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1)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노인의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가 치료받았던 노인의 집과 별다를 것 없는 풍경.
하지만 딱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보는 눈이 생겼다는 거다.
출렁이는 커튼과 대문 틈 사이, 그리고 옥상에서 대놓고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저 인원들은 뭐지?”
“경계병. 여기부턴 내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한 구역이거든.”
아마 노인의 딸이 말했던 차이량이 개인적으로 쓰는 집이 이곳인 모양.
그렇게 어느 한 주택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내려 집 안으로 향했다.
내부 역시 다른 집과 다를 게 없었으나···.
끼익···.
거실에 있는 나무 문을 열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동시에 코끝엔 미세하지만 피 냄새와 물 냄새가 맴돌았다.
“너는 여기 있어.”
데이븐에게 말하자 그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바론이 데이븐을 봐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이후 계단을 내려가자 두꺼운 철문 하나가 나왔고 문을 여니 딱 예상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문 도구로 보이는 각종 물건부터 천장에 걸려 있는 고기 갈고리, 그리고 물과 피를 뺄 수 있는 하수구.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의자에 묶여있는 호르헤 바론과 그 옆에 피로 절여진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남자의 모습까지.
나 역시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불쾌한 장면들이었다.
그런 내 찝찝한 표정을 봤을까.
차이량이 변명하듯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마. 진짜 곱게 죽일 수 없는 놈들만 데려오는 장소니까.”
“누가 뭐래?”
“표정이 안 좋으니까 그렇지.”
“이런 걸 보기엔 아직 빈속이라.”
자칫 싸이코패스 같은 말이지만 이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상기시키는 말과도 같았다.
각자의 사정과 소속을 떠나, 이미 우리는 모두 살인자니까.
복수나 정의, 개인 감정 등 어떤 이유가 있었더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위가 살인이 되었을 때부터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 명을 죽였든 두 명을 죽였든, 방법이 잔인하든 아니든.
“잠시만 나가줄 수 있을까?”
그 말에 차이량은 앞치마를 입고 있던 사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내는 군말 없이 방을 나섯다.
“너도.”
“···나도?”
“어. 들으면 좋을 게 없는 이야기야. 어쩌면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랑 이곳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이야기고.”
“헹! 누가 감히 여기를?”
이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차이량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어.”
“아···. 궁금한 거 싫은데.”
“죽을 때 되면 후회할걸?”
“알았어, 나간다 나가! 대신, 적당히 만져. 내꺼니까.”
“그래.”
끼익···. 쿵···.
그렇게 철문이 닫히고 나는 바론에게로 다가갔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있던 놈은 바로 앞에 사람이 도착해서야 고개를 들었다.
“···넌 또 뭐야.”
발음이 어눌하다.
자세히 보니 아랫니가 모조리 뽑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만나고 싶다며.”
뒤이어 바론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놈이 아니야···? 넌 도대체 누구지?”
“그 대답은 내 질문이 끝난 다음에 해줄까 하는데, 어때?”
녀석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말했다.
“타룬이 까마귀를 흡수하려는 목적이 뭐야?”
“블랙워터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이 바닥에 대부분의 중요한 정보들을 그곳에서 독점하고 있으니 까마귀부터 노리자고 판단한 거지.”
“타룬이 전부 그러고 있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이건 개인이 어찌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을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군.”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하워드가 들으면 혀를 찰 이야기였다.
“고작 그걸 물어보려고 한 건가?”
“설마. 아직 본론은 시작도 안 했는데.”
“······.”
“제레미 데이븐을 처리하라고 지시한 건 조던 하르펜이지? 뭐, 의뢰는 원래 너희가 받는 거라고 치고···.”
“······?”
“하르펜한테 뭘 받기로 했지? 의뢰 비용은 돈이 아니라던데.”
그 말에 녀석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지만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상황만으로도 이미 놈의 머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한참이나 어린애한테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 제레미 데이븐에 조던 하르펜에 까마귀에, 심지어 의뢰 비용으로 다른 걸 받기로 한 것까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어디서 들은 정보지?”
나는 질문을 하던 바론의 어깨에 있던 상처를 엄지로 꾸욱 눌렀다.
“끄윽···.”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질문을 받는 건 대답을 듣고 난 후다. 하르펜한테 받기로 한 게 뭐야?”
“···T―VOX”
“그게 신무기 이름인가?”
“···이제 놀랍지도 않군.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그게 있었더라면 너희가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거고, 아직 약속한 건 못받았다는 거네?”
“······.”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지? 하르펜 말고 연결되어 있는 곳은?”
“······.”
“그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한동안 침묵하던 녀석은 그리 묻더니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더욱 숨길 수밖에 없겠는걸. 그래야 네가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할 테고···. 죽을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어디 잘 해봐.”
“······.”
“그리고, 이제 내게 했던 말을 돌려줘야 할 것 같군.”
바론은 이빨이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언젠가 다 같이 지옥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먼저 가서 기다리지.”
“그래. 근데, 곱게는 못 죽을 거다. 각오해.”
“크크크···.”
지하엔 바론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고, 조금의 찝찝함을 가진 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철문에 귀를 대고 있었는지, 차이량이 휘청이며 멋적게 웃어보였다.
“어후, 문이 튼튼하네. 하나도 안들려.”
그러더니 급히 말을 돌렸다.
“표정을 보니 이야기가 잘 안 풀렸나봐?”
“어. 그래서 말인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줘. 태어난 걸 후회할 정도로.”
“들었지?”
차이량은 앞치마를 매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고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다 큰 어른이 엄마 찾게 만드는 건 저 놈이 전문이야. 맡겨둬.”
이내 나에게 어깨 동무를 하는 차이량.
“뭐야?”
“뭐긴, 일도 마무리 됐겠다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거지. 빈속이라며. 가자.”
그렇게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하는 차이량과 계단을 올라갔다.
‘T―VOX라···.’
그러는 와중에도 내 머리엔 T―VOX라는 것으로 가득했지만, 복잡하게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조던 하르펜이 한국에 오기로한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타룬도 없앴겠다, 지금은 놈을 죽이는 것에만 신경을 쏟을 때였다.
* * *
주택가를 벗어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차이나타운의 한 일식집이었다.
타룬을 기습하기 전에 갔던 식당과는 분위기가 정반대였는데, 전부 룸으로 되어 있어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엔 적당한―.
드르르륵!
“음?”
순간 룸과 룸사이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삼합회 인원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륵!
“아니 어디까지 열리는 건데.”
어느새 좌우로 가득 들어차있는 삼합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차이량.
그러든가 말든가 맥주를 퍼마시고 있는 데이븐,
‘······.’
이제 곧있으면 차이량이 건배사 외치고 막 그거 따라하면서 함성도 지르고 그러는 건가?
하나 그런 내 예상과 달리 차이량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먼저 간 동료들을 기리는 것으로 말을 끝냈다.
“의외네? 엄청 시끄러워질 줄 알았는데.”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자, 한잔 받아.”
“뭐래. 미성년자한테.”
“어른이 주는 거는 괜찮아.”
“누가 들으면 한 60은 먹은 줄 알겠다? 딱 봐도 몇 살 차이 안 나겠구만.”
“······.”
“안 마셔.”
“에라이! 먹지 마! 안 줘!”
사실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적당히 덥고 땀이 날 때엔 시원한 맥주만 한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담배 한 모금, 술 한 잔 들어가지 않은 몸에 그런 걸 넣기가 거부감이 들었다.
어쩌면 바론과 싸울 때 아쉬웠던 부분이 생각나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가면 조금 더 빡세게 훈련해야겠는걸.’
“그보다, 언제 돌아갈 거야?”
“어제 비행기 표 끊어놨어. 내일 오후로.”
“여기 더 있을 생각은?”
“무슨 뜻이야?”
“소속이 따로 없다면, 나랑 같이 일해보자는 뜻이야. 실력은 내가 확인했으니 됐고. 일 처리 능력도 깔끔하지 협상도 잘하지, 대우는 제대로 해줄 수 있는데. ”
“안 돼.”
“왜? 같은 칼밥 먹고 살아도 삼합회라 좀 그런가?”
“말했잖아. 복수는 이제 시작이라고. 너에겐 바론 같은 존재가 나는 아직 남아 있어.”
“그럼 더 잘 된 거 아닌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내 복수에 네가 관리하는 삼합회 인원을 전부 갈아 넣을 수 있다는 거야?”
“···상대가 그 정도라고?”
“아마도.”
“푸흐···. 감도 안 잡히네.”
차이량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싫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으니, 깔끔하게 포기. 그리고.”
“···?”
“만약 다른 곳에서 사고 칠 때 우리랑 관련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연락해. 힘닿으면 도와줄 테니까.”
“왜 이래. 부담스럽게.”
“친구니까.”
차이량은 뭐 별거냐는듯 씨익 웃으며 말했고 나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친구···. 마음에 드네. 근데 우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더 난감해지는 건 아니고?”
“애들도 깔아놨고 여긴 괜찮아. 현장 조사하러 온다는 삼합회 사람들도 며칠은 더 걸린다고 했었고.”
“타룬 본사 쪽은?”
“당장은 조용해. 증거도 없고 아직 생존자도 파악이 안 될 테니 가만히 있는 거겠지.”
“흐음···.”
“괜찮다니까 그러네. 지금은 먹고 쉬어.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후 술자리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차분하던 처음 분위기와는 달리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와 데이븐도 삼합회 인원들과 섞여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땐···.
“으아!!! 목구멍이 타들어간다!!!”
“아직! 데이븐! 아직이야!! 그거 마시고 이거 바로 마셔야 돼!”
데이븐과 차이량이 고량주를 병째로 들고 마시고 있었다.
‘···재네는 또 언제 저렇게 친해 진거지?’
뭐, 상관없으려나.
그렇게 해가 떠있을 때 시작되었던 술자리는 밤이 되면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다음날.
“으아···. 속 아파.”
“어제 차이량이랑 고량주 마실 때부터 알아봤다. 일어나.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부랴부랴 준비를 끝낸 우리는 얼마 없는 짐을 챙기고서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밀려있던 문자들을 확인해보는데···.
[동생놈 : 야]
[동생놈 : 똑똑똑]
[동생놈 : 엄빠한테 연락 좀 해!!!]
[: ㅇㅇ]
[까마귀 : 살아계심까?]
[: 아직까지는요]
[다인 변호사 : 안녕하세요, 이현성 씨. 일전에 한 번 뵀었죠? 다름이 아니라 강소훈 씨가 한 번만 만나줄 수 없겠냐고 하시네요. 듣기론 해외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들어오시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네.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 드릴게요.]
[한철문 : ★오픈 기념★ 형사치킨 쿠폰! 지금 포장할시···.]
‘스펨인 줄 알았네···. 요즘 장사가 잘 안되시나···?’
[하워드 : 내일 비행기라고 했지? 주소는 보내놓을게. 그리고 데이븐 그 개자식도 꼭 데려와. 되도록이면 마음의 준비도 하라고 해놓고.]
[: 싸우면 네가 져.]
[하워드 : 묶어서 데려와.]
[차이량 :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이 예정보다 빨리 왔어. 라스베이거스로 호출해서 배웅은 못 해주겠네. 잘 가고 다음에 한국 가면 보자.]
[: 그래. 잘 해결하고.]
그렇게 답장을 해주는 사이 도착한 덴버 공항.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그건 타룬과 바론의 영향일 터였다.
뭐, 이제는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겠지만.
“나 왜 이렇게 긴장되지?”
“음···. 아마도 하워드한테 쳐맞을까봐 그런 거 아닐까?”
“···하워드가 나 때린대?”
“그럼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냐?”
“······.”
“가서 원하는대로 맞아줘. 그래야 뒤끝 안남아.”
그렇게 시무룩해진 데이븐과 함께 나는 아이오와로 향하는 비행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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