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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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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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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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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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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전 세계의 영화팬들이 리도 섬으로 몰려들었다.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는 팔라조 델 시네마(Palazzo del Cinema)에 주관 방송사의 장비들이 세팅되고, 영화팬들이 스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를 확인하는 등 무척 분주했다.

과연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할까.

리도 섬은 남북으로 젓가락처럼 긴 섬이다.

베네치아 섬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도로가 있다.

길게 늘어진 섬의 남쪽 해안 대부분이 해변이고, 곳곳이 해수욕장이다.

영화제로 유명하지만 휴양지로도 유명한 섬이다.

영화제 메인 상영관 팔라조 델 시네마에서 가까운 수상택시 정류장에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민중의 적 : EMBARGO> 관계자는 이미 리조 섬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도착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수상택시를 탔다.

기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다.


찰칵찰칵.


설형기와 송라원이 수상택시에서 내리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평상복 차림의 선글라스를 낀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앞선 소리보다 더 크고 분주하게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Jay!"

"류지호!“


류지호가 선글라스를 벗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식질문은 없다.

사진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잠시 취해 준 후 대기하고 있던 영화제 공식차량을 타고 떠났다.


“Jay...."


류지호가 동승한 송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콩.


류지호가 송라원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혼난다.”

“감독님 근데요... 현대요...”

“왜?”

“중국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그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회사에서는 뭐래?”

“시기상조라고 하세요. 가서 들러리만 설 거라고. 진짜 그럴까요?”

“어떤 영화에 어떤 배역에 어떤 감독과 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 책 많이 들어오지 않냐?”

“하고 싶은 영화는 이미 캐스팅이 끝났더라고요.”

“중국 가서 돈 벌고 싶어?”

“아니...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고요.”

“스토리 이야기 해봐.”

“시나리오는 스펙터클 대하서사 막장 스토리예요.”

“....?”

“<황후화>라고...”

“그거 궁리와 저우룬파 형님이 주인공이지?”

“감독님도 아세요?”

“ParaMax 홍콩 지사가 투자하는 영화중에 하나 일 거야. 찬예모 감독이 연출하지?”

“예.”

“네가 들어갈 만한 큰 배역이 없을 텐데?”

“아시아의 스트립 여사라는 궁리 선생님하고 작업해보고 싶어서 작은 역할이라도 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혹시 독약 배달하는 시녀 역할?”

“네.”

“시녀들 가슴 절반은 드러내놓고 연기해야 하는 건 아냐?”

“사극인데 왜 가슴을 드러내요? 저한테 온 배역은 베드씬도 없던데....”

“당시 시대 고증이 그렇다더라.”


찬예모의 <황후화>는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중국 역대 왕조시대 의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슴 노출까지 심한 의상을 입었다.

왕족의 바사를 그린 영화이다 보니, 미술과 의상 모두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게 된다.


“그래봐야 비키니 입은 정도 이상은 아니겠...지요?”

“모르지. 대작이긴 한데.... 너 한국에서 주인공 레벨이야.”

“중국에서는 신인이잖아요. 450억대 대작이라고 하던데요?”

“찬예모 감독 전작들에 비해 그렇게 뛰어날 것 같지 않아.”


차마 찬예모 감독이 ‘맛이 갔다‘라고 표현할 순 없었다.

예술로 흥한 감독이 어떻게 상술에 무너지는지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무당의 촉이 발동한 거예요?”


류지호가 슬쩍 알밤을 먹이려고 손을 들어올렸다.

송라원이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앗! 쏘리~”

“라원아....”

“넵! 감독님!”

“영화가 실패할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중국에선. 감독 명성에 비해 졸작이 될 것 같아.”

“왜요? 너무 스토리가 막장 일일 연속극 같아서요?”

“아니.”

“.....?”

“거장에게 찾아오는 함정이자 시련 같은 거지.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어떻게 하면 녹여낼 수 있을까 하는.... 찬예모 감독은 스펙터클보다 섬세한 이야기와 탁월한 색채감각을 잘 보여주는 스타일인데. 뭐랄까... 스펙터클의 함정에 빠질 것 같다.”


스펙터클은 영화감독에게 도전이자 달콤한 유혹이다.

한 번 그 맛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REMO> 최종편에서 류지호도 그런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다.

더 크게, 더 화끈하게.

물량 또 물량!

마지막에 가서는 이야기는 없어지고, 화려함만 남게 된다.

화려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여운을 남길 수만 있다면, 진짜 영화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럼 좋은 책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해보고 싶으면 해봐. 단...”

“.....?”

“중국배우들 앞에서 네 연기로 씹어 먹을 자신이 있다면....”

“엑! 그 말은 하지 말란 말씀이잖아요!”

“넌 인마, 어디 가서 연기 안 꿀려. 자부심을 가져도 돼.”

“감사합니다! 감독니임~”


송라원이 반달눈을 하고 웃었다.


헷헷.


허락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회사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류지호를 팔면 된다.


“감독님이 중국 가서 연기로 씹어 먹고 오래요.”


물론 회사에서 출연료부터 배역의 분량까지 꼼꼼하게 협상해야겠지만.

어쨌든 스승이자 멘토가 허락했으니 반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이라....’


류지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중문화 종사자이자, 비즈니스맨으로서 참 곤란한 나라가 중국이다.

<퇴마기록>은 ‘귀신‘ 묘사 검열조항 때문에 아직까지 중국 개봉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볼 사람은 다 본 상황이다.

비디오와 DVD 역시 정식발매를 하지 않았음에도 따오판(해적판)이 수백만 장이 팔려나갔다.

그로 인한 잠정 손실액은 무려 6,200만 위안(약 85억)에 달했다.

물론 심의에 걸리는 부분을 잘라내고 개봉할 수도 있었다.

무려 24분을 잘라내야 했다.

스토리도 연결되지 않고, 중요한 액션 시퀀스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중국 업자들은 그래도 흥행에 성공할거라면서 너도나도 사가겠다고 했단다.


‘미친 짓이지.’


사실 중국만 검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 일부 국가와 동남아 국가들에도 검열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의 검열만큼 지독하지도 않고,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한 것도 아니다.

<퇴마기록>을 검열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뿌려야 할 뇌물을 따져보면, 차라리 개봉을 안 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G.O.M International 홍콩지사가 중국에서 극장업 면허를 취득했다.

본토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극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원활한 영업이 되지 않는다.

베이징이든 상하이든 중국의 원선(배급권 사업자)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

그 동안 맺어두었던 꽌시를 총동원하고 뇌물도 많이 뿌려야 하고.

중국과 홍콩이 맺은 협약 조건을 충족한 외국계 홍콩법인인 G.O.M은 75%까지 지분을 보유할 순 있다.

실제 그렇게 해서는 중국에서 극장업을 전개할 수가 없다.

합작 회사에게 50%를 줘야 원활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가 있다.

중국시장은 계륵이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할리우드는 급격하게 제작비가 상승하고 있다.

기존 시장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 통상당국과 할리우드 메이저가 중국의 20편 수입쿼터를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중국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한 번 넘어가봐야 하려나....?’


현재 JHO와 가온그룹의 중국 진출 로비는 사장단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튜 회장과 스탠 해외사업 총괄 사장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류지호가 한 번쯤 방문할 필요가 있다.

지분을 보유한 중국 기업도 방문해 보고, 영화사업 부문에서도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 대외적으로 그들의 면을 세워줄 필요도 있다.

중국에서 실패하는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국적 커피브랜드 Siren처럼 철저히 현지화를 했고 또 현지 기업과 원활하게 제휴함으로써 중국에서 살아남은 기업도 더러 있다.

다만 끊임없는 현지화 노력으로 중국에서 결국 성공을 이루었지만,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상당한 적자를 부담해야 한다.

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과 일본.

두 시장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네 방으로 안 가고 왜 따라 와.”


류지호에게 한 소리 듣고도 송라원은 태연하게 굴었다.


“언니랑 드레스 고르기로 했어요.”

“언니? 둘이 친구 아니었냐?”

“새언니죠. 사모님이라고 하기는 좀 이상하잖아요? 족보 꼬이면 이상해진다구요.”

“...맘대로 해라.”


류지호는 객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렸다.

둘에게 붙잡히면 레드카펫 행사 전에 진이 다 빠질지도 몰랐기에.


❉ ❉ ❉


골목골목까지 물길이 이어진 물의 미로 같은 도시 베네치아.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의미심장한 기간.

베네치아의 작은 섬 리도가 매년 열리는 영화축제로 술렁거렸다.

올해 62돌을 맞이한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관객은 애타게 새로운 영화를 찾아 헤매고,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톱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잡느라 치열하다.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은 각각 류지호의 <민중의 적 : EMBARGO>와 찬호순 감독의 <Perhaps Love>다.

아시아 작품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폐막작까지 아시아 영화가 선정된 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제 수개월 전부터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공표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는 서구에 열정을 전해주는 극동지역의 영화 만들기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다 보면 한국영화는 결코 주인공이 아니었다.

영화제가 특별히 경의를 표하고 있는 쪽은 일본과 중국의 작품들이다.

일본과 중국의 고전 영화에 대한 특별전(The Secret History of Japanese·Chinese Cinema)이 마련돼 두 나라의 고전이 대거 상영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하야오 감독은 명예황금사자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암튼 세계적인 유명인사 류지호의 등장과 함께 경쟁부문 깜짝 초청작 덕분에 하루 종일 리도 섬이 떠들썩했다.

비트 다케시 때문이다.

철저한 보안과 비밀 유지를 위해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차창 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못한 채 납치당하다시피 리도 섬으로 들어왔다.


“깜짝 초청이 제작사에서 요청한 것이지 영화제의 의도와는 무관합니다.”


집행위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류지호가 끌어올렸던 영화제 분위기가 비트 다케시로 인해 극으로 치달았다.

사실 감독으로서 다케시를 키워준 것이 베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의 <하나비>로 황금사자상을, 2003년 <자토이치>로 감독상을 받았던 다케시는 이탈리아에서 열혈 팬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신작 <다케시즈> 역시 수상과 관련해 기대감이 높았다.

두 번째 베니스를 방문하는 한국의 박진우 감독이 현지에서 떠오르는 별이라면, 비트 다케시는 베니스가 발굴해 키운 스타다.

별명이 현지에서 '영화의 신'일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꽈과광!


귀를 찢는 천둥과 하늘을 가르는 번개, 굵은 빗방울이 리도 섬을 쓸고 지나갔다.

<민중의 적 : EMBARGO> 레드카펫을 앞 둔 3 시간 전에 세찬 비가 내렸다.


“이 무렵에 지나가는 가벼운 비가 흔한 일이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현지인들 말대로 레드카펫 행사를 한 시간 앞두고 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류지호와 배우들이 베니스 영화제 메인상영관인 팔라초 델 시네마의 살라 그란데 극장에 도착했다.

영화제 측이 제공한 세단에서 먼저 배우들이 내렸다.

설형기, 송라원 모두 영화제가 처음이 아니어서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이어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호!”

“Jay!"


현지인들이 류지호를 연호했다.

이어 류지호가 차량을 향해 손을 내밀자, 피앙세 레오나 파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1시간 전 리도 섬 하늘에서 울렸던 천둥소리에 버금가는 휘파람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쇼!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세기의 커플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이 쇼가 제 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모든 화제성을 삼켜버렸다.

류지호는 영화 홍보에 약혼녀를 이용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타블로이드에서 온갖 억측이 양산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느니 공식석상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도 없음을 드러내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듯 싶기도 하고.

암튼 레오나 파커가 억지로 레드카펫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랄까.


찰칵찰칵찰칵!


사진기자들은 어서 빨리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의 언론사로 사진을 송고할 테니까.

영화제에서는 모든 것이 뉴스가 된다.

특히 톱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특종에 준한다.

언론 노출이 적은 류지호 같은 셀럽은 더더욱 그렇다.

무려 류지호가 연인과 함께 레드카펫에 선 사진이다.


‘올해 베니스는 오늘의 사진 한 장으로 끝났군!’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할리우드를 향한 베니스영화제의 지나친 구애를 비판했다.

하지만 스타가 영화제를 살린다.

영화제에 누가 초청되었고, 참석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했다.

부작용도 분명 있다.

영화제 기간 내내 매스컴들은 거장들의 신작 리뷰보다는 스타의 사진과 일거수일투족을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다.

레드카펫이 펼쳐지는 팔라초 델 시네마 앞에서 머물며 스타를 기다리는 일반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영화고.

당장 눈앞에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은 스타를 만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민중의 적 : EMBARGO>과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만 놓고 보면 베니스영화제는 대성공이다.

류지호가 약혼녀와 함께 등장한 순간 정점을 찍었다.

류지호라는 존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계로서 할리우드 영화권력 서열 최상위권이면서 스스로 감독으로서의 가치까지 증명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전 세계 영화학도들의 워너비다.

류지호가 예비신부와 함께 리도 섬을 찾았다는 사실에 리도 섬이 들썩거렸다.

심지어 레드카펫에서 팬과 함께 폰카를 찍었다는 뉴스에 호평이 쏟아졌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무가지 <메트로>는 류지호의 <민중의 적 : EMBARGO>가 경쟁부문 최고 기대작 하나라며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억만장자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류지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다.

영화제에 가야 비로소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류지호의 위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있다.


“와아~ 진짜!”

“하하. 할 말이 없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류지호에 대한 영화제 현지의 반응에 묘한 벅차오름을 느꼈다.


- 두 유 노우 지호 류?


앞으로 '국뽕'을 비꼴 때마다 등장하게 되는 조어다.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기자들이 현지인들에게 자주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류지호는 그 같은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귓불이 붉게 물들곤 한다.

부끄러워서.

개막식에 참석한 류지호는 지루한 행사 시간 동안 소위 ‘국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 봤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나서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 자주 나가게 됐다.

여권 심사받을 때 대뜸 중국어나 일본어로 인사를 받게 될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도 동남아 유명 휴양지 빼고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떤 점에서 경제규모도 크고 얼마 안 가 선진국이 될 수도 있다고 나름 국토만 작지 큰 나라라고 믿고 살았는데, 막상 외국에 나가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자기 객관화 같은 것이 저절로 생긴다.

그런데 류지호라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한국인이고, 외국 사람이 먼저 류지호의 나라에서 왔냐고 하고 한국을 안다고 해주면 이상한 자긍심 같은 것이 저도 모르게 생겨난다.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보다 낮은 수준의 국가라든가 대륙이라든가 그런 곳에서 한국인이 유명하고 명성을 떨치는 것을 보게 되면 희한한 현상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넘어가는데,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게 되면 자신의 일처럼 뭔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듯 ‘국뽕’에도 우열과 열등이 묘하게 얽혀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주의적이라며 국민의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한적으로 시행한다.

헌데 미국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매일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를 의무적으로 한다.

모든 프로스포츠 종목 시합 전마다 무조건 애국가 제창을 의무적으로 한다.

민주주의 최선봉이라는 미국에서 어린이때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 세뇌를 매일 하고 있다.

모든 할리우드 영화에는 반드시 성조기가 짧게라도 들어간다.

암묵적인 룰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전체주의 국가는 아니지 않나.

국기에 대한 의무적인 의례가 전체주의적이라면 태권도장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모두 떼어내야 한다.

정부가 혹은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서 관제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민족주의로 인한 ‘국뽕‘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취해 볼 거야!”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 국가관,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으로 발생한 ‘국뽕‘은 비판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류지호는 생각했다.


“나로 인해 국뽕에 취할 수 있다는 게 낯간지럽긴 한데.... 빨리 예나한테 넘겨주고 싶네.”


외환위기 이후로 떨어진 한국인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류지호가 쓰임새가 있다면 나쁘지 않다.

메이저리그에서 잘 던지는 투수가 됐다.

피겨의 볼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피겨선수가 탄생했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날리는 축구선수가 됐다.

빌보드차트 1등을 했다.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했다.

외환위기로 망할 뻔한, 분단국가이자 정치 후진국이며, 국토면적과 인구수도 적으면서 초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 바로 그 한국 출신들이 세계 주류 분야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면.


‘그런 기분을 원료로 해서 그들처럼 되고자 향상심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국뽕’일 테지.‘


특정 유명인의 성공을 자기동일시 해서 잠시 즐기고 말면 ‘뽕’ 맞은 것과 다를 것이 없긴 하지만.

암튼 ‘국뽕‘에 입각하면 류지호는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무조건 수상을 해야 한다.

수상에 실패하면 심사위원들의 눈이 삔(?)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의 메인 섹션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거장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경쟁부문, 각국의 돋보이는 상업영화를 주로 선보이는 비경쟁 부문, 그리고 신인 및 중견감독들의 도전적이고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영화를 선정한 오리존티로 나뉜다.

순위를 매겨야 하는 경쟁부문이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맞았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두루 포진한 비경쟁 부문의 상업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끈다.

<민중의 적 : EMBARGO>은 당초 비경쟁부문 초청이었다.

헌데 경쟁부문으로 조정됐다.


‘수상에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다양한 여론이 들끓겠지.’


‘국뽕‘의 반작용이다.

어떤 결과로든 한국에서는 꽤나 시끄러울 것 같았다.


❉ ❉ ❉


2.35:1 화면비는 스케일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많이 쓰인다.

화면 자체가 광활한 느낌이 들며, 여러 명의 인물을 함께 담으면서도 배경의 공간감을 살리는 데 유용하다.

류지호의 영화 가운데 Eye-MAX 포맷이 아닌 대부분의 영화 화면비가 2.35:1이다.

<REMO> 최종편을 입체영화로 작업하면서 류지호는 공간에 대해 한층 깊은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게 됐다.

35mm 필름으로 작업한 <민중의 적 : EMBARGO>에서 훨씬 깊어지고 복잡해진 미장센을 볼 수 있다.

그를 통해 인물들이 꽤나 다층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강철중은 공적 영역의 인물이지만, 뒷골목 건달 같은 모습을 보인다.

도저히 고학력이자 화이트컬러 직업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릭터를 보여준다.

한국 관객에게는 그런 무례하며 자존심도 없고 개차반인 강철중이 현실의 기자를 제대로 묘사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 기자라는 이미지는 진실을 파헤치는 용감한 사람들 혹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는 정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그 정도로 기자에 대한 신뢰도는 최악이다.

류지호는 <민중의 적 : EMBARGO>를 준비하며 많은 취재를 했다.

이전 삶과 달리 본인이 직접 발로 뛰면서 하진 않았다.

비서들이 류지호가 궁금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아왔다.

류지호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암울했다.

기자들은 불안하다.

대체로 신문·방송 산업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여기고 있는 분위기다.

즉 자신의 직업세계의 미래를 막막하게 여긴단다.

NAVE에서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고 있단다.

기성언론의 무기였던 ‘정보통제권’이 인터넷 등장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임무이자 긍지였던 ‘단독보도’는 포털사이트에 기생하는 유사언론에 의해서 곧바로 복제되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과 2003년에 각각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양대 포털사이트에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 숫자가 벌써 100여 곳에 이른다.

이 시기 언론연감에 따르면 대략 2만 명의 기자가 등록되어 있다.

기자와 언론사 숫자가 늘어난 만큼 광고주의 광고집행권은 강해졌다.

광고를 염두하고 기사 쓰는 기자도 그만큼 늘었다.

기자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류지호가 만나 본 많은 기자들은 월급쟁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 못한 아무개가 대기업에 다니는데, 비슷한 연차임에도 나와 연봉이 정말 많이 차이가 납니다. 사람인 이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주요 언론사 임금협상이 꽤나 치열하다고 한다.

취재를 통해 사회에 의미 있는 보도를 하는 것이 기자가 느껴야 할 성취감이자 비전일 텐데, 이 부분이 충족되지 않고 연봉인상 같은 부분에서도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으면서 다른 직업을 찾아 이직에 나서는 기자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그런 풍조는 포털사이트의 뉴스유통독점과 언론 산업 자체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빈번해질 터.

급기야 기자들이 다른 카르텔과 연합해서 이권사업에서 직접 플레이어로 뛰어들기까지 한다.


“우리 회사에서 장기육아휴직을 쓴 여기자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어요.”


백원일보 편집국 소속 여기자가 가온그룹 육아휴직제도를 취재하며 털어놓았던 이야기란다.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평기자가 국장급이 되기까지는 평균 21.7년이 걸린다.

승진은 더디고, 주말에도 일거리는 쌓인다.

기자들은 24시간 뉴스에 얽매여 있어 워라벨은 꿈도 못 꾼다.

요즘 기자들은 선배들이 누렸던 ‘특권’도 못 누린다고 불평이란다.

출입기자실에서 날아다니던 촌지봉투도 많이 사라졌다.

이번 정부에서 반부패법이 통과될 때 기자들이 빠지긴 했다.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연예부 기자들마저 광고실적 눈치를 봐야 할 처지란다.

류지호가 보기에 기자들 실력도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기도 벅차 허덕이는 기자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출입처에서 떠먹여주는 보도자료 중심의 취재관행에 익숙한 기자일수록 새로운 정보를 발굴하고 뉴스의 맥락을 짚기가 쉽지 않다.

점점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데, 고시라고 불리는 채용과정을 거친 기자 수준은 그저 암기력만 좋은 시키는 것이나 겨우 해내는 월급쟁이에 불과해 지고 있다.


“기자들은 세계의 유일한 전문가들이 아니다!”


가디언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가 한 말이었다.

류지호가 배꼽을 잡고 웃은 통계가 있다.

1989년부터 조사하기 시작한 기자의식조사 결과다.

언론보도가 공정하다고 응답한 것은 채 20%도 되지 않았다.

실제 기사를 쓰는 기자들조차 언론보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단다.

그런 코미디에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 수치는 해가 갈수록 떨어져 2010년에 가면 열 명 중 한 명만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게 된다.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 광고주가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로 꼽힌다.

그 광고주에는 정부(정권)도 포함된다.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의 정권은 언론사 지원금을 짜게 책정하고 보수정부는 후하게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기업을 통해서 또 캠페인성 광고비 역시 보수정부가 압도적으로 예산을 많이 쓴다.

류지호는 그 같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신문기자의 현실을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영화에서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명의식을 저버린 기자들이 나쁜 것인지.

언론환경 자체가 잘 못되어 있는 것인지.

언론을 이용하려드는 권력과 자본이 잘 못된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이다.

<민중의 적 : EMBARGO>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해답이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즉 명확한 권선징악의 결론을 피해간다.

언론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잘못하고 있을 뿐.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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