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089
추천수 :
45
글자수 :
203,653

작성
18.08.09 16:42
조회
111
추천
1
글자
11쪽

4, 그대는 고요했다 - 3

DUMMY

'역주행 차량이 트럭에 부딪쳐······.'


낮에 본 사고가 인터넷 뉴스에 떠 있었다. 그것도 구석에 아주 작게. 호연은 그 기사를 누르고 들어갔다. 아까 기름을 타고 흐르는 피가 계속 호연의 뇌 어딘가를 맴돌았다. 마치 엔돌핀처럼 맴돌아 곧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호연은 급히 인터넷 창을 닫았다. 사고는 주위에 가득하다. 호연이 인터넷 창을 손바닥으로 내려 닫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자동화기기 오작동으로 내려가는 창에 손등이 찍혔을 수도 있다. 깨진 창문 조각에 찔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는 다시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다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기사들. 마치 날 봐달라고 유혹을 했지만, 그 안에는 그 누구도 피를 본 적 없는 UFO 뿐이었다. 역주행 차량 사고는 한 기자만 기사를 썼었을 뿐이었다.


'UFO 미세한 음파가 나와. 사람의 머리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테러 조직, 중국이 먼저 움직였다! 중국이 잡은 베이징 코브라에 대해······.'


'비를 통과시키는 UFO 과연 미사일이나 총알도 그냥 통과시킬까?'


세계는 UFO 에 미쳐있었다. 만약 UFO 가 1센치만 움직여도 모든 레이더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 하는데 열중할 것이다. 그리고 1 센치의 미세한 움직임은 인류가 놀라워할 거대한 기사 거리로 충분했다. 다른 작은 사고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찌그러진 차에서 흘러나오는 피 따위는, 우주선에 묻어있다 떨어진 중국 모래 조각보다 못한 것이었다.


호연은 멍하니 기사들을 넘겨가면서 지우다가 한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살인 사건 기사였다. CCTV 로 유력 용의자를 확인한 기사였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았다. 범인은 잡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응?"


호연은 눈을 찡그리고 화면에 나온 CCTV 영상을 바라보았다. CCTV 에 잡히고서 안 잡힌 범인은 없었다. 설령 아무리 몸을 꽁꽁 둘러매도 체격과 미세한 걸음걸이로 대부분 잡아냈던 경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못 잡은 것치고는 너무도 잡기 쉬운 복장이었다.


정리된 검은 머리에 검은 선그라스. 검은 슈트. 검은 장갑, 검은 구두. 온통 검은 복장이었다. 단지 슈트 안에 입은 흰 셔츠에 조금 묻어있는 피가 그가 살인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게다가 추측하는 살인 시간 후 그의 집을 당당히 나오는 사람은 선그라스에 슈트를 입은 사람 밖에 없었다고 경찰이 밝혔다.


이 쉬운 복장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찾지 못했다. 전산에 등록된 여러 사람의 정보를 아무리 비교해도 영상과 똑같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며. 하지만 호연은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기억났다.


"역주행 차량이다, 야······."


호연은 그 말을 뱉었을 때 도로로 넘어가는 선그라스 남자가 떠올렸다. 낮에 본 사고 현장이었다. 그 걸음걸이와 체격은 CCTV 와 얼핏 동일했다. 물론 전문가나 경찰도 아니면서 하는 판단은 망상과도 같았다.


"그래, 착각한 거겠지."


호연은 홀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더이상 봐봤자 뇌를 자극할 뿐이었다. 호연은 담배를 태우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샤워가 필요했다.



닷새가 어느덧 훌쩍 지났다. 호연은 아무런 일 없이 집과 마트만 왔다갔다거리며 닷새를 보냈다. 편집이 많은 날은 그에게 가장 훌륭한 날이었었다. 가장 아무 생각없이 하루종일 일에 열중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가끔 밑층 노인이 놀러오긴 했지만, 평소보다 노인이 더 귀찮았다. 노인은 아직도 UFO 에서 나온 빛에 열광하고 있었다. 강민석 박사의 사상은 노인의 절대 종교가 되어있었다.


"영감님. 저것들은 대체 어디서 저런 물건들을 구한 걸까요?"


"EMP 폭탄, 저거, 그, 거서 젊은 사람들이 나눠······아니다, 아니다."


닷새중 한 번은 호연과 노인이 같이 TV 를 보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호연이 가리킨 것에 대해 노인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호연은 놀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영감님은 어째 나이가 드셔도 영어에 능통합니까?"


호연은 능청스럽게 노인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물었다. 밑층 노인은 괜한 말을 했다는 듯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역시 어디서 뭔가 들었던 모양이었다. 떠도는 소문일지라도 무척 궁금했다.


"젊은 사람들이 나눠준다고요?"


"나도 그냥 듣기만 한 거여. 강남에 놀러갔다온 노인네 하나 있었거든. 나는 그거 말고는 더 몰러."


밑층 노인은 될대로 되라는 듯이 말하고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강남이라면,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가, 교통의 평준화와 교육의 평준화, 여러 변화가 일어나면서 몰락한 지역중 하나였다. 서울의 할렘가 수준이었다.


잠시후 노인은 아들의 손에 잡혀 호연의 집을 떠났다. 호연은 혼자 침대에 앉아있었다. 강민석 박사의 집단에 EMP 폭탄을 지원하는 젊은 사람들이 괜히 궁금했다. 경찰도 아닌데, 그때 선그라스 남자 사건 이후 UFO 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 궁금했다.


물론 그것도 잠깐이었다. 호연은 인터넷 메시지로 온 우연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것에 답장을 보내며 깔끔하게 머릿속을 정리시켰다. 우연의 메시지는 별거 없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호연도 그에 맞는 평범한 내용을 보냈다.



닷새 되는 날, 호연은 평소와 똑같이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그는 인터넷 기사보다는 커뮤니티 카페 유머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가끔 인터넷 기사를 더 재미있어했다. 커뮤니티 카페에서 떠드는 허무맹랑한 유머보다 현실적인 유머였다.


호연은 턱을 괴고 한참 화면을 내리다가 어느 한 기사에서 눈을 멈췄다.


'범죄 조직에 발을 들여놓았던 생물학자.'


호연은 그 기사에 이상하게 눈이 갔다. 성진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더러운 녀석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몇년의 정이 있으니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물론 성진이 죽었는지 눈꼽만큼도 몰랐었지만.


무심코 그 기사를 눌러버렸다. 기사가 화면 한 가득 펼쳐졌다. 호연은 한참 그 기사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EMP 폭탄을 다루는 범죄 조직 기사였다. EMP 폭탄에 왜 생물학자가 끼어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새벽 경찰이 급습한 범죄 조직의 가담자 서류에서 발견된 생물학자 과학자는, 현재 교통사고로 숨진 상태입니다. 현재 과학자가 생전에 살았던 집을 수사중이며, 가족과 연루되어 있는지 조사중입니다. 가담자 서류를 만든 이유는 조직 내 변절자들을······.'


사고 당시 현장이 화면 구석에 펼쳐졌다. 호연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몇 번 봤던 차량 같았다. 그는 한참 멈춰있다가 기억을 헤집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호연은 피곤한 눈으로 전화를 받았다. 편집 일이 없다고 인석과 술을 잔뜩 마신 것이 실수였다. 거하게 마신 술은 다음날 신경을 자극했다.


그의 기억은 4년 전을 떠돌고 있었다.


"나 차 샀어, 인마."


"차? 웬 차? 먹는 차?"


"타는 차지, 당연히. 나 선임 연구원으로 진급했잖냐. 뽀대나게 실험기구도 차에 실고 다니고, 그래야지. 언제까지 버스 타고 다니냐."


호연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픽 웃었다. 얼마전 선임 연구원으로 진급했다고 좋아라 하더니, 빚을 내서라도 차를 산 모양이었다.


"과학자가 차 타고 돌아다닐 시간이 어디있냐. 차는 제대로 타지도 못하고 빚만 갚게 생겼구만."


"출퇴근 할때라도 멋은 있겠지."


"퍽도 있겠다. 방금 SNS 봤다. 차량 덩치는 왜 이렇게 크냐?"


"그래야 사고나도 어느정도 살 수 있잖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내가 보내준 USB는 봤어?"


그런 놈이 자기 차보다 작은 차에 부딪쳐 죽었냐? 호연은 현장 사진의 흰색 대형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운전석에도 다른 차 하나가 박았던 모양이었다. 운전석도 원래 모양을 알 수 없게 찌그러져 있었다.


이제 성진의 차는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그 형태를 알 수 있었다. 차는 사고 안 나도록 신고식을 해야 한다면서, 성진 스스로 살짝 긁어놓은 운전석 문짝이 눈에 띄었다.


USB······?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성진이 무슨 USB 를 줬던가?


호연은 핸드폰을 펼쳐 진애의 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왜 범죄 조직에 손을 뻗었는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그녀의 번호를 알고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지금쯤 잊혀질 때가 됐는데, 아직도 손가락은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통화음이 찌그러진 하얀 성진의 차를 펼치고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진애가 전화를 받았다. 호연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신호연?"


진애가 물었다. 호연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성진이 범죄 조직에 가담한 거, 알아?"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걔한테 테러리스트라는 누명까지 씌우려는 거야. 내가 지난번에 찾아간 건 미안해. 하지만 이러면 죽은 성진이한테 미안하지 않아?"


진애는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말하는데 조금의 떨림도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호연에게는 역겨움을 선사했다.


미안하지 않냐고? 미안함은 지금 너무도 태연한 네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석, 나한테는 나쁜 놈이긴 해도 범죄에 가담할 놈은 아니였어. 양심에 찔려서라도 가까운 사람한테 고민을 다 털어놓던 놈이라고. 설마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어. 안 그래?"


"난 몰라. 나중에 다시 연락해줘. 이런 문제로 얘기하기 힘들어."


"어디야?"


호연의 물음에 핸드폰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잠시후 그녀는 그 침묵의 문을 열고 말했다.


"집."


전화가 끊겼다. 호연은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를 뺏어갔던 죽은 친구가 처한 상황을 억울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걸 빼앗긴 여자친구에게 그걸 알고 있었냐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할머니 백내장 수술 이후 간호해드리느라 노트북 열어볼 시간이 없네요. 그래도 본가가 좋다고 살이 찌네요. 한동안 연재가 들락날락 할 것 같아요.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프롤로그 조금 추가 했습니다. 18.08.26 49 0 -
공지 소설 장르를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18.08.25 58 0 -
공지 안녕하세요, 연재 일 수를 조정하려 합니다. 18.08.16 62 0 -
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6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5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2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