는 거고.”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도 원작을 선호하고 스타 시스템을 우선한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은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고 있고,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성공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텐트폴), 오리지널 스토리 영화, 저예산영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 등을 섞어서 포트폴리오를 짠다.

안정성과 모험을 동시에 진행한다.

반면의 대부분의 나라의 메이저들은 포트폴리오보다 안정을 더 추구한다.

이미 성공한 콘텐츠를 가지고 원 소스 멀티유즈를 펼치는 것에만 집중한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리스크가 크다.

티켓파워가 보장되는 슈퍼스타가 아니면 투자를 꺼리게 된다.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깎고.

그런 모습이 <군계>에서도 드러났다.

일본의 대형 기획사에서 류지호 영화에 스타들을 밀어 넣으려 했다.

소속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을 노린다거나 류지호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배우들의 미래나 일본영화계를 위함도 아니다.

일본 팬들, 해당 배우의 팬들에 대한 마케팅 일환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배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어때 궁금하지?

실제 기획사는 소속 배우가 할리우드에 진출하지 않길 바란다.

왜?

일본에서 일 해도 충분히 돈을 버니까.

해외 일정 때문에 일본에서 수익활동이 줄어선 절대 안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네요.”

“외국인인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눈 귀 막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영화산업의 권력을 쥐고 있는 메이저가 변하지 않으니까요.”


일본에서 통칭하고 있는 ‘제작위원회’라는 것은 쉽게 말해 투자자들의 모임이다.

복수의 스폰서 기업이 영화 제작위원회를 꾸려 제작비를 나눠 출자하는 시스템이다.

투자 뿐 아니라 실패에 따른 손해 또한 분산하여 나눠 부담한다.

일본 영화는 대부분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콘텐츠를 쥐고 있는 TV방송국이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작 시스템 자체가 이렇다 보니 원작만화 실사화에 집중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저 안전한 수익구조에 따른 욕심 없는 투자의 결과물일 뿐이다.

무리해서 해외에 진출하지도 않는다.

해외에서 상영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홍보용 보도자료가 뿌려지며 의미부여를 하는 한국과는 완전 다르다.

일본 메이저들은 해외에서의 반응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저 자회사를 통해 일본 내 멀티플렉스를 늘려가고 있다.

한편으로 제작 대신 배급 독점을 강화하고 있다.

TV방송국이 영화 콘텐츠(저작권)의 제공과 함께 제작위원회로써 투자를 담당하는 것이 완전 정착되어 버렸다.

이 당시부터다.

일본의 영화 산업은 호황을 구가하지만, 정작 자국 영화가 급격하게 망해가는 시점이.

김영복이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최준모가 위로했다.


“형, 감독님이 계시잖아.”

“아무리 류 감독이라도....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 조폭이 장사가 된다 싶으니까 너도 나도 조폭영화만 찍고, 블록버스터가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블록버스터래, 코미디는 기본빵은 하니까 죄다 쌈마이 코미디만 찍고... 만드는 사람들이 다양한 걸 내놔야 관객들이 골라 보는 재미가 있는 거지. 이건 뭐....”

“투자자와 제작사만의 잘못만은 아니야. 프로듀서, 배우, 감독 모두의 잘 못이지.”


두 사람을 향해 이성연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한국은 매우 수준 높은 비평글을 쉽게 접할 수 있고, 관객들도 날카롭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리뷰를 다양한 방식으로 올리잖아요. 서구권에선 로튼토마토가 점차 활성화 되고 있기도 하고. 일본은 그것과 관계없어요. 일본에서는 비평이 활발하지 않아서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평가도 의미가 없어요.”


이성연이 일본영화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결국 그녀가 몸담고 있는 곳은 일본영화계였으니까.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나오고, 원작이 뭐고, 배급이 어딘지’ 그 3가지뿐이에요.”


오늘 따라 유독 술 맛이 쓴 것 같았다.

사실은 입 안이 썼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이전 삶의 한국영화계가 떠올랐다.

한국의 메이저들이 일본 메이저의 못 된 것을 많이 따라했다.

제작위원회만 없지 그와 유사한 전략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모태펀드는 대기업 영화 지원이 막혀 있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허물어지면서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의 영화의 일정 부분에 모태펀드 자금이 반드시 들어갔다.

영화 흥행에 실패하면 대기업은 배급비와 극장 수익으로 얼추 회복한다.

손해는 오로지 창투사 같은 캐피탈들이 봤다.

그들이 영화투자에 운용한 자금은 주로 모태펀드였다.

모태펀드 재원은 어디서 왔을까.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자금이다.

즉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이 벤처캐피탈에 지원되어 영화에 투자되었다가 회수되지 못하고 증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지원되었다가 회수가 안 되었다면 이해해줄만도 하지만.

굳이 대기업 영화에 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지원해주었는지.

백번 양보해서 대기업의 영화에 세금이 들어갔다면, 세금을 낸 관객에게도 권리가 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 무시되었다.


“일본 영화를 해외에 팔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외국 입장에서 일본 프로듀서와 일본 배급회사와 일하려면 정말 고생이 많아요. 자료를 제대로 보내주지 않고, 메일 답장도 심하면 3개월 뒤에 보내주기도 하고....”


너무 일본 영화 뒷담화(?)로만 흐르는 것 같았다.

류지호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이봉호 사장을 영입한 건 잘 한거라는 거죠? 그런 일본 영화계에 나쁜 물이 안 들었으니까.”

“호호. 그렇게 되나요?”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성연의 웃음이 일행에게도 전염되었다.


"......"


일본은 매년 200편 안팎의 영화가 제작된다.

절반은 애니메이션, TV 및 애니메이션 원작 실사영화다.

극소수가 오리지널 스토리의 영화다.

그것도 톱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다.

나머지 절반은 ‘V시네마’라고 하는 비디오용 영화다.

할리우드로 치면 B급영화, 한국으로 치면 16mm 영화 포지션이다.

제작비는 대략 3,000만~3억 원까지 있다,

에로, 야쿠자, 사무라이, 멜로, 전대물 등 장르영화가 주를 이룬다.

2~3개관에 소규모 개봉하거나 곧장 비디오·DVD를 출시하는 영화다.

한때 ‘로망포르노‘와 ’V시네마‘는 일본영화의 화수분 또는 사관학교 역할을 했다.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 감독님이 일본 내 흥행에 실패하면, 그들은 감독님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거예요.”

“재밌네요.”


류지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성연씨는 일본 관객들에게 호감을 얻을 만한 스타일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보세요?”

“사실 <군계>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TV 드라마로 인기를 끈 콘텐츠도 아니에요. 마니아층은 있지만, 흥행 성공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죠.”

“일본영화 자체는 장사가 잘된다고 알고 있는데. 인기배우만 나오면 그 팬들이 무조건 봐주는 것 아니었어요?”

“제 주제에 감독님께 감히 뭐라 말씀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편하게 말해 봐요. 난 군주 스타일의 감독이 아니에요.”

“타다노부, 츠마부키, 오다기리 같은 젊은 스타들을 기용해주시면 좋겠어요.”

“참고할게요.”


이런 부분도 일본 영화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기만화 원작이나 베스트셀러 실사도 비슷하지만, 함량미달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대작영화나 황금시간대 드라마에 덜컥덜컥 주연을 맡는 이유가 그 팬들 소비력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아무리 발연기를 해도 응원하듯 영화를 봐준다.

팬들이 무조건적으로 배우를 귀여워 해주기 때문에 프로듀서 입장에선 영화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스타 배우 캐스팅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감독들 처우가 엉망일 수밖에.

일본 상업영화 감독들은 드라마와 영화연출 포함해서 1년에 서너 편씩 찍어대는 것이 예사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류지호는 일본영화계 현실이 딱히 안타깝지 않았다.

그런데, 듣고 있자니 슬쩍 뭔가를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뭔가.... 뭔가 막...! 굴리고 싶어지네.’


류지호는 만화원작을 가지고 적당히 철학적인, 만듦새가 썩 괜찮은, 잘 빠진 격투장르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다.

헌데, 본격적으로 질러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 느낌이란 말이지.’


박진우 감독이 일본 만화 원작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우면서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작가의말

영화제작 에피소드 연참을 예정했으나, 연휴와 상관없이 원래의 연재주기를 지키는 방향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 빼고 정상 연재합니다. 다음 주 한글날도 휴일 상관없이 연재 이어가겠습니다. 편안한 연휴되십시오.

PS. 설매님, 니름님, 송호연님 매번 과분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더욱 열심히 연재를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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