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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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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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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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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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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크레이터 - 1

DUMMY

달을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아마 눈이 있다면 단 한 번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연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떠나간 옛 연인을 헤아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거나, 미래를 접거나.


아마 그때 눈은 거멓게 파인 곳을 바라볼 것이다. 달의 밝은 면에 신경 쓰이게 여드름 자국처럼 파인 흔적들. 크레이터, 달 표면에 운석들이 부딪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2050년, 또다시 달에 가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 시도들은 닐 암스트롱의 처음 남긴 발자국을 어느덧 흔한 발자국으로 만들어버렸다. 발자국들은 달에 수많은 국기를 꽂았고, 수많은 실험물들을 쌓았다.


호연과 우연, 사람들은 보고 있었다. 지구에 인간이 남긴 발자취들이 크레이터가 되는 것을.


“무슨······.”


호연은 우연이 가리킨 홀로그램 속 화면은 미국 뉴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꽃을 가져다주느라 듣는 것에 소홀했던 호연의 귀가 열렸다.


“미국 테러리스트 조직이 UFO에 미사일 사격을 시도한 결과입니다! 피격당한 UFO는 빛을 내며 반격을 가했습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켜놓았던 인터넷 방송은 꺼졌으며 확인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뉴스 기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지금까지 이 소리를 못 듣고 있었다니. 기가 찰 따름이었다. 아마 호연이 꽃을 가지러 갈 때 주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의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제야 꽃집 사장이 왜 그런 건성인 태도를 보였는지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그저 분화구 촬영 모습인줄 알았다. 아니면 지구에 남아있는 크레이터 자국들을 보여주거나. 아니었다. 파괴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방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 검은 연기가 크레이터에서 피어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우연은 그저 홀로그램만 멀뚱히 보고 있었다. 호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멈춰있었다. 다들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라 가만히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입을 열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십시오! 저겁니다!”


예상대로 입을 연 사람은 외계인 종교 사람이었다. 푯말을 들고 포교를 하고 있던 외계인 종교인은 처음에는 경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마치 신난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필 눈을 마주친 사람도 뒤를 돌아보고 있던 호연이었다.


“보이십니까? 이분들을 거부한 악마들의 최후입니다! 보십시오, 불지옥을 내린 것입니다. 과거 무지한 공룡들을 멸망시킨 빛이며, 신에게 가까워지려 했던 바벨탑을 무너트린 빛입니다! 대홍수를 일으킨 보를 무너트린 빛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급격히 그 사람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UFO를 올려다보았다. 흉물스럽게 떠 있는 서울 상공 UFO는 유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지만, 순식간에 모두의 낯빛이 파래졌고, 질서가 무너졌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차를 향해 달리거나, 집을 향해 달렸다. 택시 정류장과 버스 정류장은 이미 사람이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하철이라고 다를 거 없겠지.


뉴스 앵커는 계속 떠들고 있었다.


“모두 동요하고 본인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상황이지만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입니다. UFO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없을 것입니다.”


화면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우주선의 빛에 한줌의 가루로 사라지기 전 영상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선명한 화면에서는 복면이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이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지 않는다면 저 UFO를 사격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모두 별 일 없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근처에 헬기가 날아다녀도 무시하던 UFO였다. 그렇게 착각한 모양인지, 테러리스트 부하 중 하나의 눈가에는 웃음이 떠 있었다.


“연인 두 분, 저희와 함께 하실래요?”


아까 눈이 마주친 외계인 종교 신도 중 한 명이 호연과 우연에게 손을 뻗었다. 호연은 인상을 찡그리고는 억지로 손을 잡으려는 신도의 손을 밀어냈다. 신도는 손을 매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담과 이브가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헛소리 마세요.”


호연이 받아치며 우연을 일으켰다. 소리를 듣고 신도의 주변에 다른 신도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눈빛이었다. 호연은 빨리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어디로 가게?”


“여기서 택시 잡기는 글렀어. 지하철 타기도 힘들고.”


호연은 대답하며 막막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좀 더 멀리 가면 택시를 탈 수 있을까? 패닉 상태인 사람들 사이로 건물에 붙은 홀로그램 뉴스 채널에만 눈이 계속 쏠렸다.


전화를 받던 테러리스트 하나가 전화를 내던지고 버튼을 눌렀다. 폭발음. 그리고 순식간에 밝아지는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호연 오빠, 이쪽으로.”


우연이 갑자기 호연을 잡아끌었다. 이곳에 병원 때문에 들렸던 그녀가 더 길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막 깁스 푼 몸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우연이 걱정됐다.


이 와중에 도로에 한 차량이 나타나자 길거리에 푯말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격앙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외계 종교 신도들이었다.


“강민석 교주님이다! 저기 강민석 교주님이 탄 차량이야!”


호연의 고개가 도로로 향했다. 많은 종교인들이 환호를 하거나 고함을 지르며 그 주변에 뭉치기 시작했다.


“나와라, 범죄자 강민석은!”


“오, 그분이 오셨습니다! 옥체를 빛내 앞에 나서 무지한 자들을 깨우쳐 주십시오!”


“쌍놈이, 무슨 그분이야! 이단은 물러가라!”


수많은 종교 단체가 싸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계 생물 찬양교가 우세한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몰린 사이에 무장한 경찰 병력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군중들 사이 창이 잠깐 보였다. 선팅을 짙게 한 뒷좌석 창문을 뚫고 한 눈빛이 호연의 눈빛과 마주쳤다. 강민석의 눈이었다. 호연의 착각일 수도 있다. 창문으로 비친 군중의 눈이 우연히 맞아 떨어졌을 수도. 하지만 호연은 기분이 싸해짐을 느꼈다. 강남에서 봤던 그 배부른 호랑이의 눈. 하지만 다음 먹잇감은 네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던 그 눈빛.


호연과 우연은 그들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그녀와 호연은 골목을 이리저리 잰걸음으로 헤집었다. 창문이 골목 쪽에 난 상가에서는 짐 싸서 도망갈 계획을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애 초부터 닥치는 재난과 피난, 이상한 의심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제가 인적 적은 택시 정류장을 알아요. 거긴 아마 사람이 없을 거예요.”


도로가 마비 됐을 텐데 택시가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우연은 방법을 자기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짜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연은 부정적으로 계획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호연은 이미 최근 사흘 동안 머리를 너무 쓴 탓인지 이젠 두뇌를 굴리기도 힘들었다.


“호연 오빠, 괜찮아요?”


피로해 보이는 호연의 얼굴을 보고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무 생각없이 말을 꺼냈다.


“편집해야 할게 있었는데 말이야. 며칠 미뤘거든.”


“그게 중요해요? 오빠 쇼크 왔나봐.”


하필 이때 편집일이 생각나다니. 호연은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손에 쥔 꽃다발이 형편없이 흔들렸다. 모서리에 몇 번 부딪쳐 안개꽃도 꽤 꺾여있었다. 다행이 파란 장미꽃은 무사했다.


그녀가 이끌다가 멈춰 섰다. 둘은 대로변으로 나와 있었다. 우연이 말한 택시 정류장이 앞에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택시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그럴싸한 건물도 없는 곳이었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변두리였다.


우연과 호연은 택시 정류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로봇 택시에 올라탔다. 우연이 목적지를 누르기 전에 호연이 먼저 본인 집 주소를 눌렀다. 그러자 우연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 상황에 편집을 할 생각이에요, 정말?”


“아니야. 우리 집이 서울 변두리 쪽이잖아. 더 나을 거야. 가는 길은 오래 걸릴 것 같긴 한 데.”


“괜찮아요?”


택시가 달리기 시작했고, 우연이 그의 머리를 쓸었다. 호연은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오늘 너무 정신없어서 못 느끼던 것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연에 대한 의심이 급격히 피어난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급하게 본인 집 주소를 눌렀던 이유도 떠올랐다. 그녀의 집에 왔다던 그 검은 양복 사람들. 외계 생물 찬양교, 강민석 박사, 아니 교주. 호연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품에 장미꽃을 안겼다.


“이건 언제 사왔어요? 오빠?”


호연은 눈을 감고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눕혔다. 어제 낮술 한 게 아직까지 영향을 주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동안의 피로감이 찾아온 건지, 아니면 우연의 말대로 쇼크가 온 건지. 우연이 자신의 머리를 또 한 번 쓸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호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도로 위였다. 예상대로 차가 막혀있었다. 앞에서는 빨리 가라며 클락션을 꾹꾹 거칠게 누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우연은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호연이 고개를 움직이자, 우연이 아래를 내려 보았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핸드백 속에 넣었다.


“나 얼마나 잔거야?”


“두 시간 정도요. 좀 괜찮아요?”


“그냥 좀 머리가 지끈거리네. 도로에 꽤 오래 있는 모양이야. 그리 먼 거리도 아닐 텐데.”


호연은 머리를 매만지려는 우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끼리 깍지를 꼈다. 그녀는 손깍지를 낀 채로 호연은 바라보았다.


“자는 동안 별 일은 없었지?”


“예, 괜찮아요.”


“그럼 꿈이었네.”


호연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UFO가 공격했다는 건 다 꿈이고, 자신이 피곤해서 집 가는 길에 쓰러진 것이라고. 하긴 우연의 집에 갔다가, 한참 끙끙 앓다가, 우연과 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날에는 오철빈이라는 형사를 만나러 경찰서를 다녀오고, 그 다음날은 오철빈과 정민영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었으니, 오늘 피로가 없다면 거짓말이지.


동시에 오늘따라 차가 심하게 막혀, 이렇게 차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차라리 아까 달리면서 뺨이라도 꼬집었어야 했다.


암울하게도 우연은 그에게 반박을 하지 않았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호연은 깍지를 풀고 그녀의 뺨을 매만지고 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택시 모니터에 있는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먹통이에요.”


우연 말대로 먹통이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이용자가 많을 테니까. 어떻게든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애를 쓰겠지. 로봇 택시가 인터넷과 따로 연동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과거 인터넷을 통한 구형 로봇이었으면 중간에 딴 길로 가거나, 사고가 났을 것이다.


“꽃 고마워요, 오빠.”


우연이 꽃을 보이며 생긋 웃었다. 그녀의 뒤로 창이 보이고, 새카만 UFO가 보였다. 꽃을 든 아름다운 내 여자와, 창 밖 UFO라니. 실로 기괴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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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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