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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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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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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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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미조구치 겐지.

일본 영화 3大 거장으로 꼽히는 감독들이다.

한국의 임선택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수상할 당시.

많은 해외 영화 평론가들이 임선택 감독을 미조구치 겐지의 후계자 중 하나로 꼽았다.

정작 임선택 감독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까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거장이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인정받는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양반이다.

류지호는 <군계> 크랭크인을 앞두고 일본영화 거장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간암 투병 중인 고령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을 찾아뵈었다.

불과 4년 전까지 왕성하게 영화를 찍었던 이 노장은 암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다.


“한국영화 감독들이나 챙길 것이지 무슨 오지랖이냐?”


김영복이 타박했었다.


“내가 그 양반의 영화들에서 많을 걸 배웠으니까. 내 선생이기도 해. 생존해 있는 대가를 찾아뵙는 것이 후배로서 올바른 행실 아니겠어?”


선생의 마지막 영화가 <간장선생>이다.

요리 영화 아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영화다.

그의 영화는 주로 사회 밑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하층민의 삶이 담겨있다.

재일교포, 야쿠자 단원, 범죄자, 박해받는 여성 등 도시 하층민이나 고립된 농촌을 자주 다뤘다.

그가 다루는 주된 주제는 일본인의 의식 기층과 일본 사회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능을 날것 그대로 그리다보니 성적 표현 수위가 매우 높다.

오죽하면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에로영화 감독이라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을까.

하지만 세계 영화사의 한 챕터를 차지하는 일본영화에서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를 이끈 인물은 뭐니 뭐니 해도 이마무라 쇼헤이와 그와는 상극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다.

영화 미학적으로는 다다미 미장센(다다미 눈높이의 화면)의 오즈 야스히로, 박력 넘치는 장대한 화면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손에 꼽겠지만.

참고로 쇼헤이 감독의 라이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한국의 이명수, 홍상규 감독이 멘토로 삼거나 깊이 영향을 받은 감독이다.

강렬한 주제의식과 생생한 느낌이 특징이 쇼헤이와 달리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들은 일상적인 문제들을 홈드라마의 틀에서 엄밀한 형식미를 추구하는 깐깐함으로 채웠다.

한국의 모 감독들이 소품의 정밀한 배치, 배우의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는 것까지 조절하는 것 이상으로 예민한 연출을 자랑했던 감독이었다.

문제는 일본의 후배 감독들이다.

그들에게는 선배들이 일종의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해외 비평가에게 다다미 미장센이나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손사래부터 치고 본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다른 일본의 거장들에 비해 비교적 뒤늦게 서구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해외 감독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영화를 본받았다.

마지막으로 오즈 야스지로 못지않게 형식미를 추구하는 감독이 미조구치 겐지다.

미친 듯한 롱테이크로 유명하다.

한때 유럽의 평론가와 감독들이 열렬한 추앙을 보냈다.

심지어 장 뤽 고다르는 영화의 신처럼 떠받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1950년대 도대체 어떻게 촬영했는지 상상이 안 되는 5분이 넘는 롱테이크를 사용해 인물의 감정에 접근하는 쇼트를 자주 보여주었다.

지독한 완벽주의자이며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너는 뇌에 매독이 차있다. 빨리 의사에게 가봐라.”


배우에게 했던 이런 악담은 아주 평범한 축에 낄 정도.

배우들에게 이 보다 심한 모욕을 주며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


“제 선배를 챙겨야지 왜 남의 나라 감독을 떠받느냐?”


한국 영화계에서 류지호가 선배들을 홀대한다는 성토가 있다.

절대 아니다.

도저히 대접해줄 수 없는 양반들은 무시하는 것이 맞았지만.

오래 전 타계하신 <만추>의 이만희 감독의 딸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원자가 된 것처럼 또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부인과 함께 돌아가신 <하녀>의 김기영 감독도 생전에는 때마다 찾아뵈었다.

또 최근 부쩍 기력이 쇠해진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에게도 종종 안부를 전하고 있다.

임선택 감독에게 불만도 많지만, 깍듯하게 대하고 있다.

대선배들의 인격까진 류지호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영화가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김기영 감독이 영화 모더니즘에서, 유현목 감독이 영화 리얼리즘에서 일가를 이뤘다면, 이만희 감독은 양 사조 모두에서 적어도 한국영화에서는 최고 경지를 일궈냈다.

리얼리즘적 모더니스트이자 모더니즘적 리얼리스트.

류지호가 개인적으로 가져다 붙인 성향이다.

한국 영화사 연구자들과 평단도 그렇게 생각할지 알 순 없다.

그들 세 명의 한국영화 거장들은 영화학도들의 롤 모델이어야 하는데....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영감까지 주는 감독들이니까.

아쉽게도 한국영화를 지나치게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영화사 연구자들은 그들과 다른 감독을 류지호와 비교하곤 한다.

바로 신상옥 감독이다.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등과 함께 1960∼19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감독이다.

그가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제작자로도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식 메이저 스튜디오였던 ‘신필름’을 설립해, 영화왕국을 꿈꾸었던 인물이다.

시대와, 장르, 국경, 이데올로기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역동적인 영화 인생을 살았던 것 또한 류지호가 그 궤적을 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류지호가 50대에 접어들면 주제와 장르, 스타일 면에서 엄청난 양과 스펙트럼을 가진 작품 세계를 구축한 전무후무한 대중영화 작가로 평가될 것이다.]


한 영화 평론가가 예언(?)이었다.


- 류지호 감독이 현대 한국영화의 역사를 쓰고 있다.

- 진정한 ‘코리안 뉴웨이브’ 시대가 왔다.

- ‘뉴에이지‘다. 그것도 2nd New Age!


‘New Wave'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대로 기존 세대의 가치관이나 구조와 단절하며,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새로운 혁신을 지향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나 미국의 '아메리칸 뉴웨이브' 모두 기성세대를 비판하면서 급진적인 단절을 통해 전혀 다른 영화를 지향했다.

한편으로 좌파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코리안 뉴웨이브‘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영문자료집 출간에서 처음으로 명명됐다.

그 전까지는 소위 한국영화 통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유럽비평가들이 80년대 주목할 만한 영화 경향을 보여준 리얼리즘 추구 감독들을 묶어 ‘코리안 뉴에이지‘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한국에서 ‘뉴웨이브’를 가져와 ‘코리안’을 붙인 것은 해외에서 담론을 확장시키겠다는 의도를 내포했다.

국제적인 맥락 속에 한국이라는 국가를 인식하고, 한국영화를 세계 영화사적 차원에서 위치 짓겠다는 야심이었다.

결국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코리안 뉴웨이브’는 유럽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젊은 감독들을 묶어 ‘코리안필름 뉴에이지’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류지호, 박진욱, 공진형, 김대윤 감독 등이 이 그룹에 들어가 있다.

김우혁, 홍장규를 넣기도 하는데, 한국영화 안에서도 비주류이기에 빼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영화사 연구가들이 고생이 참 많다....’


한국영화 사조라는 것이 애매한 구석이 많았다.

류지호가 속한 그룹을 ‘세대‘로 표현한 것은 영화 운동으로 묶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영화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한 적이 없으니까.

영화 경향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없고.

그래서 편하게 붙일 수 있는 명칭이 ‘뉴에이지’다.


‘그 놈의 뉴에이지....!’


‘도그마 선언’ 이후로 영화운동이나 사조가 없다.

예술적으로 또 미학적으로 심지어 철학적으로도.

영화운동이 기술과 미학을 선도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았다.

예술이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고.

본래는 예술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것이지만.


‘30년 쯤 지나면 이 시대 전체를 디지털 에이지로 묶어버릴 수도 있겠지...’


❉ ❉ ❉


시간을 거슬러 <군계> 촬영이 한창일 8월31일∼9월10일.

류지호가 일본을 떠나 이탈리아 베니스에 다녀왔다.

<민중의 적 : EMBARGO>가 제6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경쟁부문이었다.

한 달 전 갑자기 <다케시즈>가 깜짝 초청되더니, 비경쟁부분 초청작이었던 <민중의 적 : EMBARGO>까지 경쟁부문으로 올라갔다.

한국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와 함께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류지호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결정이었지만, 굳이 본선에 올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예술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베니스 영화제와는 어딘지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갑작스럽게 경쟁부문으로 바뀌게 된 것에는 작품 외적인 부분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시아 영화에 호의적이다.

특히 중국영화에 대한 배려가 조금 지나친 편이다.

류지호가 한국에서 작업한 영화와 다케시를 끼워 넣음으로써 세간의 지적을 무마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한편으로.


‘칸이나 베를린과 더 많은 차별성을 부여하고 싶은 모양인데....’


할리우드 유력자인 류지호를 통해 영화제 분위기를 띄울 속셈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비경쟁부문보다 경쟁부문이 훨씬 주목을 많이 받게 되니까.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총 50편의 출품작 중 경쟁부문에 언론을 다룬 영화가 있다.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꽤나 화제작으로 점쳐지고 있다.

때가 묻은 사회부기자의 좌충우돌 취재기와 비교했을 때 서구권 관객과 평단에게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이 좀 더 호소력이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김영복이 베니스로 향하는 류지호에게 부러움을 토로했다.


“내가 <엠바고> 찍을 걸!”

“형도 같이 갈래?”

“가긴 어딜 가? 한국 들어가서 촬영 준비해야지. DI도 돌려보고.”

“놀러가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지네....”

“빈손으로 오지 마.”

“뭐 사다 줄까?”

“누가 선물 사오래? 트로피 하나 떡 안고 들어오란 말이야.”

“못 받을 걸?”

“영화 잘 빠졌다며?”

“경쟁부문 올라가고,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야. 괜히 평론가들에게 야유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 걸.....”

“걔들은 영화 보면서 뭔 야유를 하냐?”

“20분 정도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극장에서 나가지.”

“싸가지 없네.”

“볼 영화가 50편도 넘잖아. 그 사람들도 먹고 살려면 바쁘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들은 매너가 좋아.”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잘 가져와서 그럴지도.”

“암튼, 베니스 간 김에 여자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내라.”

“수고해, 형.”

“몸 성히 잘 다녀와라.”


<군계> 정비시간을 갖는 김에 류지호가 전용기를 타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날아갔다.

레오나 파커를 초청했다.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일터로 예비 신부를 부르는 것은 썩 좋은 생각은 아니다.

그럼에도 보고 싶은 걸 어쩌랴.

영화제 개막작을 겸한 월드 프리미어는 물론이고 베니스에서 머무는 동안 빡빡한 일정이 예정되었다.

<민중의 적 : EMBARGO>는 지난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예고편과 선재만으로 꽤 많은 국가와 계약을 체결했다.

제작비 상당부분을 회수했다.

더 많은 국가에 영화를 팔기 위해서는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 열심히 홍보활동에 나서야 했다.


❉ ❉ ❉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는 8월31일∼9월10일 간 이탈리아 북부의 세계적 관광지이며 수상 도시이자 운하의 도시인 베네치아(Venezia)에서 개최된다.

실제로는 본섬이 아닌 리도(Lido)섬에서 열린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인 8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비평가주간 초청작 7편, 감독주간 초청작 12편의 작품이 공개됐다.

개막작 상영을 이틀 앞 운 29일 류지호가 베니스 본섬에 도착했다.

9월 2일까지 이탈리아에 머물 예정이다.

이후 스페인과 영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스페인에서는 ‘이사벨 여왕 십자문화대훈장(The Cross of Official of the Order Isabel La Catolica)’을 받을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해리포터 투어 프로그램’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 친선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류지호의 바쁜 일정 때문에 수여식은 이탈리아 국경일 기념행사의 식전행사에 개최되도록 조율 중이다.

여러 나라에서 훈장을 주고 싶어 한다.

외교적으로 치열하게 눈치싸움중이다.

각국 외교부로서는 대대적으로 알려져 홍보가 되길 바랄 테니까.

암튼 류지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다섯 시간 후에 레오나 파커가 합류했다.


"레드카펫 이벤트에서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어.”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것 아니었어?”

“괜찮아. 그들로서도 하기 싫을 걸 억지로 강요할 순 없어.”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는 깜짝 이벤트가 두 개가 준비되었다.

하나는 <다케시즈> 경쟁부문 초청을 영화제 개막식 당일 깜짝 발표함과 동시에 감독으로써 다케시가 베니스를 찾는 그림을 연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류지호가 피앙세와 레드카펫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일찍 베니스에 도착해 피앙세와 데이트를 즐긴다는 걸 알게 된 집행위원장이 직접 류지호에게 피앙세와 함께 레드카펫을 해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런데 레오나 파커가 그 제안을 수락하자고 했다.


“타블로이드에서 결별설이니, 파혼설이니, 바람 피웠다느니 기사 나오는 게 싫어. 이번 기회에 세상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릴래. 우린 아무 문제도 없다고.”

“타블로이드나 TV 연예프로그램도 봐?”

“친구들이 자꾸 물어본단 말이야. 우리 사이에 문제있냐구.”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어?”

“없어도 사람들은 있는 걸로 안단 말이야.”

“레드카펫에서 찍힌 사진이 전 세계로 나갈 텐데.... 괜찮겠어? 앞으로 언론에서 더 귀찮게 할지도 몰라.”

“어쩌겠어. 잘난 남자의 아내가 된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해야지.”


류지호가 마치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매트 데이만도 연인과 자주 공식행사에 참석했잖아.... 설마 지금보다 더 귀찮아지려고.”


매트 데이먼은 2003년에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혼녀와 사랑에 빠져, 2년여 간 연애를 하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할 때부터 영화 시사회장에 연인과 함께 다니면서 언론노출을 피하지 않았다.

류지호는 일본에서 <군계>를 촬영하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는데, 결혼 축하 축전과 함께 선물을 보낸 바 있다.

어차피 가족만 초대해 시청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기에 매트 데이만이 섭섭할 이유는 없었다.


“나중에 라원이 오면 함께 드레스 골라봐. 리사와 의전팀이 도와줄 거야.”

“지금 구경해 봐도 될까?”

“안 피곤해?”

“괜찮아.”


레오나 파커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전팀을 찾았다.

급하게 이탈리아 현지에서 마련한 파티드레스 10벌을 놓고 3시간에 걸쳐 고민했다.

패션과 명품의 나라 이탈리아라고 해도 몇 시간 만에 최고 명품 드레스 10벌을 준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어려운 일을 류지호의 의전팀이 해냈다.


“시티 투어 안 할래?”

“좋아.”


간편한 옷차림으로 두 사람이 베네치아를 돌아다녔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아시아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했다.

다행히 귀찮은 해프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베니치아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곤돌라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베네치아 운하를 곤돌라를 타고 돌아보기도 하고, 관광객과 비둘기가 바글바글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겨우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투칼레 궁전도 둘러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불리는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도 마셨다.

밤에 다시 한 번 곤돌라를 타고 야경 운하 투어도 했다.

리알토 다리, 탄식의 다리 등 베네치아 운하의 유명한 다리도 봤다.

베네치아에는 차도가 없다.

리도 섬을 제외하고 다른 수백 개의 섬들도 마찬가지다.

이동수단은 오로지 수상버스라는 바포레토 뿐.

본섬은 걸어서 1시간 반이면 끝에서 끝으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도시다.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피자와 스파게티로 식사를 해결했다.

젤라또를 야금야금 먹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본섬의 끝에 도달했다.

베네치아 관광지는 크게 본섬, 부라노, 무라노와 같은 작은 섬으로 나눌 수 있다.

이동은 섬 곳곳에 있는 바포레토 정류장을 통해 수상버스로 하는데, 류지호는 아예 수상택시를 대절해 다녔다.


“얼마라고?”


수상버스 1일 권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몇 번 방문한 여행객들은 1일 권이 아닌 24시간 적용 티켓을 주로 구입한다고 한다.

티켓을 개찰한 시점부터 24시간이 계산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라노섬 역시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했다.

영화제 기간이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일 년 내내 유럽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한적한 걸 기대하는 것도 우스웠다.

류지호의 손을 꼭 잡고 한시도 떼어놓지 않던 레오나 파커가 설명했다.


“베네치아 집들이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져 있는 건, 멀리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쉽게 찾기 위함이래.”

“관광지라 일부러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지금은 어부를 위해서라기보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니까. 겨울이 되면 관광객들을 위해 일부러 색을 칠한다고 해.”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색을 칠하든 말든.

관광지에 스토리가 있는 것은 무조건 좋다.

비록 베네치아가 부호들 사이의 손꼽히는 휴양지이긴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이국적인 풍광과 함께 이야기까지도 함께 추억 앨범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찰칵찰칵.


여행객차림으로 함께 다니고 있는 경호원과 의전비서가 열심히 연인의 사진을 찍었다.

추억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은 선명하게 남는다.

일부러 지우지 않는 한.

두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여느 연인처럼 평범하고 자유로운 데이트를 즐겼다.


✻ ✻ ✻


영화제를 하루 앞두고 <민중의 적 : EMBARGO> 관계자들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곧장 영화제측이 마련해준 수상택시를 타고 리도 섬으로 이동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VIP를 위해 따로 정류장을 마련해 주었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다만 레오나 파커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리도 섬으로 들어왔다.

영화제 VIP들과 배우들이 묵는 본부호텔 대신 리도 팔라세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JHO Company 계열 영화사들이 베이스캠프로 활용하는 리조트다.

소유주는 JHO Security Service의 호텔·리조트 사업부다.

리조트에는 뜻밖의 인물들이 와 있었다.


“두 분은 토론토 영화제에 참석한다면서요?”


선객은 모리스 메타보이와 알버트 마샬 회장이었다.


“오너의 영화가 초청되었다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있겠나?”

“보스가 영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해서 왔다네.”

“마침 잘 오셨어요.”


세계적인 명성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려면 작품성만으론 2% 부족하다.

로비와 정치도 한 몫 한다.

한정된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려면 감독의 명성, 제작국가의 위상, 자본의 성격, 제작자의 인적 네트워킹 마지막으로 로비도 중요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칸과 베니스가 가장 예술성이 강하면서도 정치색도 강하다는 평판은 제작사들의 로비와 집행위원회의 정치적 판단도 영향을 미친다.


“알버트는 나와 함께 영국으로 간다고 치고, Moe는요?”

“영화제 마지막까지 지원을 하면 좋겠지만, 자네 영화의 필름마켓 스크리닝까지 함께 하고 토론토로 날아가야겠지.”

“올해 베니스의 트라이-스텔라 파티가 꽤 볼 만 하겠네요?”

“매년 우리 파티가 가장 볼 만 했어.”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자부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였다.

영화제마다 매일 밤 다양한 파티가 열린다.

90년대 중반부터 트라이-스텔라가 주최하는 파티가 가장 화려하고 가장 북적거리는 파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ParaMax가 주최하는 파티는 자칫 소외될 수도 있는 제3세계 영화관계자들과 독립영화인들 위주로 열렸다.


“자네 피앙세는?”

“객실로 올려 보냈어요. 조금 피곤한 것 같아서.”

“깜짝 이벤트?”

“뭐 그렇죠.”

“토마스에게 점수를 따고 시작하는 군.”


토마스 뮐러는 작년부터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상을 바라고 하는 쇼는 아니에요.”


칸이든 베니스든 베를린이든 심지어 토론토 영화제든.

각국에서 모인 기자들과 비평가들이 중요한 수상결과를 예측한다.

결과가 그들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면, 소동이 벌어진다.

시상식에서 비평가들이 야유를 퍼붓거나, 심사위원장은 기자들로부터 추궁이 담긴 날카로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영화제의 최고상들은 그 영화제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의견보다 영화제의 의중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편이다.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최고상과 심사위원 대상을 구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수준 이하의 영화가 영화제에 초청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비평과 언론, 대중은 취향이 갈릴 수는 있다.

따라서 매번 논란이 불가피하다.


“개막작 타이틀이 붙었으니 판매실적은 더 올라가겠어.”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 했다.

상을 받으면 좋고, 아니어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초청 받았다는 것은 작품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고,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하고자 하시는 일 모두 이루는 한 주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spica0306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성실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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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터무니없는 목표! (1) +4 23.11.03 2,088 97 24쪽
661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3 23.11.02 2,069 95 26쪽
660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2) +7 23.11.01 2,020 102 26쪽
659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1) +3 23.10.31 2,000 101 25쪽
658 모두 분발하세요. +4 23.10.30 2,008 104 22쪽
657 하고 싶은 영화 다 합시다! (2) +8 23.10.28 2,086 100 25쪽
656 하고 싶은 영화 다 합시다! (1) +6 23.10.27 2,049 97 25쪽
655 기업가의 애국이 별 건가? (2) +5 23.10.26 2,114 95 26쪽
654 기업가의 애국이 별 건가? (1) +4 23.10.25 2,102 105 24쪽
653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3) +7 23.10.24 2,177 112 25쪽
652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2) +5 23.10.23 2,075 107 23쪽
651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1) +6 23.10.21 2,180 112 26쪽
650 La fenice. +5 23.10.20 2,126 100 27쪽
649 이 정도인 줄 몰랐어. +2 23.10.19 2,147 100 23쪽
648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4) +8 23.10.18 2,046 103 25쪽
647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3) +7 23.10.18 1,902 90 23쪽
646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2) +5 23.10.17 2,041 91 26쪽
» 코리안필름 뉴에이지. (1) +4 23.10.16 2,173 94 23쪽
644 도대체 얼마나 갑부인 거냐? +4 23.10.14 2,269 104 25쪽
643 군계(軍鶏). (11) +4 23.10.13 1,960 102 26쪽
642 군계(軍鶏). (10) +3 23.10.12 1,938 93 24쪽
641 군계(軍鶏). (9) +6 23.10.11 1,911 101 25쪽
640 군계(軍鶏). (8) +5 23.10.10 1,925 96 26쪽
639 군계(軍鶏). (7) +5 23.10.09 1,909 92 24쪽
638 군계(軍鶏). (6) +6 23.10.07 2,037 92 25쪽
637 군계(軍鶏). (5) +4 23.10.06 2,048 92 25쪽
636 군계(軍鶏). (4) +6 23.10.05 2,040 91 25쪽
635 군계(軍鶏). (3) +7 23.10.04 2,074 89 24쪽
634 군계(軍鶏). (2) +5 23.10.03 2,087 87 27쪽
633 군계(軍鶏). (1) +4 23.10.02 2,373 10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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