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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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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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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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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여보, 변호사님은 언제 오신데요? 빨리 와야 하는데.... 어떻게든 우리 지호 호적에 빨간 줄 가는 건 막아야죠.”


류민상과 심영숙이 경찰서 앞에서 초조하게 신효정을 기다렸다.


끼이익.


경찰서 현관 앞에 검정색 각진 그랜저가 멈췄다.

운전석에서 튀어나온 듬직한 체격의 사내가 공손하게 뒷좌석 문을 열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장문식이란 이름의 사내다.

걷는 폼이나 행동거지가 운전기사라기보다 조폭의 냄새를 풍겼다.

각그랜저에서 내린 여성은 뜻밖의 인물이다.

주인공은 바로 채연지.

반대편에서 중년의 남자가 함께 내렸다.


“변호사님 가시죠.”

“예, 사모님.”


채연지가 변호사라 불린 사내와 함께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 하는 심영숙을 지나쳐갔다.


“아, 씨바... 어떻게 하지? 조금 있음 부모님 올 텐데....”


똘마니들이 죽상을 하고 앉아있었다.

박광렬만이 태연한 얼굴로 다리를 꼬고 앉아 건들거렸다.


“쯧. 병신아 상황 파악 안 되냐?”

“응?”

“우리 아버지가 누구냐? 주안에서 나이트를 한다 이 말이야. 여기 남부서에도 기름칠 존나게 많이 했을걸.”

“기름칠?”


빠르게 머리를 굴린 오강두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짭새들이 우리 편이라는 거구나?”

“쉿! 이제 대갈빡이 돌아 가냐?”


그제야 상황이 이해된 똘마니들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졌다.


“태권도 유단자라며? 몇 단이야?”

“저는 2단이고, 우찬이는 1단입니다.”

“태권도 배운 놈들이 민간인을 폭행해?”

“이미 저희가 일방적으로 다수의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너희들은 태권도 유단자고 쟤들은 무술 배운 놈이 없다던데?”

“백번 양보해서, 형사님의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시는 바를 인정한다고 해도 태권도 2단과 1단이 무술에 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럼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성인 남성은 모두 태권도 유단지이니 폭행을 당해도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거네요?”

“......”

“형사님, 저와 친구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에게는 징벌보다 선도가 우선이란 점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선도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무술 배운 놈들이 민간인을 팼는데 그게 선도할 사항이냐?”


형사는 계속해서 류지호와 고우찬을 폭행 가해자로 몰아갔다.

노골적으로 나오는 담당형사를 보며 돌아가는 상황을 유추하지 못할 류지호가 아니다.

류지호는 신효정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을 끌며 버티기로 했다.


“변호사님이 오시기 전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지랄한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여기 변호사 왔어요.”


류지호와 고우찬의 고개가 돌아갔다.


“지호 학생, 고생 많았지?”

“아, 아줌마...?”


채연지가 함께 온 중년남자를 가리켰다.


“형사님, 여기 변호사님 입회하에 조사를 진행해도 될까요?”


변호사라고 소개 받은 남자가 나섰다.


“자, 학생들은 지금부터 내가 대답하라는 질문에만 말을 하고, 그 외에는 입을 열지 마. 거기 착하게 생긴 학생은 똑똑하다고 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예? 예!”


류지호는 난데없는 채연지의 출현에 영문을 몰라 말을 더듬었다.

채연지가 어떻게 변호사를 데리고 왔는지, 변호사가 사모님이란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는 모습 등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사모님은 집으로 가서 쉬십시오.”

“필요하면 참고인이나 증언을 해 줄 수 있어요. 난 괜찮으니 저기 지호학생 잘 좀 부탁해요.”


중년의 변호사가 빈 의자를 가져와 류지호 옆에 자리를 떡하니 잡았다.


탁!


장문식이 비닐봉지를 형사의 책상에 놓았다.


“뇌물 안 받아요.”


형사가 비닐봉지를 중년의 변호사에게 밀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거기 들어있는 소주병 잔해와 유리컵 등을 폭행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학생들이 집단패싸움을 벌였던 영업장 아네모네에서 수거한 물증으로써 가해자 중 한명이 저기 덩치 큰 학생의 후두부를 강타했던 흉기입니다. 여기 두 학생은 소주병과 주점 집기 등 흉기를 휘두르는 여덟 명의 집단 가해자들로부터 스스로의 신변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위권을 행사했습니다.”

“자, 잠깐!”


형사가 황급히 비닐봉지를 열어 젖혔다.

봉지 안에는 소주병 잔해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현장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변호사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어조를 말을 이었다.


“폭행사건 현장에 있었던 정황을 증언해줄 몇 명의 증인은 이미 확보하고 있으며, 해당 영업장의 업주가 당시 상황을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진술해 줄 것입니다.”


담당형사는 어리둥절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고등학생이 변호사를 불렀다.

변호사는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도 신경 쓰지 않았던 현장의 증거물과 사진을 찍어 왔다.

형사는 적당히 쌍방폭행으로 합의를 유도하면서 박민국 측에 힘을 실어 줄 계획이었다.


“이런 씨X...”


성인의 경우 흉기폭행은 1년 이상 징역이다.

일반폭행에 비해 흉기폭행은 상당히 엄하게 처벌된다.

미성년자라고 해도 일반 폭행과 흉기폭행의 처벌은 경중이 다르다.

담당형사가 슬그머니 박민국을 쳐다봤다.

어리둥절한 것은 박민국도 마찬가지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박사장님 아니셔?”


장문식이 박민국을 발견하고 아는 척을 했다.

그의 행동에는 다분히 장난기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나른함과 날카로움.

상반되는 분위기를 동시에 가진 남자.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장문식이다.

류지호는 장문식의 뿔테 안경 너머에 자리한 눈동자를 보았다.


“......!”


나른한 얼굴로 쳐다보는 장문식의 눈동자 안에는 짐승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진짜 사람 몇 담가본 눈이다.

가까이 하면 좋은 꼴 못 볼 부류의 남자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고우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류지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나도 몰라.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류지호도 마찬가지다.


“박사장, 바쁜 신가? 나랑 담배 한 대 핍시다.”


존대와 하대를 넘나드는 전형적인 건달 말투.


끄응.


박민국은 앓는 소리를 냈다.


“나갑시다.”

“그, 그럴까?”


장문식이 박민국과 함께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류지호와 고우찬은 채연지가 데리고 온 변호사의 입회하에 조사를 받았다.

장문식과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박민국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중년 변호사의 입에서 살인미수 등의 말이 언급되자, 박민국은 부랴부랴 변호사를 섭외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19세 미만은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요. 단순 폭행의 경우 만약 피해 학생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면 더 이상 형사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요. 그런데 폭행치상이나 상해인 경우엔 많이 다릅니다.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죠.”


채연지가 데리고 온 변호사가 류지호 부모님께 설명했다.


“합의를 보라고 하는데.... 어째야 하는지.”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이 합의를 하게 되면 처벌 수위는 낮아집니다. 대신 가해자 측은 합의를 통해 치료비 등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거죠.”

“형사님이 자꾸 쌍방폭행이라며 우리 얘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하는데, 빨간 줄 가는 거 아니겠죠?”

“형사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암튼 형사처벌과 상관없이 민사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부분도 염두에 두시는 게 좋습니다.”


담당형사는 양측 부모들에게 은근히 합의할 것을 유도했다.

류민상은 신효정 변호사가 오기까지 합의를 유보했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을 즈음 신효정 변호사가 남부경찰서에 도착했다.

채연지가 데리고 온 중년의 변호사에게 사건을 인계 받아 꼼꼼하게 사건을 확인했다.


“험한 꼴 당했다고 기죽지 말고.”

“이 신세는 꼭 갚을 게요. 아줌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너무 걱정 마세요. 잘 해결될 겁니다.”


류지호의 부모님이 경찰서를 떠나는 채연지 일행을 배웅했다.


“몇 달 전에 서울에서 인사했지? 신효정 변호사님.”


고우찬은 계속된 상황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뭐라고 변호사가 둘씩이 나타나 변호를 해준단 말인가.

일단 신효정에서 공손하게 구십도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뒤의 일은 류지호 가족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

사건이 급물살을 탄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선배님, 신효정입니다. 이른 시간에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신효정이 중간에 전화를 걸고 돌아온 후에도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형사는 신효정을 힐긋거리며 진땀을 빼기도 했다.

다행히 조사 받는 분위기도 좋아 졌다.

아침이 밝아 올 때 즈음, 류지호 가족과 고우찬은 경찰서를 나설 수 있었다.

심영숙이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얼른 가서 두부 사올게.”

“교도소 출소한 것도 아닌데 무슨 두부야.”


류민상이 아내에게 핀잔을 줬다.


“밤새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효정이 류지호의 가족을 위로했다.


“아닙니다. 고생은 변호사님이 하셨죠.”

“큰 도움을 주셨어요. 변호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부가 진심을 담아 신효정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빠! 그만 때려요!”


한쪽에서 고우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는 고성재가 보였다.

쥐어박는 아버지와 도망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어딘지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해장국으로 빈속을 채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효정이 류민상에게 식사를 제의했다.


“지호는 순두부 먹어. 그것도 두부니까!”


류지호는 죄송한 마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일행은 남부경찰서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별일 없을 것이라며 부모님을 안심시킨 신효정이 서울로 돌아갔다.

일요일 하루 종일 류지호는 방에 처박혔다.

류아라가 큰오빠에게 놀아달라고 할 때면 심영숙이 엄한 표정으로 이를 말렸다.

휴일 내내 집안 분위기는 우울했다.

월요일에 되어 등교했다.

경찰서에서 신포고로 패싸움 사실이 통보되었는지 학생주임이 불러 근신을 명령했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징계위원회에서 처분이 결정될 때까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학생부에서 대기해야 했다.

때때로 학생주임이 찾아와 화장실 청소와 교정의 쓰레기를 주우라는 지시 외에 두 사람은 학생들과의 교류조차 차단당했다.


❉ ❉ ❉


신효정은 박광렬측에게 유인, 갈취, 상습폭행 등을 포함한 민사소송을 걸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박민국은 장문식에게 류지호 측과의 중재를 부탁했다.

신효정은 조폭이 중간에 끼어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 조폭까지 인연을 맺었지요?”

“인연이 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는 없어요.”

“중요한 건 아네모네 사장 아줌마가 저와 우찬이를 도왔다는 사실입니다. 대가든 뭐든 신변호사님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보기로 하죠.”


신효정이 장문식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저도 함께 만나겠습니다.”

“지호학생과 부모님은 가해자 측과 가급적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도대체 부모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 아들이 안하무인이었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까.”

“뒷골목 쪽 인간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어요.”

“악연이란 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 직업을 갖게 되면, 필연적으로 소위 ‘반달’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이 닿을 수밖에 없다.

9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00년 이후에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폭력조직 출신이나 자금이 돌아다닐 테니까.


호로록.


올림푸스 호텔 커피숍에서 박민국과 장문식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박민국이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작 고삐리한테 이렇게 끌려 다니다니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구먼.”


재판으로 가기 전에 화해 절차, 서면에 의한 화해 등 다양한 분쟁조정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박민국은 장문식에게 류지호 부모와 직접 만나 합의를 보겠다며 중재를 요청했다.

변호사를 배제한 채 만만한 류지호의 부모와 담판을 지으려고 한 것이다.

장문식이 커피를 호로록 한 모금 마시고, 말을 받았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보단 낫지 않수. 뭐 애초에 댁 아들이 얘들 삥 뜯고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지만.”

“으음.”


정중한 말투 속에 감춰진 빈정거림을 느낀 박민국이 않는 소리를 냈다.

자신의 아들놈이 크게 다치긴 했지만 집단으로 두 학생을 다구리 놓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앞에 앉아있는 사내는 인천지역 정통 계보에 속해 있는 건달이다.

현재는 조직의 큰형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어 세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인천 지역에서 장문식의 이름 석 자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성질대로 상대해야 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장문식은 더 이상 속을 긁지 않고 달래듯이 말했다.


“박사장도 알아봤겠지만, 그 꼬맹이 고문변호사라는 여자 보통이 아니오. 경찰서에서 검사한테 갑자기 전화 온 거 보면 뭐 느끼는 거 없수?“

“아니, 그 애새끼는 별 볼일 없는 집구석의 평범한 고삐리 주제에 무슨 고문변호사가 다 있어?”

“사업한다는 양반이 신문도 안 봐? 작년에 6.25 참전용사 손녀를 구했던 고등학생이 박사장이 애새끼라고 부르는 그 학생이오.”

“참전용사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가?”

“그건 신문에 안 났으니까 모르지. 근데 떡하니 고문변호사까지 붙여준 거 보면 대충 견적 나오지 않수. 미국에서 한 자리 하거나 졸라 부자거나.”


박민국이 속이 타는 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건드려도 만만한 상대를 골랐어야지, 병신 같은....!’


애초에 나쁜 짓을 하지 말도록 훈육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박민국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는 모양이다.


“인천지검의 거 윤 검사인가 하는 영감이 왜 경찰서에 전화했겠수? 윤 검사인가 하는 양반하고 여자 변호사하고 서울대 선후배랍디다. 자꾸 버팅기다가 빌미를 줘 봤자 좋을 게 없지 않겠수?”

“젠장!”

“이번 일은 가급적 조용히 마무리를 짓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될 거요. 그치들이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들었으니 그만하시오.”


박민국은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만큼 언제고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에 당한 걸 꼭 되갚아 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더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피식.


장문식이 그런 속내를 눈치 채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때 조폭처럼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장문식에게 귓속말을 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장문식이 박민국을 보며 말했다.


“도착한 모양이오.”


중재를 맡은 만큼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문식은 동생들을 시켜 호텔 곳곳에서 은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박민국이 폭력조직에 몸을 담근 인사는 아니지만, 반쯤 조폭들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양아치나 조폭을 동원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잠시 뒤 커피숍으로 신효정과 류지호가 들어왔다.

박민국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만만한 부모가 와야 하는데, 류지호가 고문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문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는 얼굴로 신효정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문식입니다.”

“신효정 변호사에요.”


신효정이 사무적인 어조로 장문식과 악수를 나눴다.

박민식은 불쾌한 티를 잔뜩 내면서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누구도 류지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류지호 역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쪽은 구면이시죠? 박광렬 학생의 부친 박민국씨입니다.”


박민국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서로 웃으면서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니 그냥 넘어갑시다.”

“그러시죠.”


류지호와 신효정이 박민국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장문식이 작게 헛기침을 하곤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자, 다들 바쁜 분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박민국이 류지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 요구는 간단합니다. 굳이 일을 키워봐야 쌍방에게 좋을 것이 없으니 이번 일을 깔끔하게 덮자는 겁니다.”


류지호는 쏘아보는 박민국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신효정이 입을 열었다.


“뭔가 큰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지호학생이 여기 나온 이유는 어설픈 협박 따위가 겁이 나서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요!”

“법적 분쟁은 물론이고. 그 외에 어떤 위해 시도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효정이 조금도 위축되는 것 없이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박민국은 헛바람을 내뱉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격해지려고 했다.

장문식이 끼어들어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다투려고 이 자리에 모인 건 아니니까 둘 다 신경전은 이쯤에서 끝냅시다. 양쪽 모두 감정만 내세워서야 득 될 것이 없지 않나?”


박민국은 인상을 찡그린 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다.

류지호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박광렬이 그렇듯 개차반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이트클럽을 운영한다고 해서 조폭이라거나 쓰레기 인성이라거나 하는 선입견은 없었다.

그런데 말투, 태도 등을 보았을 때 박민국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양아치 같은 부모를 보고 자란 아들 역시 양아치가 된 케이스라고 할까.

장문식이 말을 이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기 변호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수?”


길게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기에 장문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민국은 잠깐 신효정을 노려보고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쯧. 그럽시다.”


장문식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럼 그쪽은 박 사장 측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받아들입니다.”

“이걸로 양측이 합의를 본 것으로 하고 이번 일에 관련해서 앙금을 완전히 털어 내는 것으로 합시다. 물론 고소도 단념하고 말이죠.”

“좋습니다.”

“약속하지.”


신효정이 각서를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그녀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요?”


박민국이 각서를 읽어 내려가며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다.

접근금지부터 보복금지, 학생부 징계위 증언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신효정이 다시 입을 뗐다


“민사소송을 포기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허.”


박민국이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을 토했다.


“아드님이 류지호 학생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 주십시오.”


신효정은 수치심에 이를 악무는 박민국을 압박하듯 각서를 앞으로 밀었다.

결국 각서에 지장을 받아냈다.

볼일을 다 끝낸 신효정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여기 류지호 학생을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그 생각을 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학생입니다.”


신효정이 은근히 뒷배가 있다는 사실을 흘렸다.

류지호는 순간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치 상류층 자제가 자신의 배경을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분을 삼키는 박민국을 보고는 통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박민국이 분통을 터트렸다.


“내 이놈에 새끼를 그냥...”

“큭, 아들래미한테 상대를 봐가면서 건드리라고 단단히 교육시켜야겠수.”


장문식이 박민국을 비웃어 주고 커피숍을 나섰다.


“저 각서 효력 없는 거 아닙니까?”

“없어요.”


신효정이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각서 쓰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종이쪽지에 불과하고,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해요. 알아 두세요. 이런 각서는 약속하는 당사자 사이에서만 유효하며, 당사자가 각서대로 약속을 지킬 때나 유효한 것이에요. 또한 그것을 근거로 제3자가 권리주장을 할 수 없어요.”

“자존심까지 건드리면서 각서를 받은 것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면서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거군요?”

“각서라는 게 법적구속력이 없다고 해도 소송상의 증거나 소 제기의 근거 같은 법원에 제시할 증거능력은 되니까요. 조폭과도 연관되어 있고 유흥업소를 오래 운영해본 박 사장은 내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박광렬하고는 이제 더는 엮이지 않는 겁니까?”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류지호는 과연 그럴까 싶었다.

그래서 저런 자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권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폭력이든 재력이든 명예든.


“이 일은 파커가에 보고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지호학생을 캐어하지 못한 나의 실수를 덮자는 말이에요.”


어쨌든 폭행사건이 마무리 된 것으로 류지호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는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더 큰 시련과 도전이 류지호와 고우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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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충성을 다 하겠슴다! (2) +8 22.01.24 9,513 195 21쪽
63 충성을 다 하겠슴다! (1) +10 22.01.22 9,856 214 20쪽
62 Whiplash...! (2) +7 22.01.21 9,469 202 21쪽
61 Whiplash...! (1) +9 22.01.21 9,697 208 27쪽
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691 217 21쪽
59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14 206 21쪽
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21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26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02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82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42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85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08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16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44 186 20쪽
»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05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8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8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8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7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7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89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34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07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5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04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04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30 234 22쪽
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93 21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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