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5,705
추천수 :
126,996
글자수 :
10,687,409

작성
22.01.19 18:00
조회
9,732
추천
201
글자
26쪽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가온웨딩이 처음으로 패키지 예약을 받았다.

예식은 남구에 위치한 황제예식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예식장과 사진관이 제휴 혹은 협력업체로 맺어지면 보증금이란 걸 걸었다.

하청업체가 되면 예식장에 수수료를 떼어주기도 한다.

박상우는 주안 주변의 예식장 두 곳, 제물포 한곳과 제휴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사진관 입장에서 안정적인 거래처가 생기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예식장에서 보증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요구하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장비 확인 끝났으면 일을 시작해보자고.”


박상우가 김준우를 데리고 예식홀로 들어갔다.

예식장 마다 홀의 조명이 달라 그때그때 노출값을 확인해야 했다.

김준우는 박상우의 옆에 찰싹 붙어 수첩에 노출값을 메모했다.


“우찬아, 저 쪽에 종이 들고 서봐.”


고우찬이 흰 종이를 가슴 앞에 대자, 류지호가 캠코더의 화이트밸런스를 맞췄다.

전문가들은 그레이스케일 차트를 놓고 한다.

뉴스나 다큐 같이 긴급성을 요하는 촬영에서는 보통 백지를 사용해 카메라에 흰색을 인식 시킨다.

때때로 의도적으로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지 않기도 한다.

백지 대신 파란색 계열을 인식 시키면 기준 색온도가 올라가 화면에 붉은색이 돌게 된다.

약간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붉은 계열을 인식 시키면 기준 색온도가 내려가 전체적으로 푸른기가 돈다.

다소 쿨 한 화면 느낌이 난다.

배터리와 핸드라이트 이상 유무까지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누구 허락 받고 찍는 거지?”

“신랑·신부님들 의뢰를 받아 촬영합니다만.”


류지호가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말은 걸어 온 남자가 잡상인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실례지만 무슨 용무이신지... 혹시 예식장 관계자십니까?”

“신랑·신부 가족?”

“처음 뵙겠습니다. 가온웨딩입니다.”


류지호가 조끼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예식장 직원은 명함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할 말만 늘어놨다.


“가온이고 뭐고, 누구 허락 받았냐고 묻잖아요?”

“허락 받아야 한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못한 건 죄송합니다.”

“양해고 뭐고, 촬영하지 마세요.”


예식장 직원은 언짢은 표정으로 류지호에게 명령했다.

일방적인 행태에 류지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중에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영업을 하란 말입니다.”

“부장님, 실례지만 어느 부서에 계세요?”


이럴 때는 예상한 직급보다 한 단계 위의 직급으로 올려 부르는 것이 좋다.

자칫 아래 직급으로 부르면 엄청난 실례가 되면서 상대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영업부.”

“그러시군요.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가온웨딩 류지호 실장입니다.”


황재정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 고객께서는 이 예식장에 대관료와 피로연 및 기타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예식장과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 기념촬영과 관련된 사항은 판사진관과 계약을 했고요. 예식장 고객이 개인적으로 계약한 저희 업체의 비디오 촬영을 못하게 하는 것은 월권이 아닌가요?”

“뭐?”


영업부 직원이라 밝힌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희가 하는 일이 예식장이 본래 하는 영업 분야를 침해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보아하니 어려보이는 것이.... 업계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도 제휴업체가 따로 있어.”


직원이 갑자기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사진관과 한 것 아닙니까? 저희는 비디오촬영만 합니다.”


류지호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슬쩍 황재정을 막아섰다.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우선적으로 직원 개인의 ‘갑질’ 인지, 이곳 예식장의 전반적인 풍토인지를 파악해야 했다.


“사진이나 비디오나 그런 건 내 알바 아니고, 촬영하지 말라는데 무슨 말이 이리 많아.”


일단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이 영업부 직원이라는 사실에 류지호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황재정이 류지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류지호가 돌아보자, 황재정이 예식홀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곧 예식이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다.

마음이 급한데 영업부 직원이란 자가 계속해서 류지호를 붙잡고 늘어졌다.

류지호가 캠코더를 황재정에게 건네며 눈짓 했다.


‘준우보고 찍으라고 해.’

‘알겠어.’


척하면 착이다.


“부장님, 잠시 제게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류지호는 상대가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최대한 공손한 어투를 유지했다.

예식장에서 가온웨딩의 출입을 막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 쉬운 일이다.

어떻게든 직원을 달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이런 일이 한번쯤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가온웨딩이 유일한 웨딩비디오 업체다.

그렇다 보니 예식장과의 제휴나 협력업체 문제에 있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대형 예식장에 속하는 행복예식장과 논의 중에 있었다.

기존의 사진관들처럼 보증금으로 할 것인지 수수료를 지불할지를 놓고 의견조율 중이기에 그곳의 계약이 정해져야 다른 곳들로 영업력을 확장할 수가 있다.

어쨌든 남구 진출만 생각했다.

사전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류지호의 실수다.


“부장님, 저쪽 조용한 데로 가실래요?”


류지호가 슬그머니 영업부 직원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는 사이 김준우에게 촬영을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더해 가온웨딩 로고가 박힌 조끼를 벗으라는 시늉도 해보였다.


“가온웨딩을 대표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고객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니 한 번만 너그럽게 넘어가주십시오.

“대학생이야?”

“아닙니다.”

“이건 사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냐. 자네 사장한테 가서 전해. 일을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은 꼴 못 본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아, 더는 할 말 없고. 당장 철수하도록 해.”


영업부 직원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떠나버렸다.

류지호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런 류지호의 곁으로 황재정이 다가왔다.

황재정의 표정은 짜증으로 가득 차 있다.


“아주 잡상인 보듯 하데? 앞으로 이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은 받지 말자.”


지금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다.


“배부른 소리한다. 우리가 골라서 받을 처지냐?”

“복을 제 발로 찼다는 걸 알게 해 주겠어.”

“그래 반드시 그렇게 해주자. 나중에.”

“사정해도 절대 받아주지 말자. 알았지?‘


무엇보다 가온웨딩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걸 실제로 체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오늘처럼 불합리한 태클을 당하지 않는다.

또한 류지호도 활동반경이 훨씬 넓어질 수가 있다.

영업부 직원은 한창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는 김준우에게 다가가 철수하라는 명령을 했다.

박상우가 웃는 얼굴로 예식장 직원에게 말했다.


“여기 이 친구는 내 조수예요.”

“그랬어요?”


박상우가 직원에게 돈봉투를 찔러줬다.

예식장 직원이 돈봉투를 받아 안주머니에 넣고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뗐다.


“쟤들하고 무슨 관계예요?“

“가온이라고 신생 스튜디오인데 내가 작업하는 거 보고 배우라고 데리고 왔어요.”

“그러다 밥그릇 빼앗깁니다.“

“난 사진만 찍을 거라.... 나중에 직원들하고 소주 한 잔 해요.”


박상우가 손짓으로 류지호를 불렀다.

류지호가 직원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희가 부평에서만 일을 해서 이쪽 상황을 잘 몰랐습니다. 미리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아직 좀 미숙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영업부 직원은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러게 일을 하려면 먼저 담당자하고 상의를 하는 게 순서지. 이렇게 무작정 들어와서 영업을 하면 우리 입장도 난처하지 않겠나?”


류지호는 반박을 하면 더 곤란해질 것 같아 수긍하는 척 했다.


“예. 옳은 지적이십니다.”

“다 자네들이 다른 데 가서도 실수 할까 싶어 하는 말이니 섭섭해 하지 말고.”

“예.”

“그럼 수고하고, 다음 주에 영업부로 찾아와.”

“제가 조만간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나 처음 예식장 들어갈 때 텃세가 좀 있어. 여기처럼 작은 예식장도 사진관들이 서로 들어오려고 난리도 아냐. 행복예식장에서 군말 나오지 않고 일하는 건 운이 좋았던 거야.”


일종의 업체 길들이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약간의 뇌물을 챙기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다만 이번 해프닝은 명백히 류지호의 실수다.

예식장과 사진관들은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진사들이 반발할 수 있다.

‘갑’의 입장인 예식장이 가온웨딩에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그 걸 간과했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 관망하다가도, 먹을거리가 된다는 판단이 서면 어떤 식으로든 태클이 들어올 거다.


“마케팅이나 입소문이 문제가 아니네요. 일단 출장 나가는 부평 예식장들 돌며 점검 좀 해야겠어요. 선배님, 다음 주에 저랑 예식장 돌아주실래요?”

“그러자. 나도 너희 덕분에 출장 세건 잡았는데, 상부상조해야지.”


결국 이날 김준우가 대신 촬영을 진행했고, 고우찬이 8mm 캠코더로 예식장 직원들 눈치를 보며 겨우 촬영했다.

혹시 몰라 박상우에게 스냅사진을 부탁해 놓긴 했다.

편집 소스가 모자라면 사진이라도 비디오로 찍어 채워 넣어야 했다.

박상우 없이 자신들만 왔다면 촬영을 진행하지 못해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할 뻔 했다.


‘세상에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네....’


❉ ❉ ❉


캠코더를 다룰 줄 아는 김준우가 찍은 영상은 대체로 쓸 만했다.

그간 짬날 때마다 박상우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배우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샷에서는 류지호가 배울 점도 있었다.

반면에 고우찬이 찍은 8mm 캠코더 영상은 가관이다.

차라리 게으름을 피워 한곳에서 찍었으면 좋았을 걸.

딴에는 열심히 찍는다고 이곳저곳 분주하게 이동하며 찍은 모양이다.

초점이 안 맞거나 흔히 말하는 동굴 느낌의 영상이 대부분이다.


“자식이, 그래도 애썼네.”


류지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을 고우찬을 떠올리며 짜증 대신 피식 웃어버렸다.


틱. 위이잉.


류지호가 조그셔틀을 조작해 꼼꼼하게 김준우가 촬영한 영상들을 살폈다.

편집실에서 테이프가 재생되고 정지하는 소리만 한 동안 들려왔다.


다음날.


도저히 쓸 수 없는 샷들을 걸러내고 거칠게 가편집을 해보니, 15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 스케치도 촬영하지 못했고, 인서트 영상도 없다.

각종 페이드 인·아웃, 디졸브, 오버랩, 아이리스 등 효과를 마구 떡칠해 본들 기본 러닝타임에 한참 모자랄 것 같았다.

박상우가 찍은 스냅사진을 캠코더로 촬영해 넣어보았다.

역시 기본 러닝타임을 채우기 모자란 분량이었고, 원래 영상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 만족하자는 유혹에 빠졌다.

어차피 이 비디오를 보는 사람은 신혼부부와 그의 가족들뿐.

웨딩비디오의 기본 포맷도 확립이 되어있지 않은 시기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했다는 표시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정 미안하면 C타입에 들어가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넣어주던가.


“바보 같은 생각이지.”


아무리 D타입의 저렴한 상품이라도 대충해버리면 언젠가 이런 것들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당장 고객의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라도 자신이 받은 비디오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가온웨딩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실제 웨딩비디오 초창기에 엉성하게 작업한 영상들이 꽤 많이 퍼졌다.

전문성이 없는 웨딩비디오 업주가 갓 비디오촬영학원을 수료한 기사에게 성능도 떨어지는 저가용 카메라를 안겨주고 촬영을 해오라고 시킨다.

그렇게 촬영해 온 소스들을 가정용 VCR 두 대를 놓고 그냥 거칠게 이어서 붙인다.

배경 음악도 안 깔리고, 초점이 나간 영상도 그냥 쓴다.


“그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지. 전문성도 없었던 거지. 웨딩비디오의 기본 포맷도 없이 말 그대로 기념식 찍듯이 했으니까.”


타협할까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어렵네.”


류지호는 미래의 이 분야 트렌드를 알고 있다.

영화밥을 먹어봤기에 영상 분야의 기술적인 경험도 풍부했다.

다만 기술과 경영은 다른 문제라는 것.

적당한 가격, 괜찮은 영업력, 인력 관리, 회계 등등.

영상물을 만드는 능력과 그것들은 전혀 다른 분야다.


“안되겠다!”


류지호가 테이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길로 서울행 전철에 올랐다.

여의도에 위치한 프로덕션을 찾아갔다.

신포고 방송부가 뮤직비디오 편집을 했던 곳이다.

자신의 편집실 장비로 불가능한 효과들을 넣었다.

슬로우 모션과 정지화면 같은 영상효과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좋은 문구를 자막으로 넣고, 비싼 비용을 들여 색보정까지 했다.


“가족이야? 엄청 공들여서 작업하네.”


친구들은 류지호의 다소 과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뭐 땅 파먹고 장사 하냐? 어쩔 수 없었잖아.”


김준우의 생각이었다.


“고객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황재정은 역지사지를 주문했다.


“그냥 환불해 주면 안 돼?”


고우찬은 속편한 소리를 내놨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류지호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올해는 우리가 돈을 버는 시기가 아니야. 웨딩비디오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시기야. 지금 웨딩비디오를 찍는 사람은 소수야. 결혼식의 필수사항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웨딩비디오를 찍는다면 하나쯤은 이번 경우에 환불을 해주거나 배상을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을 텐데 비디오가 형편없으면 어떻게 될까. 분명 이 좁은 바닥에서 안 좋은 입소문이 생길거야.”

“소문이 도는 걸 일일이 신경 쓰면 어떻게 사업 하냐? 무슨 완벽주의자냐?”


황재정이 대번에 딴죽을 걸었다.


“사업적인 면에서 말해볼게. 한 번 우리에게 웨딩비디오를 맡긴 고객이 만족도가 높다면 아기 돌잔치에 부르고, 부모님 환갑잔치에도 우릴 부르지 않을까. 너희라면 어떨 거 같아?”


친구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길거야. 난 고객들이 우리를 알아주기 바라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쳇. 성인군자 나셨다.”


황재정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빈정거렸다.

류지호는 악의 없이 던진 투덜거림인걸 알기에 웃음으로 넘겼다.


“이왕 하는 거 쟤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

“다르긴 다르지 고삐리들이 찍는 웨딩비디오잖아.”


기어코 고우찬과 김준우가 빽하고 소리쳤다.


“야!”

“황재정!”

“귀 안 먹었어!”


황재정이 질색하며 마주 소리쳤다.

김준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재정에게 물었다.


“너 지호한테 자격지심 있냐? 왜 매번 삐딱선 타는데?”

“그래 있다. 어쩔래?”


황재정이 턱을 바짝 쳐들고 대꾸했다.


“그럼, 지호처럼 매일 신문 보고, 미국잡지 읽어. 이빨을 잘 깔려면 머리에 든 게 많아야지.”


고우찬이 진지한 어투로 충고했다.


“머리에 든 건 지호보다 내가 더 많아. 나 전교 9등이야 새꺄.”

“아, 그렇지? 재정이가 지호보다 공부는 잘하지?”


고우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납득했다.


후우.


순식간에 쓸데없는 화제로 전환해 친구들이 떠들었다.

친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 건 말건.

류지호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문화의 등장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류지호는 자신이 있었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만만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팔아도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법이다.

하물며 웨딩업계는 붕어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예식장이 문을 열고 있고, 그곳으로 출장사진을 찍는 사진사들이 제휴를 따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을 터.

또한 기존 기득권은 그걸 견제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웨딩비디오가 그들과 겹치지 않는 분야라고 떠들어봐야 기득권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발을 디딘 가온웨딩에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돈이 된다면 언제든지 웨딩비디오 판에 뛰어 들 것이다.

직원에게 회식하라고 찔러 준 돈과 외주업체에서 각종 보정을 한 비용을 합하면 이번 건은 명백히 손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류지호와 친구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싸게 먹힌 것이다.

류지호가 주섬주섬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안에 들어 있던 명함 한 장을 꺼내 바라봤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류지호가 한편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있던 의욕도 희미해진다.

방구석에 앉아 문제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움직여 부딪쳐야 한다.

답이 찾아오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잠시 신호가 가고, 저편에서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감사합니다. 신신예식장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이사님과 통화 가능하겠습니까?”

- 어디라고 전해 드릴까요?

“가온웨딩 류지호 실장이라고 전해주십시오.”


❉ ❉ ❉


아버지의 양복은 다소 노티가 나는 느낌이다.

때문에 류지호는 세탁소에서 적당한 양복을 빌려 입었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신신예식장을 방문했다.

모름지기 영업맨들은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류지호가 이사실로 들어가기에 앞 서 잠시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쓸어 올려 정리했다.


똑똑.


사무실 안쪽에서 중후하고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류지호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가온웨딩 류지호 실장입니다.”

“제 시간에 딱 알맞게 왔군요. 다시 봐서 반가워요.”


정종택 이사가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류지호가 그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지난번에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쪽으로 앉아요.”


얼마 전 인천지역 사진작가들의 전시회에 갔다가 정이사와 안면을 텄다.

류지호는 언제 한 번 사무실로 방문하라는 정이사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급하게 면담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들어와 테이블에 놓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자, 들어요.”


정이사가 류지호에게 커피를 권하고 자신도 호로록 한 모금 마셨다.


“행복예식장하고 제휴를 논의 중이라고요?”

“아직 생소한 분야라 신중하신 것 같습니다.”

“내게도 이야기 해줄 수 있어요?”


류지호는 영업비밀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웨딩비디오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어차피 예식장끼리는 정보를 교환하게 되어 있다.

굳이 비밀이랄 것도 없고.

어찌 보면 가온웨딩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예식장을 끼고 영업을 한다면 홍보와 광고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일감은 말할 것도 없고.


“비디오 촬영이라....”


류지호의 설명을 들은 정이사는 속으로 계산기를 돌렸다.

당연히 예식장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후르릅.


류지호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정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정이사가 생각을 접고 입을 열었다.


“어디어디 예식장에서 영업 중이죠?”

“부평의 행복예식장에 주로 예약이 많습니다.”

“그럼 중구와 남구에는 아직 없다는 말이군요?”

“한두 건 있지만 부평만 못합니다.”


류지호는 사실대로 말해줬다.

정이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알아보려고 마음먹으면 금방 알 수 있는 정보니까.


“행복하고 아직 계약하지 않았다면 우리랑 맺어보는 건 어때요?”

“독점을 원하시는 겁니까?”


정이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휴나 협력업체가 되면 사진관과 똑같은 걸 적용 받는 겁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겠어요?”

“이사님, 건방지다 생각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하게 말해 봐요.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

“완전 독점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푸근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이사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걸 본 류지호는 더욱 조심스러워 졌다.


“저희가 이미 행복하고 이야기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부평은 양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흠.”

“신신은 전통과 명성이 있어 인천 전역을 커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날짜를 못 받은 예비부부가 중구와 남구 다른 예식장으로 흩어지지 않습니까?”


정이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류지호는 식은 커피를 냉수 마시듯 목구멍으로 넘기고, 말을 이었다.


“부평의 행복, 주안의 고려, 간석의 궁전은 저희가 이미 협의 중에 있습니다. 저희가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지 마시고, 다양한 예식장에서 영업을 해야 웨딩비디오가 예비부부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참.”


정이사가 다소 어이없어 하는 반응을 보이자, 류지호는 긴장했다.

자신의 입장에서야 무리한 요구가 아니지만, 정이사는 기분이 상할 법한 조건이다.

그가 절대적인 ‘갑‘이니까.

정이사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류실장은 권역별로 하나씩 양보해주면 안되겠냐, 이 말이지요?”

“당돌한 요구인 줄로 압니다만 아직 웨딩비디오의 수요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예식장들은 신신보다는 선호도가 좀 낮지 않습니까? 웨딩비디오가 그쪽에 들어간다 해도 신신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협력업체로 지정해주면 감지덕지해야 판이다.

요구조건을 거는 행위는 자칫 배짱을 부리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다.

상대가 가소로워 할 수 있다.

그런데 류지호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몇 년 만 지나면 인천의 상권이 구월동으로 이동한다.

그때 가서는 전통의 신신예식장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10년 후에는 호텔예식도 부활한다.

몇 년 사업하다 접을 것이 아니라면 당장 신신예식장이 가장 잘나가는 곳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독점 계약을 맺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고 이 시기에 예비부부가 선호하는 신신예식장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으음......”


조금 느슨했던 대화 분위기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


정이사가 연륜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차분히 류지호를 바라봤다.

류지호도 침착한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이건 눈싸움이 아니다.

일종의 작은 탐색전.

충분히 정이사와 시선을 교환했다는 생각이 들자, 류지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당당함도 선을 넘으면 도발이 되는 법이다.

정이사가 굳었던 표정을 풀고 입을 열었다.


“보증금은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지요?”

“출장 사진관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매한 부분이다.

분명 웨딩기념사진보다 비디오가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앞으로도 그건 변함이 없다.

웨딩사진은 업자들이 마진을 줄이는 대신 액자나 앨범 값으로 수익을 보전하고, 원본이나 더 나아가서는 ‘스드메’와 결합해 수익을 보전하게 된다.

류지호는 비굴하지 않은 선에서 아쉬운 말을 했다.


“사진보다 비싸긴 하지만 비디오는 촬영기사 인건비가 따로 들어 마진이 얼마 안 됩니다.”

“내 입장에서 류실장의 마진은 고려대상이 아니에요.”


웨딩비디오가 활성화 되면 업자들이 서로 제휴를 맺기 위해 몰려들 테고,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며 보증금이나 수수료를 올릴 터.


“인천에서 웨딩비디오를 찍는 업체는 지금으로써는 저희가 유일합니다. 다음 시즌부터 저희를 따라하는 업체가 생겨나겠지만, 가온의 서비스를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류지호는 마지막으로 가온웨딩의 역량을 어필했다.


피식.


정이사가 웃음을 흘리고,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배짱이 두둑한 건지...”


류지호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튼 현재 류실장 업체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준 건 알겠어요.”


정이사가 커피잔을 들어 호로록 마시며 뜸을 들였다.

류지호로서는 몸이 다는 기분이었지만, 정이사의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뜸을 들이던 정이사가 마침내 입을 뗐다.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딱한 이야기 말고, 어떻게 비디오를 찍을 생각을 했는지 말해 봐요.”


류지호는 숨길 건 숨기고 사실은 사실대로 적당히 버무려 이야기를 풀었다.

정이사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경청했다.


- 이사님, 협회 조사장님께서 전화 주셨습니다.


인터폰이 울리기 전까지 정이사와 류지호는 웨딩비디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이사는 나이 어린 류지호의 웨딩산업에 대한 전망과 분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이사가 일어서며 손을 내밀며 말했다.


“류실장, 오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류지호가 손을 맞잡고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사님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류지호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후우 -


류지호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정이사와 대화를 나눈 줄 알았는데, 와이셔츠 등 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날이 더워 땀을 흘린 거라 생각했는데, 은근히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을 생각해 영업 할 사람도 필요하겠구나.”


너무 앞서가는 생각일지 몰랐지만, 류지호는 웨딩비디오에만 매달려 있을 수만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5 충성을 다 하겠슴다! (3) +7 22.01.25 9,322 204 24쪽
64 충성을 다 하겠슴다! (2) +8 22.01.24 9,540 195 21쪽
63 충성을 다 하겠슴다! (1) +10 22.01.22 9,872 214 20쪽
62 Whiplash...! (2) +7 22.01.21 9,485 202 21쪽
61 Whiplash...! (1) +9 22.01.21 9,709 208 27쪽
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704 217 21쪽
59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25 206 21쪽
»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33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39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15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93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56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98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22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29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59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19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86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5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88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94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42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63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408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48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27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90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18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17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60 234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