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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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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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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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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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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따끔하게 한 마디 경고라도.....”

“오 회장이 하세요. 글로벌 멀티플렉스 체인 회장인데.”


오동석이 펄쩍 뛰었다.


“제 말이 먹히겠습니까? 감독님 말 한마디가 먹히겠습니까?”


류지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인지, 오동석의 말투가 꽤나 신랄했다.


“요 몇 년 한국영화가 좀 된다 싶으니까 이 놈 저 놈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꼴이. 꼭 거지새끼들 같습니다.”


류지호가 말을 정정해 주었다.


“강도겠죠. 거지가 아니라.”


한류 스타다 뭐다, 캐스팅을 좌지우지하면서 영향력을 키워온 매니지먼트사들이 올해 들어 부쩍 영화계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대형 기획사들이 통신사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은 것은 발단에 불과했다.

연초부터 매니지먼트 업체끼리 합종연횡하면서 대형화됐다.

이와 동시에 우회상장 또는 우회상장된 기업에 합병되면서 코스닥에 합류했다.

외식업체 오른손은 튜브매니지먼트를, 팬텀은 플레이어엔터를 합병했으며, 예당엔터테인먼트는 한류스타를 스카우트하면서 가치를 키웠다.

스타K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은 텐트제조업체 반포텍과의 주식교환을 통해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한류바람으로 인해 배우들의 가치가 치솟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예기획사들이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배급에까지 뛰어들었다.

코스닥 우회상장에 성공한 몇몇 연예기획사들이 주요 관심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올해 중반 증시 활황 속에서 엔터테인먼트주 열풍을 주도했다.

충분히 기고만장할 만한 상황이었다.

소속 한류스타의 존재가 주가의 받침목이다.

한편 일부 업체의 불법 행위가 검찰에 고발됐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에서 연예기획사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매니지먼트들의 무리한 공동제작, 지분 요구가 제작사들과 정면출동 사태를 벌인 후,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뻔한 사태가 일단은 진정되긴 했지만. 표준규약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내년에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류지호는 그저 웃기만 했다.


찌르르.


오동석은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저 표정, 저 태도.

꼭 저런 모습을 보일 때 대형 사고를 쳤었던 것 같았다.


“저... 감독님, 여주로 내려가서 부모님과 지내시죠. <군계> 후반작업도 하셔야 하고....”


오동석이 몇 달 전 여주 전원주택으로 이주한 류지호 부모님을 언급했다.

참고로 한남동 주택은 남매들이 쓰고 있다.


“연말 시상식에 초청 받았잖아요. 그것까지 참석하고 내려가야지요.”

“혹시.... 수상 소감 준비하셨습니까?”

“아니요.”

“그, 그, 그렇습니까?”

“오 회장. 왜 말을 더듬고 그래요? 체통 없이.”

“죄송합니다!”


류지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온그룹 영화사업의 두 축인 WaW와 G.O.M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들과 점심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났다.

떠나는 류지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오동석은 왠지 불안했다.


“.....!”


TV출연을 썩 즐기지 않는 류지호다.

어쩌다 한 번씩 출연할 때마다 독설을 여과 없이 날리며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모른다.

대기업의 오너로서는 삼가야 할 행동이다.


‘이제 30대 중반인데.... 정제된 표현을 쓰겠지 뭐.’


오동석이 애써 불안감을 애써 털어내는 사이, 조광영화상 시상식 날이 찾아왔다.


❉ ❉ ❉


서울 KBC 공개홀에서 제26회 조광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7년째 사회를 보고 있는 김혜주는 여전했고, 공동사회를 보는 전주호도 무난했다.

화려한 드레스의 여배우들과 그녀들을 에스코트하는 감독들.

<민중의 적 : EMBARGO>팀은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이 우르르 레드카펫을 활보했다.

사내들 사이에서 홍일점 송라원과 아역이 빛이 났다.

송라원은 류지호와 단독으로 레드카펫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역배우를 배려해 모두가 함께 입장하기로 했다.

이번 영화제가 <너는 내 운명>의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의 소감이 유명해지는 바로 그 시상식이다.


[솔직히 저는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탭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 놓잖아요. 그러면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이 겸손한 수상소감이 객석으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복수의 꽃>에 출연한 바 있는 이서연 선배와 류지호가 조명상을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수상자는 <형사>의 조명감독이 선정됐다.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이명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모두가 이명수 감독의 한국영화 복귀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데어데블>이 흥행에 제법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할리우드에 안착할 줄 알았다.

헌데 이명수 감독의 자존심과 부담감이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다.


“들어오는 책이 죄다 액션영화더라고. 나만 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

사실 할리우드에서 이명수 감독은 마샬아츠 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감독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폰 부스>처럼 저예산 영화를 찍거나.


“한동안 할리우드에서 계속 책이 올 거예요.”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았을까? 이번 영화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국가 대표니 하는 그런 생각 버리세요.”

“다찌마리 영화만 들어오니까 그렇지, 이 사람아...”

“원래 그래요. 그 바닥이. 하루아침에 리 안이 될 순 없어요.”


이명수 감독은 할리우드 도전을 잠정적으로 멈췄다.

한국에서 연출한 영화의 흥행도 썩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낙담한 모습은 아니다.

류지호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김향은 선생님 이야기는 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아. 아직 책이 없다고?”

“마음에 들면 전하영 부사장과 그냥 하세요. 책도 감독님하고 잘 맞는 작가랑 하시고.”

“고마워, 류 감독.”

“고맙긴요. 연달아 센 영화만 했잖아요. <첫사랑>처럼 로맨스 영화는 아니지만, 오랜 만에 진한 휴먼 드라마 한 번 멋지게 뽑아보세요.”

“아서! 그거 망했어.”

“당시에는 마케팅도 배급도 지금과 같지 않았잖아요.”


1993년 개봉한 <첫사랑>은 망했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배급과 마케팅만 받쳐주었다면 당시 기준으로 1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였다.

암튼 이명수 감독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데.

주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배우들과 감독들이 일제히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두 사람도 얼른 일어서서 기립박수에 합류했다.

헌데.


“뭐 하세요?”

“뭘?”

“무대에 오르셔야죠.”

“무대....?”


그때, 사회를 보고 있던 김혜주의 목소리가 공개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 류지호 감독님? 혹시 딴 일 보고 계셨나요? 시상식 장에서는 핸드폰을 꺼두셨어야죠.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하.

호호.


공동MC 전주호 배우가 말을 보탰다.


- 각본상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민중의 적 : EMBARGO>가 각본상을 수상한 것이다.

류지호가 주위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러면서 능청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애의 목적>이 타는 거 아니었나....?’


주겠다는 상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소감은 평범했다.

부모님, 동생들, 레오나 등 감사를 전해야 할 사람들을 일일이 거론했다.

그리고


-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들... 우리 영화시장 규모가 세계 8위랍니다. 굉장하지요? 한국영화가 사네 마네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제가요.... 집 떠나 타향살이 꽤 오래 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외국 친구들이 그래요. 한국영화인들이 부럽다고. 아! 할리우드 친구들 빼고요. 아시죠? 그 쪽 동네는 뭐... 암튼.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근데.... 서로 헐뜯고 싸우고 그러진 말자고요. 외국에 나가서 보는 영화인들은 그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존경을 표하고 뭐 서로 포장하려고 안달인데, 왜 우린 충무로 한솥밥 먹는 식구들끼리 얼굴을 자주 붉히는지 모르겠어요.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이들이 꽤 보였다.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 진 이들도 있고.


- 모두 파이팅 하시고. 이 상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지 못한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시상식 생중계를 TV로 지켜보던 오동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조금 거북한 표현이 들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계속해서 시상이 이어졌다.

이변이랄 것은 별로 없었다.

<민중의 적 : EMBARGO>, <웰컴 투 동막골>, <친절한 금자씨> 등이 주요 부분에서 경합을 벌였다.

그리고 대망의 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만 남겨두었다.

후보는 <너는 내 운명>, <말아톤>까지 다섯 작품이 경합을 벌였다.

본래 작품상의 주인공은 <친절한 금자씨>의 차지여야 했다.

이변 아닌 이변이 일어났다.

<민중의 적 : EMBARGO>가 작품상을 수상하게 됐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류지호와 김재욱이 함께 무대로 올라갔다.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두 사람 이름이 동시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꽃다발이 전해졌다.

다 짜고 하는 거다.

TV생중계이기 때문에 사전에 꽃다발 개수와 인원이 정해지고, 때에 따라서 운영팀에서 꽃다발 수를 파악해 제한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와 꽃다발을 전달하다보면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관 방송사가 대략적인 큐시트를 돌린다.


- 감사합니다. 이 상을 고생하신 배우들과 스탭들께 바칩니다.


벌벌 떨 줄 알았던 김재욱이 제법 침착하게 소감을 마무리했다.

류지호가 마이크 앞에 섰다.


- 제가 충무로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뭔 줄 아실 겁니다. 류지호가 한국영화를 위해 한 일이 차암~ 많은데.... 이상하게 미워하게 된다.


류지호의 지인들이 몰려 있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킥킥.

하하하.


방송 카메라가 객석의 반응을 귀신같이 잡아내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 어떤 선배님은 제게 그럽니다. 지호를 업고 다녀도 시원찮은데 이상하게 욕을 하게 된다고. 결정적으로 제가 잘못한 게 뭔가 하면.... 없지 않나요? 한국 영화에 돈 투자하지, 극장 만들어주지. 잘못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욕을 하고 싶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업계 영향력 부동의 1위인 류지호를 바라보는 영화계 내부의 모순된 심경이다.


- 앞 서 황 선배가 겸손하게 그랬어요. 배우 나부랭이가 동료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으로 맛있게 먹었다고. 사실 저는 국자로 떠먹고 있지요. 솔직히 그래요. 그리고 입이 짧아 한 국자 떠먹고 맙니다. 근데 말입니다.


TV중계를 지켜보던 오동석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고 많은 기회 중에 왜 하필 남의 잔치에 가서 독설을 날리는지.


- 업자들이 자꾸 숟가락, 국자 들고 우리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차린 밥상에 끼어들려고 해요. 벼농사를 지어 본 일이 있나, 밭에 채소를 심어 봤나. 밥상 차리는데 거든 일이 있나. 적당히 좀 하시자고요. 올해 영화인들이 보인 추태를 수많은 영화팬들이 지켜봤어요. 대중들은 똑똑히 기억할 겁니다. 누가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지.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든데, 전 그런 식으로 욕을 먹어가며 오래 살고 싶진 않네요. 그래서!


잠시 뜸을 들였다 류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영화인들에게 칭찬 받을 일이 뭔가 고민을 했어요. 하나 준비했습니다. 내년부터 G.O.M Cinemas 부율은 모두 동일합니다. 가온그룹 산하 멀티플렉스에서 더 이상 한국영화가 부율로 차별 받는 일을 없을 겁니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큰 술렁거림이 일었다.

난데없는 폭탄 발언이다.

한국영화 부율(극장 대 배급사의 수익 배분)조정은 영화계의 오랜 숙원이다.

그걸 영화제 수상소감이랍시고 터트려버린다?

G.O.M Cinemas는 유일하게 배급사 대 극장 부율이 55:45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극장체인은 5:5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배급사 대 극장 부율은 6:4다.

그랬는데, 내년부터 G.O.M Cinemas가 한국영화를 할리우드와 똑같이 6:4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파격 정도가 아니다.

업계를 휩쓸 충격파다.


짝짝짝.

와아.


제작자들 모두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인기가수의 축하무대에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던 수많은 영화인들이 흥분했다.

주관방송사 PD의 지시를 받은 사회자들이 장내 정리를 해야 했다.

공동MC 둘은 방송사와 운영진의 지시를 무시했다.


도리도리.


심지어 김혜주가 PD에게 고개를 저으며 반항을 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는 류지호의 악동 같았던 미소를 분명히 봤다.

재밌는 수상소감을 직감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영화 최대 권력자가 영화계를 향해 쓴소리와 함께 선물도 동시에 선사했다.


- 선배·동료·후배 영화인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저로서는.... 저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인 모두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후든 20년 후든 모두가 함께 꿈꾸는 그런 충무로를 꼭 함께 보고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화팬 여러분께서도 그런 충무로를 때로는 냉정하게 또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지호가 느닷없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 한국영화 만세!


일부러 주접을 좀 떨었다.

한국영화 시상식 사상 전대미문의 수상 소감이었다.

의도적으로 망가진 모습을 연출했다.

너무 정색하면 재미가 반감 될 것 같아서.

류지호가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다사다난했던 조광영화제 시상식이 끝났다.

영화계와 대중들은 2주 후 열리게 될 춘사영화상 시상식을 기다렸다.

어떤 수상소감과 퍼포먼스를 류지호가 보여주게 될지 기대하면서.

암튼 시상식 뒤풀이에 모인 WaW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담담했다.

부율 조정은 이미 회사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남은 것은 늘어난 부율에 따른 제작사 분배 문제 뿐.

이런 결정의 이유가 있었다.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던 문예진흥기금 700원이 없어졌다.

즉 부율을 조정한다는 것이 막 퍼주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문예진흥기금으로 나갈 돈을 일부 제작사에게 나눠주는 셈이니까.

사실 G.O.M Cinemas는 타격이 별로 없다.

어차피 극장사업은 티켓값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아니니까.

사실 한국의 멀티플렉스 매출은 글로벌 매출에 비하면 사소했다.

현재 G.O.M International이 운영하는 스크린 숫자가 5,000개가 넘는다.

강은석 감독이 조용히 다가와 류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매니지먼트 애들이 반발 하면 어떻게 하려고 전 국민이 다 보는 TV에서 그렇게 혼내나?”

“반발하라고 일부러 그런 거 눈치 못 채셨나 보네? 영화 제작해보라고 하죠 뭐. 쫄리면 뒈지시는 거고.”

“뭐라고...? 하하하. 이 친구... 정말... 하하하.”


강은석 감독이 배꼽이 빠져라 웃어 재꼈다.

뒤풀이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매니저 나부랭이 생각할 때가 아니라, 우리 영화가 일본에서 죽 쓰고 있어요. 무비서비스 올해 개판 아닙니까?”

“어흠! 저쪽에서 차 대표가 날 자꾸 부르네.... 그럼 나중에 소주 한 잔 해.”


비는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맞다.

강은석이 얼렁뚱땅 류지호에게 멀어졌다.

스타 개런티 폭등?

티켓파워를 가진 톱스타에게 10억을 줘야 하면 줄 수 있다.

실제 톱스타가 극장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것이 사실이니까.

문제는 영화에 전혀 공헌을 한 것이 없는 매니지먼트가 제작자를 길들이려 하는 것이다.

특히 개나 소나 공동제작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류지호는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영화의 크레디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영화의 크레디트는 참여자들의 서명이면서, 일종의 인사고과 같은 것이다.

업계 종사자들의 개런티 기준이며, 저작권까지 걸려있다.

WaW 영화를 제외하고 계약서 따로 크레디트 별개인 경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한국영화산업이 옳은 방향으로 오래 갈 수 있다.


❉ ❉ ❉


조광영화제 다음 날.

한국연예매니지먼트 협회가 즉각 성명을 냈다.

류지호의 부적절한 수상소감에 반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매니지먼트협회 준비위원회는 몇 달 전 서로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고,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며 극복해나갈 것을 결의한 바가 있다. 우리는 영화제작가협회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 결의문도 채택하고 향후 발전적인 형태로 수용했다. 그런데 한국영화계에서 더 나아가 할리우드에도 큰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이 전국민이 시청하는 시상식 자리에서 배우와 매니지먼트 업계를 비난한 것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들은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큰 힘을 가진 이가 언론과 대중에게 일방적인 입장만을 전달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발언 철회와 당사자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바이다.]


한국의 매니지먼트 업계에도 나름 고충이 있다고 항변했다.

업계에는 톱스타로 성장할수록 배우에 비해 매니지먼트 측 수익 분배율이 낮아지는 관행이 있다.

또 필수조건이 돼버린 거액의 영입 계약금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

톱스타를 영입하게 되면 적자 폭이 커지는 기형적 수익구조를 가진 곳이 매니지먼트 업계다.

사실 자업자득이다.

톱스타를 자사로 데려오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인 장본인이 자신들이었으니까.

어떤 매니지먼트는 전체 수익에서 아예 수익분배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톱스타를 영입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렇다 보니 소속 배우의 몸값 외에 수익 지분을 요구해서 벌충하려고 하는 매니지먼트가 나오게 됐다.

시장을 왜곡시킨 것도 본인이고, 과열 경쟁을 벌이며 제 살 깎아먹기를 자행하는 것도 본인들이다.

그 부담을 영화 제작사나 TV 외주제작사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못된 짓이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배우들은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니지먼트의 뜻에 동조하고 있고.

한국영화시장에서 부가시장이 매년 절반씩 날아가고 있다.

오로지 극장개봉 수익에서만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 것 따윈 배우와 매니지먼트는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 동업자란다.


‘스크린 쿼터 수호 만날 투쟁하면 뭐하나.....’


대기업 투자사와 제작사들도 문제다.

톱스타들은 보통 일 년에 스무 편 이상의 시나리오를 받는다.

스타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려면 다른 영화사가 제시한 금액보다 더 줘야 한다.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기준도 근거도 없이 올린다는 점.

저쪽에서 올리면 이쪽에서 올리고, 이쪽에서 올리면 또 저쪽에서 올리고... 악순환이다.

티켓파워가 있는 무비스타가 높은 개런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5,000억 원 규모의 박스오피스 시장, 총 관객 수 1억 3천만 명, 1인 당 관람횟수 2.3회, 부가시장은 6,000억 수준으로 떨어진 현실과 영화 한 편 흥행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빚더미를 떠 앉는 현실을 감안하면 약간의 동업자 정신도 필요하다.

말로는 한국영화 발전, 스태프에 대해 무한 감사, 동업자 정신을 떠들면서 실상 제 잇속만 챙기기 바쁜 것이 영화판이라곤 하지만.

시장이 망가진 후에 배우의 개런티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암튼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들 하지 않나.

올 한 해 사회적으로 개혁이다 뭐다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누구는 큰 진전이라고 하고, 누구는 미진하다며 아쉬워했다.

거기에 연예계에 류지호가 던진 폭탄이 날로 논쟁을 키워갔다.

그런 분위기에서 맞이한 제13회 춘사영화상 시상식.

영화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영화계 내분이라고 쓰고 밥그릇 싸움이라고 읽는 일련의 사태를 팝콘을 씹어 먹으며 기대의 시선으로 지켜봤다.

<민중의 적 : EMBARGO>가 춘사상에서 적어도 한 개 이상은 수상한 것이란 것을 의심하는 영화팬은 없다.

최소 감독상은 따 놓은 당상이란 말도 있고.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류지호가 무대에 서서 수상소감을 말할 터.

무언가 논쟁적인 발언을 해주길 기대하는 영화팬들이 많았다.

재밌는 것은 매니지먼트협회의 반응이었다.

협회 차원에서 춘사영화상 시상식을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했다.

류지호와 가온그룹의 영향을 받는 영화상이란 이유를 들었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도리어 자충수가 되었다.

가온그룹은 여러 스폰서 기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춘사영화상은 한국영화인회의, 한국영화배급협회, 제작가협회 등이 중심이 되어서 외압 없이 충무로 영화인들이 주체적으로 주최하는 국내 유일 영화인들의 축제로 자리매김한지 몇 년 됐다.

류지호의 발언에 심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춘사영화상을 보이콧 한 것은 큰 패착이었다.

영화팬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이 매니지먼트 업계를 비판했다.

충무로 분위기 역시 싸늘하게 식었다.

당연히 배우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이들도 크게 실망했다.

당초 CA미디어 산하 매니지먼트 CHAN 소속 배우들만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딴 판으로 시상식이 흘러갔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부 톱스타급들이 춘사영화상에 참석하며 협회의 결정과 선을 긋는 모습을 연출했다.

몇몇 젊은 배우들이 눈치 없이 영화상 시상식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여론에 뭇매를 맞는 촌극도 벌어졌다.


한국 영화계를 사실상 장악한 빌런.


그들은 류지호를 그렇게 규정했다.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여론이 자신들의 편인 줄 오해했다.

그래서 누구나 비판하고 비난해도 되는 줄 착각했다.

매니지먼트 업계는 자신들이 약자이기에 강자가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갑질의 또 다른 유형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임을 모른 척 하며.

류지호는 한국과 미국의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자, 전 세계적으로 개인 기부자 순위 최상위권 인물이며, 툭하면 세계 주요 언론의 표지를 장식하는 거물 중에 거물이다.

영화감독으로써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게 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아시아권에서 공식 팬클럽 회원수 1만 명을 기록하는 슈퍼스타 연예인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게다가 신흥재벌로써 매스컴과도 한 통속(?)이다.

여론전을 벌이면 무조건 필패라는 말이다.


- 꺼지지 않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불똥 튀어 홀랑 타버린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패러디해서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즉 류지호 건드리면 본인만 망한다는 풍자다.


“류 감독!”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드카펫 행사를 마치고 로비로 들어서는 류지호를 아스트로FNH 차성재 대표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일찍 오셨네요.”

“형이라고 하라니까.”

“싫어요.”

“거 참! 뻗대기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적당히 서로 존중해줄 정도의 거리감을 두는 것이 좋았다.

비즈니스에 의리가 끼어드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오늘도 깜짝 선물 있어?”

“부율 조정이 뭐가 선물이에요? 차별을 없앤 것뿐이지. 정상화입니다.”

“으하하. 호떡집 불난 것처럼 류 감독을 엄청 괴롭혔겠구만?”


그래봐야, BGV를 가진 BS그룹의 이희경 부회장과 강은석 감독 정도가 철회를 부탁한 정도다.

사실 다른 극장체인들은 하고 싶어도 당장 부율 조정을 못한다.

55:45 정도가 가능하다.

부율 조정을 명분 삼아 티켓값 인상을 들고 나올 수도 있고.


“내가 대호는 참석하라고 했어. 영화인회의에서 박무영이도 설득한 모양이더라.”


강은석 감독이 실명을 거론해 한창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두 명의 배우다.

2000년대 충무로를 대표하는 톱 중에 톱배우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거지. 쟤들이야 영화사가 돈 더 주겠다는데 싫다고 할 수 있나?”

“안정기 선배님이나 중환 선배는 한창 잘 나갈 때 개런티 동결을 하면서 업계에 부담을 덜어줬어요.”

“모두가 공범이지. 이 사태를 초래한....”


차성재가 씁쓸한 듯 말끝을 흐렸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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