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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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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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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0.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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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글자
23쪽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영화 <민중의 적 : EMBARGO>는 가상의 신문사 ‘대한일보‘의 사회부 기자의 좌충우돌을 그린다.

강철중은 촌지와 받아쓰기가 일상인 메이저 언론사의 일진 기자다.

언론사 입사 초기에는 소명의식 투철한 참 언론인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현재는 타성에 젖어있는 월급쟁이 일 뿐이다.


[고등학교 때는 범생이었잖아.]

[기자되더니 애가 완전히... 맛이 갔어.]

[요새 맨 정신으로 살 놈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냐.]


동창들의 뒷담화를 듣고 그냥 지나칠 강철중이 아니다.


[그래. 나 미친개다. 개새끼가 돼야 인간을 물지. 아무 개새끼나 막 사람 물디? 미치지 않은 개가 사람 무는 거 봤어?]


‘앙’ 무는 시늉을 해보이는 강철중에게서 진지함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표정 좀 풀어. 사회에 불만 있냐?]

[졸라 많다. 불만.]


고등학교 동창 김현수는 시종일관 사교적이고 매너 좋은 사람 연기를 한다.


[사스마리에게 잘 보여 봐야 좋을 거 하나 읍다. 경찰서나 법원에서 볼 일 있냐?]

[정치부, 경제부 기자도 했다며?]

[좇 같아서 사회부 왔는데, 내가 이러구 있다.]

[부장되고 국장 되고....]

[국장은 니미... 일없다. 경찰의 꽃은 형사. 기자의 꽃은 사회부.]


김현수는 틱틱거리는 강철중의 말투가 매우 거슬린다.

학교 다닐 때는 뭣도 아닌 새끼가.....

하지만 참는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스마트한 비즈니스맨의 태도를 유지한다.


[우리가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엘리트 탈을 쓴 개새끼들이? 왈왈 잘도 짓는... 아니지. 혓바닥에 빠다 좀 발랐다? 느끼하게 잘 터는데?]


강철중이 김현수에게서 고급케이스를 건네받아 열어젖히면, 몽블랑 명품 만년필이 자태를 뽐낸다.


[스타인웨이 에디션이다. 좋은 기사 쓰라고.]

[누가 요새 이런 걸로 기사를 써. (타자치는 시늉을 한다) 다 뚜드리지.]


케이스 밑에는 상품권이 두툼하게 깔려있다.


[새끼가... 누굴 기레기로 아나?]

[....기레기?]

[기자 쓰레기의 줄임말이다, 새끼야. 가만! 쓰레기도 쓰레기 기자 줄임말이잖아....? 킥킥.]


이 부분을 영어/이탈리아어로 어떻게 번역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파파라치(paparazzi) 대신 ‘Presstitute’(언론창녀)로 번역을 해놓았다.


[또 펐네, 또 펐어. 특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낙종을 해?]

[아니. 취재원이 술집에서 보자는데 술집에서 커피 마시자고 할 순 없잖수?]

[다른 신문 확인 안 했어?]


서 부장이 내민 경쟁사 신문에 ‘에이즈 감염 수입 혈액 발견’이란 기사가 보인다.


[아, 씨바 이거 내일자 엠바고 걸린 건데.... 언 씨발노미!]

[경위서 받으라는 거 내가 싹싹 빌어서 막았어. 출입처가서 밥 좀 얻어먹고 다니지 마. 환경부 출입하는 애들 도시락 시켜 먹는다며!]

[걔들 기자실에서 고스톱 치느라고 존나 바빠서... 도시락 까먹는 거요.]


한국 언론환경만의 독특한 문화인 기자실 문화가 적나라하게 소개된다.

마감시간에 쫓기며 특종경쟁을 벌이는 북새통 속에 독자의 눈을 끌 '재료'에 주목하는 선정주의와 보도윤리의 문제를 건드린다.

그 속에 매몰되는 '직장인' 기자들의 고달픈 일상들도 조금 묘사되고.


[선배들이 그러더라.... 5년, 6년 차 때가 고비라고.... 내가 겪어보니까 딱 맞아. 물불 안 가리고 뛰다가 그 때 쯤 되니까 확 겉늙어 버리는 거야.... 니들, 보는 놈은 죄다 도둑놈이요 세상이 온통 협잡질의 연속으로 보이지? 혼자 씨바 쥐뿔 나게 뛰어봤자....]

[사건팀으로 보내줘요. 넥타이 매는 부처출입은 체질에 안 맞아요.]

[까지 마.]

[다시 강남서 카바할게요.]

[시끄러... 넌 과천, 저기 고기 굽는 새끼는 테헤란하고 시민단체야. 글구 저 새끼 저거 확실히 잡아. 갓 사스마리 딱지 뗀 새끼가 빠져가지구 정치부나 얼쩡거리고 어영부영.... 이 찬바람 몰아치는 일사후퇴 같은 IMF 엄동설한에 바짝 엎드려도 모란데 말이지....]


마감을 끝내놓고 팀원들과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접대 전화가 걸려온다.

일반인들은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을 영화가 극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부 일진기자는 접대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공보관이 자리 만들었단다. 구린델 캐려면 우리가 먼저 똥을 묻혀야 되는 거야.]


영화 앞부분에서 강철중은 접대자리에서 마냥 해맑게 즐긴다.

바이오벤처 Life-Plus의 불법 임상실험을 포착한 후로도 그 모습은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지만, 다음날 주머니에서 급하게 휘갈겨 쓴 메모들이 빼곡한 냅킨과 휴지, 구겨진 영수증을 바리바리 꺼내고, 심지어 냄새나는 양말과 함께 밤을 보낸 접대부 브레이지어에도 뭔가를 메모해 두었다.

인사불성이 되기 전에 적어 놓았던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짜맞춰본다.

과장이 조금 보태져 있지만,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경험담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설정이다.


[그냥 찌르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부작용으로 8명의 아이들이....]

[당신 자식이에요? 당신 자식도 아닌데 어디서 박애주의자인 척 해? 이거 성공하면 당신 손자도 혜택을 누리는 거잖아. 투자자가 발을 뺀답니다. 어떻게 할 거요!]

[가져와. 그거 찌르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 안됩니다. 대표님.]


김현수는 전편의 조규환과 톤 앤 매너가 다르다.

미친놈처럼 길길이 날 뛰는 법이 없다.

존대와 하대를 오가는데 그 말투가 굉장히 재수가 없다.

김현수는 나쁜 짓을 침착하고 태연하게 벌이는 진짜 나쁜 놈이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비인도적인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기업가.

서로 끈끈하게 유착되어 있는 대한민국 정·경·검·언의 유착들.

영화는 특종을 하기 위해 바이오벤처를 파고들다가 고아원 아동을 대상으로 불법 백신임상실험을 자행하고 지시한 기업가를 혼내주는 내용이 주요 플롯이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 따위는 없다.

막무가내, 좌충우돌이다.

그것이 전편부터 이어온 강철중 캐릭터의 묘미이기도 하고.

이 저돌적인 남자는 한국 사회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결코 납작 엎드리거나 순종하지 않는다.

전략적 후퇴도 없다.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그저 치받는다.

통쾌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에.

영화가 흔한 영웅주의 영화로 흐르지 않는 것은 주인공 자체가 악취가 진한 부패한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출입처를 통해 기업체로부터 접대가 일상이고, 과천종합청사 사무실과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 듯 헤집고 다니며 공무원들에게 ‘갑질‘을 해대고, 무책임한 기사로 인해 길거리에 나앉게 된 영세자영업자의 눈물을 외면하는 그런 인물이다.

<민중의 적 : EMBARGO>는 근사한 미장센과 빠른 전개로 전형적인 장르영화 외피를 두르고 있다.

헌데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한국 사회는 진흙탕과 다름없다.


[나도 내가 깨끗한 놈이 아니란 거 알그든. 근데 너는 더, 더, 더더더 응 체키럽(Check it out) 씨바~ 존나 나쁜 새끼다.]

[네오박스 임상실험이 발표되면 세계 최초야.]

[백신은 관심 없어. 니들이 그걸로 몇 백 억을 벌든 몇 조를 벌든!]

[희생 없이 진보가 있어?]

[.......]

[네가 지금까지 특종 한 그 모든 사건들, 어떤 희생도 없었다고 자신해? 너 때문에 부도난 회사도 있고, 폐업한 식당도 있고, 죄가 없는데도 옷 벋은 공무원이 한 둘이 아니잖아? 솔직히.....]

[......]

[네오박스가 가져 올 의학적 발전, 우리 경제에 미칠 부가가치를 생각해 봐.]

[.....]

[우린 한 배를 탔어. 철중아....]


Life-Plus로부터 향응접대를 몇 차례 받았다.

이 사건의 숨겨진 이면을 모를 때 ‘빨아주는‘ 기사도 한 번 썼고.

어찌 보면 강철중은 김현수 프로젝트의 내부자일 수도 있다.


[대한일보에서 근무하는 기자 중에서 제일 개 같은 게 나거덩. 멍멍. 흐흐흐.]

[자기 콤플렉스를 그렇게 쉽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강철중. 일정 부분 부럽기도 해.]

[체육은 내가 더 잘했어. 이 씹새야!]


강철중에게 치밀하고 지적이며 열정적인 취재 따위는 없다.

마치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시니컬하면서도 막무가내 스타일이다.

그래서 영화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바이오벤처 연구실에 몰래 숨어들어갔다가 보원요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층 건물 난간에 매달린다거나, 바이오벤처가 고용한 해결사와 제법 근사한 카 체이스를 벌인다거나, 야밤에 주택가에서 추격전을 벌인다거나.

땀내 나는 액션 시퀀스 말고도, 제법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씬도 풍부하게 배치되어 있다.

백신부작용이 드러난 소녀를 빼돌리는 과정이라든가, 사회부 막내로 출연하는 송라원의 집으로 김현수가 직접 찾아가 위협을 가하는 장면이라든가.

음악, 편집, 연기, 연출이 어울려 그럴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강철중은 영화 속 주요한 피해자인 소녀를 처음에는 멀리한다.


[얘야... 아가야... 좀 떨어질래.]


백신 피해아동인 은애는 강철중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강철중은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도와달라는 몸부림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아저씨가 집엘 못 들어가서 냄새가 심해. 봐봐. 꼬랑내 나지? 안 나? 맡아봐봐. 나지? 그러니깐.... 절루 가서 친구들하고 놀아.]


강철중이 자신의 기자수첩(다이어리)을 찢어 침까지 발라가며 바람개비를 급조해서 은애 손에 쥐어준다.

은애는 바람개비를 받아들고도 좀처럼 강철중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마, 가서 애들이랑 놀아. 친구 없어?]


이 바람개비는 영화에서 중요한 소품이자 장치다.

보육원에서 은애가 실종되었을 때, 또 Life-Plus사의 연구소 등에서 강철중이 피해자가 은애라는 걸 눈치 채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클라이맥스에서 바람개비가 다시 강철중에게 돌아오는데, Life-Plus의 불법, 비윤리적 고아 상대 임상실험을 까발리는 결심의 촉매제가 된다.

강철중이 불쌍한 소녀를 살리기 위해 온 몸으로 맞서는 전개는 다소 구태의연하다.

그럼에도 강철중이란 인물을 놓고 보면 충분한 개연성을 갖는다.

휴머니즘이 먼저인지 저널리즘이 우선인지.

선택에 갈림에 선 주인공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도 썩 봐줄만 했다.


[선영이 넌 저게 뭐로 보이냐?]

[보육원이죠.]

[난 왜 어린이들을 가둬놓은 사육장처럼 보이냐?]

[선배 마음이 썩어서 그래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사람이 사람을 실험도구로 쓰냐.]

[.....]

[내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까. 아무리 청결하게 몸을 씻는다 해도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수보다 10배 많은 약 100조 마리의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가 우리 몸에 터 잡고 산단다. 그 무게를 다 합치면 2㎏에 이른대. 너 그거....]


귀에 딱지가 앉은 말이라 은근슬쩍 선영이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싸가지 없는 새끼. 선배가 말하는데...]


숨 가쁘게 전개시키다가 한 번씩 그 같은 장면으로 쉬어갔다.

특히 롱테이크 스태디캠 쇼트와 함께 류지호 영화의 시그니처가 된 비어있고, 공허한 롱 쇼트를 통해서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본격적인 사회파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선정주의 보도와 막무가내 취재관행이 먹히는 사회가 과연 정당한지 영화가 묻는다.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하지 않은 언론인을 통해 역설적으로 신뢰를 잃은 미디어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는 소영웅주의 인물 강철중이 실험체로서의 쓰임이 다한 소녀를 화장시키기 직전 간신히 막아내는 것으로 성급하게 종결하지 않는다.

바이오벤처 사람들은 소녀를 두고 ‘실험체 폐기‘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사용한다.

자본이, 엘리트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한일보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죠. 아버님이 광고를 얼마나 주는데....]

[기사 나가는 것만 무리 없이 막게 되면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서 회견을 한 바탕 떠들썩하게 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김 대표만 믿고 갑니다.]


Life-Plus와 연결되어 있어 강철중의 기사가 나가면 곤란한 이들이 한 둘 아니다.

류지호는 악당들을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에 연루된 이들이 썩 현실적이다.

보사위 소속 국회의원, 산업부 고위 공무원, 벤처캐피탈, 의료단체, 검경 고위직, 경제신문 기자들까지.

비윤리적인 임상실험이 주요 소재이지만, 한국의 벤처와 캐피탈의 문제도 조금은 묻어났다.

시간배경이 IMF 직후이자 IT버블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탐욕과 패륜이 만나서 어떻게 휴머니즘이 실종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까.

전편에서는 개인적인 범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사회적 범죄로 확장되었다.

부패한 기자가 휴머니즘을 실천한다.

죄를 지은 자 혹은 부패한 인물이 정의를 위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음을 감독도 관객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대리만족 때문이다.

공적 영역에 있는 이들은 정의로워질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자신의 이익과 미래가 걸린 일 앞에서 정의 따윈, 시대적 소명 따윈 큰 문제가 아니다.

언론재단이 기자의식조사를 시작한 1989년 이후 기자들이 전직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놀랍게도 ‘개인사업’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 때려치우고 온라인 매체 하나 파서 알바 두어 명 정도 쓰고 어뷰징만 돌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실제 류지호가 이전 삶에서 현직 기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은 여전히 기자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반면에 류지호는 도저히 기레기들에게 기대를 할 수가 없다.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2010년대에 가서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연예부기자 출신이라는 어떤 자는 NeTube를 통해 온갖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많은 연예인의 삶을 망가뜨리고도 뻔뻔하게 후원금을 구걸하느라 바빴다.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하면 피해자들에게 한 마디 사과조차 남기지 않았다.

언제나 언론은 혁신을 요구받는다.

기자는 혁신의 주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공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내려놓게 된다.

스스로 월급쟁이로 도망갈 구멍을 만든다.

기자가 ‘샐러리맨’이라면, 샐러리맨의 관건은 ‘돈’이다.

같은 직업군에서 또 타직업군과 연봉을 비교하게 된다.

선배들처럼 촌지와 뇌물로 한 살림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기사로 세상을 바꾼다는 청춘의 꿈을 잊은 지도 오래다.

남은 건 생존욕구다.

그래서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면 고민 없이 사표를 쓰며, 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각종 개발사업에 한자리를 차지하거나, 부도덕한 곳에 몸을 의탁해 떡고물을 얻어먹게 된다.

전편과 달리 <민중의 적 : EMBARGO>의 강철중은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심리 묘사에 꽤나 공을 들인 태가 났다.

독불장군 강철중이 팀원들과 불협화음을 내지만, 결국에는 힘을 합쳐 큰 사건을 해결한다.

전편보다 조금 더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철중이 너! 영웅이 되고 싶어....?]

[미쳤습니까? 가늘고 길 게 기레기 짓 해먹고 살 사람한테, 개뿔 영웅은?]

[근데 왜 이딴 기사를 써 왔는데?]

[만날 낙종만 하지 말고 단독 따오라면서요?]

[이 새끼야. 이게 어딜 봐서 단독이야? 위에서 단박에 커트하겠구만. 이거 잘 못 만지면 회사 위아래로 다 갈려나가는 거 몰라?]


우리는 정의를 위해 인생을 걸 수 있는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작 나 자신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 누구도 스스로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용기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관심이 없을 뿐.

기자들이 자기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헌데 영화가 그렇게 흘러가면 싱겁다.

양념을 쳐야 한다.

신문 기사 하나 나가는 것이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민중의 적 : EMBARGO>의 클라이맥스는 스릴러영화처럼 제법 쫄깃하게 진행된다.

정체불명의 독자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게 됨으로써 경찰에서 붙여 준 보호자를 따돌리기 위해 수를 쓰기도 하고, 기사의 신빙성을 담보해 줄 결정적인 근거도 확보해야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를 소녀도 구출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신문사 내부에서 사회부장부터 편집국장까지 설득해야 한다.

만날 출입처 접대만 받던 찌들대로 찌든 사회부 일진 기자가.


[아이를 내 줄게.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넘겨.]


김현수로부터 최종 협상안을 제시받기도 한다.

Life-Plus 백신연구소 잠입과 소녀 구출 작전은 제법 쫄깃하다.

‘폐기‘ 될 뻔한 소녀를 구출하는 시퀀스는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내용이다.

연출, 음악, 편집 템포가 잘 어울려서 나름 손에 땀을 쥐게 할 시퀀스가 만들어졌다.

백신 부작용으로 사경을 헤매는 소녀를 간신히 구출해 Life-Plus 패거리를 따돌리고 병원으로 보낸 후, 정의를 실현할 일만 남았다.

기자는 기사로 조진다는 말처럼 강철중은 연루된 이들이 법 혹은 사회적 상도에 걸맞은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백신임상 실험을 파헤쳤던(?) 강철중이 당당하게 마감시간에 맞춰 신문사로 돌아온다.

그는 신들린 듯 근사한 단독보도 기사를 쓴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글이 탄생한다.

이제 특종만 남았다.

이 특종으로 작은 정의가 실현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는데....


[회사 상대로 Life-Plus가 거액의 손해 배상을 걸겠다고 통보해 왔어. 야, 강철중이! 너 인마 명예훼손 네 건이나 들어왔어.]

[그럴수록 더 치고 나가야죠!]

[맞습니다. 우리가 안 쓰면 다른 데서 쓰고 나올 건데....]

[이 새끼들이! 부장 국장은 기자도 아니냐? Life-Plus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 대표 아버지의 거성이 편집국 쳐들어와서 난리치고 사주 쫓아가서 비벼대면 어떻게 할래? 한두 놈 옷 벗는 걸로 끝날 줄 알아? 광고 빼겠다면 회사 난리 나는 거야!]

[그만! 강철중이... 정정기사 써.]

[내가 뭘 잘못했는데! 국장 예? 내가 왜 정정기사를 써요! 왜!]

[까라면 까. 명예훼손 걸린 소송 그거 비용... 회사가 부담 안 해주면 어쩔 건데? 감당할 수 있어?]


영화는 강철중이 기사를 놓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한국의 신문이 일반적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국 관객들은 지금까지 알 수 없었고 알지 못했던 신문사의 편집회의 모습, 기사배열 의사결정 과정, 편집국의 기사 논지 등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 솔직히 별 것 없다.

한편으로 허무하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겨우 몇몇 사람들의 뜻에 따라 선택되고 재단되고 결정되어서 신문에 배열된다는 것이.

심지어 일부분 가공까지 되어서 만들어지기 까지 한다.

어이가 없다.

편집국 회의의 이슈들은 외환위기 직후 실제 일어났던 것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2005년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위주로 언급되거나 슬쩍 스쳐지나간다.

대한일보의 사주는 정관재계에 두루두루 인맥이 있다.

부친이 신문사를 쥐고 흔들 때는 정권까지 쥐락펴락했었다.

현실의 모 보수신문사를 떠올리게 한다.

김현수의 부친을 봐서 Life-Plus 단독보도를 컷 시킬 것임을 강철중은 잘 알고 있다.

단독을 포기하기로 한다.

영화 내내 라이벌처럼 옥신각신 하던 경쟁사(진보적 언론사) 동료에게 기사를 ‘토스‘ 한다.

실제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취재에 도움을 주었던 현직 기자들이 모두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던 부분이다.

비현실적이기에 류지호는 더욱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실제와 반대로 하는 것이 정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한 번 더 이야기를 꼬았다.

대한일보 편집국장은 그것까지 내다본다.

따라서 경쟁 신문이 단독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대한일보 사회면 구석에 단신으로 강철중의 기사를 조그맣게 넣어버린다.

경쟁 신문사가 하게 되는 특종의 김을 빼고, 사주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나름 타협점이다.

그래서 강철중이 절반의 승리를 거둔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기자라면 그 같은 편집국장의 횡포에 화가 나야 정상이다.

특종을 잡아왔더니 눈에 잘 띠지도 않는 사회면 구석에 기사를 넣어놨으니까.

그럼에도 강철중은 여전히 시니컬하다.

영화 중반까지 고아 소녀는 백신실험 부작용으로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걸 시원하게 강철중이 까발리는 것으로 통쾌함을 맛보게 하는 한편 씁쓸한 여운이 남을 영화가 성급한 관객이 예상한 <민중의 적 : EMBARGO>의 결말이다.

헌데 뭐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것 없이 영화가 끝날 것 같다.

소녀가 살았다는 속보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살아줘서 고맙다, 새끼야....]


강철중은 특종을 놓쳤다.

그런데 소녀는 마침내 살아났다.

강철중과 사회1팀원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의사, 응원을 보낸 관객이 함께 만들어낸 기적이다.

소녀가 살아났다는 것은 분명 해피엔딩이다.

어떤 면에서는 배드엔딩이기도 하다.

한국의 언론이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현실을 암시하기에.

영화는 정의를 선택하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찾는 언론인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한다.

다소 직설적이고 정직한 상업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형식미와 미장센에서 류지호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 했다.

그래서일까.

개막작임에도 무려 10분이 넘게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어린이를 구원하는 영화는 진부하지만, 그것만큼 공감을 얻어내기 쉬운 것도 없다.


짝짝짝.


암튼 영화를 통해 얻은 만족감을 만든 이에게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

바로 기립박수다.

영화제가 감독에게 선사하는 큰 선물 중 하나다.

류지호는 영화 흥행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관객들의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잠시나마 만끽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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