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3 09:05
연재수 :
961 회
조회수 :
4,114,000
추천수 :
126,733
글자수 :
10,676,949

작성
22.01.12 10:00
조회
10,827
추천
211
글자
24쪽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바쁜 일상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한숨 돌릴 수도 있었다.

류지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욱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웨딩비디오와 관련해 리서치를 해야 했고, 사업계획서도 만들어야 했다.

류지호는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신포고 졸업생들을 찾아다녔다.

김준우와 함께 강남의 대형 스튜디오를 탐방하며 업계 동향도 파악했다.


“저거 핫셀블라드 맞지?”

“맞을 걸.”


강남에서도 꽤 유명한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포토그래퍼가 중형카메라의 대표주자인 핫셀블라드(Hasselblad) 500 시리즈로 연출 사진을 찍는 걸 구경한 김준우는 중형카메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아, 갖고 싶다. 저거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야지!”

“저 카메라 가격이 어지간한 자동차 한 대 값에 맞먹을 걸.”

“정말? 진짜야?”

“내가 알기론 그래.”


류지호가 시무룩해진 김준우의 기운을 북돋았다.


“나중에 회사 수익이 커지면, 중형카메라 종류별로 사줄게.”

“진짜지?”

“당연하지.”

“정말정말! 열심히 할 게!”

“핫셀블라드보다 훨씬 더 좋은 놈으로 골라 놔.”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매주 일요일마다 강남 일대 스튜디오와 사진관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열심히 발품을 판 끝에, 중요한 것을 확인했다.

바로 웨딩 사진을 한 권의 포토북으로 제작하는 '웨딩앨범'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란 사실이다.

심지어 야외촬영도 없고, 웨딩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스튜디오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류지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할 때 먼저 시작하면 승산이 있어.’


최초,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미래의 트렌드를 알지 못할 때나 그렇다.

류지호는 이 분야 트렌드를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었으니까.

경쟁업체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들보다 먼저 성공했던 유행상품을 내놓는다면 시장을 주도하며 선도자의 입장을 유지할 수가 있을 테니까.


“오늘은 강북으로 가보려고?”

“이제 웨딩포토나 비디오는 확인 안 해도 될 것 같아. 전반적인 분위기는 충분히 파악한 것 같아.”


오랜만에 사인방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전에 왔을 때보다 청계천 전자상가가 썰렁하네.”


김준우의 말처럼 세운상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다.


“용산에 새로 생긴 전자상가로 점포들이 많이 이주해서 그래.”


류지호 일행은 세운상가의 방송음향 장비점들을 돌아다녔다.

VHS 캠코더부터 올해 국내가전업체에서 출시하기 시작한 8mm 캠코더, 고가의 ENG 카메라까지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지호야, 명동 한 번 가볼래?”


황재정은 웨딩촬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웨딩산업 전반에 호기심을 느꼈다.

황재정은 혼자서 서울에 몇 번 올라왔다.

예식장과 남대문 시장의 혼수품 매장들을 돌아다녔다.


“명동은 왜 돌아다니는데?”

“결혼식 찍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김준우와 고우찬의 불평에 류지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정이가 큰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야.”

“무슨 큰 그림?”

“비디오 말고 웨딩사업 전반에 관심 있나 봐.”

“꼭 그런 건 아닌데. 환경이나 문화를 파악하면 우리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은 자세야.”

“요새 신혼집 전세가가 얼마 하는 줄 알아?”

“글쎄...”


아직까지는 부모님하고 사는 신혼부부가 많을 시기다.


“싼 데는 300만원에서 보통 500만 원 정도 한다더라.”

“아파트?”

“인천에는 주공 말고 아파트가 별로 없잖아. 서울이 그렇대.”


20년 후에 20평 대 아파트 전세가가 몇 억씩 하는 것을 떠올리고, 류지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부동산만한 재테크가 없다.


“예단이나 혼수도 평균 900만원 든다더라.”

“전세보다 더 많이 드네.”

“자가로 집을 구입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거지. 아직도 숟가락, 밥그릇, 냄비 하나 들고 샛방에서 신혼살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아.”


황재정의 비관적인 태도가 튀어 나왔다.

이 당시만 해도 보통의 남녀가 부담하는 결혼비용을 합해 1천만원대였다.

예단과 혼수 준비하는 것에 900만원에서 1천만 원가량이 들었다.

엄청 큰 액수다.

또한 아파트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방 1~2개,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주택에 살았다.

이때만 해도 신혼부부가 부모님과 살면서 차근차근 돈을 모아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분가를 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가정경제가 비교적 내실이 있었다.


“그래서 사업성이 어둡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어두운지 밝은지는 나도 모르지.”

“될 거라고 생각해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 게 사업이야. 안 될 거라고 미리부터 생각하지 말자.”


류지호는 지금 이 시기가 경제적으로나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시점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에서 중산층 이상, 부유층의 허영을 자극하는 것에 영업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들은 한다는 과시욕.

그렇게 시작해서 차츰 시장을 형성한 후, 서민층에게까지 확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류지호는 브랜드 명성 소위 ‘메이커‘로서 위치를 가진다.

류지호가 그리는 로드맵이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 지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입장객들에게 돈을 받고 최초의 활동사진을 상영했다.

<열차의 도작>이란 50초짜리 무성영화였다.

이후 뤼미에르 형제는 세계 곳곳을 돌며 시네마토그라프 상영회를 가져 엄청난 성과를 일궈냈다.

2년 후에는 전 세계에 수백 개의 시네마토그라프를 팔아 치웠고,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 이후로 영화는 전 세계 문화산업의 총아가 되었다.

영화는 발명될 때부터 대중적인 산업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웨딩촬영도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현재는 VCR 보급률이 24%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30만에서 40만 명이 결혼식을 한다.

서울에서만 일 년에 10만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1퍼센트만 영업해도 억대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마땅한 경쟁자도 없다.

무주공산이다.

류지호의 머릿속에 웨딩촬영에 있어서 실패라는 단어는 없었다.

IMF 같은 위기들을 잘 극복해 낸다면 과거로 오기 전 강남의 대형 웨딩스튜디오처럼 업계의 최정점에 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실 웨딩비디오 사업으로 시드머니만 마련해도 된다.

그걸 토대로 해서 류지호는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흥행 할 영화에 투자해도 되고, IMF 전까지 돈을 굴려 달러를 사두어도 대박을 맞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금력으로 한국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한 발 앞서 전개한다면.


‘영화판에서 성공할 수 있어!’


인맥을 쌓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는 것 외에 류지호가 과거로 오기 전의 경험들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돈을 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곧바로 상업영화판으로 들어가는 거야.’


차곡차곡 미래에 대한 설계도가 그림을 맞춰가고 있다.


❉ ❉ ❉


류지호는 웨딩비디오 사업계획서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이 들자, 신효정이 속해있는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진심이었군요.”


아직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진 건 아닌지라 30대의 신효정은 류지호에게 존대를 사용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사업 계획서에요.”


류지호가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를 내밀었다.

10페이지 분량의 문서에는 대략적인 업계 분석과 주요 통계수치들이 표로 작성되어 있었고, 업계 동향과 전망 그리고 사업의 비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눈에 뜨인 것은 사업 목적과 구체적인 예산내역, 매출 전망까지 들어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열일곱 고등학생이 작성할 수 없는 내용의 문서다.

신효정은 문서를 들춰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호 학생.”


신효정이 미심쩍은 얼굴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이거 본인이 한 거 맞아요? 아니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 만든 건가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제 스스로 만든 겁니다.”


대답하는 류지호의 표정은 또렷했다.

눈동자도 빛나고 있다.

강한 자신감과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눈빛.


“못 믿겠다면 간략하게 브리핑 할 수도 있고, 의문사항에 대해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사업계획서는 대기업 신입사원도 못 만들어요.”

“설마요...”


류지호는 멋쩍은 듯 검지로 뺨을 긁적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사업계획서가 미진하다고 느꼈다.

이 시기에는 업계의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도 않았고, 자료를 얻기도 힘들었다.

자료를 얻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문의를 할라치면 고등학생이라고 무시하기 일쑤였고, 사진관련 협회에서는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한 달간 발품을 팔며 이리저리 사정하고 애원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고등학생이라 어른들이 협조를 안 해 주더라고요.”

“좋아요. 진지한 마음으로 검토해 보겠어요.”

“고맙습니다.”

“고등학생이란 신분은 고려하지 않고 볼 거예요.”


류지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꾸했다.


“물론입니다. 저도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지호학생, 그거 알아요?”

“.....?”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을 수 있어요.”


파커 가문은 류지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후원자다.

신효정은 그런 후원자를 두고, 구멍가게 같은 작은 일에 류지호가 쓸데없이 심력을 쏟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좀 더 야망을 가지고 큰일을 꿈꾸며 차곡차곡 준비하기를 바랐다.


“아닙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큰일입니다. 현재의 저에게 작은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말하는 류지호에게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 ❉ ❉


토요일 늦은 저녁 시간.

소뼈해장국으로 유명한 신흥동에 위치한 평양옥.

1945년 장국밥을 팔던 초라한 살림집이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단골이 늘어났고, 주변의 집을 한 채 한 채 사들여 지금에 와서는 7채의 집을 합친 묘한 구조의 평양옥이 되었다.

골목 방들 가운데 가장 큰 방에서 사인방 부모님들이 송년모임을 가졌다.

한쪽에서는 사인방이 갈비탕을 먹고 있었다.

시험기간 마다 사인방이 김준우의 집에서 합숙공부를 하고 있었다.

사인방의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수만 없었다.

과일을 사들고 찾아가 김준우의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고성재는 중국요리를 배달시켜 주기도 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인방의 부모들은 교류하게 되었다.

결국 친목계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모임은 송년회를 겸해 기말고사에서 눈부신 성적 상승을 이뤄낸 아이들을 격려하고 부모들끼리도 축하 하는 성격으로 마련되었다.


“형님, 한 잔 받으세요.”


황재정의 부친 황봉호가 김철민에게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김준우의 부친인 김철민이 35년 돼지띠로 가장 나이가 많았고, 38년 범띠인 류민상과 황봉호가 동갑이었다.

41년생인 고성재는 뱀띠로 이들 사이에서는 막내였다.

아버지들끼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나이와 고향을 따지더니 서로 형님·아우하는 호칭을 사용했고, 어머니들끼리는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썼다.


“아빠, 갈비탕 더 시켜 먹어도 돼?”


고우찬이 갈비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물었다.


“어른들한테 물어보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시켜 먹어. 불고기 더 시켜줄까?”


서글서글한 인상의 김철민이 사인방을 향해 자상하게 말했다.

김준우의 부친 김철민은 골프라도 다녀왔는지 아놀드파머 상표의 골프웨어를 입고 있었고, 아내 조성자 역시 곱게 단장하고 친목계에 참석했다.

황재정의 부친 황봉호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으로 머리카락이 벌써부터 희끗희끗했다.

중구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형님, 한 잔 더 하십시오.”


고성재가 류민상의 빈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 사이 고우찬이 신난 얼굴로 방을 나가 갈비탕과 불고기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내가 100등 안에 든 성적표를 엄마한테 딱 보여 줬더니 집이 난리가 난 거야. 잔소리만 늘어놓던 누나들도 용돈을 다 주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중학교 때 진작 열심히 해둘 걸 후회가 다 되더라니깐.”


김준우가 좋아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교 89등의 성적을 찍었기 때문이다.

황재정 역시 은근히 입가를 씰룩거리며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지난 시험에서 전교 100등에 턱걸이로 진입했던 황재정은 기말고사에서 36등이라는 기적을 보여줬다.

류지호는 지난 중간고사 성적인 47등에서 변동이 없었다.

더 끌어올리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하는 일도 많았다.

의대나 법대를 갈 것도 아니고, 신포고에서 이 정도 성적만 유지할 수 있다면 SKY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고우찬의 성적이 오른 것이다.

류지호가 준비한 암기노트가 도움이 되었던지 몇몇 암기과목의 점수가 반타작을 하는 이변을 보여줬다.

사인방들의 성적이 상위권이라 교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단 고우찬만 예외다.


“재정이는 36등이야. 겨우 100등 언저리 주제에 어딜 들이 대?”


고우찬이 황재정을 끌어들여 김준우에게 시비를 걸었다.

황재정이 고우찬의 시비에 은근히 말을 보탰다.


“그러게. 자식이... 전교 36등하고 47등도 가만있는데, 어디서 89등이 자랑이라고 시끄럽냐?”


김준우가 고우찬에게 툴툴거렸다.


“꼴찌하고 노는 놈은 입 열지 마.”


고우찬이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나 꼴찌 아니거든.”

“아이고 그러셔 고우찬. 참 자랑이다.”

“100등 밑으로는 꺼져, 새끼야!”


티격태격하는 김준우와 고우찬을 바라보며 류지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황재정이 자신보다 상위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질투심이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따위에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황재정은 날라리 생활만 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다면, 서울대는 몰라도 고대나 연대는 충분히 입학할 만한 잠재력을 가진 친구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황재정은 대학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당할 위기에 처하자 도망치듯 입대를 했다.

재대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학력고사를 준비해 서강대에 들어간 독종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공부에 집중한다면, 서울대 도전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지호야, 고맙다. 그렇게 공부하라고 해도 말 안 듣던 녀석이 너 때문에 꼴찌도 면하고. 이런 성적은 내 평생 처음이다.”


고성재가 술기운이 도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류지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에요. 우찬이가 열심히 한 거죠. 다음 시험에는 더 좋은 성적 받을 수 있게 저희가 잘 도와줄게요.”


류지호가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떨었다.

그런 아들의 말에 류민상이 말을 보탰다.


“지호 덕분이라는 말은 과해. 저 녀석들이 모두가 함께 이룬 거 아니겠나.”

“우리 아들놈은 머리 복잡한 걸 싫어하고 게으른데다가 워낙 놀기를 좋아하는 놈인지라...”

“아빠, 쪽팔리게 친구 부모님 있는데서 아들 흉이나 보고.”


고우찬이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험악한 인상이라 차마 눈 뜨고 못 볼꼴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귀엽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하하하.

일제히 웃어재꼈다.


“구월동 형님도 기꺼이 공부할 장소도 제공해주고, 형수님은 애들 수발까지 들었지 않은가. 감사를 하려거든 형님과 형수님께 하게.”


류민상이 아들에게 몰렸던 시선을 김철민과 조성자에게 돌렸다.


“고맙수. 내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수.”


고성재가 김철민 부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가 보기에 아들 친구들도 그렇고 녀석들의 부모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온통 주변에 말썽꾸리만 가득한 고우찬에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아버지가 되어서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됐네. 이 사람아... 다 우리 준우 좋자고 하다 보니 그리 된 거지 무슨... 서로 얼굴에 금칠 그만 하고, 막걸리나 한 잔씩 쭉 들어.”


사인방의 눈에도 아버지들의 분위기는 무척 좋아보였다.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재정이 어머니는 좋으시겠어요. 우리 준우는 겨우 89등인데.”

“신포고에서 100등 안에 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요?”

“호호호. 그런가요?”

“지호는 몇 등 했어요?”

“47등이요.”

“애들 공부 도와주느라 지호가 손해를 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애들이 열심히 해서 성적이 오른 거예요. 지호가 도움 받은 것도 많아요.”


심영숙은 입가에 걸린 미소가 떨어질 줄 몰랐다.

부모는 자식이 남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법이다.

류지호가 어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어머, 준우 엄마. 지호 좀 봐요. 어쩜 말하는 것도 이렇게 의젓할까요.”

“이러니 몰려다니면서 말썽 피울 생각만 하던 녀석들이 지호 때문에 정신 차린 거 아니겠어요?”

“호호호. 맞아요. 부모도 못한 일을 지호가 했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너희들 앞으로 지호 말 잘 들어.”


조성자의 말에 녀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잖아요. 지호 아빠·엄마가 평소 교육을 잘 시킨 거지요.”

“교육은요 뭘. 애들이 알아서 자랐어요. 부모가 해 준 게 없어 항상 미안한 걸요.”

“아무튼 우리 애 아빠랑 나는 지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보기로 했어요.”

“재정이가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면서요. 원래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성적도 쑥쑥 오른 거 아니겠어요?”

“호호호. 말이 그렇게 되나요?”


어른들의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큰애 때문에 이런 칭찬을 다 받는구나.’


심영숙의 아들 친구 어머니들의 칭찬이 듣기 좋았다.

당연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장남이었고, 해준 것 없었는데도 잘 자라주어 너무도 고마운 자식이지만, 면전에서 친구 어머니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자니 하루 종일 업고 돌아다녀도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지호네는, 둘째도 아이가 착하다면서요?”

“제 아빠를 닮아서 좀 무뚝뚝해서 재미는 없는데 말썽은 안 부리네요. 막내 기집애가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 제가 좀 많이 피곤해요.”

“미운 7살이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늦둥이라 얼마나 이쁘겠어요.”


호호호.

심영숙은 아무런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었다.

고단한 마음이 한 번에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황봉호가 김철민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며 물었다.


“형님은 준우에게 회사 물려주셔야죠?”

“외아들이라 그렇기는 한데. 녀석이 사진에만 정신이 팔려있어서. 사업하는 건 내켜하지 않더구먼. 자네는 재정이 대학은 어디 보낼 생각인가?”

“글쎄요. 저는 법대를 갔으면 하는데 제 말을 들을지 모르겠어요. 머리가 컸다고 우리하고 통 이야기를 하려고 해야 말이지요.”


황봉호가 막걸리 사발로 건배하며 씁쓸하게 말하자, 류민상이 그 말을 받았다.


“내가 지호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부모라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 같아.”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부쩍 자라는 것 같아.”


고성재가 입가를 소매로 훔치며 류민상에게 말했다.


“형님, 지호가 리더십도 있고, 내가 보기에 국회의원 감이요.”


모든 부모님들이 그의 말을 적극 동의했다.

어른들이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사이 고우찬은 불고기에 갈비탕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다시 냉면에 도전했다.


“변호사 아줌마 만나고 온 건 잘됐어?”

“일단 검토해 보겠대.”

“우린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준우야 특기를 살리면 되고, 재정이는 대표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사장을 보좌하면서 인력관리를 해야 돼. 우찬이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보조를 해야 할 거고.”

“이 새끼가... 나보고 따까리 하란 말이야?”


고우찬이 바쁘게 놀려대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으르렁댔다.

아직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고, 만약 투자를 받지 못해 맨땅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그간 준비한 계획은 모두 갈아엎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때문에 현재는 모든 걸 친구들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다.

황재정이 특유의 삐딱한 어조로 구시렁거렸다.


“새끼, 우리를 자기 밑에 두고 엄청 부려먹을 생각인가 보네.”


류지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어라. 진짜야?”

“그 대신 너희들도 주주야. 적당한 지분을 나눠 줄게.”

“우리는 땡전 한 푼도 안내는데... 주식을 준다고?”

“그러니까 몸으로 때워야지.”

“그럼 콜! 대신 나 비싼 몸이야. 전교 36등.”

“우리 같은 고삐리들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거야?”


김준우는 대학에 입학하면 자연스럽게 끝날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씨익!


류지호는 자신을 향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김준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붙들어 매. 우리가 뭐 이병천이나 정주용이 될 것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우리 함께 잘 먹고 잘 살아 보자.”

“혹시 그 미국사람이 돈을 안 대주면?”


자신만만한 류지호에게 황재정이 태클을 걸었다.


“정 뭣하면 묻어둔 돈을 꺼내야지.”


류지호는 태산증권에 넣어둔 돈의 일부를 꺼낼 각오까지 하고 있다.

이미 몇 달 사이에 주가는 꽤 많이 올라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지만, 고3이 되기 전까지 회사를 만들어 영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


“니들은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각자 방학동안 준비 좀 해줘. 준우는 뭘 해야 할지 알지?”

“응? 응!”


김준우는 사진부 졸업생 선배들 중에서 스튜디오 포토그래퍼 영입을 맡고 있다.

신포고 출신 현역 사진작가와 광고사진작가를 접촉하는 중이다.


“하여간 지호 이놈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겁 없이 막 질러.”


고우찬이 류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암튼 잘 부탁한다. 류사장!”


그걸로 끝.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김준우도 우려를 날려버렸다.

그렇게 사인방이 의기투합을 하고 있을 때 류민상이 사인방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한 잔 해볼래?‘

“........?”

“지호아빠! 고등학생한테 무슨 술이에요?”


심영숙이 한소리하자, 류민상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여기 저 놈들이 술 마시고 다니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

“그래도 지들끼리 몰래 마시는 거랑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건 다르지.”


황봉호가 황재정에게 따가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는 황재정이다.


“준우, 이리로 와봐라. 술은 원래 어른에게 배워야 하는 거야. 늦었지만 아빠가 한 잔 따라주마.”


김준우가 쭈뼛거리며 김철민에게 다가갔다.

김철민이 막걸리 사발을 턱하니 내밀자, 슬쩍 조성자의 눈치를 보던 김준우가 냅다 사발을 받아 들었다.

조성자의 쯧쯧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김준우는 아버지가 따라 준 막걸리를 마셨다.

류지호도 류민상에게 다가가 막걸리를 받아 마셨고, 고우찬은 뻔뻔하게 두 잔을 얻어 마셨다.


하하하.

호호호.


그 모습이 얼마나 천연덕스러운지 어른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황재정까지 아버지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훈훈하게 친목계 자리를 마무리 했다.


작가의말

90년대 강남쪽에서 웨딩촬영을 하면서 돈 좀 만진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IMF 터지고 빨리 빠져나온 분들도 있고 이후로 출혈 경쟁하다가 번 돈 다 까먹은 분들도 있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충성을 다 하겠슴다! (2) +8 22.01.24 9,513 195 21쪽
63 충성을 다 하겠슴다! (1) +10 22.01.22 9,856 214 20쪽
62 Whiplash...! (2) +7 22.01.21 9,469 202 21쪽
61 Whiplash...! (1) +9 22.01.21 9,697 208 27쪽
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691 217 21쪽
59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14 206 21쪽
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21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26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02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82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42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85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08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16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44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05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8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8 204 24쪽
»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8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7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90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34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08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5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04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04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30 234 22쪽
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93 213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