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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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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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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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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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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세계적인 명사(名士)잖아요!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민중의 적 : EMBARGO> 제작진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을 치하하는 오찬자리다.

류지호 외에 세 명의 주인공과 PD, WaW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가 초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가 아는 사람이 감독을 했으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후보시절 문화예술인 간담회부터 경제인신년회 등 자주는 아니지만 사적인 대화를 몇 번 나눈 것으로 대통령이 류지호에게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송라원씨는 영화에서 본 사람이랑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그래서 천상 배우인가 봅니다. 설형기씨는 영화에서 하도 욕을 많이 해서 거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만나보니 샤프한 분인 것 같습니다. 전주호씨는 젠틀한 이미지에서 어떻게 그렇게 나쁜 사람 모습을 잘 표현했는지, 내가 막 때려주고 싶지 뭡니까?”


전주호 배우가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사실 충청도 양반의 후손입니다. 영화 이미지로 생각하시면 좀 답답하실 겁니다.”


대통령 내외는 영화가 개봉하고 이틀 뒤 G.O.M 명동(구 유림극장)에서 관람했다고 했다.


“영화가 지루하시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봤어요. 전날, 업무를 보느라 잠을 못 자고 갔는데, 안 졸고 다 봤어요.”


하하하.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치 싸움을 거는 것 같습니다.”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언론과 틀어지면 온갖 안 좋은 기사가 나오겠지만, 영화감독은 좀 다르니까요. 자신들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영화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 거죠.”

“하하. 그 패기가 참 부럽습니다.”

“당당한 걸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와 기관원 출입금지’는... 뭐랄까. 좀 그래요. 우리사회가 민주주의로 좀 더 나아가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류 의장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거니까요. 비민주주의적인 사람들이 자꾸 민주주의를 구호처럼 외치니까 진짜 민주주의 하는 국민들 피로도만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치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정치라는 것도 있는 것이잖습니까?”


흠.

WaW 대표이사 정운규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오너가 정치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건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제가 영화인을 대표하진 않지만, 업계를 대신해서 한 말씀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류 의장 사람들은 매사 거침이 없습니다. 아,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번 말해보세요. 내 경청하겠습니다.”

“최근 영진위의 발표에 따르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한국영상산업의 피해액이 연간 2,800억 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영화에서 돌고 있는 자금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비디오시장의 몰락과 함께 DVD시장의 부진이 맞물리며 한국영화 매출은 극장 부문에 70∼80%나 편중되는 기형적인 구조로 고착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불법 다운로드라는 원죄를 출발점으로 할리우드 직배사와 한국 업체들 간 출혈경쟁의 자충수를 강요당한 한국 DVD시장은 고사 상태에 빠졌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약간의 숨통을 틔운 음반시장과 달리 비디오·DVD시장은 영화 매체의 일회적 특성 때문에 단속 외에 특별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작년 10%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전체 한국 영화시장의 침체보다 DVD전문 제작사들이 무너지는 것이 더 심각한 사안이다.

스펙트럼DVD를 제외하고 비트윈, 스타맥스, 엔터원 등 국내를 대표했던 DVD 제작사들이 타기업으로 합병되거나 사업방향을 다른 곳으로 선회하고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들도 조만간 비디오·DVD 사업을 철수할 계획이다.

배석한 문화관광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부가판권 중 채널 관련 방송시장은 오히려 성장했습니다. 다만 DVD를 중심으로 나머지 윈도들은 상황이 썩 좋지 못하지만, DMB를 필두로 한 신규 창구가 새로운 시장이 되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IP TV, DMB가 새로운 영상문화 콘텐츠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가.

업계의 기대감이 매우 컸다.

문화관광부장관이 덧붙였다.


“한국영화는 당분간 극장, 방송, 해외를 젖줄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신중론.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황인식 부족.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류 의장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정운규 사장에게 판을 깔아주고 싶었지만, 대통령이 물으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DVD가 극장을 넘어서는 수익 창구로 자리매김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논외로 하더라도 가파르게 줄어드는 국내 DVD 타이틀의 판매량은 분명 영화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흥행 DVD 타이틀은 3만장을 넘기지 못하고, 소위 초대박 타이틀도 10만장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DMB시장도 영화 자체에 대한 판권투자 외에는 검증된 효과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극장과 채널 사이의 부가시장이 무너지면 한국영화산업이 매우 기형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문화관광부장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조금 자세히 들어볼 수 있겠어요?”


장관이 정확한 사정을 알 리가 없다.

대답은 뻔했다.

정리해서 따로 보고 드리겠다.


“......”


류지호가 정운규와 시선을 맞췄다.

정운규 사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 여기 정운규 사장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국내 부가 판권 시장은 OECD 국가 평균치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OECD 국가의 부가 판권 시장은 극장 시장의 2배에 육박하며 전체 영화 시장의 60~70%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부가 판권 시장이 전체의 10~20%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방송 판권 비중이 대부분입니다. 한때 2만개를 넘었던 DVD대여점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5,000개 이하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DVD플레이어는 신혼부부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국내 450만 가구에 보급돼 있다는 겁니다.”


정부 통계는 모르지만.

국내 최대 토탈웨딩업체 가온웨딩이 조사한 결과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물었다.


“수요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여점이 감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국이 불법복제물 유통 단속에 미온적이고, 온라인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처벌도 미미합니다. 관련 법령도 미비 되었고..... 지적재산권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 신산업동력인 엔터테인먼트가 고사할 수도 있습니다.”


정운규 사장은 영화인들을 대신해 직언을 하기로 작정하고 오찬에 참석한 것 같았다.

대통령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그룹 자체적으로 단속활동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꽤나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저희 앞가림하기도 벅찹니다. 가온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많고 다양해서 사실 자체 단속과 손해배상 청구로 얻는 실익이 별로 없습니다. 민간에서 국민 일반의 의식을 바꾸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요.”

“그렇지요. 이것은 불법을 논하기 이전에 문화와 인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국내 부가시장 고사도 문제지만, 해외 시장 개척에도 장애물로 작용할 것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지요?”

“한국 영화·드라마 최대 수출국은 일본입니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우리 영화들이 무분별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입은 손해를 벌충하려고 하다가 장기적으로 우리 영화의 해외시장 개척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가 듭니다. 일본영화 수출가에 거품이 상당히 껴있어서 올해와 내년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수출길이 막힐 위험성도 있습니다. 장관님이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대만시장에서 이미 그런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 축하 오찬이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대통령 간담회가 되어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를 떠날 때 정운규 사장은 문화관광부장관으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웃겼다.

언제 또 영화계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전할 수 있을까.


“불법복제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분명히 심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공기업이 더 심하죠. 불법 다운로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데 나물라라...”


오찬 자리에서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들으라고 한 말이기도 했고.

대통령이 문화관광부 장관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문화관광부와 경찰이 협력해 지속적으로 단속하는 방안을 수립해 보세요.”

“예. 대통령님.”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될 것이다.

하다못해 시행령으로 불법복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주면 좋으련만.

앓으니 죽는다.


“자, 더 할 말은 없겠지요?”

“앞으로는 스태프 모두를 초청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마 청와대 경호실에서 보안 문제로 인원을 조정하는 것 같은데... 맞지요?”


비서실장이 확인해 주었다.


“예.”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팀, 미식축구팀, 농구팀의 경우 모든 선수단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수단을 영화로 대입하면 스태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 작업도 팀플레이가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청와대를 떠나기 전에 류 감독이 해외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수상하게 되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됐지요?”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 청와대 밥 좀 먹여주려다 불가능한 미션을 부여 받은 것 같습니다. 혹시 취소해도 될까요?”

“이제 임기 절반이 지났습니다. 조금만 노력해 보세요.”

“하던 대로 하는 거죠 뭐....”


간담회처럼 변질되기는 했지만, 오찬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당초 한 시간이 예정되었던 오찬이 20분 정도 더 경과되어 마무리 되었다.

대통령에게 DVD시장에 대해 앓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가온그룹 계열사 스펙트럼DVD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다.

스펙트럼DVD가 출시하는 타이틀은 타업체들의 형식적인 부록과 비교해 월등히 알찬 내용을 담는 것으로 유명했다.

출시하는 모든 제품은 일반 구매자뿐만 아니라 현직 영화인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어 주고 있다.

<복수의 꽃>의 경우 캐나다 Eye-MAX 본사까지 찾아가 엔지니어들의 인터뷰를 따오고, <퇴마기록> DVD 부록에서 VFX 기획과정부터 최종 완성본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뭐니 뭐니 해도 DVD의 미덕은 가정에서 즐기기에 가장 최적화된 화질과 음질이다.

스펙트럼DVD는 극장에서 대사가 들리지 않았다는 한국영화의 사운드 소스를 따로 받아다 작업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DVD는 스펙트럼!"


국내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유명해 수출까지 되고 있다.

이전 삶에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시기에도 DVD가 계속해서 판매되었던 것에는 물리적 매체의 특징이 분명 존재했다. 소위 ‘소장감’이라고 하는 마니아들의 취미생활을 충족시켜 주는 면도 있다.

어둠의 경로로 모아놓은 수백편의 최신영화를 외장하드에 담아놓고 흡족하게 짓는 미소 뒤에는 어떤 허전함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일단 모아놓고 나중에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마구 모아보지만.

하드용량이 부족하거나 외장하드를 더 이상 사기 싫어지면 오래된 영화부터, 다음은 용량이 작은 영화가 제일 먼저 삭제되는.... 주기적으로 창고정리 같은 일이 벌어진다.

반면에 돈 주고 산 DVD 타이틀은 이사 갈 때도 생존하는 편이다.

내 돈 내고 사기도 했고, 장식 역할도 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업체들 간의 출혈경쟁으로 마진율은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펙트럼DVD가 출시하는 극장 흥행영화들의 판매량은 평균 9만장 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스펙트럼DVD는 WaW 픽처스의 영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다.

때문에 삭제씬, 제작과정은 말한 것도 없고, 주요 영화마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기획하고 DVD 작업을 한다.

부록 콘텐츠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또 소장가치를 염두에 두고, 설정집, 주연배우 사인이 들어간 화보집, 때에 따라서는 영화 이미지가 인쇄된 티셔츠를 동봉해 패키지 발매하기도 한다.

스펙트럼DVD의 오프라인 매장 조이숍이 지하철역 인근에 위치해서 고객들이 DVD 방문 대여·반납 및 구매 접근성이 좋다.

캐릭터 상품 판매와 주간영화 잡지 시네필까지 덩달아 매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DVD 원가가 타업체에 비해 높다.

조이숍 같은 자회사 매출로 상쇄하고 있다.

수직계열화를 이룬 결과다.

류지호의 우려와는 달리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옮겨갈 시기까지 스펙트럼DVD는 버티는 것을 넘어 수익까지 보고 있다.

이전 삶에서 StreamFlicks는 2013년부터 미국 내 DVD 대여 독점기업이었다.

미국에서 DVD 온라인 대여서비스를 하는 유일한 업체였다.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DVD대여는 알짜 사업이었다.

스펙트럼DVD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시장이 거의 소멸되어 가더라도 한국의 영화 마니아들은 건재할 테니까.

바로 옆에 불법복제 청정국 일본도 있고.


✻ ✻ ✻


영화팀은 보안검색을 받은 후 청와대를 빠져나와 인근 커피숍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감독님. 혹시 3편도 찍어?”


설형기의 물음에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모르죠.”

“보니까. 천만까지도 가겠던데?”

“더는 강철중 역할하기 싫다면서요?”

“...만약 3편을 하게 되면 말이야... 뭘 또 파헤치게 되는 거야?”

“안 한다면서 뭘 궁금해 한대?”

“시나리오 있으시구만?”

“아직 없어요. 아이디어는 있지만.”

“뭔데?”

“교회.”

“사이비 종교?”

“아니요. 일반 교회요.”

“.....?”

“기독교 대형 교단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꽤 많은가 보더라고요.”

“아무리 감독님이라도 종교 잘 못 건드리면 힘들 텐데.”

“하기 싫으면 말아요. 강철중 비긴스로 리부트 하면 되니까.”

“이거 왜 이러신데 울 감독님이... 내가 강철중을 연기한 설형기요.”

“나는 강철중을 창조한 류지호입니다.”


킥킥.


일행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철중 비긴스라....’


이제 와서는 굳이 설형기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류지호가 시나리오를 보내면 거절할 배우는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민중의 적> IP는 다솜방송의 TV시리즈도 고려하고 있다.


<인간시장>의 장총찬!


베스트셀러이자 한때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다.

신들린 듯한 표창 솜씨와 무술 실력, 불타오르는 정의감.

80년대의 어두웠던 시절을 환히 밝혔던 인물이다.

비록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 캐릭터일 뿐이었지만.

21세기 스타일의 장총찬이 강철중으로 부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여러 사건을 거치며 개과천선하는 이야기.

흔한 스토리다.

굳이 거대한 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약자 편에 서서 일상에서 나쁜 놈을 혼내주는 이야기면 족하다.

그런 아이디어는 아무 신문이나 사회면만 펼치면 널리고 널렸다.

한국에서는 이보다 좋은 캐릭터와 스토리도 없다.

영웅이 나타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 ❉ ❉


류지호는 청와대 오찬을 마치고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조성된 가온복합타운의 첫 사업장인 대형쇼핑몰과 멀티플렉스 개장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식 오픈하게 되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에 이름을 올리게 될 G.O.M 센텀시티점 카페테리아에서 류지호가 에드윈 터너와 차담을 나누고 있다.


“미리 알려주시지. 더 멋진 이벤트로 만들어 드릴 수 있었는데.”


류지호의 음성에 가시가 돋쳐있었다.


“내가 네 결재를 받고 움직여야 해?”

“정식으로 초청한다고 전부터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

“이번 방문 말고. 여름에요!”

“일본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지, 아마?”

“전화라도 주시지.....”

“영화 찍을 때 아무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내가 잘못 알았어?”

“사안이 중요하잖아요.”

“중요하긴 하지.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이었으니까.”


사연을 이랬다.

지난 8월이었다.

워싱턴타임스 사장, 미하원 군사위원회 부위장, 전주한미국대사, 터너재단 대표 등 10명과 에드윈 터너가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지도자를 만나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 ‘비무장지대 자연생태 보존’ ‘한반도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 등에 관해 논의했다.

직후 에드윈 터너는 한국을 방문해 도라산 전망대에서 행사를 갖고, 킨텍스에서 경기도 세계평화축전 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2005년 DMZ포럼 국제회의’에도 참석했다.

겉으로는 환경문제와 관련한 국제행사처럼 비춰졌다.

이면에는 정치·외교적 이벤트가 크게 벌어졌었다.

당시 국제회의에는 국제두루미재단 이사장, 세계자연보전연맹 황새보호위원장, 남아공 평화의공원재단 대표, DMZ포럼 대표 등 세계적인 환경전문가들이 다수 참가했다.

자연생태계 보호에 관심이 많은 에드윈 터너는 ‘도라산 평화인권 강연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제안’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자연생태 보존사업을 위해 DMZ을 한반도 멸종 위기 동·식물 특별 보전구역으로 선포하고, DMZ을 세계평화공원이나 아시아 평화공원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북한의 지도자가 자네에게 관심이 많더군.”

“그런 끔찍한 농담은 사절이에요.”

“진짜야. 내가 자네와 친하다고 하니까, 북한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주선을 해달라고 하더구만.”

“안 가요.”

“자네 정도 되는 인물이 나서면 좋지.”

“통일부에서 허가를 안 내줄걸요?”

“거 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군. 한 때는 한 나라였잖아.”

“복잡해요. 그냥 걔들은 걔들대로 살고 우린 우리대로 살고.....”


과거로 돌아와 큰 힘을 갖게 되었다지만, 남북한 문제까지 오지랖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뾰족한 대안도 없고.


“그건 그렇고. 내년 남아공 평화공원 준공식에 참석할 수 있겠어?”


현재 아프리카에서 20개 접경지역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내년 남아공에 새롭게 평화공원이 문을 열 예정이다.

JHO재단은 터너재단과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조성되고 있는 평화공원의 최대 후원자다.


“일정을 봐야 알 것 같아요.”

“가을에 열리니 자네 피앙세와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 같군.”

“레오나와 의논해 볼게요.”

“DMZ에 관심을 갖도록 해. 네 조국의 일이잖아.”

“DMZ가 세계유산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보세요?”

“한국 정치인들의 의지가 중요하지.”

“DMZ 생태공원 조성 사업에 터너재단도 투자하는 거고요?”

“자연생태 보존 사업을 위한 특별보호구역으로 선포하고,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적극 지원할 용의가 있어.”

“북한에서는 뭐래요?”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을 곧바로 방문한 것 보면 모르나?”


류지호 입에서 한국말 투덜거림이 나왔다.


“이 양반이 어디서 약을 팔아....”

“뭐라고?”

“남북한 지도자 만남을 주선하세요?”

“노 코멘트.”

“DMZ의 연어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죠?”

“회귀성 어류인 연어 살리기 사업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해 볼까해.”

“내년 남아공 평화공원 개장식에 남북 대표단을 파견할 것 같으세요?”

“남한의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어. 북한은 잘 모르겠어. 빙빙 돌려서 말을 하더군. 사실 만델라 대통령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네. 그쪽에 먼저 허락을 구해야겠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힘 좀 많이 써주세요.”

“내가 뭐라고.”

“세계적인 명사시잖아요.”

“네 녀석은 마치 아니라는 듯 말하는 구나?”

“암튼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고. 제발 한반도와 관련된 일 하실 때 미리 좀 알려주세요. 뭘 하든 더 폼 나게 해드릴 테니까.” “하하. 알겠다.”


에드윈 터너는 몇 해 전부터 남북한 정상들과의 만남에 적잖은 공을 들여왔다.

올해 실제 면담이 이뤄졌다.

비록 북한부터 방문하면서 두 정상간 가교역할은 못했지만, 다음에 또 방문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북한의 핵비확산조약 탈퇴와 미사일 발사 조짐 등, 남북관계가 경색된 한반도에서 에드윈 터너와 전·현직 워싱턴 정가 거물들이 물밑에서 뭔가 단초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고마워요.”

“뭘?”

“뭐겠어요?”

“인석이 징그럽게!”


에드윈 터너는 자연생태계 보전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90년에 터너재단을 설립해 다섯 자녀와 함께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1997년에는 10억 달러의 사재를 출연해 UN재단을 설립하고 지구촌 비핵화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 세계 분쟁지역 접경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실제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

에드윈 터너 같은 미국의 부자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류지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비록 자기만족일지라도.


‘이 양반들이 현실 감각이 별로 없긴 하지.’


에드윈 터너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돈 내놓으라고 협박(?)할 때가 있다.

듣기 싫을 때도 있고, 짜증날 때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DMZ 생태계를 보존하는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잔소리 하곤 했다.

정작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데.

에드윈 터너는 미국에서도 수위에 드는 부자다.

현금 동원력은 류지호보다 더 할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에드윈 터너는 한반도와 관련된 어떤 것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본인도 그것을 안다.

헌데, 열심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에드윈 터너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삶의 흔적.

즉 말년에 공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버라이어티 한 삶을 살았던 에드윈 터너의 서명 같은 것이다.


“제발 좀 자정 넘어서는 전화 좀 하지 마세요. 잠을 자야 일을 할 거 아닙니까!”


류지호의 진심이었다.

개인 연락처를 괜히 알려주었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그러게 왜 자꾸 싸돌아 다녀. 빨리 정착해. 캘리포니아든 뉴욕이든.”


작가의말

활기차게 한 주 시작하시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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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10.23 09:19
    No. 1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3.10.23 09:48
    No. 2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3.10.23 09:56
    No. 3

    옛날에는 진짜 프라임 가서 “레퍼런스” 타이틀 찾아보고 잡지 부록으로 껴준 DVD 있어도 다시 사고 그랬는데… 결혼하니 돈이 없어서 애들이랑 같이 볼만한 컨텐츠만 구매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10.23 18:34
    No. 4

    DVD 를 많이 사서 모았는데 솔직히
    한국 DVD 타이틀 들은 가격 대비 가치가 없습니다
    신작 영화 인데 화질 음질 이 비디오 테이프 보다
    안좋은것도 많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바람으로
    작성일
    23.11.04 22:27
    No. 5

    잘보고갑니다 건필하세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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