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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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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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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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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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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크레이터 - 2

DUMMY

그래도 차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반대편 차선에도 차는 지나다녔다. 이 와중에 가족을 위해 돌아가는 건지, 중요한 서류 때문에 돌아가는 건지, 연인, 친구 때문에 돌아가는 것인지. 그들은 서울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연은 그의 몸에 기대었다. 호연은 그녀를 팔로 감싸 안고 UFO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저것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약 한 달 만에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서 그런 것일까? 사실 처음부터 일상을 침범한 위험한 무기인데 말이다. 우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우연은 호연의 품에서 잠들었다. 호연에게 긴장은 어느덧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 도로 누구보다 긴장감이 사라졌다고 해도 믿음이 갈 것이다. 집에 가서 뭘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짐을 싸고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까? 아니면 집에서 그냥 우연과 가만히 숨죽여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야 할까?


핸드폰을 꺼내 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현진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통화음은 들리지 않고,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걸어주십시오.’ 라는 무미건조한 기계음만 들렸다. 호연은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결국 그렇게 두 시간을 더 달려 호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있었다. 석양이 불꽃처럼 건물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호연은 마치 조만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6만 2천 540원입니다.”


로봇 택시 기사의 기계음이, 석양을 향해 정신을 보내고 있는 호연을 되돌려 놨다. 호연은 급히 지갑을 꺼내 카드를 긁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카드기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호연은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계산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우연을 깨워 내렸다. 거리는 한산했다. 집 앞에 카페에도 사람이 없었다. 몇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UFO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침대에 같이 누웠다. 별로 뭔가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우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안은 채 한참 허공만 보고 있었다. 호연은 벽을 보고 있었다. 우연은 아마 호연의 컴퓨터를 보고 있을 것이다.


“오빠, 편집해야 할 거 있다면서요.”


“이메일 확인도 못 하는데, 무슨 소용이야.”


“지난번에 얘기했던 거 기억해요?”


“UFO가 공격하면 뭘 할 거냐고?”


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뭐라고 했더라. 편집을 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고 SNS에 자랑한다고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망치 어디 있어요?”


우연의 말에 그제야 기억이 났다. 벽을 부셔서 옆집 양반의 면상을 보기로 했었지. 며칠 전 일인데 기억을 못 하다니. 내 두뇌도 많이 늙었구나. 호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우연은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난 호연 오빠랑 같이 있을 거라고 그랬는데요. 아직 UFO가 우리를 공격 안 했으니 미뤄둬도 괜찮겠죠, 그 계획은?”


“아마 공격 받으면 사라져있지 않을까?”


“그럼 내일 점심에 부시죠.”


호연은 미소를 지으며, 깁스를 했던 그녀의 팔을 매만졌다. 그녀는 냄새 난다면서 그의 손을 손바닥으로 치우라는 듯이 두들겼다. 호연과 우연은 한참 손장난을 하다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누린 냄새가 꽤 많이 났다고 느낀 호연이었다.



사흘 정도 그렇게 지냈을 것이다. 옆집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아무래도 멀리 피난 간 듯했다. UFO 공격 이후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것은 시간이 꽤 걸렸지만, 통신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하루가 지나고 TV를 켰을 땐 한참 UFO에 대해 방송 중이었다. 미국에 가해진 공격과 그에 대한 대처 방법, 그리고 외계 생물 찬양교에 관련된 방송들.


인터넷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호연이 메일 창을 열었을 때 마지막으로 온 편집 내용들이 쏟아졌다. 보라뭇잎 출판사에서 온 메일도 있었다. ‘한동안 업무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편집자 분들은 출근을 멈춰주시고 각자 자택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그동안 우연은 호연의 뒤에서 편집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고, 호연의 망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스프레이건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는 그녀의 선물이 숨겨진 서랍을 열지 않기를 바랐다.


사흘 째 되던 날 밖에 시끌벅적했다. 호연과 우연은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치고선 밖을 바라보았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바리바리 싼 짐들을 가지고. 다시 안전해졌다고 느낀 것일까? 여전히 UFO는 하늘에 떠 있었다.


“왜 다시 돌아오는 걸까요, 오빠.”


우연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의 표정은 뭔가 잘 안 풀린다는 표정들이었다. 안전하다고 느낀 게 아니라, 죽음을 느끼며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궁금하면 나가볼까? 어차피 음식 재료들도 사야하고, 가게도 열었을 거야.”


호연의 제안에 그녀는 흔쾌히 받아드렸다. 그녀는 급히 벗어두었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호연은 그녀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듬성듬성 난 짧은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복도에 나서자마자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엘리베이터도 쉴 세 없이 움직였다. 호연과 우연은 엘리베이터 잡는 것을 포기하고선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좁은 계단을 통해 여러 가족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들의 표정은 뭔가 찝찝한 표정들이었다.


“호연 씨?”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차에 있던 한 가족이 호연을 불렀다. 밑층 노인이 사는 집 가족이었다. 호연은 목례를 한 후 우연과 그들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차 구석에서 눈을 감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호연은 그를 부른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호연 씨는 피난 안 갔나 봐요?”


“예, 여기 쭉 있었습니다. 왜 다시 돌아오는 거죠?”


“난 또 호연 씨 먼저 내려간 줄 알고. 저희 아버지가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기에. 말도 마세요. 지금 다리 쪽에서 유턴하고 난리 났어요.”


“가던 길을 돌린다고요?”


“예, 다른 길로 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차 돌렸습니다. 도저히 안 가기에, 나중에 봤더니 서울 나가는 길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노인의 아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선 본인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에어컨 바람을 쐬며 곤히 자고 있었다.


“거의 죽자 식으로 돌아온 거죠, 다들. 못 나가니까요. 호연 씨도 몸조심해요. 옆은 여자 친구 분인 것 같은데.”


“고마워요. 저희는 이만 갈 곳이 있어서 가 볼게요.”


“미안해요, 이래 붙잡아 둬서.”


차에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노인의 아들을 뒤로하고 호연과 우연은 가게로 향했다.


“왜 서울을 통제하는 걸까요?”


우연이 가게로 향하며 물었다. 그렇게 물어도 호연은 알려줄 길이 없었다.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마트 안은 심각했다. 보통 재난 시와 비슷했다. 라면은 이미 품절되어 있었고, 재고품 역시 없었다. 이것저것 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인의 모든 돈을 쏟을 수준으로 쓸고 있었다. 가게 창 너머로 구경하는 모습은 마치 불붙인 가마솥 안 개구리들이 살려고 가마솥 겉에 조금 붙은 밥풀을 뜯어먹는 모습 같았다.


호연은 저곳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마트에서 물건을 산다는 건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그저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억지로 들어가서 물건을 사겠다는 우연을 말리고선, 호연과 우연은 흡연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호연은 마트를 바라보며 담배를 뻑뻑 피웠다. 앞으로 담배는 구할 수 있을까? 아마 담배 재고도 다 떨어졌겠지.


“잠깐 이러고 끝일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 걱정 많은 거 다 아는 사실인데 뭐. 이렇게 호들갑 떨어놓고 며칠 후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걸요.”


우연이 호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신없네.”


“그러게요. 나도 저 정신없는 틈에서 정신없을 수 있는데요. 내가 이래보여도 엄청 억척스러워요.”


자신의 팔 근육을 자랑하겠다는 듯이 우연이 자신의 팔을 안으로 꺾어 이두근을 자랑했다. 호연이 생각하기엔 빈약한 이두근이었다. 아마 현진 목 근육에도 못 비빌 것이었다.


“또 그 팔이랑 다리 부러트리려고. 무리한 행동 말라고 했잖아.”


호연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우연은 뾰루퉁 해져선 입을 쭉 내밀었다. 호연은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담배 핀 손으로 입술 만지지 마요!” 하며 호연의 팔뚝을 쳤다. 빈약한 이두근이었지만 맞는 순간은 송곳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핑크빛이 돈다고 해서 세상 모두가 핑크빛이 도는 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UFO가 뜨고, 그 UFO가 미국 도시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니, 미국 도시 대신 미친놈들이 더 늘었구나. 나도 미쳐야지.’ 하고.


보통 범죄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미친놈들 뛰어넘기 위한 미친 짓을 선보일 더 미친놈. 호연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힐끗 보며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호연과 우연은 한참 햇살 뜨거운 점심을 걷다가, 뜨거운 햇살에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밥을 준비했다. 현진이 가져다준 깻잎장아찌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TV 뉴스에는 서울 시내에 별 문제가 없다는 기자의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보도블럭에 그을린 자국과 깨진 병, 주변에 외침은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프로는 단 하나도 없었다. 호연은 TV를 끄고선 우연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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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크레이터 - 2 22.10.04 9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6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5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3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4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2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1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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