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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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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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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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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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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군계(軍鶏).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힘들지 않아?”


츠마부키 료타가 짐짓 앓는 소리를 했다.


“운동은 힘들지 않은데 식이요법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싱크로나이즈 스위밍과 비교하면 어때?”

“지금처럼 체중관리까지는 안 했습니다.”

“체중을 늘리고 빼는 걸 만만하게 여기면 안 돼. 특히 배우라면.”

“알고 있습니다.”

“평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배역을 위해 살을 빼거나 찌울 때도 유리해. 그래야 몸이 상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비록 힘들겠지만,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넵!”


최영웅이 츠마부키 료타를 만나고 처음 한 것이 몸을 주물러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뱉은 첫 마디가 ‘일반인치고는 나쁘지 않네’ 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츠마부키 료타는 매일 비명을 삼키며 운동을 해야만 했다.

스트레칭 한 시간, 유산소 운동 한 시간, 기구 운동 한 시간.

언제 가라데를 수련하느냐고 물어도, 최영웅은 우직하게 기본만 훈련시켰다.

뭐든지 체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최영웅과 트레이너는 쉴 틈 없이 츠마부키 료타를 몰아붙였다.

그나마 성격이 고분고분하고 착해서 망정이지, 다른 배우 같았으면 진작 계약을 파기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크랭크인을 앞두고는 그 강도가 더 세졌다.

매일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운동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식이요법이었다.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간별 식단을 전달 받았는데,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식단은 정확한 칼로리와 양까지 적혀있다.

최영웅이 이틀의 한 번씩 꼼꼼하게 확인했다.


“같이 스트레칭이 합시다.”


류지호가 배우들 사이에 끼어 스트레칭을 했다,

배우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극진회관을 방문할 때면, 사범들이 류지호에게 태권도 시범을 부탁하곤 했다.

단칼에 거절했다.

추후 극진회관 총재와 인맥을 쌓을 일이 있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몰라도.

마에다 사다호가 함께 스트레칭을 하며 물었다.


“감독님도 어지간히 운동을 좋아 하는가 봅니다. 예사 폼이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다 보니 몸에 붙었네요.”

“진부한 말이지만,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는 법이지요.”


마에다 사다호가 두 후배들을 향해 충고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구하고, 단련하고, 경험해야 한다. 배우는 자신과의 싸움이야. 배우는 하루를 노력하면 일보 전진하고. 하루를 쉬면 이보 퇴보한다.”


두 후배는 가슴 깊이 충고를 받아들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일본 연예계도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분야 불문하고 선생이니 선배니 철저하게 따지지는 않는다.

듣기로는 아이돌 사이에서 데뷔 순서를 약간 따진다던가, 연차에 따라 배우끼리 약간의 대접을 해주는 정도라나.

보통 조니&어소시에이츠 같은 대형 기획사 소속끼리는 선후배 질서가 있다.

사실 류지호가 일본 연예계를 깊숙이 알지 못해서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일본 가요계는 생각보다 위계질서나 서열의식이 매우 강하다.

경력이든 인기로든.

엄청 따진다.


‘영화나 드라마를 위해 사전 준비를 잘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주조연들의 배역에 대한 집착은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츠마부키 료타는 청소년부터 성인 연기까지 뒤죽박죽인 촬영에 맞춰 연기를 전개해야 하는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근육질 몸매에서 체중을 7Kg 감량해 깡마른 모습도 보여야 하는 미션도 있다.

몹시 힘든 여정이 될 터.


❉ ❉ ❉


운동을 마치고, 근처 조용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며 <군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통역이 필요한 대화는 조감독 윤박지를 통해서, 간단한 대화는 직접 짧은 답변을 내놓았다.


“감독님도 혹시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류지호가 아베 히카루에게 되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요?”

“예. 영어 제목은 길어서 외우진 못했습니다만.”

“읽어 봤습니다.”


원래 제목은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이다.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1946년 출판한 책이다.

저자인 베네딕트 여사는 일본 민족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두 성질을 ‘국화와 칼’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설명했다.

예의바르고 온순하고 겸허하지만, 거칠고 야만스러운 일본인.

국화를 재배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무사도의 칼을 영예스럽게 생각하는 일본 민족의 그 이중성을 분석했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에서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아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계획을 수립할 때, 미국방성이 이 책을 참조했다는 비사가 있다.


“일본에서는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지인이 읽어보라고 추천을 해주더군요.”

“굳이 읽을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때의 일본인과 현대 일본인이 같을 수가 없고. 지나치게 일본인을 뭉뚱그려서 일반화 시켜놓은 것이라.”


류지호는 배우들에게 만화 원작도 읽지 말라고 주문했다.

<올드보이>처럼 원작의 단점은 과감하게 버리고 필요한 것만 가져왔기에.

서구인이 바라보는 일본인에 대해서도 딱히 고민해 보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의 우경화 조짐에 대한 경계심을 담고 있으니까.


“솔직히 우리끼리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일본인 자신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는 특성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놓고 토론을 하다보면, 대체로 일본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은 공격적이면서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며, 무례하면서도 공손하고, 충성스러움과 동시에 간악함을 지녔으며, 용감하면서도 비겁한 모습을 가졌다.

베네딕트의 정의다.

그녀는 봉건사회의 위계체계와 메이지 유신의 과정, 가족제도와 조상숭배, 육아방식 및 사회화 과정, 종교 등을 짚어 가면서 일본인 특유의 모순적 성격을 밝히려 노력했다.

언뜻 보기에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양상이 공존하게 된 그들의 민족성을 위계서열의식, 은혜와 보은,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체계, 죄와 악에 대한 의식 대신 수치심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문화체계로 설명했다.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동시에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


베네딕트의 결론이다.

일본은 미국의 원폭을 맞고 전쟁에서 패했다.

수백만 명의  자국민이 죽었다.

미국에게는 함부로 따지지 못하고, 자국민의 희생에 대해 어떤 반성도 과거청산도 없이 수십 년이 흘렀다.

미국의 지배하(?)에서 경제적 번영이 찾아왔고, 평화가 정착된 듯 보였다.

 야만의 시대가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전쟁 시기에는 ‘미국’이 적이었다.

무지막지한 전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악마가 필요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지배계층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나 저항은 없었을까?

일본제국은 국민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었을까?

세뇌다. 국가와 민족의 적을 만들어내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사회 분위기를 전시체제로 유지하기 위해, 일제는 적대적인 인종을 만들어냈다.

미국인을 귀축이나 야수로 묘사하고 악마화시켰다.

 미국에 대한 공포, 적대감, 증오의 감정을 북돋아 대중을 선동했다.


[그들이 우리의 적이다. 미국인을 죽여라!]


이 구호가 당시 온 일본사회를 지배했다.

1970년대 초까지 과격 반미단체가 꽤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이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은 공포와 숭배로 바뀌었다.

일본인에게 미국은 더 이상 적도 아니고 귀축도 아니다.

동경의 대상이다.

섬겨야 할 큰집이다.

그래서 다른 외부의 적이 필요했다.

애국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내부 정치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적에 대한 적대감, 반감, 증오를 불러일으킬 대상.

가까이에 있다.

한국이다.

 ‘미국인을 죽여라’라는 과거 구호가 ‘한국인을 죽여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미국인을 악마화 시켰듯이  한국인을 악마화 시키고 있다.

 한국에 대한 적대감, 증오, 혐오의 감정을 북돋아  대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방법이 되었다.

일반 대중의 기득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화살을 적에게 돌리는 수법.

반한, 혐한 전략은 생각 외로 잘 먹혔다.


[일본인은 악의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악의 문제를 인생관으로 승인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에게서도 관찰되지 않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일본인은 아주 독특하다.]


‘국화와 칼’에서 베네딕트가 묘사한 문장이다.

국가가 돌아가기 위해서 일본은 적이 꼭 필요한 사회일까? 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적개심과 증오심을 불태우며 미쳐 날뛴다.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혐한에만 집요하게 매달려 날뛴다.

 어디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도 이웃나라에 대해  이토록 줄기차게  인신공격을 퍼붓는 나라는 없다.

그것도 가해자가.

류지호는 할 말이 많았지만, 참기로 했다.

그 같은 이야기들이 배우들에게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영화에 묻히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고.


“주인공들에게 별로 도움이 될 책은 아닙니다. 스기와라 캐릭터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만큼 가라데를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며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사람.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며 평범한 인성을 가진 사내입니다.”

“나루시마 료란 인물의 밝은 면이면서 욕망의 화신 같은 것일까요? 마치 <파이트 클럽>의 망상처럼?”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스기와라가 선, 밝음의 영역으로 상징되길 바랍니다. 아슬아슬한 선, 더럽혀지거나 오염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병적인 면도 있죠.”

“그런 모습을 연기로 풀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출이 아베를 도울 겁니다. 혼자서 다 해내려고 하지 마세요. 나와 촬영감독을 믿으세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츠마부키 료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루시마 료라는 인물을 사이코패스 극우주의자로 접근하는 것이 맞을까요?”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울 걸? 그 스스로는 그런 걸 인식하지 못할 테지만. 얼핏 분노조절장애 같아 보이지만,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어. 왜 그런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지?”


츠마부키 료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 차례 캐릭터에 대한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타인의 권리 또는 도덕을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일삼는 병적인 행동.

정신병질자(psychopathy), 사회병질자(sociopahy)라고 지칭하는 바로 그 병증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범법행위, 충동성, 공격성 등이 있다.

나루시마 료는 정신질환이나 심리학적으로 다양한 인격장애를 보인다.

복잡하게 따지고 들면 조현성, 경계성, 강박성, 연극성, 반사회적... 같은 장애들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미친놈’이다.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 범죄자들의 성향이면서, Timely 세계관 속 빌런들의 특징이다.

류지호의 할리우드 데뷔작 <The Killing Road>의 밴 사이퍼가 그랬고, <민중의 적>의 조규환이 그런 성향이다.

<군계>는 <파이트 클럽>처럼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엄청난 반전이 있다거나, 스태프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오시마 나기사처럼 누벨바그적이지도 않다.

다시 한 번 류지호 영화에 복귀한 김영복 촬영감독이 고통을 받을 예정이지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영화는 아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그렇다.

마에다 사다호가 말했다.


“명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정한 후 반성할 것은 반성한 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인간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만 국가 혹은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츠마부키 료타와 아베 히루카가 차례로 말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사회현상이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해야할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도전적인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영화제에서 통할만한 영화가 과거처럼 많이 제작되어야 할 텐데...쯧.”


마에다 사다호가 혀끝을 차고는 사케를 한 모금 마셨다.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난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 다만 함께 할 뿐.”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류지호와 눈이 마주친 아베 히카루가 활짝 웃었다.


“......!”


아베 히카루는 수차례 혼혈이 아님을 밝혔다.

당당하게 아이누임을 밝히고 일본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다.

데뷔 초기 모델 활동에서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연극무대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TV드라마로 넘어왔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본에서 조선인만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다.

아이누 같은 소수민족 역시 암암리에 때론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다문화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일본의 우익을 욕하고, 미국의 부도덕한 부자를 비판하고,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어쩌면 다 부질 없을지도 모른다.

위선인 것도 같고.

세계 어떤 국가나 사회나.

차별은 존재한다.

민족으로든, 경제력이로든, 사회적 지위로든, 학력으로든, 피부색이 되었든.

연예계는 그런 차별이 극단적으로 자행되는 세계다.

잘 나가면 뭐든 것이 허용된다.

그 반대는 어떤 수모도 감당해야 하고.

인류 모두가 차별이 나쁜 걸 안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의 위치에서 떨어지기 싫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바라보고 사니까.

기득권에 속해 있지 않은 이들조차 불평등·불공정에 동참한다.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이 그런 구조 속에서 많은 혜택을 받는 대상 가운데 하나가 류지호 본인이란 사실이다.

부와 사회적 지위는 불평등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 ❉


이 시기를 한 번 살아봤던 류지호가 보기에도 D-Cinema 기술발전이 정말 눈부셨다.

류지호로 인해 촉발된 가속인지, 원래가 그랬던 것인지.

정확히 알 순 없다.

다만 DALLSA D-Cinemas INC를 필두로 일본 업체들이 2K를 건너뛰고 4K로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휴대폰 제조사들의 신제품들에는 저마다 앞선 기술력을 과시하는 이미지센서를 탑재했다.

하드디스크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HDD 시장의 메이저 제조사 가운데 일본의 히타GST가 기존 500GB를 훌쩍 뛰어넘는 1TB HDD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General Digital과 Shuggart Technology도 올해 안에 1TB HDD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르면 연내 테라바이트 시대가 열리게 된다.

내장형이든 외장형이든 디지털 카메라의 저장용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카메라 바디의 경량화에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GARAM Invest와 JHO Venture Capital은 미국의 하드디스크 제조사 지분도 꽤 보유하고 있다.

최근 General Digital이 중견 업체 맥스터 인수를 타진하고 있었다.

뉴욕 증권가에서는 일본의 푸지츠가 HDD 사업부문을 General Digital에 매각한다는 루머가 심심하면 돌고 있다.

그에 질세라 Shuggart Technology도 맥스터 인수전에 뛰어들며 세계 1위의 HDD 제조업체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오성전자는 SSD 시장에 진출하면서, 3년 내 512GB의 고성능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고 밝혔다.

HDD, SSD, USB의 기술발전은 디지털 카메라 발전에 시금석이다.

물론 속도, 발열, 케이블 등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최근 전 세계 촬영감독의 화두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필름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로 모아지고 있다.

류지호의 단짝 촬영감독 김영복은 조금 달랐다.

디지털 카메라가 발전할수록 더욱 ‘빛‘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에 집착했다.

예산, 촬영 여건, 시스템 문제 등으로 한국에서는 DP(Director of photography)들이 완벽하게 빛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류지호와 작업할 때는 예외였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재밌는 이야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은 TV드라마에도 많아. 왜 관객들이 시간을 내 돈을 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는 걸까? 또 기대하는 것이 뭘까?”


정답은 없다.

관객 개개인마다 기대하고 원하는 바가 다 다르니까.

김영복은 류지호와 작업을 할 때마다 촬영의 본질적인 요소를 더 고민하게 된다.

류지호가 매우 꼼꼼하고 섬세하게 영화에 접근해서 그런 탓이다.

인물의 클로즈업에만 감정이 있는 게 아니다.

인물의 뒷모습에서도 감정이 있을 수 있다.

 공간에도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어떨 때는 보이지 않는 깜깜한 블랙에도 감정이 있을 수 있다.

빛과 색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심리적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이 인물을 창조한다면, 배우는 생명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촬영은?

성격을 부여한다.

필름 작업에서 텅스텐 조명 아래서는 텅스텐 필름을 써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텅스텐 라이트에 데이라이트 필름이라는 방식으로 상식을 깨고 독창적인 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현상과정에서 실수가 우연히 독특한 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름 영화는 우연의 산물이라고 할 정도로 의도치 않은 창조행위가 일어나곤 했다.

김영복이 볼 때 디지털 영화 시대에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할 것 같았다.

보이는 대로 찍히는, 그런 시대가 아니게 될 것 같았다.

후반작업에서 많은 것을 손볼 수가 있게 될 테니까.

따라서 새로운 시도 혹은 상식을 깨거나 거꾸로 접근하는 시도를 잘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어차피 후반작업에서 컴퓨터로 다 만질 테니까.

그래서 점점 노멀해 질 것 같았다.

필름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를 감수하고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다.

필름 종류도 선택해야 하고, 게이트를 통한 화면비도 선택해야 하고, 필름 한 롤이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안에 뭔가를 담아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필름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다 돈이다.

 최선을 다해서 찍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이미지라던가 미학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어떻게 보면 그 한계를 깨는 것이 바로 창의력이 되었던 것 같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온갖 궁리를 해야만 했고, 그렇게 한계를 깨다보니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또 응용되고, 체계가 잡히고 하는 과정들.

디지털 시대에도 그런 과정은 여전하겠지만, 새로운 것보다는 과거의(필름시대의 룩) 미학을 재현하는 것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 같았다.


“형....?”


류지호의 부름에 김영복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나 불렀냐?”

“내가 생각 방해한 거야?”

“아니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그냥 잡생각. 뭐라고 그랬는데?”

“원색이 필름에 비해 약하다고.”

“디지털이 좋게 얘기하면 퓨어(pure)한데, 나쁘게 말하면 또 밍밍하지.”

“필름 맛을 재현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어.”


현재 두 사람은 도쿄 세타가야구 세이조에 위치한 도쿄다카라 스튜디오 시사실에 와 있다.

일본에서 테스트 촬영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영복은 Kojak과 푸지의 감도별 35mm 필름을 주문했다.

똑같은 촬영장소에서 DALLSA OriginⅡ 카메라로 함께 촬영했다.

그렇게 촬영한 필름을 도쿄다카라 현상소에서 현상하고, 디지털로 촬영한 것과 비교했다.


“확실히 필름으로 촬영해서 프로젝터로 쏘면 그레인이 지글지글하고 샤프니스가 뭉툭하게 느껴지네.”

“대신에 컬러가 진하게 묻어나는 느낌이 있지.”


반면에 디지털로 촬영해 영사한 화면은 필름처럼 들러붙어있는 컬러라기보다 뭔가 떠있는 느낌이랄까, 스킨 톤도 너무 매끈한 느낌이라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디지털로는 평이한 블랙으로 찍어도 눅눅하고 진득한 느낌이 나오도록 찍을 수 없겠지? 형은 어떻게 생각해?”

“그레인 안에 이상한 색깔들이 들어가는 거?”

“뭐 나쁘게 표현하면 잡색이고, 좋게 표현하면 풍부함이랄까?”

“Da Vinci 룩 업 테이블을 쓰면서 컬러를 어두운 곳부터 밝은 데까지 다 확인해 봐야지. 이번 영화에서는 블랙이냐?”

“아무래도 어떤 눅눅한 무게감이랄까. 약간 진득한 느낌이 나면 좋겠어.”

“<The Killing Road> 같은 느낌은 못 내지 싶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걱정 마, 자샤. 형이 최선을 찾아봐 줄게.”

"왜 이 생각을 못 해봤지?“


작정하고 시사실에서 두 개의 방식을 동시에 비교해 볼 생각을 못해봤다.


“디지털이지만 디지털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고 영화에 빨려 들어가게 찍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몰입감 있게 쭈욱 볼 수 있는 뭐 그런....”

“찍기 전에 많이 준비하고, 찍을 때 최대한 많이 맞추는 게 창작의 올바른 자세, 또 방법인 것 같아. 한국에서 그런 게 자꾸 무시되는 것 같아 좀 그래 나는.”

“예전 같지 않아. 요즘 기사들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고 영화 들어가는데.”

“촬영 오래오래 하고 싶지?”

“당연하지!”

“10년 만 지나면 대한민국 국민 거의 대다수가 촬영을 할 줄 알게 될 거야.”


말도 안 된다.

촬영은 셔터만 누른다고 찍히는 게 아니니까.


“휴대폰이든 DSLR이든. 직관적인 기기가 보편화될 거야. 그때가 되면 중요한 것이 누가 찍느냐가 될 거야. 카메라 같은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찍었느냐... 그 사람의 태도와 생각 또 가치관 그런 것들. 결국 그게 영상에서 묻어나는 거지.”

“프로가 괜히 프로겠냐?”

“형이 유성길 기사님 나이가 되면 카메라맨으로 사는 거 쉽지 않을 걸.”


새로운 트렌드를 공부하지 않고 자기 것이 없는 촬영감독은 도태된다.


“요새도 젊은 애들 치고 올라와서.... 어영부영 하면 곧바로 일 끊긴다. 아주 죽갔어...”

“형이 젊은 애들이라고 칭할 정도로 노땅이야?”

“어떤 현장 가면 내가 나이가 제일 많더라.”

“40대 중반이면 한창이지.”

“이제 물이 막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러다 꼰대 소리 듣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러니까 쓸데없이 스태프 갈구지 말라니까.”

“일머리 없는 놈들 오냐오냐 해주면 잘못 된 버릇 들어. 다들 싫은 소리 안하고 좋은 놈인 척 하면 현장이 돌아 가냐? 욕먹더라도 혼낼 건 내야지.”

“요즘 애들이 그런 걸 알까 싶네.”

 “너도 요즘 애들이거든!”


DALLSA D-Cinema의 개발 목표는 Kojak 35mm 필름을 스캔한 것에 맞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Eye-MAX 디지털 카메라는 70mm 필름을 스캔한 것을 따라잡는 것이 목표고.

디지털 영화라는 것이 없던 것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100년 가까이 필름이 쌓아 온 데이터가 있다.

그것을 참조하기에 발전이 빠른 것이고.

영화산업과 예술적 성취는 일본이 훨씬 앞 서 있다.

부정할 수 없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며 한국과 뒤집혔다.

물론 하드웨어 부분에서는 상대가 안 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촬영과 후반작업 모두에서 아시아에서 한국영화가 가장 앞 서 있다.

일찍이 WaW종합촬영소에서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홍콩에서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7편의 아시아 영화의 포스트프로덕션을 작업했다.

중국영화가 가장 많았다.

중국은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디지털 전환속도가 빨랐다.

아날로그 인프라가 워낙 허술했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디지털 체제로 시작하도록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은 정부의 지원도 있지만, 가온그룹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튼!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뭐가 중요해. 디지털이니까 많이 돌리고 빨리빨리 찍자는 게 아니라, 사전 준비 철저히 해놓고 상황에 맞춰 놓은 다음에 찍는 게 중요하지.”


김영복의 말이 맞다.

 디지털이다 필름이다 하등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할 뿐.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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