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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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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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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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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軍鶏). (10)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유럽에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류지호가 <군계>에 다시 합류했다.

잠시 휴식과 재정비를 가졌던 촬영이 재개됐다.

굳이 류지호가 <군계> 제작진을 데리고 여주의 WaW종합촬영소에서 촬영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크기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CG 합성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기도 하고.


‘소닉 회장만큼의 부자가 영화감독이 되면 영화에 이렇게 투자를 하는 구나....’


잘 못 알고 있다.

소닉 회장이 사망한 후 그의 장남이 사업 실패로 부친이 남긴 소닉 재산을 거의 날버버렸다.

그 결과 1946년 소닉 창업으로 벌었던 많은 재산은 사라지고 이제는 사업 밑천을 제공하였던 가업(家業)인 양조장 사업만 남게 되었다.

암튼 <군계> 출연 배우들은 WaW종합촬영소에서 작업하는 내내 한국영화가 무척 부러웠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를 경험해 보았던, 마에다 사다호는 그 정도가 심했다.


‘장사꾼만 득실거리는 일본 영화계에도 류지호 감독 같은 영화계의 구세주가 나와 주면 좋으련만.....’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은 극단적인 효율이 특징이다.

그것을 배워왔다는 WaW의 영화제작 시스템에는 인간미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스타배우와 스태프가 허물없이 어울린다는 점이다.


‘일본 영화계와 다르게 에너지가 느껴져.....’


마에다 사다호는 한국영화인들이 부러웠다.

영화 장사꾼만 득실거리는 일본.

반면에 영화산업 전만을 인큐베이팅하 듯 살뜰하게 보살피는 슈퍼리치가 있는 한국.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교체할 정도의 뚝심과 야심을 갖춘 부자가 이끌고 그를 믿고 산업에 투자하는 정부와 기업이 있는 나라.

각박한 영화계에서 인간미마저 놓치지 않는 자상함.

그를 통해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 받는 스태프들.


후우.


일본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영화예술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류지호 같은 인물이 없다.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는 영화계 권력과 시장 장악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에만 급급해 구태의연한 시스템에 순종한다.

재능 넘치는 일본의 젊은 감독들은 프랑스 자본의 도움이 없으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

배우들은 대형기획사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 저 드라마 또 예능에 무분별하게 출연하며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


‘머지않아 아시아에서 한국영화가 넘버원이 되겠구나.’


마에다 사다호는 얼마 전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던 일화를 떠올렸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는 한류에 대한 강한 경계심으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우익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는 영화인까지 있었다.

그 중에는 베니스영화제에 깜짝 초청된 다케시도 포함된다.

저 도전적이기고 이단아 같은 씨네-콰논의 이봉호 사장이 가온그룹의 밑으로 들어갔을 때 업계에서는 조선인끼리 뭉쳐서 일본에서 뭘 할 수 있겠냐며 무시했다.

곳간에 쌓인 재물만 하염없이 쳐다보며 배 두드리는 꼴이었다.

최첨단 인프라,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다수 배출한 긍정적인 분위기, 다양한 투자루트, 국가의 지원, 열정적으로 일하는 영화인들까지.

한국영화가 얼마 안가 일본시장을 잠식할 것만 같은 위기의식이 엄습했다.


“슛! 스탠바이!”


마에다 사다호가 얼른 정신을 수습했다.


“액션!”


[오랜만에 인사치곤 너무 화끈한데 쿠로카와 영감? 종신형 아니었어?]

[늙고 망령 난 정치범을 먹여 살릴 세금이 바닥났나 봐.]

[영감이 총감독?]

[널 진정한 맹수로 만들어주마... 빌어먹을 반류회를 사납게 물어뜯어 줄 수 있게.....!]


마에다 사다호의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

할리우드 메이저 중에서 메이저인 워너-타임이 드디어 일본시장에 안착했다.

특유의 폐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극복한 것이다.

그처럼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에 안착하게 될까봐 일본 메이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쿄다카라는 한국의 WaW 엔터테인먼트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쟁자로 치지 않고 있다.

아래로 보고 있다.

그 같은 사실에 한국 엔터업계는 자존심 상해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방심할 때 치고 들어가면 된다.

제아무리 극우세력이 혐한을 부추기고, 일본 대중문화 업계가 한국 콘텐츠 수입을 안 하려고 해도, 일반 대중은 어떤 식으로든 즐기게 되어 있다.

독재국가가 아닌 한 한국 콘텐츠의 유통을 못 막는다.

게다가 앞으로 문화상품의 수출은 화물운송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인터넷 기술을 통해 전파된다.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이나 속도가 한심한 수준이긴 하지만, 불법복제물 청정국의 이점을 한국 엔터업계도 누릴 수 있다.

류지호에게 StreamFlicks와 NeTube가 있다.

G.O.M Cinemas JPN 영업점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시장에서 큰 힘을 쓰게 되는 MacIntosh, Amazonia.com, 소프트인프라의 주요주주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또 길거리에서 ‘혐한’을 제 아무리 외쳐본들, 대중매체의 소프트파워를 이길 수 있을까.

한국의 콘텐츠에는 일본 대중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소재와 스토리에다 ‘한국인은 좋은 사람’, ‘한국인들의 정의는 옳은 것’ 같은 이미지가 의도치 않게 들어가 있다.

일본인들에게 그런 이미지가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게 되어 있다.

그것도 미래세대라는 십대들에게.

한국영화는 일부러 일본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을 필요가 없다.

독립운동가 영화에 한류스타를 출연시켜 일본인들도 재밌게 볼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교과서에서 배운 잘못된 역사와 실제 역사 사이에서 일본의 젊은 세대가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할리우드의 유대계 자본이 ‘홀로코스트‘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히틀러보다 더 지독한 학살자는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에서 260만~1,000만 명이 죽은 ‘홀로도모르(Holodomor, 우크라이나 대학살)’의 빌미를 제공했고, ‘홀로코스트’에 가려져 있지만 더 참혹한 학살인 ‘대숙청(Great Purge)’과 고려인 강제이주 같은 소수민족 박해를 통해 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스탈린 뿐일까?

20세기 이후 인류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긴 참혹한 학살의 현장 중 하나이자 최악 중의 톱은 중국의 모택동이다.

중국에서는 그를 칭송하겠지만, 1949년~1976년까지 그의 정책과 숙청으로 인해 4,900만에서 7,80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홀로코스트'는 상대가 안 되는 학살의 주범들이다.

일본인 중에도 그 학살자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이가 있다.

바로 히데키 도조다.

그는 무려 500만 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전쟁범죄의 수괴다.

유대인들이 할리우드 산업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 시킨 것처럼 한국인 류지호 역시 똑같이 할 수 있다.

일본의 잔혹한 전쟁범죄와 중화주의의 허구를 할리우드 산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릴 수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도 기록으로 남는다.

왜곡되지 않은 사실을 담아 놓기만 하면 된다.

유대인 중심의 할리우드가 수십 년 간 세계 영화팬들의 무의식에 무언가를 심어 놓은 것처럼.

한국 콘텐츠도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세계인들에게 시나브로 무언가를 심어줄 수 있다.

텍사스대학 광고학과 교수 제프 리차드가 그랬다.


[전략이 없는 창의성은 예술이라 부르고, 전략이 있는 창의력은 홍보라고 부른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는 그 둘을 모두 품었다.

'K'가 붙게 될 다양한 한류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장에서는 예술을 하고, 그걸 활용해서 이익을 도모하는 기업은 전략을 수립할 테니까.

브랜드 혹은 소프트파워의 신장은 국경을 넓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담긴 창작물을 통해 얼마든지 대륙으로 또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다.


✻ ✻ ✻


규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종합촬영소 시스템은 별 것 없다.

다만 WaW종합촬영소는 FX와 VFX 촬영 지원 부문에서 탈아시아급이다

당연한 것이다.

오너가 D-Cinema의 선구자인데다가 관련 기업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촬영장비 전문업체 NSS(Nettmann Shooting Systems)가 개발한 최신 장비를 가장 먼저 가져다 현장에서 적용해 보는 스튜디오가 WaW종합촬영소다.

DALLSA와 JHO Company 계열 소프트웨어 제품의 아시아 테스트베드 역할도 하고 있다.

<군계> 세트가 지어진 1,200평 규모의 스테이지 한편에는 마치 IT분야 연구실처럼 꾸며졌다.

동서양의 다양한 인종의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점검하고 정비했다.

DALLSA D-Cinema 개발팀과 가온디지털연구소 엔지니어들이다.

촬영 틈틈이 김영복 촬영감독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뭔가를 부탁하기도 했다.

주로 프레임 레이트 조정, 모션 블러 문제들이다.

이전 삶에서 로비 잭슨은 <호빗>을 초당 48 프레임에 촬영해 그 프레임 레이트로 상영을 했다.

디지털 장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 필름 룩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영화용 디지털 카메라는 패닝을 할 때 화면에 잔상이 남는 모션 블러가 생기곤 한다.

 사실 그런 문제는 필름에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 쪽이 훨씬 심하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전 삶에서 한국의 촬영감독들은 REED 기종보다 Alexa를 더 선호했는데, 상대적으로 모션 블러도 적고 관용도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DALLSA의 Origin과 Sonic의 CineAlta 모두 4K를 지원한다.

그럼에도 많은 촬영감독들이 Origin 쪽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이미지의 질감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해상도(resolution)와 관용도(latitude)가 있다.

해상도는 해당 이미지의 색감이 얼마나 또렷하고 선명하게 표현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고, 관용도는 암부와 명부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능력의 폭을 의미한다.

촬영감독들은 이미지의 해상도뿐만 아니라 관용도 역시 무척 중시한다.

때문에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관용도에 있어서 더 뛰어나면, 보다 필름에 가까운 영화적인 룩을 만들어내는 데 더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기에 그 기종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현재까지 관용도 면에 있어서는 CineAlta에 비해 Origin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촬영감독들의 주된 평가다.

이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발 초창기부터 캐나다와 할리우드 현역 촬영감독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오고 있기 때문에 필름 룩을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관용도를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있다.

DALLSA D-Cinema는 비록 삼류였지만 미래의 영화 트렌드와 경험을 가진 류지호로 인해 시행착오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고, 영화인들의 로망에 가장 충실한 방향으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있다.

적어도 촬영장비 분야에서 마치 MacIntosh가 언제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을 발표할 것인가에 맞먹는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DALLSA의 Origin이다.

거기에 Abid, Da Binci, Alias-Wavefront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와 연동되어 포스트프로덕션까지 완벽하게 지원되고 있다.

D-Cinema 분야의 리더를 넘어 산업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확실히 <민중의 적> 때보다 색감 표현력이 좋아졌어.”


김영복이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직 멀었지. 완벽한 4K를 위해서는.”

“근데 4K로 찍어봤자 아냐? 어차피 후반을 2K로 하는데.....”

“부익부 빈익빈이 되겠지.”


김영복이 얼굴 가득 의문부호를 띄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4K 영사시설을 갖춘 극장에서 보는 관객은 똑같은 티켓값을 지불하고 선명하면서 좀 더 필름 룩에 가까운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을 테고, 그 외에 절대 다수의 극장에서 관람한 관객들은... 2K로 보겠지. 당분간은.”

“얼마나?”

“최소 5~6년 정도.”


김영복이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지호가 대답 대신 쓰게 웃었다.

카메라 하나 바뀌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산업의 생태계가 함께 받쳐주어야 한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만 수십 억 달러가 소요될 예정이다.

2K에서 4K로 넘어가기 위해도 수 억 달러가 필요하다.

설사 4K 생태계가 가능하다고 해도 경제성이 없으면 바꿀 이유가 없다.


“2K여도 색감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고, 딱히 뭉개지는 느낌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디테일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면 2K에 대해 관객들이 딱히 불만이 없을 거야.”

“일반 관객들이 극장에서 2K와 4K를 드라마틱하게 구분하는 게 쉽진 않긴 해.”


물론 4K로 촬영해서 포스트프로덕션 전 과정에서 무손실로 작업을 하고 그것을 4K 무압축 DCP로 제작해 전문 4K 프로젝터로 일정 규모의 스크린에서 상영한다면 확연히 구별이 된다.

아직은 먼 이야기다.


“렌더링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디지털 프로젝터 램프의 효율과 성능이 더 오르거나 레이저 프로젝터 시스템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이른 시간에 관객들이 극장에서 4K 영화를 만나기 쉽지 않을 거야.”

“언제나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구나....”

“어쩌겠어. 영화가 자본주의 예술인 것을.”


촬영현장에서 감독과 DP가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틈이 있을까 싶지만.

CG가 들어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셋업 시간이 오래 소요되기 때문에 모두가 대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액션 시퀀스라면 대기시간은 더 길다.

WaW종합촬영소 스테이지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촬영이 나루시마 료의 격투기 시합 장면이었다.

도쿄 돔 경기 장면만 일주일 간 촬영했다.

그 기간은 주로 VFX와 스턴트 코디네이터들의 시간이었다.

한가한 틈을 이용해 비서실장이 세트로 찾아왔다.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뭐 때문에요?”

“베니스 영화제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곧바로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서 촬영을 마쳐야 한다고 전해줘요.”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감히 청와대의 초청을 마다하다니.

여기에는 류지호의 잔머리도 한몫했다.

일본에서 모든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 <민중의 적> 후속편이 개봉된다.

한국 언론과 재벌의 유착을 비판하는 영화.

언론개혁을 위해 애쓰고 있는 대통령.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즉 노이즈 마케팅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대통령이 오찬을 한다는 것은 언론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다.

비록 대통령은 언론으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욕받이 되기 싫었으면 선출직으로 나서질 말아야지.’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 덧 10월 중순이다.

한국에서 촬영을 마무리한 <군계> 제작진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보름 동안 츠마부키 료타는 체중감량에 힘을 쏟았다.

류지호는 근육을 없애고 조금 마른 몸매 정도로 만족했다.

헌데 2주 만에 나타난 츠마부키 료타는 8Kg을 감량해서 나타났다.


“붓타. 미치광이 메소드 연기자를 흉내 내기라고 하려고?”


류지호가 드물게 화를 냈다.

츠마부키 료타의 어리석은 체중감량 노력으로 인해 그 동안 유지하고 있던 나루시마 료의 광기 분위기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저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츠마부키 료타의 각오가 남달랐다.

이해 불가능하고, 설명 불가능하며, 광기어린 캐릭터 나루시마 료.

일본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계속하는 한, 아니 <군계> 이후로 다시는 그 같은 경험을 해보지 못할 것 같았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현존 최고의 메소드 연기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영화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배역을 연구하기 위해 실제 체험을 매우 진지하게 해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뇌성마비를 연기를 하기 위해 촬영 내내 휠체어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일화는 평범해서 식상할 정도다.

<아버지의 이름>에서는 무려 13Kg을 감량했다.

오죽하면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한 광기어린 다니엘에게 질려서 상대역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급기야 영화에서 하차하는 배우까지 있었을까.


[숨 막혀. 난 죽고 싶지 않아.]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는 거야.]


교도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루시마 료가 중얼거리는 말이다.

류지호는 마른 몸으로 나타난 츠마부키 료타를 사납게 몰아붙였다.


“힘든 척 하고 있잖아! 진짜 힘들어 보여야 해!”


가라데 수련 장면을 촬영할 때는 진짜 수련을 시켰다.

진짜 죽을 정도로 몰아붙였다.


“더. 더. 더!”


류지호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어차피 츠마부키 료타는 순식간에 몸무게가 줄게 되어 있었다.

류지호가 그를 학대에 가깝게 굴렸을 테니까.

배우로써 8Kg을 감량해 온 것은 철저한 준비성으로 박수를 받을 만 했다.

하지만 류지호와 상의를 했다면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류지호는 프로덕션 끝이 다가올수록 츠마부키 료타를 몰아붙였다.

그럴수록 더욱 처절한 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영화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고문기술자가 될 수도 있다.

류지호는 그런 독함과 함께 치밀한 안배도 함께 준비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촬영장에서 도망가고 싶어 할 정도로 심하게 몰아붙이고는 이내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에서 츠마부키 료타가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도록 조치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어느 날, 김영복이 류지호의 귀에 속삭인 물음이었다.

노조와 민사소송이 극성스러운 곳에서 일하면 저절로 그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류지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저 그런 감독이었다면, 붓타가 저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을까....?’


츠마부키 료타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그 기간들은.

<군계>의 나루시마 료가 현실에 강림한 시간이었고, 화면에 그 광기가 고스란히 담긴 유익한 시간이었다.

너무 처절하게 보여서 자칫 남은 러닝타임이 시시하진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그럴 리 없지.'


나루시마 료는 영화 내내 파멸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광기에 젖어 폭주할 테니까.


❉ ❉ ❉


<군계> 프로덕션의 대장정도 마침표를 찍을 날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촬영은 부담 없는 장면을 찍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류지호 역시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군계>에서는 전혀 달랐다.

마지막까지 류지호는 츠마부키 료타를 쥐어짰다.


“누구도 붓타 주변으로 가지 못하도록 해줘.”

“매니저도 말입니까?”

“응. 촬영 끝날 때까지....”


나루시마 료라는 괴물이 탄생한 날.

그 날을 묘사하는 촬영을 크랭크업 스케줄로 잡았다.

딴에는 츠마부키 료타가 심각한 배역투사 후유증을 겪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군계>를 스토리 순서대로 촬영했다면, 츠마부키 료타가 꽤 오랜 시간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루시마 료란 캐릭터는 매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인물이다.

류지호는 크랭크업 전에 츠마부키 료타가 광기 연기를 모두 발산해버리길 바랐다.

부모살해라는 패륜적 범죄행위 역시 배우에게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하겠지만.

영화에서는 나루시마 료타가 부모를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한여름의 더위가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오후.

일본의 중산층이 살 법한 마당 딸린 주택.

가정부가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집을 나서고 있다.

카메라는 천천히 2층의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 너머 방에 16살 나루시마 료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거실에서 중년 남자는 신문(산케이)을 읽고 있고, 한편에서 중년 부인이 과일을 깎고 있다.

중학생인 여동생은 밝고 명랑하다.

안락한 가정,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풍경은 평온하고 행복해 보인다.


드르륵!


나루시마 료가 서랍에서 잭나이프를 꺼낸다.

우당탕탕!


별안간 나루시마 료가 자신의 방을 뛰쳐나간다.

사납게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카메라는 나루시마 료보다 한참을 늦게 1층 거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끔찍한 광경.


아아아악!


여동생이 혼이 날아가 버린 듯 비명을 지르고.

존속살인이라는 끔찍한 짓을 벌인 나루시마 료는 겁에 질러 벌벌 떤다.

뭔가 큰 사고가 벌어졌는데, 금방 끝나버린 느낌.

이 장면은 현실과 망상이 교차하듯 묘사될 예정이다.


“커엇!”


모두의 시선이 주택 마당에 마련해 놓은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모아졌다.

류지호는 성급하게 ‘오케이’를 입에 담지 않았다.


털썩.


자신이 연기를 한 것도 아닌데, 류지호 본인이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한 번 더!”

스태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멀뚱히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매번 찍을 때마다 첫 3분과 마지막 5분이 어려운 것은 어떻게 안 되네.....”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어려운 것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영화라는 대중예술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들어있는 단 하나의 씬 혹은 쇼트만 명확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 것을 설명하거나 떠받쳐주거나 포장지일 뿐.

가령 <The Killing Road>는 티아라가 유산의 트라우마인 곰인형을 품고 있는 소녀(망상)와 이별하는 것을 위해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해서 그 난리를 쳤던 것이고, <민중의 적 : EMBARGO>의 엔딩의 강철중이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중얼거리는 그 장면을 위해 앞의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이며, <REMO> 시리즈는 온갖 화려한 장면들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또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레모의 성장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군계>는 나루시마 료가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위해 모든 씬들과 쇼트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파괴 행위들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3분이 흐르는 동안,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거의 예외가 없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에서 3분, 10분의 법칙을 역설한다.

또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엔딩을 정해두라고 충고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Big7에서 시나리오만 검토하는 직원들은 보통 첫 다섯 페이지와 마지막 다섯 페이지를 읽는다.

남은 내용은 궁금증이 생겨야 읽는다.

물론 최소 10명의 팀으로 구성된 이들이 더 세분화해서 시나리오를 검토하긴 하지만 시나리오 접수단계에서 보통 10페이지 이상 읽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 상황이니 할리우드 작가들은 첫 5페이지에 심혈을 기울인다.

막상 영화화가 되었을 때는 더 노골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를 알고 싶으면 영화 시작하고 3분만 보면 된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에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있다.

예를 들어 류지호의 <REMO> 시리즈의 타이틀 시퀀스는 발칸반도 내전과 중동 전쟁을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편집해서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본편의 첫 롱테이크 도입부에 성조기가 화면 어딘가에 걸려 있다.

정치적 메시지를 암시한다.

세계 경찰이라고 자랑하는 미국의 선택적 정의를 꼬집는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 배경과 기초 설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동시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암시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아니지만, <군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이틀 시퀀스만 보면 류지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 들어가 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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