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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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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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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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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번 추석은 앞뒤 포함해서 삼일이 연휴였고, 한글날까지 4일을 쉴 수 있다.

10월 1일 국군의 날과 10월 3일 개천절까지 포함하면 10월 초에 무려 6일을 쉴 수 있다.

중간의 징검다리 연휴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관공서와 은행 등의 업무가 장장 11일간 정지했을지도 몰랐다.

류지호는 외가를 제외하고 일가친척이 없다.

때문에 명절마다 강화 외가를 방문했다.

외가에 큰외삼촌댁과 막내외삼촌 식구들이 모여서 추석음식을 만들었다.

이모 가족들이 빠졌다고 해도 류지호의 가족까지 포함해서 워낙 대가족이다 보니, 명절 때마다 만드는 음식의 양이 엄청났다.

류지호가 직접 명절 음식 준비를 돕다보니, 외숙모들이 정말 위대하게 보였다.

그 만큼 명절을 치르는 외가 며느리들의 일이 힘들었다.


“가서 형 누나들하고 공부 얘기도 하고, 같이 어울려.”

“저녁에 따로 어울릴게요.”


류지호는 명절음식 중에 특히 전 종류를 좋아했다.

직접 전을 부치며 슬쩍 하나씩 집어먹는 재미에 빠졌다.

금방 부친 동태전이 입속에 들어가며 입천장을 뜨겁게 달궜다.


“앗, 뜨거!”

“호호호. 지호는 나중에 장가가면 부인한테 아주 잘하겠어.”

“애들은 고등학교 가면 철든다고 하더니, 지호 보면 그 말이 맞네요, 형님.”


외숙모 두 분이 류지호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큰아들을 쫒아버리려던 심영숙은 더는 말리지 못했다.


“큰외숙모 이것 보세요.”


류아라가 처음으로 받아쓰기 백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눈꼬리가 반달처럼 휜 류아라가 어른들에게 애교를 부렸다.

용돈을 바라는 얼굴이다.


“우리 아라가 해가 바뀔수록 여우가 되어가네.”

“저 여우 아니에요! 아라에요!”


허리에 척 손까지 올리고 항변하는 류아라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어른의 지갑이 열렸다.

어른들이 천 원짜리를 손에 쥐어주었다.

류아라가 마당으로 뛰어나가 외사촌 동생들에게 외쳤다.


“애들아, 언니 돈 생겼어!”


류아라는 병아리처럼 몰려든 꼬맹이들을 이끌고 동네 유일의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외삼촌들과 아버지가 막걸리를 가져와 마루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어른들이 류지호가 부치는 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먹고 사는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그리고 항상 빠지지 않는 정치 이야기.

류지호는 외가 어른들께 주식투자를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믿지도 않을 거고, 괜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한데 어머니가 문제였다.

파커의 보상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고 하자, 다들 펄쩍 뛰었다.


“은행에 고이 넣어둘 것이지. 주식에 대해 뭘 안다고.....!”


외가 어른들은 주식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두 같이 잘 먹고 잘 살면 좋을 텐데.’


사실 심영숙은 주식을 산 날 이후로 하루도 노심초사하지 않은 날이 없다.

외할아버지 문병을 핑계로 병원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오는 길에 증권사 객장에서 주가현황판을 확인하곤 했다.

어느 날은 밝은 표정이었다가 다른 날은 어딘지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식이 오르는 날이 있으면 떨어지는 날도 있게 마련이다.

다행히 대유증권과 태산증권 주식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 망정이지, 주가의 낙폭이 널뛰기를 했다면 심영숙에게 무슨 병이라도 생길지 몰랐다.

류지호는 그런 사정들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의 기억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을 확인했다.

혹시 주식에 묻어둔 돈들이 휴지조각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다행히 세상사의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류지호 본인이 개입된 일에는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아들... 주식은 괜찮겠지?”

“제가 부친 전 드셔보세요.”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돌려?”

“전문가들이 변동이 생기면 알려줄 거예요.”

“그래도...”


심영숙은 몇 번 객장에 가보고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주식이라는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종이쪼가리를 믿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지.

꼬박꼬박 이자가 찍히는 은행예금과는 너무 달랐다.


“그냥 정기예금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하고 신경 끊으세요.”


심영숙은 주식에 관심을 끊고 사는 부자지간이 괘씸했다.

자신의 속도 모르고, 무신경한 두 남자.


“쯧. 아주 선비 나셨어... 둘 다.”


류지호가 장난스런 어조로 말을 이었다.


“큰 집이 천간(千間)이라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 뿐이요. 좋은 논밭이 만평이 있더라도 하루 두 되면 먹느니라.”


명심보감 성심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옳거니!”


큰외삼촌이 허벅지를 치며 탄복했다.

류민상이 껄껄 웃으며 아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들었지? 우리 똑똑한 장남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라고 하네.”

“지금 두 사람이 날 놀리는 거예요!”


심영숙의 마음을 풀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화만 돋우는 꼴이 된 상황.


“돈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영숙아 그만해라.”


큰외삼촌이 나선 후에야 어머니의 잔소리가 진정되었다.


“우리 지호가 영어도 잘하고, 한문도 잘 아니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지는 걸.”

“형님, 요즘 세상에 한문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좋은 대학 가려면 국영수를 잘해야 하는 겁니다.”


큰외삼촌의 말에 막내외삼촌이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 말했다.


“한문을 잘하면 다른 것도 잘하겠지.”

“우리 지호, 국어랑 영어랑 수학도 잘해.”


심영숙이 언제 성질을 부렸냐는 듯 동생 심재우에게 자랑했다.


“누님, 지호 따로 과외 시킵니까? 불법과외 시키다 걸리면 큰일 나요.”

“돈이 어디 있어서 과외를 시키겠어. 그러니까 지호가 어떠냐면...”


심영숙이 외가 식구들에게 방송제를 비롯한 일화들을 한 동안 늘어놨다.

류지호의 근황을 접한 외가 식구들이 혀를 내둘렀다.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속으로 뜨끔한 류지호는 못들은 척 조용히 전을 부쳤다.

가족과 함께 외가에서 추석을 지낸 류지호가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 연휴라고 해서 퍼질러 있을 생각이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2학기 중간고사 준비를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이 언제였더라....?’


크리스마스와 함께 양대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11월 4번째 목요일이다.

류지호는 추수감사절을 떠올린 김에 파커 가족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직접 통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좋겠지만, 국제전화는 요금이 어마어마했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30% 야간 할인이 적용된다고 해도, 잠깐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몇 천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영어다.

신효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원활하게 대화가 되지 않았다.

영어 쓰기 공부도 되고, 파커 가족과의 인연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현재로서는 편지가 유일한 수단이다.

영작이 안 되는 부분은 한글로 적었다.

나중에 신효정에게 보여주고, 영문으로 바꿀 생각이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가족의 안부 등 최대한 정성을 들여 편지를 썼다.

마지막에는 블랙먼데이에 대한 노파심도 빼먹지 않았다.


❉ ❉ ❉


월 가(Wall Street).

뉴욕의 맨해튼 남부, 브로드웨이 내리막길에서부터 사우스가(街)까지 이어진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고층건물로 가득한 이 거리에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식민지 시대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데, 미국의 영향력 있는 금융세력을 말할 때도 월 스트리트라는 말을 사용한다.

오늘 이 거리에 위치한 모든 금융회사가 패닉에 빠졌다.

일명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 불리는 주가대폭락의 재앙이 월가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이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즉 다우지수는 전날 대비 508포인트(22.61%) 하락한 1,738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사상 최대 낙폭이었다.

미국의 증권거래소가 위치한 거리의 45층의 빌딩.

193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이 빌딩은 동부의 유력가문 그레이엄가의 소유다.

G&P 투자은행의 본사이자 캐서린이 공동대표로 있는 로펌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빌딩 초고층 사무실 창가에 제임스 파커가 우두커니 서서 월가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표정이 어딘지 불안정했다.

좀처럼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벌컥!


노크도 없이 누군가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제임스는 매너 없는 불청객을 탓할 마음에 여유도 없어 보였다.

불청객은 곧장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미니바로 걸어갔다.

마치 제 사무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스키를 개봉해 락스 글라스에 따랐다.

그제야 제임스가 불청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캐서린....!“


불청객은 아내 캐서린이었다.

그녀는 위스키로 온 더 락스를 만들어 창가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남편에게 온 더 락스를 내밀었다.


“캐서린, 축하받을 일이 아니야.”

“일단 한 잔 해. 당신은 평정심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


제임스가 온 더 락스를 건네받아 단숨에 입안에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제임스의 곁으로 바짝 다가간 캐서린이 그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어떻게 된 거야?”

“NYSE 개장 시점의 주문 불균형이 워낙 크게 벌어졌어. S&P 500 지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력 종목들에서 시장을 조성할 수조차 없었어.”


S&P 500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주식 중 미국 500대 대기업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주가지수를 매긴 것을 이른다.

다우지수, 나스닥 지수와 더불어 미국의 3대 지수다.

지수 자체를 일컬을 뿐 아니라 지수에 포함된 해당 500개 기업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시기의 나스닥은 장외시장이었고, 장내시장으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시카고 상품거래소(CME)만이 있었다.

제임스가 빠른 속도로 말을 하자, 캐서린이 두르고 있던 손으로 그의 허리를 토닥거렸다.


“진정해. 제임스.”

“이제 조금 괜찮아. 아니... 한 잔 더 마셔야겠어.”


제임스가 미니바로 빠르게 걸어갔다.

아내가 골랐던 위스키보다 좀 더 도수가 높은 것을 골랐다.


“개장신호가 울리고 한 시간이 지났지만, 다우지수 종목들 중 3분의 1 이상에서 거래가 체결되지 않아 시가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어.”


제임스가 빠르게 위스키를 채운 후, 꿀꺽꿀꺽 입안에 털어 넣었다.

다시 온 더 락스를 채운 후 아내에게 돌아왔다.


“NYSE에서 오늘 하루 종일 총 187개 종목의 거래 개시가 지연됐고, 7개 종목이 거래가 정지됐어. 그 이후로는 매도만 쏟아지고 과부화가 걸렸지.”


제임스는 속이 타는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후우, 블랙먼데이의 재현이네.”

“대재앙이지.”

“다우지수는 얼마나 떨어졌어?”

“508포인트.”


캐서린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가 알기로 뉴욕증권거래소 주가 폭락 중에 가장 큰 폭이다.

최고 2600포인트 대였던 다우지수가 몇 달 동안 주춤하다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경제의 여러 불안정한 요소가 증권거래소의 시스템 혼란과 맞물려 주가 대폭락이 일어나고 말았다.


“......”


부부는 입을 꾹 다문 채 상념에 잠겼다.

자신들처럼 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

블랙먼데이의 악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게 예측이 되지 않았다.


뚜우-


제임스의 책상 위에 놓인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 윌리엄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연결해 줘.”


달그락!


위스키를 담은 술잔이 테이블에 놓이며, 속에 담긴 얼음이 흔들렸다.

마치 제임스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윌리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회사는 별일 없는 것이냐?


미국의 모든 언론매체가 주가 대폭락에 대한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뉴스가 월가의 주가 대폭락 속보로 장식하고 있다.


“손해가 완전히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미미한 수준이에요.”


제임스는 윌리엄에게 자신이 파악한 작금의 사태를 소상히 설명했다.


- 우리가 대니얼 그 늙은이에게 한 방 멋지게 먹일 수 있는 기회야.


윌리엄이 언급한 대니얼은 캐서린의 아버지이자 그레이엄 가문의 현 가주의 이름이다.

사돈이란 의미다.

물론 죽마고우이고 했다.


“두 분의 우애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시고. 눈앞에 닥친 이 대사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요.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나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윌리엄과 대니얼은 항상 티격태격했다.

자존심이 높은 두 노인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허물없이 지냈던 탓에 나이가 들어서도 철없는 십대처럼 티격태격했다.

물론 가족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다.


- 대화를 나눌 것도 없다. 그 늙은이는 우리의 우려를 무시하지 않았느냐?

“대니얼뿐만 아니라 다들 관망만 했습니다만.”

- 지호가 편지에서 다시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면, 너 역시 망설였겠지. 안 그러냐?


올해 초부터 상승세를 타던 미국 증시가 8월에 들어서면서 주춤한 것을 놓고, G&P의 애널리스트들이 비상근무 태세에 들어갔다.

그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분석에 들어갔다.

이들은 잘못된 신호 하나로 일거에 보유주식을 던지기도 한다.

주기적인 증권시장의 폭락은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공포에 그 원인이 있다.

이번 블랙먼데이는 그처럼 단순하지 않았지만.

암튼 몇몇 전문가들이 이미 10월의 증시 대폭락을 예측한 것처럼 G&P의 애널리스트들 또한 비슷한 의견을 CEO 제임스에게 내놓았다.

이 정도의 메가톤급 재앙일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그는 바로 일개 고등학생인 류지호였다.

제임스는 누가 뭐래도 투자와 자산관리에 있어서 뛰어난 전문가다.

투자전문가로서 위험신호가 울리는 느낌을 받긴 했다.

제임스는 설마 하는 마음에 관망을 지시했다.

그리고 몇 주 전, 한국에서 편지가 배달되었다.

류지호가 보낸 편지다.

편지 말미에 증시대폭락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제임스로서는 대비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월가에서는 CEO라고 해도 자사 펀드매니저나 투자전문가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

대신 실적이 부실한 직원을 해고할 뿐.

따라서 제임스는 직속팀을 꾸렸다.

블랙먼데이나 그에 준하는 증시폭락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 장기 보유 플랜에 들어 있는 주식을 제외하고 많은 주식을 처분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자금이 충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변동사항이 있느냐?

“자금은 넘치는 상황이에요.”

- 현금을 쌓아놓고 있으면 뭐해 굴려야지.


사람 좋아 보이던 윌리엄도 사업가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이 기회를 놓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조금 더 지켜보다가 낙폭이 큰 유망기업 위주로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어요.”

- 좋아. 대니얼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둘 테니까 너희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낙폭이 너무 커서 회복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보고 있어요.”

- 쯧. 아무 죄도 없는 개인투자자들만 피를 보게 생겼구나.

“주식투자를 하려면 돈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지만, 이번 사건은 58년 만에 벌어진 대재앙이에요. 불가항력이었어요.”

- 채권은?

“.....”

- 올해 발행된 30년 만기 TB(재무부채권)중에 가장 싼 걸로 20억 달러어치 사두어라.

“아버지!”

- 증시에서 실패한 투자자들이 어디로 모일까?

“채권이겠죠.”

- 대공황의 전조는 아니다. 세력이 개입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안 가.

“예. 아버지.”

- 대신 너무 비싸면 소용없어. 3~6개월 사이에 신규 발행한 TB를 알아봐라.

“알겠어요.”


윌리엄은 위기의 순간에도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다.

그래서 아들이자 G&P를 책임지고 있는 CEO 제임스에게 특별주문을 했다.


- 넌 내게 지호가 또래보다 똑똑하다고 해도 아직 십대일 뿐이라고 했다. 어린 친구 말이라고 무시했지.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보거라.

“제가 어리석게 굴 뻔했다는 걸 인정해요.”


제임스는 류지호가 자신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치기어린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친구가 실망할까 싶어 칼럼을 읽어주는 척 했다.

그런데 몇 주 전 류지호가 보낸 편지에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주식이 폭락할지 알 수 없다.

다만 미리 대비하면 좋다.

비록 이익을 보지 못하더라도 손해 또한 없으니까.

전적으로 류지호의 편지에 기대어 판단을 내리지 않았지만,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제임스였다.

그가 결단을 내리는데 류지호의 편지가 약간의 역할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지호가 저를 두 번 살린 셈이에요.”

- 지호가 이야기 했던 기업들을 어떻지?


류지호가 거론한 IT기업들을 기억하고 있는 윌리엄이다.


“아직 기업 공개가 되지 않은 곳도 있고, 상장한 기업의 주가도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에요.

- 혹시 모르니까 지켜봐.

“예.”

- 지호는 우리 가족의 복덩이야. 파인소프트(PS) 주가도 떨어졌겠지?

“예.”

- 내 앞으로 PS 주식 좀 모아놔.”

“IBT가 아니고 PS 주식이에요?”

- 투자수익이 높아지면 성과급을 챙겨줘야지.

“지호에게 주려고요?”

- 제임스, 우리는 사람에게 투자한다. 일단 시작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씨앗을 뿌려두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게 되어있어.


이후로도 윌리엄과 제임스 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간간이 류지호가 언급했던 네트워크 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 Trying wouldn't hurt.

(밑져야 본전)


윌리엄은 김포공항에서 류지호가 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월요일에 거래 중지된 7개 종목 중 3개 종목은 거래정지 후 영영 거래가 재개되지 못했다.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역시 월요일과 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92개 종목이 거래 개시가 지연됐고, 175개 종목에 거래정지가 발생했다.

그 중 10개 종목은 거래가 재개되지 못했다.

월요일부터 시장조성 능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뉴욕증권거래소의 전문중개업자들은 월요일부터 대량 매도주문의 과부하를 짊어지고 비틀거리다 손 쓸 도리 없이 쓰러졌다.

블랙먼데이의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1조 7000억 달러의 증권투자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G&P는 블랙먼데이의 여파로 낙폭이 컸던 우량기업주들을 다우지수 1650까지 떨어졌을 때부터 매입하기 시작했다.

PS 주식 역시 시장에 풀려있는 주식을 조금씩 모았다.

이런 와중에 제임스는 류지호에 보낼 편지를 썼다.

블랙먼데이가 일어난 일주일간의 월가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다.

류지호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문용어에 어려움을 느낄까 싶어 쉽게 풀어 설명하는 배려도 했다.

그 밖에 파커 가족의 안부를 전하고, 류지호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


“지호, 잘 배워둬. 내가 알려주는 이런 것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다.”


편지 말미에 다시 한 번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임스의 편지가 국제우편으로 항공기에 실려 태평양을 횡단했다.

우연이 발생한 순간, 필연이 된다.

그게 운명이다.

우연으로 맺어진 인연이 류지호를 어떤 운명으로 이끌까.

대한민국에서 1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뉴욕에서 선물상자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 선물상자는 몇 년 후가 되어야 개봉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선물상자가 류지호의 수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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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Begin again. (3) +7 22.01.18 9,582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42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285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08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16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44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04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8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8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8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7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7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89 228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34 236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07 224 20쪽
»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5 239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03 231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04 224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29 234 22쪽
35 영화밥 먹고 살 팔자... (4) +7 22.01.07 10,593 21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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