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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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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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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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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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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팔 아물 때까지 무리해서 운동하지 마.”


고우찬은 깜짝 놀랐다


“저하고 지호 도장에서 안 잘리는 거예요?”


쯧.


짧게 혀를 찬 홍 관장이 누워있는 류지호에게 걸어갔다.


“몸 좀 제대로 풀어볼래?”


류지호가 상체를 일으키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부딪치고 깨지며 풀어 봐.”

“......?”

“싫으면 말고.”

“뭔지 모르지만 할게요!”


고우찬이 도장 벽에 걸려 있던 호구를 하나 챙겨 다가왔다.


“좀 쉬었다가 해.”

“괜찮아. 바닥에 누워서 충분히 쉬었어.”


호구를 착용한 류지호와 태권도복 차림의 홍 관장이 도장 중앙에 마주보고 섰다.


“차렷! 경례!”


류지호와 홍 관장이 인사했다.


“시작!”


류지호는 관장이라고 해서 망설이거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다.


휘릭.


류지호가 힘차게 발차기를 날렸다.


휙.


홍 관장은 스탭을 밟지도 않고, 슬쩍 몸을 움직여 흘려보냈다.

류지호는 공격하고, 홍 관장은 피하는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


류지호는 자신의 간격이 지워지고, 거리감이 자꾸 꼬이는 걸 느꼈다.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홍 관장이 아슬아슬 하게 걸치고, 접근하면 바짝 붙는다.

류지호와 홍 관장의 거리.

세월과 수련의 세월이 만든 간극이다.

육체적인 능력은 당연히 류지호가 앞선다.


“방정맞게 뛰지만 말고, 제대로 스탭을 뛰란 말이야!”


퍽!퍽!


간간이 날리는 홍 관장의 발차기와 주먹이 류지호의 호구를 쳤다.

홍 관장의 발차기는 우아하지도 절도가 있지도 않았다.

물론 타격점 역시 겨우 류지호의 가슴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리고 홍 관장의 기술은 어딘지 단조롭고 평범했다.

움직임이 많지도 않았다.

여유가 가득한 그 모습이 류지호를 자극했다.


“악!”


비명 같은 기합을 토해내며 류지호는 계속해서 홍 관장을 공격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나이를 먹은 노인이라도 태권도를 수십 년간 수련한 인물이다.

체력적인 유리함을 유지하려는 하수 류지호의 끈질김.

그걸 반전시키려는 고수 홍 관장의 날카로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솔직히 격렬하다는 표현을 갖다 대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불 맞은 황소처럼 달려드는 류지호와 투우사처럼 슬쩍슬쩍 약 올리듯 피하는 홍 관장.

간간이 터지는 홍 관장의 타격.

흥미로운 건 홍 관장의 손기술은 주먹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치고, 손날로 치고, 손등으로 후렸다.

순간순간 류지호의 얼굴 앞에 손바닥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또 손날이 류지호의 목 앞으로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류지호가 뒤로 주춤거릴 때는 여지없이 품으로 파고들어 팔꿈치로 가슴을 쳤다.

스포츠 태권도가 아니라 실전 태권도다.

겨루기에서 허용이 안 되는 아래돌려차기도 날렸다.


“호구 아닌 곳을 차는 건 반칙이잖아요!”


홍 관장은 묵묵부답이다.

오로지 류지호의 빈틈을 타격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인 것 마냥.

류지호는 쓰러지고 넘어지면서도 계속해서 홍 관장에게 달려들었다.

한 대도 유효타를 먹일 수 없었다.

태권도를 배웠다고 누구나 홍 관장처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다른 격투기를 수년 간 수련한 후 태권도에 접목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헉헉.”


류지호는 충격이 쌓이고, 체력이 고갈된 상태로 서있을 여력이 없었다.

결국 류지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차렷! 경례!”


고우찬이 호구를 벗는 류지호를 도우며 감탄을 연발했다.


“죽여줬어. 우리 관장님 진짜 진짜 잘 친다!”


류지호는 땀으로 푹 절은 몸을 닦은 후에, 다시 도장으로 들어왔다.

도장 중앙에 걸려있는 태극기 아래 홍 관장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이리로 와서 앉아봐라.”


철퍼덕.


류지호가 홍 관장을 마주보고 앉았다.


“고민하는 거 털어놔봐라.”

“제가 고민이 있다고 누가 그래요?”

“그 지랄을 떨어대는데 모를 수가 있냐?”

“머리가 좀 복잡해요.”

“우찬이도 이리 와봐라.”

“네!”


고우찬이 힘찬 대답과 함께 달려와 류지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학교 잘리고 많이 힘겨워 울 텐데... 꼴을 보니 제법 잘 견디는구나.”

“학교야 뭐...”


고우찬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흐렸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어줄 어마어마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미성년자 신분으로 사회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안전장치.

그 정도였을 뿐.

사실 고우찬은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것에 미련 따위 추호도 없었다.

홍 관장이 류지호에게 물었다.


“얻어터지니까 무슨 생각이 들어?”

“분해요.”

“또?”

“다음엔 오늘 같지 않을 거예요.”

“또?”

“열심히... 해야겠죠?”

“또?”

“.....?”

“운동할 때는 운동만,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해. 머리가 왜 복잡한 줄 아느냐? 자꾸 뒤돌아보니까 그래. 앞만 보고 가기도 바쁜 나이에 왜 뒤를 돌아봐? 과거를 돌아보려면 이 사부 나이가 돼서 해도 된다.”

“그럴까요?”

“화려하게 타오르는 삶,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삶, 폭풍 속 바위산의 바위와 같이 계속 상처를 입는 삶. 이 가운데 너희들 삶은 뭐가 될 것 같으냐?”


홍 관장의 질문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류지호다.

고우찬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 입을 다물었다.


“너희가 겪은 것들이 기억되고, 그것이 훗날 추억이 되면 미화되기 마련이다. 기억되기를 바라느냐. 아니며 추억으로, 그것도 아니면 가슴에 담을 테냐?”

“가슴으로 담으면 어떻게 될까요?“

“분노가 담기면 삐뚤어질 테고, 경험이 담기면 그걸 자양분 삼아 발전하겠지.”

“그럼 경험을 가슴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걸 가르치는 게 스승의 역할인 게야.”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 네 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패싸움하고 근신 먹은 고등학생이요.”

“쯧. 분명 밑바닥을 찍어 본 놈의 눈이었거늘...”


내심 뜨끔한 류지호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관장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니 체력이 달려. 두 번 다시 제자하고 지도대련은 못해먹겠다.”

“안계를 넓힐 수 있는 대련이었어요.”

“안계는 개뿔.”


고우찬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 웃겨 킥킥거렸다.


“이놈들아.”


류지호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습관이 인격이 된다. 그런 인격이 운명을 만드는 법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어. 누구나 우르르 몰려가는 줄에는 설 필요 없다. 어리석은 자들이 무어라 비웃던 간에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해.”

“매사 당당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게요.”


홍 관장이 몸을 일으켜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너무 빨리 걷지는 말아라. 넘어진다.”

“예!”

“우찬아....”

“넵!”

“다시 일어서려면 잘 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단다. 주저앉아 있지 마라. 지금부터라도 죽어라 태권도만 파. 그러다보면 나중에 네가 뭐든 되어있을 테니까.”

“열심히 할게요.”


살다보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다시 일어나느냐 그대로 주저앉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차라리 일찍 넘어져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고우찬뿐만 아니라, 류지호에게도.


✻ ✻ ✻


“선배님! 카메라 좀 빌려주세요.”

“뭐하게?”

“바람도 쐴 겸 출사 다녀오려고요.”

“미놀타 하나 꺼내 가.”

“X-300 갖고 나갈게요.”


미놀타 X-300은 1981년 출시된 필름카메라다.

한국에서 조립·판매를 오성전자에서 담당했기 때문인지 바디에 별 다섯 개의 옛 오성 마크가 박혀있다.

셔터 스피드와 노출계 작동 등은 자동이고, 조리개와 초점은 수동으로 조작하는 반자동 카메라다.

류지호가 판사진관을 빠져나와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찰칵찰칵!


마음이 동하면 셔터를 눌렀다.

구도, 노출, 초점 따위 상관이 없었다.

멍하니 걷다가 폰카를 찍듯 무심코 셔터를 누르고, 기계적으로 레버를 돌렸다.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있지는 않아서 셔터스피드를 오토로 놓고, 반셔터로 찍고 있다.


찰칵!


국민학교의 길게 이어진 담장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개나리가 필름에 담겼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류지호는 황금빛으로 물든 담장을 걸어가며 동요 ‘봄나들이’를 흥얼거렸다.

축 처진 기분을 억지로라도 끌어올려야 했다.


긍정(肯定)과 낙관(樂觀).


현재 류지호에게 필요한 감정 상태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보름 간 근신이 대학입시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순 없다.

다만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진 않다.


‘고등학교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흔히들 중고등학교에서 인격형성과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고 말한다.

류지호에게는 사실 의미가 없다.

신포고 졸업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사회에 나갔을 때 인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학연 역시 대학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다만 영화판에서까지 고등학교 학연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한국영화계는 학연보다는 다른 네트워크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


‘차라리 확 검정고시를 봐....?’


긍정적으로 보면 시간도 모자랐는데, 오히려 좋은 대안이다.

당장의 목표도 있다.

웨딩비디오 사업의 스타트를 끊는 것.

다시 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것.

단편이어도 좋고, 장편 습작이도 상관없다.

류지호는 틈틈이 ‘영화의 이해’를 비롯해 영화진흥공사가 출간한 영화이론 서적을 읽으면서 시나리오를 궁리하고 있다.

당장 단편영화를 찍을 여건은 못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나리오 초고는 많이 써둘수록 좋다.

또 하나는 흥행할 영화를 선점하는 것이다.

올해 20세기 팍스(20th Century Parks)가 한국에 진출한다.

곧 UPI 직배가 시작된다.

참고로 UPI(United Pictures International)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유니벌스, 패러마운틴, MSM/UA가 제작한 영화를 북미를 제외한 국가에 배급하기 위해 설립된 글로벌배급전문 회사다.

90년대 충무로는 할리우드 직배사, 창투사 같은 금융자본, 오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의 놀이터가 된다.

그 판에서 토착 충무로 업계가 고군분투한다.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다.

불알 두 쪽밖에 가진 것이 없는 류지호가 그 판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학교생활과 시간을 나누지 않고 온전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면 득이면 득이지 손해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목표까지 있다면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더더욱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긍정적인 사고회로가 지나쳐 너무 나간 면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웨딩비디오부터!’


류지호는 당장의 방침을 정했다.


‘군대도 신경 쓰이고...’


한껏 끌어올렸던 긍정적인 생각이 한 순간 가라앉았다.


‘파커가의 남자는 무조건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지. 제임스도 장교로 복무했다고 했어. 미군? 가만 미군? 카투사? 음. 기왕 군대를 두 번 가는 거라면 차라리 카투사에 지원해 볼까?’


입영문제는 신검 받고, 군대 갈 때가 되면 고민하기로 했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군대문제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류지호는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뭔지를 결코 잊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부모님 앞에서 정색하고 말을 꺼내는 류지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퇴하고 싶어요.”

“뭐?”

“검정고시 보겠습니다.”

“월요일부터 정상적으로 수업에 들어가잖아. 또 뭐가 문젠데?”

“이번 일은 모두 제 불찰이에요. 충분히 반성하고.....”


류민상이 말을 잘랐다.


“변명을 듣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그날 학생부실에 있었던 일 때문이냐?”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야. 학교도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야. 그곳에서 교우관계도 쌓고, 인격형성을 하는 거다. 인성을, 질서를, 인내를, 꿈꾸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거야.”

“권력에 복종하는 인성이요? 어떤 질서요? 개성을 죽이고 기계부품처럼 획일화 되어가는 질서요? 인내는 또 어떻구요. 불이익을 감수하는 인내요? 어떤 꿈이요? 좋은 대학 가서 신분상승하는 꿈이요?”


류민상이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숨 같은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어차피 학교에서 방송부 생활하고 공부밖에 안 했어요. 검정고시를 빨리 보고,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차라리 일 년 간 학교를 쉬면서 충분히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어떻겠냐?”

“.....”

“네가 하고 싶은 것들 충분히 하고 복학하면 어때?”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심사가 복잡한 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도리어 삐뚤어질까봐 조심스러운 부모님이다.

아들을 혼을 낼 수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자신보다 아들의 상처가 더 클 터.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쉴 뿐이다.

심영숙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혼자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

“아들.....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어. 며칠 마음을 비우고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류민상의 말투는 다그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류지호다.


“충분히 생각하고 또 고민했어요.”


심영숙이 탄식했다.


“어쩌다가 우리 큰애가 고집이 이렇게 세졌을까? 말도 잘 듣고 착하던 아들이 삐뚤어졌어.”


결국 마음을 굳힌 류지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류민상의 마음은 아내와 달랐다.

그는 미국에 있는 파커 가족에게 아들을 보내는 것을 고민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신효정에게 전화를 걸어 유학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안타깝지만, 그의 계획은 초장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 제가 알기로는 중고등학생의 유학은 국가에서 막고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대학유학부터 가능합니다. 아마 국비유학생만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류민상은 예상외의 답변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 물론 조기유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외교관 집안, 재벌 2세, 해외지사 파견 가정의 자녀 같은 일부 특권층이나 부유층은 암암리에 유학을 하긴 합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해외 연고가 있는 경우도 조기유학을 암암리에 하긴 하는데, 부모 중 한명이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비 부담이 상당했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아직까지는 정부차원에서 외화유출 방지나 계층 간 위화감 조성 같은 명분을 내세워 중고등학생의 조기유학을 허용하지 않는 시기다.


- 파커가에 도움을 받으신다면 가능합니다. 주선해 볼까요?


지금까지 받은 것이 얼마인데.

또 다시 파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면목이 없는 일이다.

류민상은 조기유학 문제를 단념하고 물러섰다.


“여보, 차라리 난 다행이에요. 열여덟 살이라도 아직 지호는 어려요. 수만리 떨어진 미국에 어린 지호를 두고 우리가 어떻게 맘 편히 지내겠어요.”

“난 말이야 내 아들 녀석을 과신하지도 않지만 의심하지도 않아. 부모 잘못 만나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받는 녀석의 앞길을 막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신효정은 공식적으로는 어렵지만, 편법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파커가에게 말하면 즉각 조치를 취해 줄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거기에 파커 가족의 도움까지 얹어지면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류민상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아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미국유학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 고민해도 되니까.

주식을 팔고 짬짬이 모으고 있는 저축을 합하면 자식들을 미국이든 유럽이든 더 좋은 대학에 보낼 학자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 ❉ ❉


근신이 끝나고, 류지호와 담임 연정훈이 교무실에서 마주 않았다.


“선생님은 네가 불량학생이라고 생각하지도 근신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불량학생이 반년 만에 전교 석차를 70등 이상 끌어 올리고, 아침마다 신문배달을 하지는 않지. 나는 학교의 처사가 과하다고 생각해.”


류지호의 자퇴 결심은 사인방을 통해 소문이 퍼진 상태다.

고우찬의 퇴학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는 식으로 소문이 돌았다.

신포고 내 여론은 고우찬 역시 큰 잘못을 하긴 했지만, 박광렬 패거리에 빗대어 문제 학생으로 치부해 퇴학 조치한 것은 명백히 과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차라리 전학을 가는 것이 어떠냐?”

“......”

“선생님이 좀 알아봤다. 부평에 사립외국어 고등학교가 생겼더라. 비록 전수학교지만 1,2 년 안에 정식인가 학교 허가가 날 수 있다고 해. 넌 영어도 잘하고, 어디서 공부하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

“.....?”

“작년부터 학생을 모집했는데, 중간에 관둔 학생이 몇 있어서 티오가 모자란다고 하더라. 학비는 비싸지만 장학금을 받으면 되지 않겠냐? 넌 신포고에서도 우등생이었으니까 무리 없지 싶다.”


류지호는 문득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저를 신경 써주세요?”

“내 첫 제자잖아. 제자가 자퇴를 하겠다는데 가만히 지켜볼 순 없지.”

“죄송해요. 이미 부모님들께서도 허락하셨어요.”

“네 실력이라면 검정고시는 무리가 없을 테지만, 학력고사는 만만치 않을 거야.”

“대학에 큰 욕심은 없어요.”

“학교가 서울대 입학할 인재 한 명을 놓치는구나.”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제자의 뜻을 꺾지 못한 연정훈은 크게 낙담했다.

매를 쳐서 마음을 돌릴 수도 없는 문제다.


“선생님은 항상 학교에서 기다리마. 언제든 마음이 바뀌게 되면 찾아와라. 자퇴를 하더라도 복학의 문은 열려 있으니까.”

“가끔 찾아뵐게요.”


고등학교를 떠나면서 그나마 최악의 감정을 안고 떠나진 않을 것 같았다.

교사들이 모두 교감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작가의말

행복한 주말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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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90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18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17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59 23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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