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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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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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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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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2월 중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유신헌법 이후 처음으로 국민의 직접선거로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다.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만큼이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국 평균 투표율은 무려 89.2%.

역사와 달라지지 않았다.

‘나 보통사람이에요!‘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어느 때보다 민주화의 열망이 뜨거웠던 국민들의 실망은 매우 컸다.

6월에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국민들은 또 다시 좌절감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던 역사였지만 류지호 역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운동 가?”

“수봉산 한 바퀴 돌고 올 게요.”

‘따뜻하게 입고 나가 감기 걸려.“

“예.”


류지호는 수봉산 산책길을 걷다가 한편의 계단에 앉았다.

산 아래 펼치진 서민동네에 시선을 던졌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동시에 역사가 기억대로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모순된 두 감정이 교차해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어림도 없다.

인천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고등학생이 무슨 재주로.

거대한 세상에서 류지호는 한 없이 작은 존재다.

그냥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설사 슈퍼히어로, 9서클 대마법사가 된다 한들, 그런 짓은 사양이다.

어차피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부모자식 사이인 류지호와 류민상이 바라는 세상이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치인, 과학자, 예술가, 기업가, 사회운동가, 자선사업가 기타 등등.

60억 인구 가운데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사람은 차고도 넘친다.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정의롭고, 이타적으로 각자의 행위를 하면 된다.


‘시대적 사명이니 행동하는 양심이니 나대다가 기억대로 역사가 흘러가지 않으면 나만 손해야.’


괜히 까불다가 희망찬 미래가 어둠속에 잠길 수도 있다.

류지호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 된다는 의미다.

미래를 알고 있어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

하물며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류지호의 하루하루가 완전히 달라진 나날들이다.

파커 가문이라는 대단한 이들과 인연도 맺었다.

그럼에도 앞날이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다.

류지호가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동력 중에는 미래를 안다는 점도 컸다.

미래에 대한 지식은 초능력이다.

초능력을 가지고 아무 것도 못해본다고?

절대 사양이다.

초월적인 어떤 힘이 세상을 바꾸라고 류지호를 과거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려고 했다면, 훨씬 패기 넘치고 현명하며 정의로운 인물을 회귀시켰겠지.’


아는 것도 병이라고.

미래를 안다는 건 축복이자 저주다.

왜냐하면 미래의 지식으로 성공이란 달콤함을 맞보는 한편,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걸 지켜보며 오늘처럼 자책을 하게 될 테니까.

양팔저울에 각각 축복과 저주를 올려 놓은 것과 같다.

어느 쪽으로 기울게 될지 현재의 류지호로서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류지호의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이다.


❉ ❉ ❉


답동에 위치한 카톨릭회관 강당에서 방송연합회 회의가 열렸다.

인천지역 고등학교 방송부 대부분이 강당에 모였다.

오늘은 연말 회의와 함께 내년도 연합회장도 선출한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연합회장이 입을 열었다.


“연합MT에 불참했던 신포고가 방송제에서 깜짝 쇼를 펼친 거 다들 아시죠? 솔직히 저는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SPBS가 한 시도가 부럽기만 합니다. 우리 학교는 아직 비디오카메라가 없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거든요.”


객석이 시끌벅적해졌다.


“자, 지방방송 꺼주세요. 방송연합회 회장 선거에 앞서 SPBS 부장을 무대로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다들 어떠세요?”


짝짝짝!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한수호가 무대로 올라가 회장으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반갑습니다. SPBS 국장 한수호입니다. 사실 이번 방송제를 설명하려면 저기 17기 류지호가 올라와야 하지만, 제가 신포고를 대표하는 입장이라 대신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릴까 합니다.”


수많은 방송부들의 시선이 한편에 모여 있는 신포고 방송부들에게 향했다.

신포고 방송부들의 어깨에 저절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여름방학을 막 시작했을 무렵 17기 엔지니어파트 류지호군이 방송제 기획안이라는 걸 가지고 왔습니다.”


한수호가 방송제 전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연합회의에 참석한 방송부들은 하나라도 놓칠까 집중하기 시작했다.

류지호가 설명했다면 훨씬 쉽게 이야기를 했을 터.

한수호의 설명은 조금 중구난방이다.

한 번 들은 것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음....


진명여고 방송부 사이에 앉아있는 신소연의 시선이 류지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류지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시선을 무대에 고정하고 있다.


“칫......”


신소연은 내심 서운했다.

사실 서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방송부 대 방송부 미팅에서 처음 본 이후로, 뮤직비디오와 라디오 드라마 준비를 하며 자주 마주쳤다.

류지호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자주 마주치다 보니 호감이 생겼다.

외모나 성격이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동갑내기 남학생.

사실 외모가 평범한 건 맞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우수에 젖은, 우수가 아니라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눈.


‘그것도 아닌가?’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류지호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니다.

무난한 외모와 못생긴 건 분명 다른 거니까.

류지호의 성격은 어딘지 냉정했다.

친절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자에게만 그러한가.

아니다.

자신이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한 없이 친근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교우 관계도 폭넓은 것 같지 않았고.

공부는 제법 한다고 한다.

공부 많이 시키고 잘하기도 하는 신포고에서 꽤 성적이 좋다고 한다.

아니, 그런 모든 사항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못나면 어떻고, 잘나면 또 어떤가.


‘그냥...’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한수호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어진 88년도 방송연합회 회장선거에서 광명고등학교 방송부장이 회장에 뽑혔고, 박문여고 방송부장이 부회장에 뽑혔다.

그 외에 총무나 기타 운영진은 회장 중심으로 꾸리기로 의결했다.

이어 카톨릭회관 식당으로 이동해 간단한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류지호의 주변이 각 학교 방송부장들로 인해 복작거렸다.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묻느라 뒤풀이 내내 류지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한수호는 모른 척 여학생들과 시시덕거릴 뿐.

류지호는 귀찮음을 애써 감추며 방송부장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한수호와 달리 쉽고 알기 쉬운 말로 설명했다.


두근두근.


신소연은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연합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류지호가 식당을 나설 때.


“지호야.”


신소연이 류지호를 불러 세웠다.


“커피숍 갈래?”


신소연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녀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러자, 애들 데리고 올 테니까. 입구에서 기다려. 다연이는 안 왔어?”

“아니 둘이서.”

“둘이서?”

“응. 둘이서.”


순간 류지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할 말도 있고.”

“뭔데?”

“혹시 사귀는 여자 친구 있어?”


류지호는 신소연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없어.”


신소연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류지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입을 뗐다.


“소연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내가 내년에는 무척 바쁠 거 같아.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뭔가를 해보려고 하거든. 공부와 그 일을 병행해서 하다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아. 지금은 내가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


신소연의 고운 이마가 찌푸려졌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우린 이미 친구잖아. 꼭 둘이 어른처럼 연애를 해야만 사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난 연애를 하고 싶은 건데...’


신소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년에 나하고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너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게.”


류지호가 용건을 마쳤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방송부 모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거지?”

“연합회가 아니더라도 자주 보자. 우리 친구잖아.”

“남자하고 여자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류지호는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미래에는 남사친, 여사친이란 신조어가 생겨난다.

그렇다고 해도 남녀 간의 우정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논쟁거리다.


“남녀 간의 우정이 왜 없어. 서양에서 남녀가 평생지기로 잘 만 지내는 걸. 난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 남녀라고 해서 사랑이라는 감정과 판에 박힌 관계라는 틀 속에 있는 것보다 또 다른 인간관계로 확장되면 좋잖아. 사랑과 우정을 왔다갔다 하는 애매모호한 감정도 삶에 긴장감을 줘서 좋지 않을까?”


스스로 말하고도 변명 같았다.

일정 부분은 진심이긴 해도.


“난 정말 괜찮으니까 이제 그런 소린 그만해.”


신소연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단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게 무슨 꼴이야.’


류지호가 매몰차게 거절하자 한동안 속앓이를 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혼자만의 마음으로 끝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갈게.”


돌아서서 멀어지는 신소연을 류지호는 한동안 가만히 지켜볼 뿐.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사랑한다 말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런 것이 쉬웠으면 사랑에 실패할 일은 없다.


후우.


류지호의 입에서 씁쓸한 한숨이 삐져나왔다.

이로써 신소연과는 이전 삶과 달라진 인연이 될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사랑을 하기에 류지호의 가슴은 퍽퍽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기적인가.

아니면 멍청한 짓일까.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생활을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사랑을 느끼는 감정회로가 고장 나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니 머뭇거리게 된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이런 건 희미해지면 좋겠는데... 망각하면 더 좋고....’


류지호는 잊고 있던 전 부인이 또렷하게 살아나는 걸 느꼈다.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그리곤 시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뒤숭숭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신소연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겠지만, 류지호에게 사랑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번 삶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지를 알기에.


"It shall also come to pass"

(이 또한 지나가리)


류지호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 ❉ ❉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그 말은 곧 겨울방학이란 의미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의 심정이 다 그렇듯 신포고 교실 풍경은 들뜨고 왁자지껄 했다.

류지호는 1학년 마지막 점심방송을 진행했다.

1~3악장 통틀어 9분이 넘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흘러나왔다.

매주 신청이 쇄도하는 템포가 빠른 노래가 교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때면 학생들이 떼창을 불러댔다.

어김없이 교감이 방송실로 쳐들어와 빠따를 쳤다.

교감의 매질에 치를 떨던 김석민과 박상은이 한때 클래식과 재즈만을 주구장창 틀어댔다.

당연히 전교생의 항의가 빗발칠 수밖에.

결국 원래의 선곡으로 돌아오면서 교감과 음악 선곡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똑똑.

방송실 출입구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반 스피커 고장 난 거 같아. 노래가 안 나와.”

“알았어. 고쳐줄게.”


점심방송을 하는 류지호와 박상은을 남겨두고 친구들이 방송실을 나섰다.

류지호의 입가에 악동같은 미소가 번졌다.

류지호가 스튜디오 부스를 빠져 나왔다.

곧장 LP판이 보관되어있는 캐비닛으로 향했다.

캐비닛 안에는 수많은 앨범들이 류지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류지호는 손가락으로 LP판을 훑으며 판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LP판 6장 정도를 뽑아 들고, 오디오믹서로 돌아왔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이 페이드 아웃 되고, 흥겨운 리듬의 팝음악이 연달아 두곡 방송으로 나갔다.

다음으로 메탈리카 판을 턴테이블에 걸었다.

박상은이 제지했다.


“헤비메탈은 아닌 것 같아.”

“시험도 끝났고, 곧 방학이잖아. 우리가 애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잠시나마 미친 척 하게 해주자.”

“아름다운 강산 틀어.”

“싫어.”


박상은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 방송부에 선발되었을 때만 해도 내성적이고 다소 수동적인 성격의 류지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저리 변할 수 있었을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머리라도 다쳤던 걸까.


“진짜 악마가 씌었냐? 왜 헤비메탈을 못 틀어서 안달이냐?”

“네가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합주하는 걸 못 들어봐서 그래. 그게 얼마나 죽여 주냐면....”

“됐어. 그냥 원래대로 클래식 틀고 마무리하자”

“그러지 말고. 차라리 너도 방송실 나가 있어.”

“왜?”

“진짜 방송사고 한 번 쳐보게.”

“야!”


류지호가 억지로 박상은의 등을 떠밀어 방송실에서 내보냈다.

하루가 다르게 근력이 좋아지는 류지호다.

이철웅이라면 모를까 박상은이 힘으로 버틸 순 없었다.

박상은마저 방송실에서 쫓겨난 후.


띵띠딩.


전교에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다.

순간.

꽈꽈광! 꽈꽈꽝!


엄청난 일렉트릭 기타 속수의 향연이 펼쳐졌다.


“으헉!”


교실에서 단선된 스피커를 연결하던 이철웅이 깜짝 놀라 사다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애들아, 지호가 사고 쳤다.”

“......”


당황한 이철웅이 서둘러 연결한 스피커 선에 테이프를 감았다.


[Cannot kill the battery. Cannot kill the family Battery is found in me Battery]


메탈리카 3집 앨범의 첫 곡 Battery가 교정에 울려 퍼졌다.

류지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달아 Quiet Riot의 ‘Cum On Feel The Noise’와 Whitesnake의 ‘Here I go again’을 턴테이블에 걸었다.


“어차피 교감한테 빠따 맞을 거 골질 제대로 하지 뭐.”


류지호는 운동장에 설치된 스피커까지 올려버렸다.

1학기에 한수호가 그랬던 것처럼.

락음악 다음으로는 이 시기 디스코텍에서 유행하던 Radiorama ‘Yeti’, Modern Talking의 ‘Brother Louie’가 연속해서 교정에 울려 퍼졌고, 대미는 Debut de soiree의 ‘Nuit de folie’가 장식했다.


[Et tu chantes, chantes, chantes ce refrain qui te plaît]


1학기 때와 똑같았다.

온 교실이 광란의 회오리바람(tourbillon de folie)에 빠졌다.

다른 점은 단 하나.

모범생들조차 슬그머니 보던 참고서를 덮고, 광란의 현장에 동참했다.


“지호 재는 왜 저런데?”

“에휴. 요새 우리 방송부가 뭔가 평온하다 했어.”


이철웅이 짜증난다는 듯 방송실 문을 걷어찼다.

겁에 질려있는 김석민이 박상은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상은아 도망갈까?”


이철웅이 타박을 놓았다.


“의리 없는 놈. 우리끼리만 살자고 친구를 버려?”

“버리긴 뭘 버려?”


피식.

박상은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교정을 뒤흔들었던 음악이 모두 끝이 났다.

스피커에서 류지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친구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덧없는 세월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 미래에 대한 믿음은 되도록 줄이도록 하고 말이지... Carpe diem (카르페 디엠)!]


오후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류지호의 멘트를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이 없었다.


뚝!


스피커에서 모든 소리가 끊어졌다.


드르륵.


방송실 문이 열리고, 류지호의 실실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이철웅은 순간 뻔뻔한 류지호의 면상에 주먹을 날릴 뻔했다.

방송부원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잠시 후 닥쳐올 상황을 기다렸다.

최원석은 손톱을 뜯으며 다리까지 심하게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르륵.


마치 지옥문이 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교감이 방송실로 들어왔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류지호가 앞으로 나서며 미리 선수 쳤다.


“제가 그랬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방송실에 못 들어오게 하고 제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입니다.”


류지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처분을 기다렸다.

교감이 류지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 이리로 와봐라.”


류지호가 교감의 앞으로 다가가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당장에 따귀를 올려붙일 줄 알았다.

헌데.


“방학이라고 머리 기르지 않았지? 명찰도 잘 차고 있고, 실내화 꺾어 신지도 않고.”


방송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교감의 말투가 차분했다.


“괴롭히는 놈 있으면 내게 와서 말해라. 선생님이 너희 방송부에 관심이 많아.”

“....?”

“크게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 줄 테니까 적당히들 해. 알았어?”


류지호는 교감의 친절한 태도에 어리둥절했다.


“공부에 더욱 신경 써 알았지?”

“아....”

“석민이는 겨울방학 동안 페이스 조절 잘하고.”

“예, 예!”

“교감 선생님이 한 번 만나보고 싶으니까. 언제 부모님 모시고 와라. 선생님이 부모님하고 진학 상담해줄게.”


교감은 돌아서서 방송실을 빠져나갔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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