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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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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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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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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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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군계(軍鶏). (9)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교정 시설이 일본에서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도쿄다카라 스튜디오 사운드스테이지에 만들어놓은 교도소 세트만 놓고 보면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침대 문화가 아니어서 그런가....?”

“뭐가?”

“일본 교도소 사동이 한국과 똑같이 생긴 것 같아서.”

“그러게 침구류 각 잡아서 정리하는 거나, 목공 위주의 노역 같은 거 보면 영락없이 한국 교도소라고 해도 믿겠어.”


여전히 군국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 중에 하나가 일본의 교도소다.

한국의 교도소는 그걸 참조해 만들다.

거기에 군대문화까지 융합시켰다.


“일제에 지배당하고 오랜 시간 군부독재를 거친 한국의 교도소가 일본과 유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어쨌든 도쿄다카라 스튜디오는 모두 16개 사운드 스테이지가 마련되어 있다.

현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촬영소다.

그 중 한 곳에 <군계>의 소년원 감방 내부 세트를 제작했다.

로케이션 촬영은 사이타마시에 있는 폐쇄된 교도소에서 촬영을 마쳤다.

면회실 장면 촬영을 앞두고 마에다 사다호가 류지호게 물었다.


“따로 제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리딩에서 했던 그 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마에다 사다호가 소품으로 가져다 놓은 의자를 끌어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 대본을 펼쳤다.

소품부가 면회객과 수감자를 분리할 용도로 만들어진 투명 유리창 선반에 수갑을 가져다 놓았다.


후우.


류지호의 기대어린 시선을 받은 마에다 사다호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제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뻗대는 것도 감독 나름이다.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군단을 기용해온 감독을 만족시키려면 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거야?’


고민을 해봐도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군계>의 주인공인 츠마부키 료타가 유리 너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늘었어.”

“예?”

“잘하고 있다고.”

“아, 감사합니다!”


츠마부키 료타의 연기가 영화 시작할 때와 비교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

그저 또래 중에서 조금 두각을 나타내는 정도였다.

진솔하게 배역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촬영 회차가 거듭될수록 제법 섬세한 연기를 할 줄 알게 됐다.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의 맛을 제대로 봤다고 할까.


‘진짜배기 연기가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제대로 느꼈겠지....’


류지호 감독은 두 주인공을 다룰 때마다 호흡, 말투,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매 장면 그렇게 하진 않지만, 종종 아주 사소한 것까지 디렉션을 주곤 했다.

매우 어렵고 복잡한 내면을 표현해야 할 때였다.

일본의 어떤 감독처럼 일방적이지 않은 것이 이채로웠다.

지시가 아닌 대화를 나눴다.


“마에다 상?”


츠마부키 료타가 생각에 잠긴 마에다 사다호를 일깨웠다.


“응?”

“간도쿠상을 보면 말입니다. 마치 미로에서 모든 것들을 꿰뚫고 있는 안내자가 힌트를 주면서 목적지로 안내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 말 한마디 없이 숨 막힐 듯 중압감을 더하며 촬영 현장을 장악하는 감독을 마주한 건 오랜만이야.”

“일본 거장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친절하고 상냥한 스타일의 감독인 것 같습니다.”


껄껄.


마에다 사다호가 웃었다.

몇 해 전 태런티노라는 할리우드의 재기발랄한 감독과 일을 해봐서 안다.

이미 그 전에도 몇 개의 미국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할리우드 촬영현장은 온갖 인종들이 뒤섞여 200여 명이 촬영현장에서 북적거린다.

다른 부서의 업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만 한다.

심지어 옆에서 조명 스탠드가 넘어져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무심했다.

너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것이 할리우드 룰이라고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반드시 책임을 지는 문화라나.’


만약 조명 스탠드가 넘어져 문제가 생기게 되면 마지막에 손을 댄 사람이 책임을 진다.

옴팡 뒤집어 써야 한다.

봐주는 것 없다.

그런 면에서 아직 일본 영화제작 현장은 실낱같은 유대감은 남아 있다.

다소 비정해 보이는 할리우드 현장에서 여러 작품을 작업한 감독이 류지호다.


‘저 감독의 재능도, 그 재능 보다 큰 노력이 없었다면 꽃을 피울 수 없었겠지.’


마에다 사도호가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후웁.


너무 많이 읽어 너덜너덜해진 시나리오를 펼쳤다.

이미 상대 배우의 대사까지도 외웠다.

그로서는 오랜만이었다.

연기에 진심을 다 해보는 것이.

할리우드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를 일본 액션영화의 거장으로 대접해 준다.

워낙 액션으로 유명한 배우라서 연기가 주목을 못 받아서 그렇지, 관록이라는 것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의리없는 전쟁>이나 <마계전생>의 야규 쥬베 캐릭터는 몇몇 할리우드 배우에게도 영감을 줬다.

즉 류지호가 <킬빌> 때문에 그를 캐스팅한 것은 아니라 그의 커리어 전체를 보고 기용한 것이다.


쿠시로(아바시리) 형무소.


메이지 시대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고 악명 높은 교도소다.

아이누인들의 거주 지역이었던 훗카이도에 소재했다.

혹한의 추위로 동사자가 속출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중범죄자, 재범, 야쿠자 단원 등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이 주로 보내졌다.

일본에서 형무소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교정시설이다.

수많은 일본의 창작물에서 교도소가 등장했다 하면 높은 확률로 아바시리 형무소가 등장한다.

<군계> 원작 만화에서 주인공 료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찾아간 눈 날리는 훗카이도 교도소가 바로 그 아바시리 형무소다.

암튼 류지호는 사실적으로 묘사하겠답시고 일부러 훗카이도를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CG로 처리하기로 했다.

B-Unit을 보내 교도소 전경을 촬영해 한국으로 보냈다.

감방 내부는 도쿄다카라 스튜디오 스테이지에 촬영하고, 교도소 작업장 등 외부는 여주의 WaW종합촬영소에서 찍을 예정이다.


“고!”


마에다 사다호는 편안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은 아니다.

쌍꺼풀 진 진한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이 절로 긴장하게 된다.


[누가 프레임을 만드는 걸까? 기자 학자 정치인이야. 일반 시민들은 편을 가르고 싶지 않아. 왜? 다 같이 먹고 살기 힘든데 편 나눠서 싸우면 두 배로 힘들어.]

[난 틀리지 않았어, 영감. 그들이 짜놓은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가련한 구관조 같아.]

[큭큭. 일본의 젊은이들은 패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공무원을 동경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지. 내가 열 살의 일본인이라면 AK-47 자동소총을 구입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는 걸 선택하겠다.]


쿠로카와를 통해 일본에는 희망이 없다는 걸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난 이제 잃을 것도 없어.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고.]

[개소리 늘어놓을 거라면 꺼져라.]


나루시마 료는 자신이 사회에 나가서 경험한 쇼만 가득한 가라데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다.

쿠로카와는 전통적인 가라데를 두둔하는 말을 한다.

마치 천황국가론을 설파하는 것처럼.


[영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

[.....?]

[왜 내게 가라데를 가르친 거지? 난 구제불능이었을 텐데....]

[네 녀석에게 그 이상 어울리는 게 없기 때문이다.]

[킥킥킥...!]


배우에게 ‘쪼’라고 불리는 고유한 습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초보배우든, 경력이 오래된 배우든, 대사를 치는데 ‘쪼’가 보인다면 문제가 있다.

잘 못 배웠거나 근거 없는 도제식으로 연기를 경험했거나.

둘 중 하나다.

꾸미기 위해서 대사에 특정한 악센트, 억양, 음을 넣는 습관은 대사연기를 망치는 최악의 습관이다.

‘쪼’란 한마디로 습관이다.

배우가 대사를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박혀있는 말투 혹은 좋지 못한 습관을 일컫는다.

습관이라는 말은 반복을 의미한다.

배우에게 어느 하나 똑같은 캐릭터 똑같은 감정 똑같은 대사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반복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거짓이 되어버린다.

영화마다 대사를 하는 톤, 말투, 말하는 습관이 똑같았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한 다른 영화의 캐릭터를 복제했다는 뜻이다.

촬영하는 순간 연기가 살아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대사는 그저 텍스트가 아닐뿐더러, 단어도 아니다.

완성 된 문장 단위로 구성된 대화다.

단어나 음절을 강조하거나, 음계 즉 음의 높이를 문장으로 이루어진 말에서 불규칙적으로 바꾼다면 연기의 기본도 안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흔히 생활 속에서 말하듯이 대사를 치라고 한다.

일명 생활연기다.

엄밀히 말하면 생활연기라는 건 없다.

메소드 연기에 포함되는 개념을 한국에서 ‘생활연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영화홍보마케팅에 썼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배우들은 낙제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들이 펼치는 온갖 ‘쪼’들이 일반 극영화에서까지 난무하니까.

한국의 특정 지역 사투리처럼, 일본 영화에서 특정 직업군(건달), 지역(오사카)적 ‘쪼’가 박힌 대사연기를 연기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본배우들도 많았다.

다행히 <군계>에 캐스팅한 배우들은 영화, TV, 연극 등을 오가는 배우들을 캐스팅했기 때문에 소위 일본식 ‘쪼’가 심각하게 붙은 배우는 없었다.


“목소리 바꾸거나 거칠게 변조하지 말고. 차라리 속삭이세요. 읊조리듯 대사 해봐요.”


류지호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가장 많이 주문한 말이었다.

영화연기에 있어서만큼은 겉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하수, 절제하는 사람이 고수다.

연기 대가들은 연기에서 100% 모두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

70~80%만 쓴다.

그러다가 한 번씩 100%를 꽉 채운다.


“힘 빼.”


감독들이 젊은 배우들에게 지겹게 하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다.


“다 쏟지 마. 남겨.”


두 번째로 하는 잔소리다.

찰떡 같이 알아듣고 연기하면 대성할 재목이다.

감을 못 잡고 헤매면.... 적당히 직업배우 생활하며 연명하는 것이고.

특히 <군계>의 나루시마 료 같은 캐릭터는 평상시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보다 더 많이 절제해야 한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니 소시오패스라는 함정에 빠져서 진짜 미친놈처럼 날 뛰면.

캐릭터가 시시해진다.

결과적으로 배우가 연기를 못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예외도 있다.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들이지.‘


괜히 주인공을 한 작품 해본 배우와 조연만 수십 편 하다 주인공이 된 배우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감독들은 열심히 하는 배우도 좋아하지만, 똑똑한 배우를 더 좋아한다.

지적인 것과는 상관없다.

연기지능이란 것이 따로 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배우가 주인공으로 영화 한 편 끌고 가보면, 다음 작품부터는 연기 부분에서 끝난 거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안 까먹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 작품부터는 한 손으로 타고, 그 다음에는 핸들에서 두 손을 놓고 타고, 또 외발로 타고, 심지어 안장에 올라서서 타고, 작품이 쌓이면서 자전거 묘기까지 부릴 수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무나에게 주어지지 않고 누구나 성공하지 못한다.


❉ ❉ ❉


8월 말부터 9월 초순까지 류지호가 촬영장을 비웠다.

감독이 없다고 해서 <군계>팀이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촬영팀은 CG 소스 촬영을 진행했다.

관련 테스트 촬영도 진행했다.

원작 만화에서 나루시마 료와 스기와라 나오토의 도쿄 돔 시합은 무려 두 권 반에 걸쳐 섬세하게 묘사했다.

류지호는 가라데 시합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도쿄 돔에 모인 영화 속 주요 인간 군상들의 욕망, 좌절, 분노, 혐오를 다양한 시선으로 담을 생각이었다.

이전까지 영화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모든 갈등과 욕망들이 모여 터져 나오고, 이후 이어지게 될 폐허가 된 신사에서 두 주인공의 비밀스러운 대결의 폭발을 이끌어낼 작약(炸藥)을 그럴 듯하게 심어주면 그만이다.

작약은 말 그대로 폭발물을 작렬시키는 화약.

진짜 폭발은 만월이 뜬 밤에 다 쓰러져 가는 절에서 펼쳐지는 단 둘만의 목숨을 건 대결에서 터진다.

암튼, 김영복 촬영팀과 VFX 슈퍼바이저는 두 주인공이 화면에 걸리지 않는 커트들만 선별해서 일주일에 걸쳐 촬영했다.

그런 후, 배우들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여주 강변에 그림처럼 세워진 가온호텔은 WaW종합촬영소에서 촬영하는 한국영화 제작팀들의 단골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주변경관은 썩 봐줄만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는 한적한 곳이다.

츠마부키 료타가 한중기 피디에게 부탁했다.


“혹시 스튜디오를 미리 둘러볼 수는 없습니까?”

“안 될 건 없지. 다만 다른 팀 촬영장을 볼 수는 없어.”

“저희가 일 할 곳을 보고 싶습니다.”


마침 심심하던 차에 배우들이 모두 한중기 피디를 따라나섰다.

시설만 놓고 보면 가장 최근 개장한 홍콩의 샤오브라더스 스튜디오 단지가 좀 더 최첨단이다.

스테이지 숫자는 전통의 도쿄다카라 스튜디오가 더 많다.

WaW종합촬영소는 그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천만에 말씀이다.

부지 면적, 시설, 지원 시스템 모두 할리우드 못지않다.


“저 건물은 SF영화 세트입니까?”


츠마부키 료타가 가리킨 건물은 경영지원 본부다.

설계 당시부터 SF영화를 촬영해도 될 만큼 혁신적인 디자인을 자랑했다.


“일반 오피스야. 몇 번 한국 TV드라마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지.”

“저 건물이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란 말입니까?”

“응.”


오피스 건물이라고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없냐하면 그렇지 않았다.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까지 WaW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수십 편의 영화들의 포스터가 복도를 따라 보기 좋게 걸려있다.

매달 몇 편씩 추가되고 있다.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WaW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트로피를 진열해 놓은 유리벽도 있다.

모두 가품이다.

2층 로비는 전시장 같다.

시대별로 필름 카메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류지호 감독님이 기증한 것들이야.”

“이걸 전부 다요?”

“절반 정도.”


빌딩 디자인만 혁신적이지 않았다.

사무실 인테리어와 장식 그리고 책걸상까지 일반적이지 않다.

부서별로 개성이 느껴졌다.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실리콘밸리 IT기업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


영화사 사무실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천편일률적인 일본 영화사 분위기와 비교 자체가 실례다.


“이래서 WaW가 영화를 잘 만드나 봅니다?”

“여기는 촬영소 지원인력들이 쓰는 사무실이고 영화사는 서울에 있어. 그곳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런 문화가 정착하기까지 류지호와 래리 킴이 많이도 싸웠다.

류지호가 UCLA 교양수업에서 주워들은 것을 현장에 적용한답시고.


“사무실의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장식하는 것도 직원들의 근무의욕과 창의력을 고취시킨답니다. 정기적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회사가 따로 비용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전문경영인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지시다.

60평 대 사무실에서 지내던 때야 가능할 수 있지만, 수십 개 자회사 및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은 그 비용을 감당 못한다.

류지호의 고집이 꽤나 완강했다.

타협을 본 것이 3년에 한 번 사무실 인테리어를 전체적으로 바꾸거나, 심사를 통해 근무태도와 실적이 좋은 사원에 한 해 개인적인 장식이나 책걸상 교체를 해주는 방식이다.

물론 공간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관련 규정을 따로 마련했다.

현장근무자들을 배려해 휴게실 및 라커룸을 비슷한 방식으로 배려해주고 있다.

그 밖에 편집실, 각종 녹음실, 더빙 스튜디오, DI실 등 작업공간의 경우 청결을 매우 중요하게 챙기고 있다.


“스튜디오가 오픈하기 전에 <복수의 꽃>을 백랏에서 촬영했는데. 그때 감독님이 담배공초를 줍는 걸 임원들이 보게 됐지.”


무주리조트 임원들이 솔선수범해 사업체를 관리하고 있는 것도 사내 소식지와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온그룹 임직원들은 사업장에서 함부로 담배공초를 버리는 일이 사라졌다.


“스고이!”

“스바라시!”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촬영스튜디오가 아니라 마치 휴양지 같이 느껴질 정도다.

수십만 평 부지 곳곳에 분수도 있고, 잔디밭도 조성되어 있고, 산책코스는 물론 대형 연못도 있다.

사운드 스테이지가 모여 있는 구역을 벗어나자면 마치 리조트 같기도 하고 미국대학 캠퍼스 같기도 한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산책하기 딱 좋은 오솔길 옆에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영화팀도 보이고.

종합촬영소 직원들과 영화 촬영팀이 함께 어울려 족구와 농구 게임을 하고 있다.

<군계> 일본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놀란 곳은 다름 아닌 식당이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이 조화롭게 마련되어 있는 뷔페식 식당이 세 개로 나눠져 있어 사람이 몰려도 심하게 북적거릴 것 같지 않았다.

종합촬영소 직원이든, 외부 방문객이든, 영화 촬영팀이든 모두가 자유롭게 어울려 식사를 즐기는 풍경은 이제 일상이다.

촬영 일정이 매우 빡빡하고, 주로 도시락을 먹는 일본영화 현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쾌적한 영화 인프라다.


“메뉴에 가격표가 없습니다.”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모든 요리와 디저트가 무료로 제공 돼. 외부 촬영팀은 사전에 식권을 판매하고 있고.”


식당을 둘러 본 <군계> 관계자들이 뒤뜰로 나갔다.

아담한 연못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야외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이 놓여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접시에 담아 야외로 나와서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즐길 수 있다.


“연못 주변에는 크랭크업 파티를 할 수 있도록 바비큐장이 마련되어 있지. 관계자들이 모여 흥행을 기원하는 샴페인 축배를 들기도 해.”


안내하는 한중기 피디의 어깨가 왠지 상당히 올라간 것 같았다.

도쿄다카라 관계자들이 자신들 스튜디오를 자랑할 때 얼마나 배알이 뒤틀렸었는지.

앞 선 영화를 배우겠다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한중기 입장에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집도 있습니까?”


한중기 피디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온재단이 심재우 이사장 중심으로 재정비되면서 사내 어린이집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종합촬영소 어린이집은 개장과 함께 가동되고 있는 대표적인 모범사례 중에 하나다.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자신의 자녀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주말에는 미리 신청한 가족에 한해 식당에서 외식을 즐길 수도 있다.

전부 공짜다.

가온그룹은 주 5일 근무와 하루 최대 12시간 근무 제한을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화 업종은 개봉에 쫓기다 보면 밤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 일해야 하는 아빠·엄마가 자녀들과 조금이라도 스킨십을 할 수 있도록 점심식사 배려하고 있다.


“이 모든 환경은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지. 특히 오너인 류지호 감독님의 마인드가 세심하게 묻어 있어.”


마지막으로 아네모네 커피숍으로 향했다.

가온그룹 직원은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무료쿠폰을 매달 받는다.

초과분만 본인의 돈이 들어간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1,500원.

매장 개장 때는 500원이었다.

밥차 업주들이 몰려와 데모라도 할 기세여서 기존 커피 프랜차이즈의 절반 값으로 타협했다.

사실 직원용이라기보다는 외부 방문객을 위한 매장이다.

직원들은 본부 건물 사무실마다 마련된 간식 서비스로 충분했으니까.


“예술적인 뇌를 많이 쓰는 직원들에게 정신적인 혹사는 업무의 능률을 저하시키는 법. 항상 업무환경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감독님이 강조하고 계시지. 그래서 직원들은 출근 후 여유시간에 그림을 배우거나 사진을 찍거나 농구를 하거나 족구를 하거나 조깅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산책을 해.”

“스고이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참아가면서 일할 필요가 없어. 스튜디오에도 의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수시로 찾아가 진단을 받을 수 있지.”

“스바라시네.....”

“직원들은 의사를 만나기 위해 근무시간을 쪼개어 다녀오지 않아도 되고, 간단한 처방은 따로 의료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좋으니 1석 2조라고 할 수 있어.”


WaW 엔터테인먼트는 실리콘밸리 IT기업만큼의 자유로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자율성과 복지를 마음껏 누린다.

그럼에도 ‘농땡이’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해야 하는 업무를 정확히 알고 있고,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업무를 끝내려고 노력한다.

회사 차원에서 직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간간이 퇴사자가 나온다.

업무에서 뒤처지거나 무능을 자주 드러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직장문화가 초창기부터 잘 정착이 되어 있다.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면, ‘꿈의 직장’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

대신 능력이 모자라면 회사가 채워준다.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도록 사내 재교육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다.

여주의 종합촬영소타운의 스태프 재교육센터에 관련 강연과 수업이 수시로 열린다.

또한 저명인사나 과학자, 철학자, 시인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초청해 임직원들을 위한 특별강연도 자주 열고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자유로운 기업 문화, 개방적 정보 공유 시스템, 다양한 직원 재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엔터테인먼트 업체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록 오성전자 초봉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보수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엔터업계에서 WaW는 꿈의 공장이다.

꿈을 구현하는 공장이며 꿈꾸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공장이기도 했다.

가온그룹 입사.

무척 어렵다.

오성전자 못지않다.

하지만 조건까지 까다롭진 않았다.

학력, 연령, 성별, 외모, 잡다한 스펙... 안 본다.

이력서는 가온그룹 입사의 중요한 평가도구가 아니다.

직원을 채용하는 여러 기준이 있어서 중졸도, 워킹맘도, 이미 다른 기업에서 정년퇴임한 사람도, 외국인도, 상관없다.

가온그룹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면 채용된다.

일정 재교육 과정을 거쳐 각 계열사로 퍼져나간다.

사회 초년생들이 노려볼 만한 것은 인턴십이다.

인턴십을 한 후에 가온그룹에 정식으로 채용이 되는 케이스도 상당했다.

WaW 엔터테인먼트에서 성장해 독립해 나간 사람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엔터업계의 실무사관학교다.

충무로에 진짜배기 전문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WaW 엔터테인먼트에게도 좋다.

그들의 기획과 도전이 WaW로 고스란히 되돌아올 테니까.

다만 한 번 나간 이들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때문에 WaW를 뛰쳐나가 독립하려는 직원은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츠마부키 료타가 중얼거렸다.


“꿈의 공장....”


가온그룹은 미국과 유럽의 일하기 좋은 회사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MacIntosh를 벤치마킹한 것도 있다.

바로 보안각서 부분이다.

심각한 해사행위나 보안규정을 어긴 직원은 퇴사 후에도 끝까지 추적해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각종 민사소송을 건다.

당사자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정도로 괴롭힌다.

아직까지 그런 일이 벌어진 사례는 없다.

다만 나래안전 시스템에서 독립했던 (주)서평특수 임원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가온그룹 법률팀은 전방위적인 민사상 형사상 무차별 소송을 그들에게 걸었다.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가 버리는 것이 속편할 정도로 지독한 괴롭힘이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가온그룹 정도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향해 작정하고 걸고넘어지면, 하루하루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법대로 할 뿐입니다.”


힘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법대로 하자고 하면 그것만큼 더럽고 치사한 것도 없다.

그래서 대기업하고는 가급적 나쁜 일로 엮이지 않는 편이 좋다.

좋은 일로 엮여도 피를 볼 때도 있지만.

암튼 가온그룹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사관학교 혹은 꿈의 공장이다.

좋게 지내면 든든한 후원자다.

한편으로 산업 전반을 좌우하는 폭군이기도 하다.

때론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고통을 선사해 주는 지독한 고문기술자이기도 하고.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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