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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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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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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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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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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재미있는 거 시켜준다더니 또 노가다냐!”


고우찬이 분노를 토해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방송실로 달려왔다.

류지호가 실실 웃으며 고우찬을 교실로 이끌었다.


“여기 있는 의자 강당으로 모두 옮겨.”


당연히 고우찬은 하기 싫다고 버텼다.

오래 버틸 수 없었다.

2학년까지 달라붙어 교실의 의자를 옮겼기 때문이다.


“내가 저 놈 말을 들으면 사람이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의자를 네 개씩 옮겼다.

한편으로 치밀어 오르는 짜증만은 숨길 수 없었다.


왁자지껄!


방송제 시작을 1시간을 앞두고 4백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찼다.

사전에 3백 개를 가져다 놓았으니 의자가 모자랐다.

3학년까지 합세해 다시 한 번 의자를 나르는 행렬이 만들어졌다.


“......!”


방송부들이 패닉에 빠졌다.

예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인원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분명 환영하고 좋아할 일이다.

하지만 방송부에게 커다란 부담감으로 돌아왔다.

이명한까지 맹장이 터져 병원으로 실려 간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한수호는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류지호냐 박상은이냐.

예상하지 못한 일을 연속해서 맞이하면서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할지 망설였다.

2학년들이 한수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믿어 봐야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난 우리 방송부를 믿어.”

“시간 없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오철규가 재촉하고 나서야 한수호가 본론을 꺼냈다.


“내가 명한이가 맡기로 한 모든 걸 책임진다. 내 자리는 지호가 하고!“

“상은이가 1학년 부장인데?“


박상은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들, 솔직히 말씀드려.... 전 자신 없어요.”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오철규가 버럭 화를 냈다.


“수호형 쫒아 다니면서 많이 배운다고 배웠는데, 이런 큰 무대를 책임져야 하는 건......”


박상은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방송제에서 PD를 본다는 것은 영광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행여 실수를 남발해 방송제를 망치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후우!


2학년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1학년들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초짜라 한없이 헤맬 줄 알았더니 적응이 빠르더라. 아니면 센스가 좋은 건가? 어느 쪽이든 가르치는 선배의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지만.”


불안해하는 방송부원들을 향해 한수호가 보란 듯이 류지호를 칭찬했다.


“맡겨주세요.”


류지호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한수호가 자신의 큐시트를 내밀었다.

큐시트(Cue-Sheet)는 대본을 압축해서 녹화 진행 순서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끔 정리한 표다.

방송에 들어가면 출연자와 스태프들은 이 큐시트를 보고 움직인다.

한수호의 큐시트에는 무수히 많은 메모들이 표기되어 있었다.


‘방송제에서 버벅 대면 망신당하고 욕먹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영화 촬영현장은 달랐잖아. 하루 진행비만 천만 원에서 수천만 원, 블록버스터는 억 단위까지 비용을 쓰는 영화판에서 라인프로듀서와 조감독이 헤매면 그 돈들이 다 길바닥에 버려지는 거야. 그런 곳에서 굴렀던 경험이 있잖아. 고작 이것쯤은...’


류지호는 치열했던 조감독 생활을 떠올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런데.


“수호형, 혹시 우황청심환 없어요?”


잘나갔던 조감독 시절은 시절이고.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은 또 다른 문제다.


❉ ❉ ❉


신포고 교문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귀여운 꼬마 숙녀가 들어서고 있다.

그녀들 뒤로 중학생 셋이 따르고 있다.


“엄마, 여기가 큰오빠가 다니는 학교야?”

“응.”


심영숙과 류아라 그리고 류순호와 그의 친구들이다.


“학교가 엄청 커!”


처음으로 와 보는 고등학교이자 큰오빠가 다니는 학교다.

류아라는 큰 눈망울을 분주하게 옮겼다.

방송제에 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단식투쟁, 울음, 애교, 떼쓰기.

며칠을 시달린 끝에 결국 심영숙이 항복했다.


“방송제 하는 거 맞아?”


교문에 걸려있는 현수막과 곳곳에 붙어있는 서클 홍보지들이 축제를 알리고 있을 뿐.

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다.


“엄마, 저기 형네 방송부 포스터도 있어.”


류순호가 서클 홍보지들 사이에 붙어있는 방송제 포스터를 가리켰다.


“글자하고 그림만 있네? 왜 큰오빠 사진은 없어?”


류아라가 엄마에게 물었다.


“사진까지 들어가면 돈이 많이 들어.”

“큰오빠네 방송부 가난해?”

“......!”


류아라의 엉뚱한 발상에 심영숙이 순간 말문이 막혔다.

류순호가 대신 대답했다.


“바보야, 포스터는 원래 저렇게 만드는 거야.”

“왜 저렇게 만들어?”

“형은 연예인이 아니잖아.”

“힝.”


류지호 가족이 실내체육관 입구에서 축제 팸플릿을 한 부 챙겨 프로그램을 살폈다.


“전시 부스가 33개나 된대.”

“고등학교는 다 이렇게 축제를 크게 해?”

“다른 학교를 안 가봐서 몰라.”


류순호와 그의 친구들이 실내체육관 안쪽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일행들은 시사토론반, 수학토론반, 퀴즈반 등 여러 부스를 둘러보며 전시회를 즐겼다.


“엄마, 큰오빠 보러 언제 가?”

“큰오빠는 지금 바빠. 여기서 조금만 더 구경하다 가야돼. 그만 보채.”


부스를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열심히 시범을 보이고 설명을 해주는 신포고 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

류지호 가족 일행이 사진 전시부스에서는 김준우를 만났다.

시화전 부스에서는 황재정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가 넓고 전시 부스가 많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33개의 부스를 모두 관람할 수는 없었다.


“엄마 손 꼭 붙들어.”


학교 안에서 길을 잃어봐야 금방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심영숙은 딸에 대한 주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 관람객까지 뒤섞여 인파로 가득했다.

류지호 가족의 안내를 자처한 김준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곧 방송제 할 시간이에요.”

“벌써?”

“저희가 안내할게요.”


황재정과 김준우가 류지호 가족을 방송제가 열리는 대강당으로 안내했다.

이미 강당 안의 의자는 모두 만석인 상황.

좌석의 중앙 통로를 제외한 벽 쪽에까지 관람객이 서서 방송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와서 자리를 맡아 놓고 있던 고우찬이 막 강당으로 들어서는 심영숙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여기!”


이번 신포고 방송제는 비디오를 틀어준다는 소문과 진명여고 방송부와 조인트로 진행한다는 소문이 퍼져 전례 없는 관심을 받고 있었다.

고우찬이 심영숙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와아~ 고릴라 오빠다!”


류아라가 고우찬의 손을 잡고 흔들며 놀려댔다.


“언제는 킹콩이라며?”

“오빠가 옛날보다 작아졌어.”

“아라 네가 큰 거야.”

“조용히 하고, 일단 자리에 앉자.”


황재정이 옥신각신하는 둘을 진정시켰다.


❉ ❉ ❉


음향실에 졸업생 몇 명을 포함해 모든 방송부원들이 모여 있다.

졸업생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류지호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1학년이 PD라니.

겁에 질려서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너무 무모한 게 아닐까?

비록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류지호 앞에서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현하는 졸업생은 없었다.

재밌는 것은 정작 1학년들은 류지호에 대해 전혀 우려나 걱정을 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

류지호는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다.

하재근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다들 준비 됐냐?”

“넵!“

“기합이 바짝 들었는데? 군대 입영통지서라도 받았냐?”


졸업생들이 긴장한 후배들을 놀렸다.

조금이라도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하재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라고. 자, 이제 밖으로 나가라.”


긴장이 쉬이 풀리지 않는 모양인지 1학년들의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우리도 저랬냐?”


오철규가 한수호 곁에 바짝 붙어 물었다.


“당연하지. 저게 자연스러운 거야. 지호 저놈이 이상한거지.”


류지호 역시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있긴 했다.

그렇지만 걷는 폼을 보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 보였다.

1학년들이 한 곳에 모여 수군거렸다.


“그래도 지호 컨디션은 좋아 보이네.”

“오늘 잘할 수 있겠지?”

“글쎄... 긴장해서 실수하면 어쩌지?”

“대사 틀리고 그러면 당황하지 말고 그냥 뱉어버려. 수호형이 한 말이야.”

“진짜 우리가 방송제를 하는구나.“

“내가 꼬집어 줄까?”

“왜?”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 할 수 있게.”

“하지 마. 꼬집어 달라면 진짜 세게 꼬집을 거 잖아.”


1학년들이 긴장을 풀기위해 수다를 떨었다.


“잘할 생각 하지 마. 그러다 보면 실수 한다.”

“네!”


한수호가 불안감이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동기들이 류지호에게 한마디씩 격려의 말을 건넸다.


“넌 잘 하거야.”

“나는 무조건 지호 널 믿어.”

“네가 그 동안 보여준 게 있잖아.”

“중압감은 있겠지만.... 평소대로만 해. 우리도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할게.”


마지막으로 한수호가 류지호의 등을 툭툭 치며 응원을 건넸다.


“지호야 부탁한다.“

“최선을 다 할게요.”

“그거 가지고 되겠냐? 미쳐봐.”

“.....!”

“오늘 이 방송제가 우리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류지호가 픽 웃었다.

인생이 아니라 신포고 방송부 역사가 바뀌는 거다.

어쩌면 전국의 모든 방송제가 바뀔 수도 있고.


‘너무 나갔나.....?’


실없는 생각을 떨쳐버린 류지호가 마지막으로 큐시트를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드레스 리허설을 복기했다.


와아.

짝짝짝.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푸른 조명이 쏟아지는 메인 무대로 한수호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강당으로 옮겨놓은 400석 의자가 꽉 찼다.

그것도 모자라 벽 쪽에 등을 댄 채 서서 관람하는 이들도 보였다.

신포고 방송제 역사상 최고의 관객 동원이다.

한수호가 관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SPBS방송제에 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SPBS 16기 방송국장 한수호입니다.”


한수호의 인사말에 강당이 조용해졌다.

그의 진행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신포고 축제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게 아니죠. 오늘은 일 년에 단 한번 밖에 없는 저희 신포고 방송부의 축제날입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저희 방송제를 즐기실 준비 되셨나요?“

“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프로그램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신다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사설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SPBS 방송제를 시작하겠습니다.”


팍!


강당의 모든 불이 꺼졌다.

다소 시끌벅적하던 강당이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 졌다.


[희망과 배움의 전당. 신포고등학교...]


어둠속에서 신포고 교가가 흐르다가 빔프로젝터에서 빛이 스크린으로 쏘아졌다.


오오~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쩌다 한 번 가서 보는 극장관람이 영상경험의 전부인 시절이다.

프로젝터로 상영하는 영상을 감상하는 건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화질이 어떻고, 스크린 사이즈가 어떻고,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신포고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이 상영되었다.

신포고를 거쳐 간 교장들과 교정의 변천사 그리고 여러 자랑할 만한 것들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상영되었다.

신포고 소개의 마지막은 현재 교장의 방송제 축하 메시지가 장식했다.

교감도 촬영했다.

전체 방송제 공연시간의 압박 때문에 편집에서 잘려나갔다.

교감에 대한 반감도 살짝 작용했다는 건 방송부만 아는 비밀이다.

신포고 소개 영상이 끝이 나고, 강당 안이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오직 PD 단상에 켜진 소형 스탠드 불빛만 밝혀져 있다.


저벅저벅.


류지호가 PD가 서는 단상으로 올라섰다.


“수호가 아니잖아?”

“쟤 1학년이야.”

“그러고 보니 명한이가 안 보이네?”


타 학교 방송부들이 수군거렸다.


후웁. 후아아.


류지호는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이상하게 두렵거나 겁이 나지 않는다.

담이 약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주눅이 들 만한 상황이다.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어지간한 강심장이거나 경험이 많지 않으면 떨리고 겁을 먹게 마련.

류지호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약간의 떨림은 있다.

그것은 적당한 긴장감과 설렘이지 두려움은 아니다.

지천명을 살아봤던 연륜 때문에?

아니다.

익숙함 때문이다.

영화현장에서 감독이 느껴야하는 중압감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랄까.

이유야 어쨌든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직 하나의 생각.

자신의 손에서 방송제가 시작되고, 자신의 손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자신의 손에서 방송제가 막을 내린다는 것.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꾸욱.


류지호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의 손끝에서 신포고 방송부 역사상 첫 번째 비디오 방송제가 열리게 된다.

류지호는 자신감을 가졌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그 과정이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처억.


류지호가 손을 들어 올려 오디오믹서 콘솔에 앉아있는 이재호를 가리켰다.

관객들의 시선이 류지호의 손을 따라 이재호로 옮겨갔다.


두둥!


순간.

신포고 방송부의 시그널 뮤직이 강당의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객석의 모든 시선이 스크린으로 집중되었다.

SPBS 방송부 시그널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흥겨운 록큰롤로 이어졌다.

이번 영상은 방송부 소개영상.

입학식, 졸업식, 체육대회 등 교내 행사에서 음향장비를 설치하는 신포고 방송부원들의 모습.

점심방송 하는 모습을 포함해 다양한 방송부의 활동이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펼쳐졌다.

방송부원들의 캐릭터를 설정해 영상 사이에 코믹영상을 삽입했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오철규가 샤프 한 자루를 이용해 손가락으로 갖가지 볼펜 돌리기 신공을 펼치고, 한수호가 음악다방 DJ 흉내를 낼 때는 여학생들의 작은 소요가 있었다.

김석민이 ‘공부가 제일 쉬워요’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르고 독서실에서 열공 하는 모습이 나올 때는 신포고 학생들의 야유가 터졌다.


“김석민, 중간고사에서 설사병에나 걸려라! 내가 전교 1등 한번 먹어보자.”


누군가 객석에서 장난스런 저주를 퍼부었다.


와하하하.


신포고 1학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오.”


상하의를 스노우 진으로 차려입은 청청패션의 최원석이 복도에서 마치 런웨이를 걷는 것처럼 왕복하는 장면에서는 여학생들의 작은 탄성이 흘렀다.


꽝!


“살살해주세요!”


류지호가 단신의 공업선생에게 수없이 업어치기 당하다 손을 싹싹 비는 장면이 나왔다.


“개장수! 개장수!”


객석을 채운 모든 신포고 학생들이 ‘개장수’를 연호했다.

이철웅이 나온 장면이 가장 압권이다.

170Cm가 안 되는 단신의 이철웅이 180Cm가 넘는 농구서클 선수들 사이를 그림같이 빠져나가며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에서는 탄성과 환호성이 폭발했다.

NBA 92/93 시즌에 샤넷 호네츠에서 활약하게 되는 160Cm의 단신의 농구선수 먹시 보그스를 연상시키는 이철웅의 화려한 농구 실력은 관객들의 환호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신포고 방송부의 단체사진에서 영상이 정지화면 되었다.

방송부들이 공연하는 걸 가만히 보기만 하는 방송제가 아니다.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참여한다.

또래들이 공감할 만한 걸 그저 찍어서 보여줄 뿐이다.

복잡하고 어려울 필요가 없다.


팟!


무대 위에 마련된 의자.

거기에 앉아있는 오철규에게 스폿 조명 하나가 비췄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시선이 스크린에서 무대로 옮겨갔다.


척!


류지호의 손이 다시 한 번 이재호에게로 향했다.

잠시 강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간간이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류지호가 이재호를 향하고 있던 손을 들어올렸다.

류지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는 그 속도에 맞춰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음악 위로 오철규의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순서 시낭송이다.

류지호의 수신호에 따라 음악이 강조되었다가 잦아들기도 하고, 오철규의 목소리가 돌출되기도 했다.

류지호의 손끝에서 방송제가 진행되고 통제되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들.

방송부 선배들의 표정에서 불안감이 사라졌다.

한수호 대신 PD포지션에 선 류지호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거 였나?’


한수호가 류지호를 콕 찍어 깜짝 결정을 내렸던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아직 초반부였지만, 류지호는 안정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긴장하면 큐사인과 다양한 수신호에서 다소 소극적인 동작이 나오게 되고, 흥분한다면 동작이 커져 번잡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PD를 단상에 세우는 이유는 방송제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음악과 효과음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 진행을 돕기 위함도 있지만,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퍼포먼스적 역할도 포함되어 있다.

류지호는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동작으로 본래 주목받아야할 무대에서 시선을 빼앗지 않고 있다.


딱!


류지호가 엄지와 중지를 튕기자, 무대 조명이 꺼지며 다시 빔프로젝터에서 빛이 쏘아졌다.


[안녕하세요. 진명여고 방송부 JBS입니다. 6회 SPBS 방송제를 축하합니다.]


스크린에 진명여고 방송부와 여러 여학교 방송부의 축전이 상영되었다.


“자식... 잘하네.”

“저 놈 진짜 물건이다.”


졸업생들이 칭찬을 늘어놨다.

그 순간.


지지직 -


마지막 학교 축전 장면에서 영상에 노이즈가 생겼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비디오 상영에 불길함이 드리워졌다.

스크린 화면이 깨진 것.

방송사고다.


“......?!”


류지호가 재빨리 이재호 쪽을 돌아봤다.

당황한 박상은이 VHS 테이프를 이재호에게 보여주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류지호는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VCR에 문제가 생겼다.


“젠장~”


3학년 선배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류지호는 재빨리 무대 위를 확인했다.

조인환과 한수호가 턴테이블이 놓인 테이블 너머 DJ석에서 막 헤드폰을 목에 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척!


류지호는 태연하게 이재호에게 큐사인을 보냈다.

정신이 번쩍 든 이재호가 얼른 오디오믹서를 조정했다.

통통 튀는 리듬의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고, 한수호의 입에서 프로그램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몬데그리이이인~ 쇼!”

“쇼.쇼.쇼우!”


한수호가 능청스럽게 조인환과 만담을 이어갔다.

한편 이재호가 류지호를 향해 VHS 테이프를 흔들어 보였다.

테이프가 씹혔다는 의미다.

이미 박상은이 강당을 빠져나가 방송실을 향해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뭐라고 들으셨어요? 뭐라고요? 위도 아래도 보지 말고 앞으로만 봐~ 이렇게 들리시지 않으세요? 그렇게 안 들린다고요? 그럼 다시 한 번 들어보세요.”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자,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어요? 못 믿겠다고요? 그럼 이건 어때요? 우리가 사는 이 고장은 어디죠?“


[In time- In time- In time. 인천. 인천. 인천.]


몬데그린 쇼를 이어가는 사이 류지호는 이재호와 끊임없이 사인을 주고받았다.

땀에 흠뻑 젖은 박상은이 VCR을 들고 강당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재호가 테이프를 씹은 VCR을 새로 가져 온 VCR로 교체하는 것도 확인했다.


“연탄불 꺼졌을 땐 뭐라고요?”


[Won't you take me to funky town]


“번개타안!”


객석에서 관객의 호응이 이어졌다.

류지호는 관객과 소통하는 방송제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공연에서 재미를 느끼게 될 때는 언제 일까.

관객이 스스로 공연자와 호흡할 때다.

방송부원들은 공연 경험이 미천한 자신들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우려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오직 하나.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굴어라.

류지호는 그것만 강조했다.

한수호는 그런 기대와 바람을 완벽하게 이행했다.

오디오 공연은 나름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다.

반면에 비디오 공연은 위기에 빠졌다.

이재호가 류지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VCR 두 대 모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류지호의 머리가 급속도로 팽글팽글 돌아갔다.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한수호를 향해 검지로 원을 그려 보였다.

잠시 대화로 시간을 끌어달라는 신호다.

한수호는 바로 알아들었다.

류지호가 자연스럽게 단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뒤에서 대기하던 이철웅에게 손짓을 보냈다.

무대 대신 관객석에 시선을 두고 있던 이철웅은 그런 류지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서 류지호가 어떤 행동을 하면 무대에 집중하고 있던 관객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PD 류지호가 지켜야할 사항이다.


‘철웅아, 제발 날 좀 봐.’


이철웅은 류지호의 바람을 외면했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인터콤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운 상황.


작가의말

즐거운 불금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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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충성을 다 하겠슴다! (2) +8 22.01.24 9,513 195 21쪽
63 충성을 다 하겠슴다! (1) +10 22.01.22 9,856 214 20쪽
62 Whiplash...! (2) +7 22.01.21 9,469 202 21쪽
61 Whiplash...! (1) +9 22.01.21 9,697 208 27쪽
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691 217 21쪽
59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14 206 21쪽
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21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26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02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82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42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85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08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16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44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05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9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9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8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8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90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34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08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5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04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05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30 234 22쪽
»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94 21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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