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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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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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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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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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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연풍(戀風).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포고 분위기가 어딘지 산만했다.

학생들은 좀처럼 학업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축제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교사들이 갖은 협박과 사탕발림을 동원해 학생들의 마음을 다잡아 보려 애썼다.

축제가 끝난 일주일이 지나서야 예전의 신포고로 돌아왔다.

맹장수술을 받은 이명환이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매우 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아. 내년이 있잖아.”

“금방 3학년이야. 내 방송부 인생은 끝났어.”

“올해 형들이 뮤비 찍었잖아.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지.”

“학력고사는 포기하고?”

“......”

“내년에 내가 뮤비 주인공을 하던 감독을 하던 할 거야!”


이명환이 짐짓 억지를 부렸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방송부원들로서는 섣불리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아무튼 이명환까지 정상적으로 등교를 하게 되면서 서서히 방송제 후유증을 털어냈다.

류지호는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태권도장에 나왔다.


“아자!”


퍽퍽퍽!


고우찬은 한창 태권도에 재미를 붙였다.

먼저 시작한 류지호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머리는 좀 모자라나 근골이 뛰어난 제자가 다소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수련해 무림의 해악을 처리하는 무협소설이 있다.

고우찬은 운동 능력의 자질은 우수하고 근골이 뛰어난 인재이지만, 명석한 두뇌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뛰어난 오성을 지닌 인재는 아니다.


‘복싱을 시킬 걸 그랬나?’


아무리 고우찬이 신체적으로 타고났어도, 격투기 분야에서 헤비급으로는 세계 정상을 노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얼마나 강한 펀치를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얼마나 강한 펀치를 맞고도 일어서느냐가 중요한 거야.”


류지호가 영화 <록키 발보아>의 대사를 중얼거렸다.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성과 인내.

성년이 되기 전에 고우찬은 그것을 키워야 했다.

고우찬이 태권도에 흥미를 잃지 않기만 한다면, 홍 관장이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라 류지호는 굳게 믿었다.


“지호야, 관장님이 찾으셔!”


화장실에 갔는지 홍 관장은 자리에 없었다.

류지호는 곳곳에 걸려있는 사진액자와 상패들을 구경했다.

홍관장의 이력을 알 수 있는 수많은 감사패와 상패, 기념사진들.

청와대를 배경으로 건장한 사내들과 찍은 빛바랜 흑색 사진.

태권도복을 입은 아프리카계 흑인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알 수 없는 산 정상에서 깍두기 머리의 청년들과 찍은 사진 등등.

평상시 보이는 모습과 상반된 카리스마 넘치는 홍관장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다.

홍 관장이 관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대뜸 말했다.


“2단 심사 봐라.”

“언제요?”

“다음 달에 봐도 되고, 원하는 달 아무 때나. 홍 사범에게 미리 말해둬.”

“다음 달에는 중간고사가 있어요. 11월에 보는 걸로 할게요. 한 번에 따야 할 텐데 방송제다 뭐다 꽤 수련을 빼먹었네요.”

“2단이야 거저 따는 거고... 이번에 2단 따면 나중에 학력고사 보고 3단. 대학가서 4단 따도 되고, 군대에서 태권도 교관하면서 따도 되고.”


‘아, 젠장 군대!’


두 번째 입대.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류지호가 군대에 가기 전에 통일이 되면 또 모를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 나보다 먼저 과거로 돌아온 사람 없나? 판타지 소설 보면 주인공이 통일도 시키고 그러던데. 내가 군대 가기 전에 통일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소원은 통일. 내 소원도 통일.”


꿈에 귀신이 나오면 그 찝찝함은 하루가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다면?

하루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예비역들에게 군대는 수다를 떨 수 있는 추억꺼리이자 끔찍한 악몽이다.


“인석아, 뭘 혼자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려?”

“우리 소원은 통일이라고요.”

“엉뚱하기는... 아무튼 준비 잘해서 한 번에 딸 수 있도록 해.”

“예!”

“써먹든 장롱에 처박아 놓든 태권도 자격증 따놓으면 언제가 써먹을 때가 있을 거다. 자격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정 먹고 살길이 막막하면 사범을 해도 되고, 평생 수련하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

“태권도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걸요? 에어로빅 태권도, 다이어트 태권도 같은 걸로 갈아타야 겨우 입에 풀칠하려나....”

“인석아, 아무리 태권도가 스포츠로 전락했다고 해도 그건 너무 나갔어.”

“누가 알겠어요. 앞으로 그렇게 될 지도 모르죠.”


88올림픽을 계기로 태권도의 실전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스포츠화가 더욱 가속화 된다.

이 시기만 해도 태권도의 실전성과 무도로서의 가치를 지키려는 관장과 사범들이 꽤 많았다.

발차기뿐만 아니라 주먹 공격도 제법 많이 사용되던 시기다.

전자호구니, 점수제니.

시합태권도는 양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손을 아래로 내려뜨린 채 점수 따기 발 놀리기 게임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치 야성을 잃은 사자나 호랑이가 동물원 우리에서 매일 잠만 자는 것처럼.

태권도에 야성이 언제 있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랬던 시절도 분명 있긴 했다.

홍 관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때야 튼튼한 몸뚱이 굴려 벌어먹고 살았다지만. 현대에 몸 쓰는 것보다 머리를 잘 쓸 줄 알아야 출세한다. 아무리 운동을 잘해봐야 출세한 운동선수밖에 더 돼? 운동보다 머리가 중요하다 이 말이야.”

“무도인이시면서 제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요?”

“현실이 그렇다는 게야.”


홍 관장이 다소 씁쓸한 어조로 대답했다.

류지호 역시 동의하는 바다.

아직까지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그런 시기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좋은 직업과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소자본으로 자수성가도 가능했다.


“관장님 말씀이 옳은데요. 그래도 육체적인 능력을 무시하다가 일찍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

류지호는 죽을 때까지 수련과 운동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잘나갈 때 건강이 발목을 잡는다면 그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 ❉ ❉


홍 관장과 상담을 하느라 태권도장을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섰다.

자칫 지각을 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

류지호는 고우찬과 함께 학교로 향하는 지름길을 열심히 달렸다.

신포동 쪽에서 응봉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을 달릴 때.

골목에서 뾰족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지 마!“


위기에 처한 여성과 주변을 지나가던 무술 수련자.

어딘지 익숙하고 뻔한 상황.

신포동 일대는 구월동 로데오 거리가 뜨기 전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워낙 별의별 인간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종종 강력 범죄가 발생하곤 했다.

마치 지금처럼.


“정말 이럴 거야? 내가 너 좋다고 했잖아!”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난 그쪽 싫어요!”


남녀의 사랑타령이다.

고우찬은 신경조차 쓰기 싫다는 듯 열심히 발을 놀릴 뿐.

반면에 류지호는 신경이 쓰였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칠 뻔한 어린이를 구해주고 돈과 인맥을 얻은 것처럼.

혹시 행운을 불러 오지는 않을지.

류지호가 달리던 속도를 늦추고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접근했다.

데이트 폭력이라도 벌어지고 있다면 용감하게 나설 생각이다.

싸움을 좀 해 본 고우찬을 믿는 바도 없지 않았고.


“나 갈래요!”

“어딜 가!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턱!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 이거 못 놔!”


여자가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류지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건 뭔 아침 드라마 시츄에이션도 아니고, 고교얄개 시츄에이션이냐?“


데이트폭력인 것은 맞다.

단지 그걸 실행하는 측이나 당하는 측 모두 자신 또래로 보인다는 것.

남학생이 여학생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남학생 녀석이 자신의 입술을 여학생의 입술에 강제로 포개려고 했다.

여학생은 사력을 당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까지 하죠.”


류지호가 실랑이 벌이는 남녀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뚱한 표정의 고우찬이 따랐다.


“그냥 가세요. 애인하고 잠시 다툰 겁니다.”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여자애가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단발머리에 제법 곱상하게 생긴 여학생이다.

인애여고 배지를 달고 있다.


“여자 분은 생각이 다른 것 같은데요?”


여학생이 애원조로 말했다.


“이 사람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저 좀 큰길까지 아니 학교 교문까지 데려가 주세요. 제발요!”


류지호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기 위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데, 고우찬의 행동이 더 빨랐다.

고우찬이 성큼성큼 앞질러 나가 류지호와 남학생 사이에 섰다.

류지호를 보호하면서 남학생을 견제하는 모습이다.


흠칫!


남학생이 겁을 집어먹고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풀었다.

여자애가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류지호의 뒤로 숨었다.

남학생이 짐짓 허세를 부렸다.


“너희들 어디 고등학교야?”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고우찬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흠칫.


남학생이 또 다시 겁을 집어 먹고 한걸음 물러났다.

인상 자체가 험악하게 생겨먹은 데다가 화난 듯 표정을 구기니 그 기세가 절로 사나워 보이는 고우찬이다.

오해다.

고우찬은 지금 화가 나지도,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아주 평온한 상태다.

인상 자체가 워낙 더럽다보니 조금만 찡그려도 화난 것처럼 보였다.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너 고등학생이야? 대곤? 광명? 신포고? 어디 다녀?”


고우찬이 심드렁한 어조로 물었다.


“아, 아니!”


남학생이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저 애처롭게 보일 뿐.


“호오, 그으래? 검정고시냐? 그럼 맞짱 죽여도 문제없겠네?”


금세 고우찬의 표정이 밝아졌다.


“한판 뜰까? 뭐로 할래? 완타치 함 뜰까 아님 연장 들래?”


류지호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섰다.


“여기 여학생은 우리가 학교까지 데리고 갈 겁니다. 그쪽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흥!”


남학생이 짐짓 위세를 떨듯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서 걸어갔다.

왠지 다리가 잘게 후들거리는 것 같다.


“고우찬! 아무한테나 시비 걸 거야?”

“시비는 저 놈이 먼저 걸지 않았냐?”

“너 한번만 더 아무한테나 시비 걸거나 싸우면 홍 사범님한테 지도대련 건의할거야.”


움찔!


고우찬이 가늘게 몸서리를 쳤다.

녀석이 아버지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사람이 홍 사범이다.

말이 지도대련이다.

복날 개잡듯이 잡도리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남학생이 골목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그제야 여학생이 안도했다.

여학생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학교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남학생이 또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여학생을 인애여교 교문으로 향하는 길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예쁘네.’


하지만 그걸로 끝.

별다른 감정은 피어나진 않았다.

분명 미래 기준으로 봐도 예쁜 외모다.

첫눈에 반한다거나 사귀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지 않았다.

원조교제는 범죄.

결혼생활이 실패만 하지 않았다면, 저 만한 딸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무의식이 어딘지 모르게 그런 생각 자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혹시 신포고 다녀요?”


여학생이 맑고 큰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고등학생 소녀답게 풋풋하고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다.


“네. 신포고.”


여학생은 류지호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학생을 쫒아낸 고우찬에게 계속 질문했다.


“몇 학년이에요?”

“1학년.”

“나도 1학년이에요. 인애여고.”

“네.”


고우찬이 짧게 대답했다.

여학생은 무뚝뚝하게 대꾸하는 고우찬이 왠지 섭섭했다.


“교문 앞까지 같이 가줄까요?”

“괜찮아요.”

“그럼.”


고우찬이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여학생은 멀어지는 류지호와 고우찬의 등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의 머리에 콩 하고 꿀밤을 먹였다.


‘바보. 이름을 안 물어봤잖아.’


여학생이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신포고 1학년이라고 했지?”


❉ ❉ ❉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사인방이 교문을 빠져나왔다.

류지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송제 결산을 하느라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하교하고 있다.

신포고로 올라가는 언덕길 한편에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인방이 신포고 학생들과 섞여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여학생들이 사인방을 가리키며 뭐라 숙덕거렸다.

그러다 여학생들이 사인방에게 다가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김준우는 자신의 인기에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여기서 말하면 안 돼요?”


황재정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여학생 한 명이 김준우를 향해 수줍게 분홍색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저 여기...”


김준우가 봉투를 받아들며 말했다.


“마음은 고마운데...“


여학생이 김준우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거 방송부 지호한테 대신 전해줄래요? 1학년 류지호요. 방송제 때 단상에서서 지휘하던 남자애.”

“...응?”

“미안해요. 내가 엄청 고민했는데 용기가 안나요. 지호한테 직접 전해주는 건 부끄러워서....”

“아, 그, 그래?”


김준우는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


큭.


사인방 친구들이 억지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나도....”


함께 온 다른 여학생이 예쁜 편지봉투를 건넸다.

황재정이 짐짓 대범한 척 편지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줘 봐요. 내가 전해줄게요.”

“나는 원석이한테 전해줘요. 최원석. 꼭 좀 부탁해요.”

“류지호한테 꼭 전해줘야 해요?”


김준우는 활짝 웃으며 돌아서는 여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애들아, 나한테 이름도 안 물어보냐? 나도 사진분데.’


한동안 김준우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다.

김준우는 이번 한 번만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해프닝 정도로 여긴 것이다.

헌데 신포고 인근 여학교 사이에서 사인방이 편지를 대신 전해준다는 소식이 퍼졌다.

여학생들이 사인방에게 러브레터 전달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사인방은 러브레터 심부름을 하며 한없이 우울해졌다.


“또?”


최원석과 한수호 앞으로 쏟아지는 러브레터들.

그들이 받은 양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류지호에게도 많은 편지들이 전해졌다.


“백 개의 연애편지보다 난 이것 하나면 충분해. 일당백이야.”


이철웅이 꽃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절대 친구들의 러브레터가 부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방송제때 여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꽃이었으니까.

박상은이 시들어가는 꽃을 보다 못해 이철웅의 손에서 꽃을 빼앗았다.

물이 담긴 페트병에 꽃을 꽂았다.


“영원한 방송부장. 너 밖에 없다!”


이철웅이 껴안으려고 달려들자, 박상은이 질색하며 도망쳤다.


피식.


류지호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경험하는 구나 싶었다.

차분해지려고 했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방송부들에게 러브레터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 되자 류지호에게는 러브레터가 전해지지 않았다.

류지호는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며칠 후.

점심방송을 마친 최원석이 은근하게 류지호에게 물었다.


“혹시 다연이랑 만나?”

“아니.”

“진짜 안 사귀는 거야?”

“내가 걔랑 왜 사귀겠냐?”

“이상하다. 다연이가 너 찍었다 그러던데....”

“......?”

“다연이가 너랑 사귄다는 소문 다 났어.”

“다연이가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나랑 사귀겠냐?”

“그건 그렇지만...”


단번에 인정하는 최원석이었다.


“걔는 나 싫어해.”

“진짜?”

“응.”


꿈에도 꿀 수 없었던 스캔들이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창피해야 하는지.

류지호는 분간이 가질 않았다.

최원석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호야, 걱정 마. 다연이한테는 쨉도 안되겠지만 내가 인천여고 여자애 소개팅 시켜줄게. 나만 믿어.”


최원석 딴에는 용기를 북돋아준다고 주먹까지 쥐어보였다.

류지호는 그 모습이 왠지 얄미워 보였다.


“소개팅 안 해. 관심 없어.”


최원석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떠보듯 다시 물었다.


“설마 우리 몰래 다연이랑 사귀는 거 아니지?”

“그럴 일 없어.”


인천 남학생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싸가지 공주.

공다연은 짐승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를 두른 화려한 장미였고, 무수한 기사들의 구애에도 끄덕하지 않는 도도한 공주님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다면 신의 축복을 받은 고등학생으로 등극하게 된다.

동시에 무수한 남학생들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장미 가시에 찔려 고통 받으면서, 장미꽃을 따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초식동물들의 위협에 직면해야 하는 처지.

인천의 고등학생 세계에서 공다연과 사귄다는 건 그런 것이다.

류지호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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