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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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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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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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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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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신예식장의 정 이사를 만나고 온 며칠 후.

류지호는 행복예식장과 제휴를 논의했다.

보증금 2천 만 원.

또는 예식장에서 연결해준 예약 건당 수수료 35 퍼센트.

기간은 일 년.

예식장 고객에게 기념촬영과 함께 결혼식 비디오를 홍보, 추천한다.

이것이 행복예식장에서 가온웨딩에 제시한 조건이다.

기간을 일 년으로 한정한 것은 내년이 되면 가온웨딩을 따라하는 업체가 생길 것을 예상해 업체끼리 경쟁을 붙이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만약 제휴를 하지 않으면 출입을 제한하실 겁니까?”

“왜 출장 사진사들이 우리에게 보증금을 내겠나?”


영업부장은 우회적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예식장 측에서 영업 자체를 막아버리면 예약을 받아도 도리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예식장이용 표준약관’을 마련해 시행되는 것은 2002년부터.

그때 가서야 신부드레스, 식당, 사진, 비디오 촬영 등 부대시설·서비스·물품의 이용을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강제하지 못하도록 법률로서 약관에 넣게 된다.

아직 예식장 패키지가 생기기 전이었지만, 예비부부들은 모든 부대 서비스를 예식장 측에 의존했다.

기가 막힌 건 계약서에 ‘드레스, 턱시도, 사진, 미용을 외부에서 조달 시 서비스 없음’이라고 버젓이 표기한다는 것이다.

고객의 예식시설 및 부대시설 이용과 드레스 같은 부대서비스는 별개임에도 예식장에서는 자신들과 영업계약을 하지 않은 업체를 원천적으로 막았다.

그렇다보니 관련업체들은 뒷돈을 주고서라도 보증금 같은 명목으로 예식장에 돈을 지불했다.


“지난 번 말씀드린 것처럼 신신, 고려, 궁전하고 계약해도 되고요?”

“대신 부평에서는 우리하고 만 일해야겠지. 투자금 명목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예식장도 많아. 우리 예식장은 그런 오랜 업계 관행을 따르지 않잖아.”


부장은 많이 양보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상 예식장이 해주는 건 없다.

홍보라고 해봐야 예약실에서 고객에게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권하는 수준일 테고, 예식장은 보증금이란 명목의 돈을 챙길 수 있다.

류지호의 기억에 어떤 웨딩촬영 업체는 예식장에 자비를 들여 조명을 설치해 주기도 했다.

양질의 촬영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지출이었던 것 같았다.


“...으음.”


류지호는 고민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보증금.

당장 2천만 원이 없다.


“일주일만 말미를 주시겠습니까?”

“봄 시즌도 며칠 안 남았어.”

“알고 있습니다. 쌍방이 서로 만족할 만한 계약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온하고 이야기 하고 있는 예식장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을걸. 따로 우리가 말을 맞추지 않아도 원래 이 바닥이 뻔해.”


강남의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에 비해 2천만은 싼 것처럼 보인다.

실제 물가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액수다.

현재 인천에서 결혼식 비디오를 찍는 업체는 가온웨딩이 유일했다.

가온웨딩과 협력관계를 맺게 될 예식장은 단 4곳.

그 4곳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 다른 예식장에는 없는 경쟁력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느 일방이 무조건 유리한 제휴가 아니라는 의미다.


“일주일 간 충분히 고민하고 찾아뵙겠습니다.”


류지호가 행복예식장을 빠져나와 기업은행으로 향했다.

곧장 중소기업융자 창구로 걸어가 은행직원과 대출상담을 했다.


“담보가 없으면 대출은 힘들어요.”

“정부에서 신용대출을 확대한다고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사장님의 경우 업체의 규모와 매출 그 밖의 몇 가지 조건에서 자격이 되지 않아요.”


은행을 나선 류지호가 이번엔 태산증권으로 향했다.

유가증권담보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미성년자는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주식을 팔까도 생각했지만, 보상금을 받으며 한 약속을 깰 수는 없었다.


“으음... 행복예식장하고만 계약해야 하나?”


새삼 파커가의 투자유치 실패가 뼈아팠다.


“버스 떠난 다음에 손 흔들어 봐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일 뿐...”


류지호는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 ✻ ✻


류지호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행복예식장의 조건을 들려주고 의견을 구했다.


“재정아, 일단 애들한테 간략하게 매출하고 실적 알려줘.”

“5월 첫 주부터 웨딩비디오를 찍기 시작해서 지난주까지 총 21개 비디오를 팔았어. C타입이 두 번, R타입은 일곱 번, D타입은 가장 많은 열두 번이야. 환갑잔치도 4번이 있었어. 총 매출은 1010만원이야. 주로 지호가 촬영을 했지만, 방송부 형들이 D타입 출장에 6번, 지호 서브로 9번을 뛰면서 인건비로 150만원 지출했고, VHS 테이프 외 각종 비용으로 58만원을 썼어. 비용에는 우리가 일부 부담하기로 한 판사진관 임대료는 미포함이야.”


누군가는 한창 결혼시즌에 21번의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매주 진행된 예식의 수치와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숫자인 것은 맞다.

하물며 경쟁업체도 없는 상황.

하지만 현재 VCR 보급률과 여전히 혼수 품목에 VCR이 본격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시기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사인방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예약률을 걱정했다.

현재 VCR은 국산 기기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며 보급률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20퍼센트 대에 머물고 있었다.

90년에 가서야 35퍼센트, 92년에 54퍼센트로 올라가면서 웨딩비디오가 일반화 된다.

따라서 혼수에 VCR이 포함된 중산층 이상 신혼부부가 주요 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가온웨딩과 관련된 사람 중에 예약률 걱정이 없는 이는 류지호 뿐이다.

몇 년 후에는 웨딩비디오와 포토북의 수요가 폭발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당장의 수익보다 브랜드 이미지와 신용을 확실히 하는 것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대략 720만 원이 이익이야. 엄밀히 말하면 이 금액이 온전히 이익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복잡하니까 이 정도로 알아 둬.”


류지호는 주먹구구식 회계에 내심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류지호 본인도 회계부분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황재정에게 장부기입만 꼼꼼히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것 외에는 당장 도리가 없었다.

정확한 회계처리는 신효정에게 부탁하거나 믿을 만한 사람을 경리로 뽑을 수밖에 없다.

매출이 확 늘지 않는 이상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익이 나면 신형카메라 사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리고 운영비도 필요하잖아.”


김준우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돌아갈 몫에 내가 짬짬이 모은 돈을 합하면 800만 원 정도 돼.”


올해 가계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정도였다.

류지호는 친구들에게 연말정산 후 일정 부분의 이익을 떼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덕분에 친구들만 신났다.

비수기에 공치는 것과 윌리엄의 현물 투자금, 비용 등은 온전히 류지호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당장 보증금만 8,000만 원이 필요해.”

“......!”

“우린 보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그리고 보증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1년간 그 이상의 수익을 뽑을 수 있다고 보장 못해. 그래서 예식장 측에 보증금 대신 수수료를 떼어주는 것으로 협상을 했으면 어떨까 해. 이익은 계획했던 대로 스튜디오에 투자하는 걸로 하고.”

“학교 공부하고, 웨딩비디오 찍으러 다니느라 돈 쓸 시간도 없어.”

“지호가 사장이니까 맘대로 해.”

“바보야, 네 돈을 왜 지호가 맘대로 해?”

“내 돈이야? 우리 돈이 아니고?”

“에휴, 우찬아, 너 딱 사기당하기 좋겠다.”


김준우가 딱하다는 표정을 고우찬을 바라봤다.


“지호 안건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황재정의 말에 두 녀석 모두 손을 벌쩍 들었다.

그것으로 예식장 제휴와 관련 된 안건이 결정되었다.

진지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동업자들인 친구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그나저나 한 달에 한 건만 찍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 전인데, 21번이나 찍었어?”

“이러다가 우리 금방 부자 되겠는데?”


김준우와 고우찬의 설레발에 황재정이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고급 상품이 안 팔린다는 거야.”

“그러게. 일부러 굴러 온 복을 찰 필요는 없지 않아?”


김준우는 제휴 예식장 숫자를 늘리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인천 다 커버 못해. 예식장이 몇 개인 줄 아냐?”


류지호의 의도는 명확했다.

현재 상태로는 일감이 밀려들어와도 감당할 수가 없다.

모든 예식장에서의 웨딩촬영을 욕심내기 보다는 예비신부들이 선호하는 거점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다.

세상사가 본래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무리하게 남의 것을 탐내어 크나큰 욕심을 부리다가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예약률이나 그런 것도 너무 걱정하지 마.”

“......?”

“우리가 들어가는 예식장 예약실에서 고객들에게 슬쩍 언질만 줘도 상담이 쏟아질 걸?”

“설마....?”

“어쩌면 가을 시즌에는 사람을 더 써야 할지도 몰라.”

“그 정도야?“

“거의 대부분의 예비부부가 예식장에서 권하는 업체들과 계약해. 그런 업체를 무턱대고 믿는 편이고.”

“그럼 가온 팍팍 밀어달라고 해.”

“우리가 예식장에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잖아.”

“언제고 예식장에 큰 소리 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야망은 주머니에 잘 넣어뒀다가 내년부터 꺼내자. 오케이?”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렇게 모든 일이 잘되고 있잖아.”


김준우가 히죽 웃으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고우찬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러게 고삐리라고 막 무시하고, 아무도 관심을 안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어벙하게 굴지 마.”


황재정의 잔소리로 대화를 끝마쳤다.

실제로 잘 풀린다고 볼 수만은 없다.

류지호는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는 삼갔다.


“난 이윤이 안 나도 괜찮아. 우린 이제 시작단계란 걸 잊지 말자.”


류지호의 말에 친구들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상반기 실적만 놓고 보면 사인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값진 성과다.

게다가 이제 시작이다.

가을 결혼시즌 예약도 이미 7건을 잡아 놓은 상황.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고객도 있고, 부모님들의 지인들이 소개한 고객도 있다.

더구나 다음 시즌부터는 부평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신예식장과 고려예식장에서 치르는 예식이 각각 한 건씩 예약이 들어왔다.

D타입이건 R타입이건 상관이 없다.

일이 돌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본격적으로 경쟁업체가 등장하기 전에 탄탄하게 회사의 기초를 다져놔야 했다.

어떤 경쟁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 ❉ ❉


류지호가 계약서에 도장을 꾹 찍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잘 해보자고.”


류지호가 행복예식장 영업부장과 악수를 하며 덕담을 나눴다.

이후로 세 군데 예식장을 더 돌며 제휴업체 계약을 체결했다.

함께 예식장을 도는 박상우가 물었다.


“올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는 계약서에 명시된 예식장 외에서는 영업을 하지 못하는 거냐?”

“예. 선배님. 내년 가을시즌 전에 새로 계약을 갱신하기로 했어요.”

“아쉬워도 어쩌겠냐? 예식장이 우리 목줄을 잡고 있는 걸.”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거죠 뭐.”

“그래도 수수료를 처음의 조건보다 낮춘 거지?”

“마음씨가 좋아서 양보해줬겠어요? 수수료가 발생해 봐야 얼마나 되겠냐고 생색이나 실컷 낸 거죠.”


예식장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 수수료를 양보하는 척 했다.

내년에 재계약을 하게 될 때 지금의 액수보다 많은 보증금을 요구할 것이 뻔했다.

류지호는 겉으로 감사를 표했다.

내심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지호야, 고맙다.”

“뭐가요?”

“네 덕분에 잘나가는 예식장에 얼굴 도장 꽉 찍었잖아.”

“선배님이 옆에 계셔서 제가 얼마나 든든했는데요.”

“자식....”

“패키지가 안 돼서 좀 아쉽네요.”


예식장 4곳과의 독점계약에서 판사진관은 빠졌다.

패키지를 하더라도 판 사진관이 아닌 예식장 4곳의 기존 제휴업체들과 하기로 했다.


“할 수 없지. 그런데 지호야?”

“말씀하세요.”

“아니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그 말을 끝으로 박성우는 입을 꽉 다물었다.


❉ ❉ ❉


황제예식장.

부장이 영업부 사무실로 들어왔다.


“성호씨.”

“예. 부장님.”


성호라고 불린 사원은 지난 날 류지호의 웨딩촬영을 막아섰던 바로 그 직원이다.


“혹시 우리 예식장에 가온웨딩이라는 업체가 들어오나?”

“가온웨딩이요?“

“결혼식을 비디오로 찍는다고 하던데?”


김성호가 잠시 기억을 떠올리더니 생각났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허락도 없이 영업하기에 쫒아냈습니다.”

“뭐?”

“개념 없이 잡상인처럼 영업하더라고요.”

“그랬어? 성호씨가 거기 업체 사장 좀 만나봐.”

“사장을요?”

“고려에서 거기 제휴업체로 계약했대. 인천에서 비디오 찍는 곳은 거기 밖에 없다더라. 고객들이 예약실에 비디오 찍어 주냐고 문의를 많이 한다던데.... 몰랐어? 고려에서는 하는데 왜 황제에서는 안 하냐고 따진다더라.”


경쟁 예식장에는 있고 자신들에게 없는 서비스.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만나서 우리 예식장도 들어올 수 있는 지 타진해봐. 보증금 너무 세게 부르지 말고.”

“알겠습니다.“


김성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114를 통해 가온웨딩의 전화번호를 안내 받은 후, 전화를 걸었다.


- 감사합니다. 판 & 가온 스튜디오입니다.

“사장님 좀 바꿔줘요.“

- 어디신데요?

“여기 황제 예식장이에요.”

- 황제요?

“예.“

- 주안에 있는 거요?

“맞아요.”

- 무슨 용무신데요?

“협력업체 건으로 전화했어요.”

- 그러십니까? 지금 사장님 출타중이세요.

“그럼 황제예식장 김성호에게서 전화 왔다고 전해줘요.”


가온웨딩의 사무실.

황재정이 수화기를 내려놨다.


“어차피 독점계약 때문에 할 수도 없지만, 니들하고는 일 안해.”


은근히 뒤끝이 있는 황재정이다.


그리고 며칠 후.

류지호는 신신예식장에서 웨딩촬영을 진행했다.

이번 예약은 R타입의 의뢰여서 폐백까지 따라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


“신혼여행에서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오십시오.”


류지호가 신랑신부에게 덕담을 건네고 철수 준비를 서둘렀다.

장비들 수습하고 있는데, 황제예식장 김성호가 다가왔다.


“가온웨딩 맞지?”

“예.”

“난 황제예식장 영업부 김성호야.”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좀 내봐.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지.”

“죄송하지만 저희가 고려예식장에서 촬영이 있어요.”

“잠깐이면 돼.”

“진짜 죄송해요. 저희가 좀 급해요. 시간 맞춰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됩니다.”


류지호와 고우찬은 큰길가로 나와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주안으로 이동했다.

김성호 역시 택시를 타고 류지호를 따라갔다.

그는 류지호가 고려예식장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제휴요?”

“지난번에는 내가 류실장한테 함부로 했어.”

“저희가 미숙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지나쳤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아니었는데.”

“근데요. 부장님.”

“나 부장 아냐. 사원이야. 편하게 대해도 돼.”

“제휴는 힘들어요.”

“아이고. 우리 실장님. 많이 섭섭했나 보네.”


김성호가 태세를 전환해 류지호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미 네 곳의 예식장하고 독점 제휴를 해서 다른 예식장하고 일을 못합니다.”

“독점계약?”

“내년 가을시즌까지는 다른 예식장과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주안의 다른 예식장에서 일 안 할 거야?”

“현재로서는 여력도 없고, 독점계약이 걸려있어서 안됩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

“그리고 김성호 사원님. 아무리 제가 어려보인다고 해도 가온웨딩의 대표입니다. 자꾸 반말을 하시는 건 좋은 영업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중에 예식장으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류지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돌아섰다.

김성호가 터덜터덜 고려예식장을 빠져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제대로 대접을 해 주면서 안면을 텄어야 했는데!’


후회가 막심했다.

돌아가면 부장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깜깜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고등학생 밖에 안 된 놈들이 저럴 수 있는 거지?


가온웨딩의 실장은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김성호는 직접 류지호가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역량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많은 하객들이 웨딩비디오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확인했다.

이 추세로 보면 너도나도 비디오촬영을 부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은 선입견을 가졌다가 일이 틀어져 버렸다.

김성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후우. 아무래도 돌아가서 부장에게 깨지게 생겼군.’


이미 계약했다는 예식장보다 먼저 기회를 잡았을 수도 있었다.

지난날의 자신의 행동이 더욱 후회스러웠다.


❉ ❉ ❉


며칠 전부터 류아라가 유난히 칭얼댔다.


“작은 오빠만 맛있는 거 사주고. 큰오빠 나빠!”


자꾸만 칭얼대는 여동생 때문에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그냥 식구끼리 축하해 주면 되지 무슨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다고.... 철딱서니 없이.”


류지호는 어머니가 투덜거리는 소리는 듣고야.


‘아차! 아라 생일이었지....’


류지호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판사진관을 나섰다.

주안 대로변에 있는 제과점에서 생일 케이크를 샀다.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여동생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몇 가지 골랐다.

오랜만에 지출이다.

지갑에 들어있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다고 아까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럴 때 쓰려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니까.


까르르.


여동생의 생기발랄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좁은 마당에서 ‘나잡아 봐라‘가 가능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류아라와 친구들이 된다는 걸 증명했다.

꼬맹이들이 류지호 주변을 정신 사납게 뛰어다녔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빙하타고 내~려와 음 음.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 공룡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국민학생 꼬맹이들이 <아기공룡 둘리> 만화주제곡을 불렀다.


찰칵!


류지호가 그런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집안에서 심영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아라하고 친구들 들어오라고 해!”


류지호가 꼬맹이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는 심영숙이 아이들을 위해 차린 생일상이 떡하고 한상 차려져 있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하니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꼬맹이들이 생일상에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맛있는 냄새!”

“우와.”


구운 삼겹살에 살짝 익힌 스팸 그리고 상추 위에 올린 캔 모양 그대로의 참치.

상 중앙 넓은 쟁반에 탑처럼 쌓여있는 김밥.

잡채와 전까지.

화룡점정은 떡볶이다.

진수성찬 앞에 모여 앉은 꼬맹이들이 감탄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차린 음식에 대한 감상은 그걸로 충분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심영숙이 뿌듯해하는 사이.

류지호가 방에서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밥 다 먹니?”

“네에~”

“이제 케이크 촛불 끌까?”

“네에!”

류지호가 류아라 앞에 케이크를 내놨다.

꼬맹이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후우.


류아라가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다.


짝짝짝!


이어 심영숙이 케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 꼬맹이들에게 나눠줬다.


“맛있어!”


류지호는 손가락으로 류아라의 입 주변에 묻은 케이크 자국을 닦아주면서 생각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류지호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생일파티다.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의 생일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류지호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사다주었다.


“큰오빠, 사랑해!”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류아라가 류지호의 품에 안겨왔다.

류지호는 여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헤헤.”


꼬맹이들이 모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남은 음식을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냉장고에서 병맥주를 챙기는 걸 심영숙은 모른 척 눈감아줬다.

남은 음식을 안주삼아 병맥주 한 병을 홀짝거렸다.

고등학교로 돌아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긴 했지만, 혼술은 처음이다.

병맥주 한 병으로 취할 리가 없다.

다만 감상적인 기분에 취할 뿐.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님, 마고할머니님, 옥황상제님 기타 온 우주의 신들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어떤 존재에게 거듭 감사했다.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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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704 217 21쪽
»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26 206 21쪽
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33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39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15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93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56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98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22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29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59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19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86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5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88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94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42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63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408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48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27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90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18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18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60 23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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