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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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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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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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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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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사법개혁 법안이 통과된 후로, 탄력을 받은 집권여당은 여타 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연일 국회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한편 매주 토요일 광화문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제일 먼저 개혁법안으로 통과된 것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및 검경수사권 조정이었다.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뭔가 변하는 것은 없다.

시행 준비 등의 절차만 최소 6개월 걸리게 된다.

공수처장 인선을 놓고 여야가 극심한 갈등을 벌일 것이 뻔했다.

또한 기소·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로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고통을 수반한 조직 혁신이 필요했다.

검찰 안팎에서 원상복귀 움직임도 있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검찰개혁이라는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다면 몰라도 항해를 시작한 이상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멈출 일은 없다.

어쨌든 검찰 내부적으로 물갈이와 함께 수사관의 대폭 감소는 불가피했고, 공판주의로 나아가는 이상 수사검사보다 공판에 배치될 대규모 인력 조정이 예정되었다.


“진정한 무사는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 시절, 모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남긴 명언이었다.

초대공수처장으로 제일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역대 검찰총장 중에서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유일하게 존경받는 검찰총장 출신이다.

2001년 서울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다가 당시 3대 게이트로 검찰이 최대 위기에 몰렸을 때 소방수로 등판해 전 검찰총장 및 광주고검장을 기소하고 현직 대통령 아들까지 구속시키기도 했다.

피의자가 검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검찰을 떠났다.

제아무리 청렴했던 법관과 검찰 고위급 출신인사라도 퇴임 후 대형로펌에서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받으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초대공수처장으로 거론되는 몇 명은 검찰을 떠난 후 변호사로 지내며 회사원 수준의 월급 정도를 벌고, 검찰 조직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으며, 때로는 후배들에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물망에 올랐다.

심지어 정치권에서 무수히 구애를 받고 있지만, 그쪽으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인사들이다.


“태산같이 의연하되 누운 풀잎처럼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라.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피의자 몸으로 검사 앞에 서지 않기를 다들 바라겠지만, 어찌 인생사가 바라는 대로 되겠는가. 검사인들 인생사가 바라는 대로만 되겠는가."


검찰개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검찰고위직 출신 노선배가 현직의 후배들에게 남긴 말이다.

대한민국 사법역사에는 ‘법조 3성(聖)’이라는 존경받는 인물들이 존재했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

'검찰의 양심' 화강(華剛)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사도(使徒) 법관' 바오로 김홍섭 선생.

사법권에 대한 각종 외압과 회유가 만연하던 시절,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뇌하고 몸부림쳤던 대한민국 법조계의 큰어른들이다.

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가인상과 화강상을 제정했는데, 법조인으로써 양심과 소명의식에 따라 일하는 젊은 검사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 ‘법조 3성‘의 숨결과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검찰이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개혁을 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검사 비리의 대부분은 모두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검사동일체 원칙은 프랑스에서 유래해서 일제강점기 때 전해진 것이다.

검찰 조직은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 원칙이 만들어진 것은 범죄 수사와 기소 등에 있어 검사들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검사들이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면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때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조항으로 명문화된 이후 검사동일체 원칙은 50년 넘게 검찰을 지배해왔다.

마침내 2003년 참여정부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해당 조항을 수정했다.

검사의 이의 제기권도 도입했다.

하지만 법개정은 유명무실했다.

검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다.

법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다.

조폭과 다를 바 없는 세계, 권경검 유착, 비리의 온상, 선민의식 등.

검찰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은 실질적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백퍼센트 완전한 건 존재할 수 없다.

평검사들은 수사 과잉의 시대라고 한다.

수사가 너무 많고 모든 걸 수사에 의지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수사를 증오하는 정치인들도 그 증오를 수사의 틀 안에서 풀어 보려고 안간힘이다.

입법기관이 하위 기관인 검찰(행정부)에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코미디가 툭하면 벌어지는 한국 사회다.


‘그러니, 자신들이 증오하는 검찰의 갑질에 휘둘리지.... 바보들. 쯧쯧.’


일본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류지호가 내심 중얼거렸다.

전용기 집무실 책상 위에는 세 명의 프로필이 놓여있다.

세간에서 초대 공수처장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다온로펌에서 미는 인물이 가장 앞에 놓여 있다.


드르르륵.


프로필이 파쇄기에 들어가 분쇄되었다.

누가 되든 류지호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못 믿어서가 아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듯, 공수처가 자리 잡는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몇 번의 정권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겪게 될 터.

일부에서 싱가포르 CPIB(부패행위조사국)를 거론하며 독립적인 부패수사국을 옹호하기도 한다.

부패가 만연했던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부패 청정국으로 탈바꿈시킨 1등 공신이 CPIB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영장 없는 체포 같은 초법적인 권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일본의 경우, 별도의 부패관련 특별 기구를 운영하진 않았다.

다만 대검찰청격인 최고검이 아니라, 도쿄와 오사카 지검의 특별수사부에서 공직자 부패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정치적 입김이 미칠 수 있는 중앙검찰보다 조금이라도 덜 입김이 미치는 지방지검에 전담시키는 것이다.

류지호의 주활동 무대인 미국 역시 독립된 상설 기구가 존재하진 않는다.

특별검사법을 통해 최고위직 인사들의 비리에 대해 특별검사가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한국이 개별 사안마다 특별법을 제정해 특별검사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법무부가 국회의 요청을 받거나 자체 예비수사 후 필요성이 인정되면 특별검사를 임명해 사법부에 제청하고, 사법부에서 임명하는 방식이다.

미국 내에서도 막대한 수사비가 소요되는 것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아 상설 특별부패수사기구 설립에 대해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법이든 상설 기구든.

만능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은 교과서를 통해 맹사성, 유성룡, 이원익, 이항복 등 청백리의 표상인 선조들의 삶을 배운다.

어릴 때는 그분들처럼 살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한다.

어른이 되어 선조들만큼의 높은 자리에 가면 영 딴판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감시·견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개개인의 욕망과 인격을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다 떠나서 내 코도 석자네.....!”


한국인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는 건 아니다.

류지호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다.

90년대까지 조금씩 바뀌던 흐름이 내년부터 완전히 뒤죽박죽 혹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전 삶의 기억을 써먹을 수 없다는 의미다.

앞으로 어떻게 한국이 돌아갈지 알 수 없으니까.

그 여파가 한국에만 머무를까.

어쩌면 세계사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최소한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에게는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전쟁, 테러, 급박한 환경오염, 전 세계 경제 침체 같은 범지구적인 상황까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서 어떤 식으로든 외교, 경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기득권 한 축이 붕괴되거나 일부가 무대에서 퇴장을 하게 될 테니까.

정치진영에도 물갈이가 이루어져 어떤 진영이 정권을 잡든 정치, 경제, 외교 부분이 이전 삶과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대로 흘러간 것만 해도 기적이지....훗.’


실소를 흘린 류지호가 전 세계에 펼쳐놓은 사업과 인맥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JHO Company Group은 미국 본토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어떤 위기에도 대처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레오나 파커와의 결혼을 통해 백인 주류 사회의 어지간한 정치 스캔들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가온그룹은 기존 재벌들처럼 사회 전부분에 걸쳐 혼맥과 인맥을 형성하고 있지 않았다.

권력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방어하는데 곤란한 점이 분명 있었다.


“약점 있는 놈이 복종하는 거야. 이 사람들아~”


흠칫.


집무실로 들어온 고우찬이 굳어졌다.

류지호의 표정이 어딘지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왜?”

“곧 인천공항에 착륙합니다. 보스.”

“알겠어.”


류지호는 집무실을 나와 수행원들이 앉는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전벨트를 매는데, 고우찬의 서선이 느껴졌다.


“뭐 할 말 있어?”

“혹시 손봐줄 놈 있습니까?”

“아니.”

“정말 없습니까?”

“고 실장, 우리 조폭 아니거든. 멘트 수준이 거시기 허다잉?”

“혼자 무서운 표정 짓지 말고. 손봐줄 놈 있으면 곧장 말씀하십시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버릇 고쳐놓을 테니까.”

“그래, 든든허다~.”


누가 뭐래도 류지호는 사회계층 꼭대기에 있다.

꼭대기에 위치한 인간은 밑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일을 한다.

어떤 이들은 밑의 사람들이 위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찬다.

잠재적인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본인이 사다리를 놔주는 사람인지 류지호로서는 자신할 수 없었다.

다만 사람을 밀어버려서 피라미드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자신할 수 있었다.


절레절레.


류지호는 몇 번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크랭크업한지 일주일이 경과했음에도 여전히 나루시마 료의 분노와 증오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배우만 캐릭터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감독은 영화 속 세계의 창조자.

그가 창조한 이야기로부터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했다.


❉ ❉ ❉


한국에 들어온 류지호는 한남동에서 틀어박혀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 전하영 부사장과 WaW 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팀이 토론토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민중의 적 : EMBARGO> 세일즈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민중의 적 : EMBARGO>는 해외 판매로만 제작비 대부분을 회수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필름마켓 성과를 대대적으로 떠드는 가운데 <민중의 적 : EMBARGO>가 마침내 한국에서 개봉했다.

동시에 유럽에서도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제한상영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430개 스크린에서 같은 날 개봉했다.

류지호와 배우들이 TV와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홍보에 나섰다.

G.O.M 강남점.

국내외 연예부 기자들이 좌석을 꽉 채웠다.

방송사 카메라만 스무 대가 넘었다.

<민중의 적 : EMBARGO>의 기자회견에 아시아 각국의 매체들까지 총출동했다.


- 먼저 좋은 영화로 한국을 빛내고 돌아오신 거 기쁘게 생각하고 환영합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 영화가 무거운 주제와 실험적인 접근방법을 비교적 선호하는 영화제 경향에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상에 실패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수상에 성공했다고 보십니까?


- <복수의 꽃>만큼의 혁신성에는 못 미쳐 황금사자상감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감독 자체의 역량을 인정받은 만큼 그가 감독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부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류지호에게 상을 준 이유를 설명 한 말이었다.

덧붙여 심사위원들은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작품들 중에서도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지 않고, 가장 심플하고 직접적으로 이런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골랐다고 실토(?)했다.


“무거울 수 있는 메시지를 조금은 쉬운 영화언어로 또 장르라는 틀에 맞춰 관객과 소통하려 한 점을 인정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범주로 분류되는 감독들의 영화가 다 개성적이잖아요. 일관성도 없고.”


류지호는 겸손함을 유지했다.


- 일부 유럽의 평론가들은 감독님 영화를 다른 한국영화들과 이질적이라 평하기도 합니다.

“한국영화계에 반골들이 많아서 기존의 영화문법을 가져다 써도 똑같이 복제하는 법이 없지요. 그런 것이 충무로 영화만의 장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 역시 선배님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그런 경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제 해외비평에서도 코리안필름 뉴에이지라는 표현이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젊은 감독들이라 앞으로의 한국영화에 더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뉴에이지 감독의 리더로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걸 듣긴 했지만, 정작 우리는 크게 공통점은 없습니다. 앞으로 행보를 말하기 전에 일본에서 작업한 영화의 후반작업이 당장 닥친 일입니다. 그 이후의 일은 나도 잘 모릅니다.”

- 미국에서 황색언론과 파파라치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 그 때문에 형사에서 기자로 바꾼 건 아닙니까?


엿 먹이려고?

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강철중’ 시리즈는 비루하고 찌질한 인간이 힘을 가진 자 또는 권력을 혼내준다는 권선징악적 콘셉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곳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지요. 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화를 내실 분도 있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여론이란 권력에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언론은 그런 면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이지 않습니까?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되지요.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정하지 않으면 누구도 견제하지 못하는 것이 이 시대 언론이란 생각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굿 나이트 앤 굿 럭>과 완전히 상반된 시선을 보입니다. 감독님이 경험한 것에서 오는 분노와 증오가 영화에 녹아있다고 지적합니다. 일각에서....


기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꼭 일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마치 딴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처럼 하는 경향이 있다.


“연예부 기자가 아니신가 보군요?”


주로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들의 못 된 버릇이다.

연예부는 ‘업계 소식에 정통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음. 나는 화가 나 있지 않습니다. 매사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난 한시도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단전호흡을 하고, 명상을 하고,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신중한 사람입니다.”

- 시사회를 봤습니다.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수습기자 시절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현직 기자로서 영화가 굉장히 리얼한데, 취재를 얼마나 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초고는 꽤 오래 전에 써두었습니다. 강철중 시리즈를 위해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언론사는 법인이라면 5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 정기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리고 당시 언론사들은 세무조사 자체를 언론 탄압과 동일시하더군요. 아, 우리 사회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그때 묵혀두고 있던 시나리오를 꺼내서 각색을 맡기게 되었고. 처음 초고를 쓸 때와 현재의 기자들 생활을 알기 위해 많은 취재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도움을 주셨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사 잘 못 쓰면 가온그룹과 의장 비서실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기자라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악감정도 없습니다. 잘못된 구조, 옳지 않는 시스템을 지적하고 싶을 뿐. 여러분이 화를 내거나,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 대신에 내가 옳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 틀렸는지 알려주세요. 남들의 충고와 조언을 듣는 것에 항상 열려있습니다.”


모든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5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언론사만 안 받는 이상한 특권이 있다.

처음 문민정부에서 세무조사를 벌였을 당시 언론사들의 경영상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언론사가 수두룩했죠. 지금은 개선됐다고 얼핏 들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사는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업이 아닙니다. 자유시장경제를 그렇게 부르짖는 언론사가 정부의 보조금과 광고협찬이 없으면 휘청거린다는 것은.... 그렇게 경영상태가 엉망임에도 외환위기 시절에 끄떡없었죠. 도대체 어떻게.... 엉망진창인 재무구조와 상관없이 사주는 어떤가요? 국내외에서 사업을 크게 벌여 큰 수입을 얻고 있다죠.”


영화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얼마 전 그 내용이 다시 한 번 진보언론을 중심으로 재조명되었다.


“유럽에서 사귄 친구들이 그럽니다. <The Killing Road> 같은 영화 찍으라고. 관객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영화제에서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실은 항상 불편하고 고통스러우니까. 진실을 드러내고, 파헤치고, 탐구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지요. 진실에 다가가는 언어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하기에 영화에서 자의식을 한껏 드러내고 뽐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쉬운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영화라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누구는 할리우드에서는 상업영화를 찍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작가영화를 찍는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특별히 상업영화니 작가영화니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의 영화와 비교하지도 않고. 매번 자기복제를 하지 않는지 고민할 뿐입니다. 오만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원하는 영화와 관객이 원하는 영화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관객의 호주머니를 털고 싶진 않지만, 관객에게 말을 걸어야 하고, 그들에게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 그 걸 알게 되는 때가 언제가 될 것으로 봅니까?

“모르지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이미 알고 있는데 너무 먼 곳을 보거나 딴 곳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해외 영화제용 감독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 금시초문입니다. 항상 힘들게 소통하려고 해서 문제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국제영화제를 위해 단 한 번도 영화를 만들어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물론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 최근 한국영화가 잘되고 있지만. 사실 감독님의 WaW가 절대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언젠가 침체기가 닥치면... 괜찮다고 보십니까?

"안 괜찮겠죠....“

- ......?

“열쇠는 창의성이겠죠. 우리 모두가 그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면, 미래는 암담할 겁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만화와 관련 산업을 탄압하니까 미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만 신 났습니다. 뛰어난 애니메이터를 헐값에 부려먹게 됐으니까요.”

- 일본에서 촬영한 만화 원작 영화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The Killing Road>보다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것 같습니다. 많이 어둡고 많이 비관적입니다. 내 필모에서 비교적 예산이 적은 영화들은 전부 비관적이었던가요? 이번 영화도 그럴 것 같습니다.“

-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면 배우들의 연기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배우를 꼽는다면 누굴 꼽으시겠습니까?

"내 영화에 등장했던 모든 배우들을 사랑합니다. 누굴 특히 더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모두가, 특히 주인공들은 다 나의 분신입니다.“

- 그래도 페르소나를 굳이 꼽자면?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Jay를 연기한 그 배우가 아무래도....“


기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UCLA 졸업장편영화 <Dream Come true>의 Jay를 연기한 배우는 다름 아닌 류지호 본인이었다.

골든 라즈베리 후보에 들 정도로 발연기를 선보인 바 있었다.


- 비평가들 사이에서 감독님을 사회파 영화감독으로 분류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나는 인간을 사랑합니다. 휴머니즘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이 거창하다면 연민이라고 하죠. 나는 인간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만큼 인간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술도 없을 것 같고요. 물론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 미국의 시사주간지와 인터뷰에서 스스로 리버럴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백원일보 기자는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미국 기준으로 나는 리버럴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리무진 리버럴이라고도 하고. 한국에선 나를 좌파라고 규정하지 않을까요? 서울대 어떤 교수께서 ‘강남좌파‘라고도 하더군요. 참고로 내 한국 주소지는 강북에 있습니다.”


류지호의 거침없는 답변에 질문한 기자가 오히려 당황했다.

미국에선 ‘리버럴’ 하면 보통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주의자를 뜻한다.

1930년대 이전에는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하던 단어가 ‘리버럴’이었다.

한국에서 ‘자유’의 함의가 변했듯이 미국 역시 ‘리버럴’의 의미가 시대가 지나면서 달라졌다.

이번에는 진보적 성향의 언론사 기자가 물었다.


- 감독님의 영화를 두고 재벌의 값비싼 취미생활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이야기가 있나요?”

- 감독님의 영화 성취를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재벌이란 표현은 부정적인 인식을 주기 때문에 듣기에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재계에서 세력 있는 자본가, 기업가 무리라는 의미라면 재벌에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재벌이란 말은 사실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한 한국의 가족, 혈족 지배의 대규모 기업 집단을 일컫지 않습니까? 나와 가온은 정권과 밀착한 적도 없고, 내 혈족이 가온을 지배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지금 물어본 질문 중에 '값비싼' 정도 말고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감독님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고 무엇을 추구하시는지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직 내공이 깊지 않습니다.”


류지호는 이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비서와 WaW 홍보팀이 연신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서 일탈하려 합니다. 영화 매체가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소비'되는 영화가 아닌 '소통'하는 영화를 꿈꿉니다. 영화는 문학, 음악 같은 다른 예술처럼, 사람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일까? 그게 나의 고민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해나가면서 답을 구해야 할 숙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보수신문사 기자들의 질문에 날이 서있었다.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개혁바람에 가온그룹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자신들의 직장도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이고.


‘알게 뭐냐.’


기자들이 류지호과 <민중의 적 : EMBARGO>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내든 말든, 흥행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별한 경쟁작이 없는 무주공산 같은 극장가의 10월 마지막 주.

전국 430개 스크린(서울 110개)을 장악한 <민중의 적 : EMBARGO>는 첫 주 관객동원에서 182만 명(서울 45만)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낸 <태극기 휘날리며>의 177만 명 기록을 갱신했다.

천만 영화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지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관객 입소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법개혁에 이어, 언론 및 미디어법 개정, 사학법 개정 등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평소 영화 관람을 잘하지 않던 중장년층 남성 관객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비록 소시민이 거악을 혼내주는 통쾌한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감추어져 있는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에 공감을 표했다.

류지호는 한 동안 영화홍보에만 매달렸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천만영화 만들기 운동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전사적으로 <민중의 적 : EMBARGO>을 밀었다.

차마 감독으로써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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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10.21 09:34
    No. 1

    아직도 문제점이 계속 안고쳐지고 있다는게 더 무서운거죠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3.10.21 10:07
    No. 2

    현실에도 류지호가 존재했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됐을까...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99 건나라
    작성일
    23.10.21 10:36
    No. 3

    진보언론도 언론이라 거짓말로 자기의견을 말하니
    특히 jtbc. 그러므로 진영을 떠나서 그냥 언론은 모두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10.21 12:33
    No. 4

    언론인으로 목소리를 내려면 진짜 목숨 걸어야 합니다. 당연히 대다수가 힘에 굴복했고 그 결과 이젠 AI로 교체될 운명에 처했죠.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는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니까요. 위기입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33 레이군
    작성일
    23.10.21 20:11
    No. 5

    크 필력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0.22 13:59
    No. 6

    소설들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전에는 언론인 이나 검찰 출신 주인공이
    많이 나왔지만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써도 안보거나 무시하죠.

    찬성: 5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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