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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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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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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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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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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군계(軍鶏).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한동안 표류했다.

류지호가 개입했음에도 이전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번외편‘ 제작으로 가닥이 잡혔다.

<분노의 질주> 후속편을 진행하는데, 애로사항이 상당했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편 제작비를 전작의 두 배나 투입해 규모는 더 거대해졌지만, 영화의 가장 큰 축인 주연 빈스 싱클레어와 감독 코헨이 참여를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소닉-컬럼비아스와 <트리플 X>를 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출연이 가능한 윌리 워커 단독영화로 방향은 선회했다.

높아진 윌리 워커의 인지도를 통해 흥행 수입이 증가하긴 했다.

전작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긴 했는데, 투입한 제작비가 두 배가 된 것에 비해 늘어난 박스오피스 수입은 고작 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기대에 비하면 중박 정도라고 해야 할까.

프로듀서 노엘 모리츠는 이 시리즈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류지호 역시 마찬가지였고.

3편 기획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일단 윌리 워커의 몸값이 껑충 뛰었다.

에이전트가 무리한 개런티를 요구했다.

그의 짝인 빈 싱클레어는 온통 <리딕>에만 꽂혀있었다.

두 사람을 3편에 합류시키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한편 빈 싱클레어가 류지호에게 엉뚱한 요구를 했다.


“유니벌스 스튜디오에서 <리딕> 판권을 가져다 줘.”


본인이 유니벌스와 협상력이 떨어지니 류지호가 대신 나서달라는 요구였다.


“Jay. 2007년 이후에 촬영할 순 없을까?”


물들어 올 대 노 젓는 것인지.

윌리 워커는 2년 간 모두 4편의 영화와 계약했다.


‘....또?’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혹은 신의 시험이던가.


‘망한 프로젝트를 살려보라는 계시라도 되나....?’


이전 삶에서 <분노의 질주> 팬들은 3편을 시리즈로 인정하지 않았다.

영화 완성도를 떠나서 전혀 시리즈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제이 스테이섬을 출연시키며 연결성을 억지로 만들기는 했다.

류지호는 일단 영화 타이틀부터 손을 보았다.

<The Fast & The Furious : Drift>.

됴쿄를 빼버렸다.

주인공도 이전 삶과 다르게 캐스팅했다.

의동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런 렌프로를 꽂았다.

그는 <스컬스>, <터미네이터Ⅲ>, <아이언 피스트> 등 문제적 영화와 상업영화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스타성과 연기력을 모두 인정받는 청춘스타가 되어 있었다.

배런 렌프로의 출연만으로 단숨에 화제작이 되어버렸다.

할리우드 호사가들 사이에서 프리퀄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또한 WaW와 도쿄다카라의 합작영화 <이니셜D>에 참여했던 일본의 드리프트 전문가를 기획단계부터 참여시켰다.

연출은 류지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미 노엘 모리츠가 더스틴 린을 내정해놓고 있었다.

배역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일본계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 되었다.

일부는 일본의 협력사 씨네-콰논(WaW)을 통해 일본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재밌는 것은 츠마부키 료타가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주요 배역을 맡을 수 있음에도 류지호의 <군계>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군계>는 주인공이고 <분노의 질주>는 조단역이라고 해도,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영화의 위상은 하늘과 땅이다.

암튼 JHO 일본 지사의 측면지원에 힘입어 <분노의 질주>의 준비는 탄력을 받았다.

<The Fast & The Furious : Drift>의 제작비는 8,000만 달러가 잡혔다.

마침내 6월경에 LA에서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편으로 빈 싱클레어를 <The Fast & The Furious : Drift>에 특별출연 시키기 위해서 유니벌스 스튜디오와 <리딕> 영화권리 매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유니벌스가 내놓을 리가 없다.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분노의 질주>를 유니벌스 스튜디오가 투자·배급했다.

빈 싱클레어가 자신의 출연을 조건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아니다.

그래서 류지호에게 부탁을 한 것이고.

그 같은 상황에서 프로듀서 노엘 모리츠가 일본 자동차 회사로부터 차량과 각종 스페어 부품을 지원받기 위해 일본에 들어왔다.

감독으로 선임된 류지호의 UCLA 동창 더스틴 린이 동행했다.


“빈과 관련한 사안은 내게 맡기고 영화에만 집중해 줘.”

“꼭 그를 카메오로 출연시켜야 할까?”

“난 이 시리즈를 적어도 7편은 만들 거야.”


노엘 모리츠가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토닥토닥.


그런 노앨 모리츠의 어깨를 류지호가 가볍게 토닥거렸다.


“기본적인 시리즈 골격은 잡혀있어.”


머리를 쥐어짜내 정리해놓은 메인 콘셉트와 스토리 라인이 벨에어 저택 작업실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게다가 이전 삶보다 월등히 뛰어난 영상미를 뽐낼 수 있는 다양한 기술력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카 체이스 스턴트, 디지털 카메라, VFX, 벤쿠버를 포함한 해외 로케이션 지원시설 등.

<분노의 질주>는 볼거리가 풍성한 화끈한 액션이 전부인 영화다.

골치 아픈 생각을 하면서 보는 영화가 아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사해 뛰어난 FX와 VFX 기술을 쏟아 부으면 끝인 영화다.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쉬운 영화다.

카 체이스 시퀀스의 참신한 아이디어만 잘 찾아내면 끝이기에.


“배우들이 늙을 것은 생각 안 해?”

“숀은 007을 몇 살까지 했더라? 톰은 또 어떻고.”

“차라리 배런 렌포르를 미는 것이....”

“아니야. 배런은 일단 이번 편만 하고 빠지는 걸로.”

“....음.”

“반응을 보고 나서 녀석의 합류를 결정하자고.”

“네 뜻이 그렇다면....”

“더스틴?”

“....응.”

“스토리와 카 체이스에만 신경 쓰지 말고, 일본 고증에도 신경 써줘.”

“고증이라고 할 것이 있을까... 싶은데?”

“제작비를 쏟아 부어서 <게이샤의 추억>처럼 일본을 LA로 옮겨와 찍으라는 말이 아니야. 음식이나 네온간판의 일본어 정도는 충분히 신경 쓸 수 있잖아.”


류지호는 <The Fast & The Furious : Drift>에 일본인 스태프를 채용하도록 지시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가 아니라 일본에서 살다 온 이민자를.

고증 때문이다.


“걱정 마. 잘 살필 게.”


영화의 배경이 일본 도쿄라고 해서 일본 올 로케이션은 아니다.

단 2주 만 일본 로케이션 촬영이 잡혀 있다.

도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만 바짝 촬영하는 일정이다.

시부야 카 체이싱은 한적한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해서 CG합성한다.

심지어 주인공이 다니는 일본의 학교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촬영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대부분 그렇게 한다.

해외 로케이션 비용이 만만치게 않기에.

<REMO>의 류지호가 특이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나 중동 지역이 등장하면 사실성이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자체가 고증 부분에 무신경하기도 하고.

한국, 일본, 중국 장면을 미국에서 촬영할 경우,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 등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의 밀집지역을 참조할 뿐이다.

퓨전화 되어 있는 지역을 표피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어쨌든 <The Fast & The Furious : Drift>에 대거 한국계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더스틴 린은 <배터 럭 투모로우> 이전부터 한국계 배우들과 팀처럼 움직인 바가 있다.


“배우들은 드라이빙 훈련에 들어갔어?”

“응.”

“상해보험은?”

“운전대를 잡는 모든 배우, 레이싱팀, 스태프들이 포함될 거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줘.”

“물론이지.”


류지호가 강조하지 않더라도 할리우드 촬영현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안전을 따진다.


“정말 Eye-MAX는 안 되는 거야?”


카 레이싱은 Eye-MAX에 무척 잘 어울리는 소재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 Eye-MAX 전용관에서는 F1 경기 다큐멘터리 필름이 상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상업영화로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분노의 질주>를 Eye-MAX 포맷으로 촬영하게 되면 제작비가 최소 2배가 껑충 뛴다.

기존 시나리오도 다 뜯어고쳐야 한다.

작업 기간 역시 몇 개월이나 증가하게 된다.

Eye-MAX DMR이라면 혹시 모를까.

<분노의 질주>를 Eye-MAX 필름으로 작업하는 것은 과욕이다.


“미안하지만, 두 사람은 감당 못해. 나중에 촬영한 걸 놓고, DMR할 건 지 논의해 보자고.”


노엘 모리츠는 미련이 남는지 인상을 잔뜩 구겼다.

이미 류지호가 Eye-MAX가 박스오피스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

말이 길 것 같아 류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더스틴은 얼마나 일본에 있을 거야?”

“2주는 머물 것 같아.”

“오랜만에 가볍게 술 한 잔 하자.”

“좋지.”


LA에 살고 있다고 해도, UCLA 친구들과 보기가 쉽지 않다.

영화계에 몸담고 있다고 해도 마주칠 일이 크게 없다.

류지호 본인이 LA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기도 했고.


“빈이 문제네....”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 삶에서는 유니벌스 스튜디오가 3편 흥행에 자신이 없었다.

때문에 빈 싱클레어를 어떤 식으로든 출연시켜 연결성을 유지시키려고 했다.

빈 싱클레어를 홍보마케팅에 써먹으려는 얄팍한 수를 썼던 것.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 바뀌었다.

배런 렌프로라는 청춘스타가 출연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로 격상이 됐다.

홍보마케팅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버디무비 특유의 재미가 다소 약화된 부분은 배런 렌프로의 매력으로 대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빈 싱클레어를 영화 엔딩에 카메오로 출연시키는데 성공하긴 한다.

유니벌스 스튜디오로부터 빈 싱클레어가 <리딕> 권리를 매입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작년에 개봉한 <리딕>의 후속편으로 유니벌스 스튜디오는 최소 3,80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

영화권리를 판매하면서 손해를 복구하려고 했다.

얼떨결에 별 관심이 없던 <리딕> 시리즈에 류지호가 관여하게 됐다.


‘이걸 어떻게 살려야 하려나....?’


<리딕>은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기 쉽지 않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설정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영화보다는 코믹스, 게임, TV시리즈에 좀 더 적합한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 ❉ ❉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할 때 원작과의 동일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원작 만화의 과장된 표현을 영화에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TV드라마에서도 그렇게 한다.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이니셜D>에서 일본배우들의 특유의 애니화 연기를 조절하기 위해 박은상 감독이 꽤나 고생한 적이 있다.


-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는 아마도 연기가 과장되어 있을 거야.

- 내가 지금 연기하고 있는데 어쩌란거냐! 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거지.

- 대사 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서 대화에 집중할 수 없더라고. 대사 중간 중간에 이상한 엇박자를 만들어 내거든. 틈새가 만들어지니까 아마추어 느낌밖에 나지 않아.

- 곧바로 감정을 노출하고, 울부짖는 소리나 큰 소리로 대사를 외치는 것이 마음이 담긴 연기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


박은상 감독이 털어놓은 일본배우들의 연기와 관련한 고생담들이었다.

그는 <풍운아>를 촬영할 때 중국어 성조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중국 배우들도 특유의 연기전통이 있는데, 무대 연기나 경극 같은 과장된 연기가 수시로 튀어나와서 절제시키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 이봉호 사장은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배우만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연기 경험이 부족한 모델이나 인기 있는 아이돌 같이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연예인들을 마구 영화에 기용하기 때문입니다. 뮤즈처럼 소속 연기자를 무대부터 차근차근 훈련시키는 기획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중에게 인기 좀 끌고 팬클럽이 생기면 마구잡이로 드라마에 밀어 넣고 있죠.“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연예계나 다 그렇다.

다만 할리우드의 경우 연기력이 부족한 스타를 캐스팅할 경우 따로 전문 연기 트레이너를 붙여준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 연기력이 출중한 스탠드-인을 기용해 배우가 연기 모습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 연기 트레이너가 잡은 연기와 톤을 그대로 복제해 현장에서 따라하는 경우까지 있다.

할리우드에는 리허설 배우라는 직업이 따로 있다.

주연급 배우 대신 리허설에서 연기하는 배우다.

리허설 배우를 통해 촬영팀은 조명과 포커싱을 점검하고, 감독은 콘티 단계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

배우의 경우 리허설 배우의 블로킹을 보고 자신의 연기방향을 점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배우는 리허설 배우가 하는 걸 아예 보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는 대체로 올 스탠바이가 되었을 때, 정확하게 시간 맞춰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선다.

그것이 룰이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듀싱까지 하는 톰 메이포더는 전문 리허설 배우를 데리고 다닌다.

리허설 배우가 연기할 때 감독과 촬영에 대해 논의를 한다.

그가 프로듀싱하는 영화에서는 현장에 감독이 두 명이 셈이다.

그가 연기만 하는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월권을 하지 않는다.

감독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제작진은 솔직히 말해 기술이 부족합니다. 월급쟁이들이라서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여배우가 울기라도 하면 귀찮고 곤란해지기 때문에 적당히 하고 넘기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일본 영화계 현실을 알면 알수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같은 대감독을 배출한 나라가 맞나 싶다.


“국제영화제를 다니다보면 외국 관객들이 일본 배우들의 연기는 최악처럼 여긴다는 걸 보곤 합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배우도 많지만, 대체로 같은 배우임에도 영화마다 연기 편차가 크죠. 잔잔한 드라마 영화에선 멀쩡하게 연기를 잘 하다가 장르가 바뀌면 갑자기 발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감정의 과잉이라든지 말투의 부자연스러움이 상당히 거슬려 굳이 저렇게 할 이유가 뭐지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다른 영화에서는 또 굉장히 매끄럽게 캐릭터에 녹아드는 배우도 있습니다.”


류지호가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애니화된 일본의 연기톤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외국 관객에게 상당히 어색한 연기가 일본에서는 먹힌다는 것이다.


“일본은 확실히 연기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죠.”


일본만의 연극, 뮤지컬, 영화 연기의 전통이 있을 테니까.

가부키가 영향을 남겼다고도 분석하기도 한다.

류지호가 보기에 다른 이유가 더 큰 것처럼 보였다.

배우의 문제라기보다는 제작 시스템과 연출자 문제다.

연극 무대 톤과 성우 연기가 굳게 자리를 잡았다고 할까. 무대매체의 방법론이 엄청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상당했다.

일본인들이 영화나 TV드라마를 즐기는 의식 자체가 많이 다르다.

하다못해 한국도 리얼리즘에 익숙해져 있다.

TV 및 영화 연기에서 연극/뮤지컬적인 연기가 나오면 오글거려서 못 보겠다고 극장을 박차고 나올 정도다.

반면에 일본은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과장되고 연극적인 연기에 익숙해져 있다.

과거의 일본영화처럼 느리고 차분한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나 드라마도 분명 존재한다.

극소수다.

어느 순간부터 애니메이션 스타일이 영화와 드라마를 삼켜버렸다.

일본영화는 점점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의 과잉이 심해져만 가고 있다.

제작위원회와 팬들도 그걸 원한다.

원작 싱크로율을 내세우면서.

때문에 감독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 잃어버린 10년의 영향도 있어 보여요.”


류지호가 입을 열자 <군계>의 주요 관계자들이 주목했다.


“현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판타지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죠. 비록 캐릭터가 비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 한 편에 선함이 도사리고 있다던가 그 반대라던가... 캐릭터의 입체성보다는 스테레오 타입일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정서조차 표면적이고 모노톤이라서 유아적인 캐릭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더군요.”

“요즘 영화팬들은 일본에서 배출한 위대한 영화 예술가들의 고전을 보지 않습니다.”

“한국의 연극영화과 학생들도 그럴 걸요?”


요즘 세대 영화학도들의 스승은 쿠엔 태런티노나 에드워드 놀란 같이 장르의 21세기적 품격을 선보이는 감독들의 영화가 교재가 되고 있다.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을 배우진 않고 2차 세계대전의 진주만 공습부터 배우는 격이라고 할까.


“일본 메인스트림 영화에서 일상적인 삶, 인간성에 대한 냉소, 허무주의 같은 심오함을 담는 영화들이 밀려나고, 만화원작의 실사화에만 전념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장사는 매우 잘되고 있지만.....”


일본이 배출한 작가감독들의 작품에 대해 ‘굉장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들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안 본다.

그러면서 예산을 다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겠고, 배우들의 형편없는 연기가 2시간이나 이어지는 영화를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 관람한다.

한때 일본영화는 위대했다.

아니, 위대한 영화감독을 배출했다.

이제는 일가를 이룬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이 투자와 제작사를 찾아 외국을 유랑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한중기 피디를 비롯해 한국에서 온 스태프들은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한국 영화계 역시 일본처럼 대기업들이 장악해 가고 있기에.

WaW 엔터테인먼트 역시 그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내에서 현재 생산되는 영상물 자체가... 스토리의 빈약을 만회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살리는 쪽으로 가는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영상물이 망해도 캐릭터는 살리자는 거죠. 특별한 대사 하나를 입버릇처럼 만들어서 그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이게 참...”


이봉호 사장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 캐릭터를 통해 만화도 팔아야 하고, 애니도 팔아야 하고, 드라마도 팔아야 하고, 완구도 팔아야 하고, 게임도 팔아야 하고, 스티커도 팔아야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근데 그게 돈이 됩니다. 오타쿠의 소비력은 정말....”


현실이 그러니 일본 영화판을 한 번 뒤집어 놔달라는 것인지.

일본 영화가 최근 보여주지 못하는 퍼포먼스를 류지호가 보여 주길 응원하는 것인지.


“내가 왜 일본 내 극장개봉 수익을 제작위원회에 양보했는지 아세요?”

“일본에서 잘 안 될 거라 예상한 것 아니셨습니까?”


미국에서 성공한 억만장자 영화감독 류지호는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유명인사다.


“유럽에서는 돈 좀 벌 것 같긴 해요.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영화팬이 꽤 되거든요.”

“<REMO> 시리즈가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한국에서 찍은 작품들도 유럽에서 꽤 잘 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내 영화가 한국 영화적인지 할리우드 영화적인지 분간이 안 되기 시작했어요. 나쁘게 보면 이상한 혼종이고 좋게 보면 내 스타일의 영화가 내적으로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

“일본 관객들은 어딘지 글로벌 트렌드에서 홀로 떨어진 섬 같아요.”

“아마 메이저들의 외화 지연 상영 때문에 그럴 겁니다.”

“대중문화의 보이지 않는 뭔가가 일본 대중에게 일정한 틀의 콘텐츠를 강요하는 것 같다랄까. 일본의 국민성과 어딘지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 창작물의 정치 편향성은 역겹긴 하죠.”


이봉호 사장이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애니와 만화 및 영상물을 꼬집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애교죠.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만세를 주입하는 프로파간다의 전형인데요, 뭘.”

“모르겠습니다. 돈벌이를 생각하면 제 이런 마인드가 결코 합리적이지 않는데,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차별을 받아온 것 때문에 의식적으로 삐딱하게 보려고 그런 것인지.....”

“만약 WaW가 일본에서 철수하게 되더라도, 씨네-콰논 만큼은 끝까지 남겨서 일본영화를 제작할 생각이에요. 기성세대가 제아무리 다음 세대에게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문화를 이길 순 없을 겁니다. 아이누 민족을 보세요. 권력자들이 수백 년 간 말살정책을 펴고 있지만, 요즘 코믹스나 애니에서 좋은 이미지로 그려지니까 젊은 세대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아주 미미한 변화였다.

하지만 변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앞으로는 더 변할 것이고.


“사장님과 내가 이번 세대에 폐쇄적이고 견고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허물지 못하면 다음 세대라도 할 수 있게 다리를 놔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스기와라‘ 캐릭터를 아이누로 설정을 바꾸신 겁니까?”

“조선사람으로 하면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류지호가 씨익 웃었다.


“.....!”


반류회 격투기 최강자 캐릭터인 ‘스기와라 나오토’에 실제 아이누 출신의 아베 히카루를 캐스팅했다.

190Cm의 달하는 우월한 신체와 서양 혼혈으로 의심할 정도로 큰 눈, 오뚝한 코, 사각 턱 등.. 전형적인 일본인 외모와 차별되는 외모를 지녔다.

모델 출신이라 연기가 엉망일 줄 알았다.

막상 오디션을 보니 꽤 쓸 만했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 아베 히카루는 <북두의 권> 실사화에서 켄시로를 연기했던 배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름 연기파 배우로 명성이 높았던 배우다.

여담으로 1869년 보신전쟁으로 토착민족 아이누가 살던 홋카이도가 완전히 일본 제국 치하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아이누를 구토인(旧土人)이라고 불렀으며, 일본의 인류학자들이 아이누를 '인간의 덜 진화된 모습'으로 간주했다.

특히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아이누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말만 보호법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누의 토지 몰수, 수렵 금지, 아이누 고유 풍습 금지, 일본어 사용 의무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 등으로 사실상 아이누 말살법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아이누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누 여성들은 일본인의 첩으로 들어가 혼혈아를 낳아야 하는 참담한 역사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행한 짓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잔인했다.

아이누의 후손들은 돌을 맞고 개라고 놀림 받았다.

결혼이나 취직에도 불이익을 당했다.

또 일터에서 아이누어를 쓰다 걸리면 감독관에게 꾸중 들었다고도 한다.

1986년에 일본 총리가 ‘일본은 단일민족국가다’라는 개소리를 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 내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것이 1996년이다.

아이누를 소수민족으로 인정한 건 한참 후인 2008년에 가서다.

일본의 대중문화에서도 아이누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아이누인의 언어, 사상, 신화, 의복 등의 고유문화가 자본주의의 막강한 힘에 의해 각종 문화상품으로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아이누의 문화가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실제 아이누의 언어와 문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상당부분 말살되어 복구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이 복구에 진심을 다 할지 의문이지만.

암튼, 류지호는 <군계>에서 단 한 명의 조선인 혹은 재일동표 캐릭터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원작에서 소년원에서 등장하는 김명훈까지도 없애버렸다.

스기와라가 아이누로 설정한 것만으로도 일본 사회에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끄집어 낸 인물이 한국 출신의 영화감독인 것도 의미심장하고.

나루시마 료의 야만적인 폭력과 아이누 출신의 스타무도인 대결 구도로 일본 제국주의와 미디어의 선정주의 풍자의 밑그림은 그려졌다.

그 위에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잘 버무려 넣으면 그만이다.

주인공 나루시마 료는 최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한 츠마부키 료타가 맡았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16세의 나루시마를 따로 캐스팅하지 않았다.

본인이 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모두 소화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깡마른 체형부터 격투기 선수의 잘 발달 된 근육질 몸매까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각에도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

소년원에서 나루시마 료에게 가라데를 가르쳐 주는 군국주의 추종자 쿠로카와는 한국관객에게도 친숙한 마에다 사다호를 캐스팅했다.

<킬빌>에서 한토리 한조로 나온 바로 그 양반이다.

실제 가라데 고인데다가 검도와 유도에서도 검은띠 보유자다.

일본의 우익방송국을 상징하는 여성 프로듀서 요코 역할은 한국영화 <역도산>에서 역도산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지고지순한 여인 ‘아야’역으로 알려진 나카하라 미키가 출연한다.

오빠 나루시마 료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여동생 역할은 신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일본 영화는 삼대 기획사에 휘둘린다.

류지호는 마음에 드는 배우들을 골라서 데리고 왔다.

<군계>에 재일동포 배역은 표면적으로 없다.

다만 한국계라는 사실을 숨기고 일본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배우들을 조단역으로 캐스팅했다.

물론 그 사실은 류지호와 이봉호 사장만 알고 있다.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좋은 원작도 많은데 하필.....”


류지호는 그저 웃음을 보여줄 뿐.

이봉호 사장의 우려에 답을 하지 않았다.

<군계> 각색은 류지호가 직접 했다.

각색을 하면서 고전 명작 소설 두 편을 열심히 읽었다.

하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다.

다른 하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 <데미안>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한 때 청년 운동의 바이블이라고 불렸던 소설이자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소설이다.

기성 가치관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청소년 필독도서다.

공동체주의적 평온을 당연시하는 일본.

작은 가치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일본 사회.

그런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키는 미치광이를 영화에 넣어 놨다.

관객들이 못 받아들이면 망하는 것이고.

공감을 얻는다면... 또 하나의 문제작이 탄생할 수도 있고.


작가의말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은 3·1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한민국 모든 공적영역에 있는 이들에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시안게임 기간 중에 수십 차례 울리는 애국가를 들으며 또 개천절을 맞이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떠올려 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연휴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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