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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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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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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보충수업을 마치자마자, 류지호는 곧바로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며칠 동안 서울의 중형급 스튜디오들을 돌며 영업을 시작했다.

번거로움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응이 냉담했다.

누가 그런 걸 찍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고등학생 신분이라는 것도 그들의 믿음을 주는 것에 장애가 되었다.

어떤 스튜디오에서는 노골적으로 류지호의 아이디어를 빼앗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류지호는 망설임 없이 스튜디오를 빠져 나왔다.

영업에 전혀 진전이 없게 되면서 서울과 인천의 사진관 영업을 잠정적으로 보류했다.

대신 사인방 부모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을 만나 윌리엄이 인정했던 사업계획서를 보여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해 보이던지 류지호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 정도였다.

어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고성재는 아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상태였다.

그는 쌍수 들고 환영했다.


“이 아저씨가 어떻게 뭘 도와줄까?”


고성재는 자신만 믿으라며 큰소리를 쳤다.

황재정의 아버지 황봉호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서울대를 노려볼 만한 성적을 받은 아들이 더욱 공부에 정진하기를 바랐다.

황재정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당장에 반항을 했다.

황봉호 역시 류민상과 마찬가지로 1년이라는 조건을 걸고 승낙했다.

김철민의 상황은 조금 복잡했다.

부모가 여러 개의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데 외아들이 굳이 다른 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김철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지금처럼 풍족하게 먹고살 정도의 재력이 있고,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한 후 세상의 풍파를 겪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족했다.

자신처럼 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일하고, 가정에 소홀한 가장보다는 부모에게 잘하고 가정에 충실한 아들이면 만족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고 나돌아 다니고 술담배를 해도 놔두었다.

어차피 결혼할 나이가 되면 정신을 차릴 테니까.


“지호 너도 알다시피 준우는 착해.”

“잘 알죠. 수완이 좋거나 계산적이지도 않고요.”

“우리 준우는 하나에 몰두하면 질릴 때까지 그걸 하고야 말지.”

“그런 준우가 시험기간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성적이 올랐어요.”


김철민이 반박할 수 없는 백번 맞은 말이다.


“학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어?”

“예!”


류지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김준우가 두둔하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공부도 열심 할 거야.”

“저희 아버지도 재정이 아버지도 1년이란 조건을 붙이시긴 했지만, 결국 허락하셨어요. 저희가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범죄를 작당한 것도 아니잖아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일을 하는 거라 지금과 달라질 것도 없어요.”

“...흠.”

“아빠, 자신 있다니까. 우릴 한번만 믿어봐.”


김준우가 호언장담을 했다.


“이거 내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그래. 알았다. 나도 너희 아버지들처럼 조건부로 허락하마. 1년 간 어디 마음대로 해봐.”

“예스!”


김준우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마구 분출했다.

김철민은 사인방에게 충고와 노파심을 잊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동업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칫 하면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다. 너희들이 지금처럼 좋은 친구로 남으려면 항상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지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하니 잘하리라 믿는다만, 곤란한 일이 생기면 너희들끼리 해결할 생각 말고, 어른들과 상의해야 한다. 알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걱정 마. 아빠!”


부모님들에게 허락을 받은 다음부터 창업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류지호는 신효정이 미국에서 구해 온 각종 방송장비전문 매거진과 카탈로그를 검토해 장비 선택에 들어갔다.

장고에 들어간 류지호에게 황재정이 말을 걸었다.


“그 장비라는 게 비싸면 무조건 좋은 거지?”

“업무용 이상이면 큰 차이는 없어.”

“다룰 수는 있어?”

“당장은 좀 그렇고... 한 동안은 이것저것 해보면서 감을 잡아야 돼.”

“무조건 전문가가 쓰는 걸로 사달라고 해.”

“왜?”

“아예 처음부터 진입장벽을 높여 놓자.”


류지호는 계속해보라는 듯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 파는 비디오가 남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품질이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경쟁력에서 앞서 나가겠지.”

“우리가 저가용으로 판매하는 상품이 저들에게는 최고급 상품이 된다면?”

“개나 소나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겠지.”

“소자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예 상대가 안 될 테고, 자본력이 좀 있는 사람들은 파이가 작으니까 초기 자본을 많이 잡아먹는 이 시장에 쉽게 들어오지 않을 거야.”


류지호는 일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인데.... 품질을 높이려면 그 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 겨우 인건비만 빠질 거야. 그 인건비도 크게 재미 보진 못할 걸?”


류지호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초반부터 어느 정도 자본이 없으면 경쟁업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확 진입장벽을 높여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집에 비디오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우리 주고객은 좀 사는 사람들이잖아. 원래 이런 문화는 상위계층에서 하위계층으로 내려가는 거 아냐?”


황재정의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웨딩촬영이나 포토북은 이 시기 강남의 호화결혼식에서부터 시작돼 VCR이 대중화 되는 90년대 초중반에 가야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화된다.

시장을 개척한 사인방이 웨딩비디오의 퀄리티를 높여놓으면 그것이 표준이 된다.

앞으로 들어오게 될 경쟁업체들은 그것에 맞춰 초기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사인방은 당연히 그들보다 빠르게 품질표준을 높여갈 것이고, 후발주자들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물론 수많은 업체가 범람하게 되고, 고객의 요구가 다양해지면 이런 전략은 소용없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

90년대 말에 가서야 벌어지게 될 현상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좋아, 큰 틀은 그렇게 잡고 시작해 보자.”


류지호가 황재정의 의견을 수용했다.

어차피 장비는 현 시점에서 최고 성능을 사용할 것이다.

결혼식 영상 퀄리티 역시 어지간한 16mm 에로영화 수준에 근접할 자신이 있다.

류지호 입장에서 일반 가정의 홈비디오 퀄리티는 성에 차지도 않았다.

다음은 장비 선택 차례다.

류지호는 영화판에서 굴러본 경험과 기억들을 더듬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일본 브랜드 소닉과 판토소니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결국 편집장비는 소닉 제품을 결정했다.

업무용 편집 데크는 7헤드부터 9헤드를 쓴다.

판토소니와 소닉, 두 회사 모두 자타 공인 최고의 명기(名機)를 보유하고 있다.

VHS의 판토소니와 8mm의 소닉.

두 업체가 VCR 표준을 놓고 오랜 시간 주도권 싸움을 벌인 것은 고려사항에서 접어두기로 했다.

류지호가 오성이나 금성처럼 가전업체를 만들어 그들과 경쟁할 것도 아니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내구성, 조작성, 색감 등을 따져 구입해 사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판토소니의 경우 업무용은 조작성과 내구성이 소닉에 비해 떨어졌다.


‘방송업계 쪽의 평가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자주 테이프를 씹어 먹고, 콘덴서 불량이라든지 조작성도 쓸데없는 곳에서 배려를 해 실용성에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게 사실이야.’


그렇다고 판토소니 제품들이 소닉에 비해 엉망은 아니다.

판토소니 가정용 데크의 경우에는 잔고장도 거의 없고, 내구성도 무척 튼튼하기로 유명했다.


‘내가 장비를 구입해야할 시기가 지금이 아니라 90년대 중반이었다면 고민도 없이 판토소니 제품군에서 고민했을 텐데.’


왜냐하면 90년대 중반이 판토소니 VHS 비디오의 최전성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닉의 VHS 편집 레코더, 17인치 모니터 2대, 편집 컨트롤러 등을 결정했다.

다만 캠코더는 판토소니를 구입하기로 했다.

소닉 캠코더는 다소 매니악한 색감과 깔끔한 화질이 특징이다.

반면에 판토소니는 시원한 느낌의 화질이 인상적이다.

물론 유저 사이에서 다소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국내 가전업체인 금성, 오성, 대유에서도 VHS 캠코더를 출시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성능면에서 일본 제품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국산 제품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류지호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구입해야 했다면 가격까지 고려해 국산 제품까지 포함해 고민했겠지만, 윌리엄이 기본 장비세팅은 지원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고가의 브랜드와 기종을 서슴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다.


✻ ✻ ✻


일이 잘 풀리려는 모양이다.

김준우가 꾸준히 공을 들였던 신포고 사진부 출신 선배와도 이야기가 잘 풀렸다.

판 사진관.

주안역 앞 대로변에 위치한 사진관으로 신포고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다.

주안 주변에 많은 예식장들이 모여 있다.

따라서 출장 웨딩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관 몇 곳이 영업 중이다.

신포고 선배가 운영하는 판사진관도 출장 웨딩사진을 찍는 곳 가운데 하나다.

사인방이 판사진관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의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사진관 안을 들어가자, 널찍한 사진 스튜디오가 가장 먼저 눈에 뜨였다.

김준우가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인사했다.


“선배님, 저희 왔어요!”

“어서 와라.”


인사를 받는 신포고 사진부 선배는 40대 초반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제법 예술가처럼 보였다.

사인방과 까마득한 기수 차이가 나는 대선배다.


“안녕하십니까. 37회 황재정입니다. 문예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지호입니다.”

“안녕하세요. 고우찬이에요.”

“준우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14회 박상우다.”


박상우는 고등학교 후배라는 점 때문에 사인방에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는 상업사진을 촬영하는 강남의 대형 스튜디오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었다.

전성기에 드러가서 갑자기 예술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며 인천으로 내려왔다.

주안에 사진관을 열고는 웨딩출장이 없는 날에는 카메라를 챙겨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작년에는 카톨릭회관에서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고 했다.

아직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재야 작가였다.

김준우가 앉은뱅이 의자를 가져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박상우가 박카스를 사인방에게 일일이 돌리며 입을 열었다.


“공부도 잘하는 놈들이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해. 지금처럼 공부 하면 나중에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다니겠구만.”

“선배님도 학교 다니실 때 사진만 찍으러 다니셨다면서요?”


황재정이 특유의 시비조로 박상우의 말을 받았다.


“난 일반적인 어른들의 말을 전한 것뿐이야. 니들 인생은 니들이 사는 거지 내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겠냐. 누가 뭐라던 인생은 지 꼴리는 대로 사는 거야.”


박상우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머물렀다.

류지호 역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뗐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너도 그렇게 보이지?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다.”

“전에도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셨잖아요?”

“찍었지. 근데 그런 게 있더라. 언젠가부터 난 인물사진은 안 찍고, 제품 사진만 찍고 있는 거야. 가족들 사진을 잘 찍어주고 싶어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놈이 가족은커녕 매일 스토리가 없는 이미지만 주구장창 찍어댔어.”


박상우가 박카스의 뚜껑을 따 단숨에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상업사진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야.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그냥 재미가 없더라. 지금은 아주 재미있어. 사진을 찍는 것도 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것도. 니들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웨딩 비디오를 찍으려고 하는 거잖아.”

“물론입니다.”


류지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박상우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비디오 쪽 장비들은 고가일 텐데.... 괜찮겠냐?”


편집실을 세팅하고 카메라를 구입하는데 2천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이 들어갔다.

이 당시 경성자동차의 소나르 한 대 값이 900~1200만 원이니, 준중형 승용차 두 대 값이다.


“무리하긴 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장비가 들어갈 방에 시건장치 설치해.”

“그래야죠. 선배님만 허락하신다면 사진관 출입문도 이중의 잠금장치를 했으면 합니다. 물론 비용은 저희가 지불하고요.”

“난 상관없어. 근데 돈은 있냐?”

“도움을 주시는 분이 계셔서 투자를 받았습니다.”

“자식들, 투자도 다 받고 재주도 좋아.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네.”


이후로 사인방은 박상우에게 짜장면까지 얻어먹고 판사진관을 나섰다.


“일사천리네 일사천리야. 지호 이놈이 뭐만 하면 막히는 거 하나 없이 술술 풀리냐?”


황재정이 건물을 빠져나오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이 들긴 하지만... 일단 천천히 하나씩 해보자.”


류지호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준우가 류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뭐든 다 잘할 거 같은데?”

“나는 뭐 척척박사냐?”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거네?”


황재정의 말에 고우찬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발 담가서 못 나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가는 거야. 노 빠구!”


사인방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우찬이는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서 사진관 셔터하고 잠금장치 차질 없게 하고.”

“알겠어.”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 역할을 하는데, 고우찬 자신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친구 류지호는 이기적인 다른 놈들과 다르게 자신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류지호는 이미 고우찬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로 자리 매김 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류지호는 사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명령 아닌 명령을 받았다.

고우찬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반드시 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만 믿어. 무조건 임무 완수 할 테니까!”


다음 날 즉시 고성재가 셔터설치 업체 관계자를 데리고 왔다.

판사진관으로 내려가는 지하계단에 방범셔터를 설치했다.

전동셔터가 아니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내리고 열쇠를 채워야 하는 방식이었다.

살짝 아쉬웠지만, 류지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사진관 출입문과 편집실이 들어갈 방에도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CCTV가 아쉽긴 하지만....‘


올해 개최되는 서울올림픽 잠실 주경기장에 설치된 CCTV가 고작 24대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공공부문에서도 아직 적극적으로 설치·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참고로 CCTV가 본격적으로 도입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2년으로 서울 강남구가 범죄취약 지구에 CCTV 5대를 설치해 시범운영을 시작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범죄 예방 및 검거, 시민 안전을 목적으로 한 공공기관 CCTV가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일반 민간업소 CCTV 역시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설치·운영된다.

새해가 밝은 지도 한참이 지났음에도 류지호는 바빴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곧장 주안 판사진관으로 달려가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

웨딩비디오 사업을 준비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쉬엄쉬엄해. 그러다 건강 해쳐.”


심영숙은 사업하지 말라는 말은 못하고 건강 타령만 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판사진관 한편에 편집실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윌리엄이 구입해주기로 한 VHS 캠코더와 편집장비가 판사진관에 들어온 것이다.

세팅된 편집 장비들을 보며 류지호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고가의 비디오 편집 장비는 오디오 영역이 별도로 있어서 오디오기기와의 호환성도 있었다.

웨딩촬영에 베타캠(Betacam)을 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류지호가 주문한 VHS 편집시스템의 수준은 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편집실을 구경한 신포고 방송부원들이 감탄을 쏟아내기 바빴다.


“이건 뭐... 뮤비 편집하러 갔던 여의도의 프로덕션보다 더 비싸 보인다?”


한수호가 놀랍다는 얼굴로 류지호에게 말했다.


“무리 좀 했어요. 우리가 하려는 웨딩비디오는 촬영보다 편집이 중요하거든요.”

“이거 다룰 줄 알기는 해?”

“매뉴얼 보면서 하나하나 익혀야죠.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류지호가 써본 기종과는 달랐다.

비디오 편집기 동작원리나 사용법은 거기서 거기다.

못 다룰 이유는 없었다.

다만 만져본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한 동안 감을 익혀야 했다.


“나는 고장 날까봐 만지지도 못할 거 같아.”

“재근이형하고 수호형도 나중에 다루게 될 거예요.”

“재근이형하고 나도?”

“형들도 배워 두면 좋아요. 베타캠 편집기나 VHS나 사용법은 같아요. 어차피 형들이 나중에 방송 쪽으로 간다면 지겹도록 만지게 될 텐데, 미리 익혀두면 좋죠.”

“그렇게 해주면 우리야 좋지.”

“잘 부탁드려요.”

“우리가 할 말이다.”


류지호와 두 선배가 굳게 손을 맞잡았다.

하재근과 한수호는 직원이 아닌 계약직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사인방은 토요일에도 수업을 받아야 했다.

때문에 토요일에 웨딩촬영이 잡히면 류지호 대신 다른 팀이 촬영을 나가야했다.

하재근이 토요일 촬영을 맡기로 했다.

하재근은 이미 연대 신방과에 합격을 한 상태였다.

웨딩촬영 알바를 통해 대학 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진짜 괜찮겠어? 학력고사 준비하기도 빡빡할 텐데.”


하재근이 다소 걱정스럽다는 투로 한수호에게 물었다.


“그래도 굶는 것 보다는 낫죠.”

“그 정도였냐?”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솔직히 우리 집 형편으로는 사립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보내요. 대학에 입학해도 어차피 막노동이라도 해서 등록금 벌어야 했는데, 비디오 촬영으로 돈 벌면 거저먹는 거죠.”


하재근이 한수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집안 형편만 조금 따라준다면 누구보다 빛날 한수호였다.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외모까지 준수했다.

방송부원들은 몰랐지만, 한수호는 중학교 때부터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방송부 일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여름방학 때는 막노동을 했고 겨울방학에는 연탄 배달 일을 해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몸이 불편한 관계로 어머니 혼자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었다.

장남이었던 한수호는 속편하게 학업에만 열중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평 없이 묵묵히 학교와 일을 병행하는 한수호였다.

그런 사정을 아는 선배들은 한수호를 무척 아꼈다.

류지호 역시 과거로 돌아오고 난 후에야 그런 속사정을 모두 알게 되었다.

한수호가 방송부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는 류지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형들이 다 반대할 때 제가 지호 뽑은 거 잊으면 안 돼요.”

“착하고 말 잘들을 것 같아 뽑아 놨는데, 저 놈이 방송부를 먹여 살릴 줄 누가 알았겠냐.”

“아직 먹여 살리는 건 아니죠.”

“뮤비 찍을 때도 방송제 때도 보면서 느꼈지만, 난 왠지 저 놈은 뭐든 척척 해낼 거 같아.”

“선배가 돼서 후배에게 후달릴 수 없잖아요. 우리도 분발해야겠어요.”


하재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방들은 방송부원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류지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무리에서 황재정이 떨어져 나와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새끼가... 아빠가 짓는 미소를 짓고 지랄이야.”


훗.

류지호는 대꾸 대신 웃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성공을 갈망할 때만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만 실패할 수 있대. 친구야, 난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우린 성공할 수 있어.”

“자신만만하구나.”

“너희들하고 함께 하는데 뭐가 걱정이겠냐? 안 그러냐? 친구야.”

“새끼가, 주둥이에 꿀을 쳐 발랐나....”


웨딩비디오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행동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류지호는 웨딩비디오사업 분야에서 업계 최고 정도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이는 시드머니를 만들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트레이닝 내지는 워밍업 성격이 강했다.

궁극적으로는 성공한 사업가가 아닌 관객이 믿고 보는 영화를 만드는 스튜디오의 창작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어쩌면 그 길은 조지프 W 루카스가 걸었던 길일 수도 있고, 스티븐 A 아들러가 걸었던 길일 수도 있고, 로버트 잭슨이 걸었던 길일 수도 있다.

조금 눈높이를 낮춰 소박한(?) 길을 걷게 된다면, 최소한 루크 베숑의 길이라도.

아니다.

류지호가 걸어갈 길은 그만의 길이다.

굳이 누군가를 따라할 필요는 없다.

먼 훗날 누군가 류지호에게 어떻게 영화를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류지호는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았다.


“친구들과 결혼식 비디오를 찍다가 영상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영화감독으로 실패하고, 과거로 돌아와서 다시 영화를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웨딩촬영을 시작할 토대가 갖춰졌다.

앞으로 웨딩비디오를 홍보하면서 결혼시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작가의말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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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Whiplash...! (1) +9 22.01.21 9,697 208 27쪽
60 말할 수 없는 비밀. +12 22.01.20 9,691 217 21쪽
59 이런 날도 오는구나... (3) +3 22.01.20 9,614 206 21쪽
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21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26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02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82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42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85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08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16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44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04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8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8 194 21쪽
»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8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7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7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89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33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07 224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4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03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04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29 234 22쪽
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93 21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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