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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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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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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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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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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레몬 소주 로열티.”


류지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채연지를 바라봤다.


“여섯 달 동안 레몬소주를 250개 팔았어. 한 주전자당 3천원에 팔아서 원가 빼고 총 450만원 이익을 올렸지 뭐야. 지호 학생이 나한테만 특별히 알려준 메뉴인데 입 닦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고맙다는 의미로 20프로 떼어주는 거야.”

“아줌마가 장사를 잘해서 매출이 오른 거지 제가 한 일은 없어요.”

“그렇지 않아. 지금 이 동네 가게들이 다들 레몬소주 따라하고 있어. 우리 가게 비법은 절대 안 가르쳐 주고 있지.”

“가끔 술 마시러 오면 서비스나 많이 주세요.”


류지호가 봉투를 돌려주려고 했다.


“새벽마다 신문 돌린다며,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참고서 사는데 보태. 학용품 사도되고. 정 미안하면 오늘도 새로운 메뉴 알려주고 가면 되잖아.”

“돈을 바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도로 넣어두세요.”


류지호가 계속해서 사양했다.

하지만 채연지 역시 막무가내였다.


‘파커 가족도 그렇고 이 아줌마도 그렇고... 세상인심이 원래 이렇지 않은데.... 이게 다 뭔 일이지?’


류지호는 자꾸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할 수 없이 돈봉투를 받았다.


‘아줌마하고 좀 깊게 인연을 맺어야 하나?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알 수 없구나.’


오지랖일 수도 있고 더 귀찮은 일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틈만 나면 남의 뒤통수를 치고 이익만을 뽑아먹으려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생색도 내지 않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돈을 나눠주는 채연지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아줌마, 나중에 따로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무슨 이야기?”

“아네모네 매상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요. 제가 고민 좀 해 볼게요.”

“편할 때 와. 우리 가게는 명절 때 빼고는 항상 문 여니까.”


딸랑!


아네모네 출입문이 열렸다.

뻥튀기를 챙겨 사인방에게 돌아오던 류지호가 앞장서 들어서는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밥맛 떨어지는 상판대기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은 기꺼우면서도 즐겁다.

그 반대로 껄끄러운 사람과의 뜻밖의 조우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방금 눈이 마주친 사람은 박광렬이었다.


“이 새끼들, 2학년 올라갔다고, 간땡이가 부었나. 술도 다 처먹고.”


채연지가 눈치 빠르게 다가와 차가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천장 안 무너지니까 자리에 앉아요.”


박광렬이 피식- 조소를 흘리고, 패거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씨바, 술맛 떨어지네.”


고우찬이 인상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그냥 딴 데로 옮길까?”


김준우가 목소리를 낮춰 친구들에게 말했다.


“뭐가 무서워서 우리가 자리를 옮겨. 그냥 냅두고, 우린 우리대로 술 마시자.”


고우찬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 오강두가 여대생 테이블을 바쁘게 오가며 치근대기 시작했다.

여대생들이 하나둘 아네모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진상도 저런 진상이 없었다.

몇 번을 발끈해 나서려던 고우찬을 황재정이 계속해서 다독였다.

하지만.


“어이, 거기 그지 새끼. 일루 와봐라.”


박광렬이 고우찬을 손가락으로 콕 짚어서 불렀다.


“저 시방새가 진짜 가만히 있는 사람 자꾸 엉까네...”


고우찬이 일어서려하자 류지호가 그의 어깨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무시해.”


박광렬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야, 빨랑 안 튀어와!”


여대생들이 썰물처럼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너희는 그냥 여기 있어.”


고우찬이 박광렬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류지호는 고우찬의 넓은 등짝을 보며 일진이 사나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빡!


박광렬이 다짜고짜 고우찬의 뒤통수를 갈겼다.


“너 이 씹새야, 비웃었냐? 내가 존나 만만하게 보였나봐?”


고우찬은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짜증이란 놈을 느꼈다.


“존만한 새끼가....”

“존만 해서 미안합니다만... 적당히 하시지.”


사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아네모네를 뜨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꾸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올랐다.

고우찬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야려? 존만아, 좋은 말 할 때 눈 깔어... 새끼야.”


고우찬은 생각했다.

여기서 더 이상 피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이기 전에 비겁한 짓이라고.


“눈 안 까냐? 눈깔을 확 뽑아버리기 전에 깔아 새끼야!”


고우찬의 행동은 박광렬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일촉즉발.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팽팽한 긴장감이 술집 안의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학생들! 자꾸 소란 피우면 신고할 거야!”


채연지가 나섰다.

순간 고우찬의 손바닥이 박광렬의 면상을 올려붙였다.


쫘악!


우당탕!

박광렬의 똘마니들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류지호와 친구들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테이블 통로로 움직였다.


“너, 너! 이 씹새. 쳤냐!”

“나갑시다. 나랑 다이다이 함 뜹시다. 똘마니들 뒤에 숨어서 다구리 치지 말고.”


고우찬이 박광렬을 도발했다.

마그마와 가스는 땅속에 높은 열 때문에 큰 압력이 생겨 땅거죽의 약한 부분을 뚫고 폭발한다.

냄비의 끓는 물도 임계점에 도달하면 흘러넘친다.

그 동안 부글부글 속으로만 끓고 있던 고우찬의 심장에 잠들어 있던 마그마가 폭발했다.

류지호는 재빨리 친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끼어들지 말라고.

황재정과 김준우는 어쩔 줄 몰라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쨍그랑!


오늘 박광렬 패거리에 합류한 신입이 바닥에 맥주컵을 집어 던졌다.


“형님들이 오냐오냐 하니까 눈깔에 뵈는 게 없냐!”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의 끈이 끊겼다.

고우찬이 류지호와 빠르게 눈짓을 교환했다.


‘지호, 넌 빠져.’


도리도리.

류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주먹 잘 쓰는 놈보다 연장 든 놈이 강하고, 아무리 강한 놈이더라도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

박광렬 패거리는 자신만만했다.

곧 저 어리석은 놈은 자신들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 것이다.


퍽!


고우찬이 기세등등해 가장 앞장서 다가오던 신입 서클 멤버의 면상에 주먹을 먹였다.

코피가 터진 신입 멤버는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본격적인 싸움의 신호탄이었다.

고우찬은 오늘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지호야, 너는 치지 마!”

“......”

“관장님이 아시면 난리날거야.”

“미친 놈! 너는 괜찮을 줄 알아?”


똘마니 하나가 류지호의 멱살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덥석.


류지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똘마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빈손으로는 놈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류지호의 다리가 녀석의 다리를 거는가 싶더니 그대로 밀쳤다.

부지불식간에 안다리 후리기가 펼쳐졌다.

겨우 1년 배운 유도 가지고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까마는.

그럭저럭 상대를 떨쳐낼 수 있었다.

지켜만 보던 류지호가 싸움에 휘말리는 순간이다.

고우찬은 190Cm에 육박하는 거구다.

먹는 족족 키로 가는 것인지, 고등학교에 들어와 키가 3센티가 자랐다.

신포고를 주름잡는 양아치 족속들이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솥뚜껑 같은 손, 어린이의 허리둘레만 한 허벅지.

그런 괴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김준우가 발을 동동 구르며 황재정을 바라봤다.


“말려야 하지 않아?”

“어떻게?”


황재정과 김준우는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이 예상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 버렸다.

두 친구의 참고 참아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황제정과 김준우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황재정이 침착하게 실내를 돌아보다가 채연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채연지가 손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황재정이 그녀에게 엄지와 약지로 수화기 모양을 만들어 흔들었다.


퍽!


고우찬의 주먹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한 녀석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다.

고우찬은 스치는 공격은 아예 몸으로 받아버렸다.

박광렬의 똘마니들도 필사적이다.

겨우 두 놈을 다구리 치는데 자신들이 밀리고 있다.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한편 류지호는 침착했다.

절대 녀석들과 달라붙지 않았다.

태권도 겨루기를 하며 몸에 익혀 온 상대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쟀다.

두 놈이 달려들면 재빨리 물러서거나 옆으로 빠졌고, 상대가 틈을 보이면 유효타가 터지던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발차기를 날렸다.

똘마니들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다가 기습적으로 발차기를 날리는 류지호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한 놈이 화가 치밀어 올라 악을 바락바락 써댔다.


“자꾸 도망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붙어 이 새끼야!”

“다구리 치는 새끼가 정정당당을 지껄이냐!”


말싸움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류지호다.

비겁이고 나발이고 다구리 치는 놈들이 정정당당을 논하니 기가 막혔다.

어떤 싸움이건 이기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효율성을 지향해야 하지 않나.

본인들은 쪽수로 밀어붙이고, 가게 집기를 휘두르는 주제에 회피 위주로 싸운다고 비겁 운운하는 건 구차한 말에 지나지 않다.

그럴 거면 똥폼은 잡지 말았어야지.


“이, 이 새끼들 도대체 뭐야?”


박광렬의 동공에 놀람을 넘은 경악이 담겨졌다.


퍼퍼퍽!


고우찬과 류지호가 싸움판을 완전히 장악했다.

누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코가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박광렬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이대로 패배한다면 자신은 끝이다.

다구리를 놓고도 후배들에게 깨진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조차 없게 된다.

박광렬이 소주병을 거꾸로 꼬나 쥐었다.

풀썩 뛰어 올라 고우찬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고우찬의 머리를 강타한 소주병이 깨지며 파편이 허공에 흩었다.

고우찬이 반사적으로 박광렬의 허리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당탕탕!


두 사람이 바닥에서 뒹구는 사이.

고우찬의 머리에서 핏물 섞인 소주가 흘러내렸다.

고우찬은 피가 흐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찬아!”


류지호가 고우찬과 엉켜 바닥을 뒹구는 박광렬의 옆구리에 사커킥을 꽂았다.

그런 후 두 사람을 뜯어냈다.


“우찬아, 괜찮아? 어지럽지 않아?”

“정신 사나워. 난 괜찮으니까. 그만 해.”

“머리 숙여봐.”


고우찬이 류지호에게 머리를 보여줬다.

피가 계속해서 만져졌지만, 소주병에 맞은 상처는 깊지 않았다.

박광렬이 몸을 일으켰다.


“끙.”


옅은 신음을 흘리며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뻐근하다.

박광렬은 고개를 돌려 실내를 둘러보았다.


‘병신 같은 새끼들.’


만만치 않은 애송이의 힘을 빼놓은 것으로 똘마니들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다구리 쳐서 쓰러뜨렸으면 좋았겠지만, 인문계 폭력서클에게는 지나친 기대다.

비겁하다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

원래 양아치들의 수법이 그런 것이다.

박광렬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을 밟으면 그게 영리한 거라 믿는다.

양아치보다 못한 마인드다.

이제는 지친 고우찬과 승부를 봐야 했다.


“지호야, 저 새끼는 내가 밟아. 넌 끼어들지 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X밥들이 뭐라 씨부려!”


박광렬이 기습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악역들은 주인공이 잠시 한 눈 팔 때 기습을 한다.

박광렬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퍼퍼퍼퍽!


박광렬의 소나기 펀치가 고우찬에게 쏟아졌다.

이 싸움이 무슨 목숨을 걸어야할 조폭 싸움도 아니고, 적당히 치고 받다보면 지레 물러나야 했다.

헌데 고우찬은 목숨을 걸기라도 한 듯 죽일 듯 달려들었다.

용연태권도장의 두 사범도 인정하는 강철 체력의 고우찬이다.

마지막에 두 다리로 서있는 자가 승자다.

고우찬은 체력과 맷집만큼은 자신 있었다.


“악!”


박광렬이 비명을 질렀다.

골이 흔들리고, 턱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이 머리통을 강타했다.

박광렬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시 몸을 일으킬 정신도 체력도 없었다.


“때, 때리지 마.”


박광렬은 무지막지한 고우찬의 저돌성에 질려버렸다.


“뒷감당 할 수 있어? 그, 그만해...”

“싫어, 이 양아치 새끼야!”

“내가 선배야 새끼야! 그만 패!”

“닥쳐! 그냥 처맞기나 해!”


박광렬이 뻗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누가 말리거나 끼어들 틈도 없이 끝나버렸다.


“우찬아, 그만 해! 그만!”


류지호가 뜯어내고서야 고우찬의 폭주가 멈췄다.

고우찬이 슬쩍 구경꾼 너머를 보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황재정과 김준우는 다행히 이 소동에 휘말리지 않았다.


“지호야. 우리 X됐다. 그치?”


류지호는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허탈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매번 소동이 일단락 된 후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만 일찍 출동했다면, 이 정도까지 패싸움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후우.


엉망이 된 가게를 돌아보던 채연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지호 학생이 이 사태를 잘 처리할 수 있으려나....?”


채연지가 카운터 계산대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신호가 가고 잠시 뒤 수화기 너머에서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동생, 여기 연하대야.”

- 우짠 일이래! 형수님. 갑자기 전화를 다 주시고....


수화기 너머에서 놀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하대 가게로 좀 와주겠어?”

- 가게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동생들 주렁주렁 달고 오지 말고, 혼자 왔으면 좋겠어.”

- 예? 예!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연지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나왔다.


❉ ❉ ❉


경찰은 패싸움을 벌인 이들을 길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소주병에 머리를 다친 고우찬은 찢어진 부위를 꿰매야 했다.

후려치는 의자를 막다가 팔에 금이 가는 바람에 반깁스까지 해야 했다.

박광렬과 똘마니 몇 녀석은 팔이나 다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아파 죽겠어요!”

“이렇게 아픈데 단순 타박상이라니요? 전치 8주짜리에요!”


어떤 녀석은 멍들고 까진 것 가지고 아파 죽겠다며 엄살을 피웠다.

부상을 부풀려야 경찰조사를 받을 때 유리해지 때문이다.

류지호의 부모님들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왔다.


“지호야, 괜찮아? 안 다쳤어? 어디 봐봐.”


심영숙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다친 데 없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앉아 봐, 좀 보자.”


심영숙은 아예 류지호를 응급실 침대에 앉혀놓고 몸의 이곳저곳을 만져 봤다.

다행히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좀 세게 붙잡아도 아파하는 기색도 없고.

까진 상처도 없는 것 같고.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심영숙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류지호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류민상은 응급실 한쪽에 무리지어 치료받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저간의 사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거였나....?’


큰아들이 어느 날 신문배달을 하고 태권도를 다시 배운다는 말을 했다.

학기 초에 몇 번 교사의 체벌과 방송부 선배들에게 매를 맞은 것 외에는 특별히 폭행을 당한 것 같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량한 놈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류민상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호아빠, 변호사님한테 전화해요. 뭐든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류민상이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가 신효정의 법률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빨리 와 봐요. 지호 지금 경찰서로 끌려간대요!”


남부경찰서에 도착한 류지호와 고우찬이 형사에게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때 뚱뚱한 체구의 50대 초반 남자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사를 받고 있는 박광렬을 바라보며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이 뚱뚱보가 박광렬의 아버지 박민국이다.


“쯧쯧.”


아버지가 짧게 혀를 차자 박광렬의 건들거리는 태도가 자취를 감췄다.


“너희들이 우리 아들 팼냐?”

“저 형들이 먼저 시비 걸었.... 웁.”


고우찬이 발끈해서 대꾸를 하자, 류지호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 나서, 정중하게 말했다.


“조사가 끝나면 정확한 사정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새끼가 사람을 패고 어디서 잘했다고! 어른한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대꾸야!”


류지호는 박민국을 상대하지 않았다.


“형사님, 조사 받고 있는 중이잖습니까. 이 분 제지 안 시킵니까?”

“보호자 분은 저쪽 자리에 가서 앉아계세요.”


담당형사가 박민국에게 말했다.

마른체격에 눈초리가 찢어져 신뢰가 가지 않는 인상의 형사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형사가 박민국에게 수상한 눈짓을 보냈다.

담당형사가 고우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모 왜 안와?”

“주무실 걸요.”

“아버지 뭐하시는데?”

“노가다요.”

“쯧. 안 봐도 뻔하다, 자식아.”


형사가 고우찬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던졌다.

형사는 고우찬을 결손가정에 자라 삐뚤어진 불량학생으로 단정했다.

형사의 일방적인 태도가 불길한 예감을 들게 했다.

나쁜 예감은 왜 틀리는 법이 없을까.


“왜 팼냐?”

“안 팼습니다. 먼저 떼로 덤비기에 자위차원에서 맞선 겁니다.”

“자위차원인데 얘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놔?”

“그럼 저와 친구가 저 지경이 되어야 했습니까?”

“이 새끼가 뭘 잘했다고 또박또박 말대꾸야!”


빡!

담당형사가 서류철을 들어 류지호의 머리를 후려쳤다.


“가정교육 참 잘 받았다, 이 새끼야!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류지호는 경찰의 친절함을 기대하지 않다.

다만 최소한의 공정함이 있기를 바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부모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경찰에게 조사를 받더라도 자식이 맞는 걸 눈앞에서 보는 기분은 참담했다.


“아버지, 잠시 만요.”


류지호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형사가 짜증을 부렸다.


“이것들이 아주 제 멋대로야. 여기가 니들 집 안방이야? 엉!”


형사가 아버지를 끌어 들였다.

류지호의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다.


“형사님, 제가 지금 현행범이긴 하지만 구속 된 상태도 아니고, 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형사님이 강압수사 한 걸로 제 고문변호사를 통해 민사 한 번 걸어볼까요? 물론 제가 승소할 일은 없겠죠. 근데 민원 들어가면 형사님 승진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을 텐데. 그래도 강압적이고 폭언과 구타 뭐 이런 조사 계속 하실 겁니까?”

“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협박 질이야! 콩밥 한 번 먹고 싶어!”


형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서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류지호가 형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요, 중부경찰서에서 용감한 시민상 받았습니다. 그것도 청장님이 직접 수여해서 한국신문에도 났어요. 인천상륙작전기념식에 참석한 걸로 9시 뉴스에도 나갔습니다. 나름 유명인입니다. 여기 남부서도 사쓰마리 있을 텐데... 경찰출입 기자들하고 제 억울한 사연 한 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볼까요? 저는 용감한 시민상, 선행상 받고도 패싸움이나 벌이는 양아치 불량학생으로 찍혀도 상관없어요. 형사님이 절 양아치로 몰아도 소용없습니다. 웬 줄 아십니까? 제가 신포고 우등생이라 아무도 형사님 말 안 믿을 테니까요.”


말을 하다 보니 류지호는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그렇다고 목청을 높이거나 흥분해 날뛰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형사님, 우리 아버지한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뭐요? 가정교육? 니들 안방? 우리 아버지가 형사님 친구에요? 왜 함부로 말합니까? 형사님이 진짜 나쁜 놈 패고 고문하는 건 제 알바가 아니라 모르겠는데, 저하고 우찬이 그리고 저 새끼들 중에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편견 없이 수사하란 말입니다! 왜 자꾸 꼬투리를 잡아 우리를 가해자로 몰아가십니까?”


형사는 뭐 이런 놈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류지호를 멍하니 쳐다봤다.


큭큭.


업무를 보고 있던 동료형사 몇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류지호를 꼬나본 형사가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한테 가봐. 돌아와서 보자. 내가 엄중하고 공정하게 수사해 줄게.”


류지호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류지호가 자신의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페이지를 넘겨 아버지에게 건넸다.


“지금 신변호사님은 자고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아요.”


류민상이 형사에게 전화기를 쓰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변호사님,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 우리 지호한테 문제가 생겨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박민국이 심영숙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말대꾸 하는 놈이 댁 아들이요?”

“네, 맞아요.”

“아줌마, 돈 많아요?”

“......?”

“깽값 물어내려면 돈 좀 깨질 겁니다.”


박민국이 느물거리는 말투로 이죽거렸다.

심영숙은 경찰서가 제 집인 양 여유로운 박민국의 태도에 속이 타들어갔다.

류지호 가족에게 오늘밤은 무척 길 것 같았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불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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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69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3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70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79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28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48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390 22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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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75 23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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