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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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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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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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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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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그대는 고요했다 - 6

DUMMY

들어올 때 호연이 열어두었던 문으로 고개만 내민 현진은 불안하다는 표정이었다. 도둑 든 것 마냥 집안 꼴이 뒤집어져 있었으니까.


"형이 이렇게 한 거야?"


현진의 물음에 호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도둑질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물론 주머니 속에 몰래 챙긴 게 있었지만.


"진애가 집에도 없어. 아까 그놈들 소행인 것 같아."


"일단 경찰에 얘기할게, 형. 일단 진정하고 집에 가자."


"근데 넌 여길 어떻게 온 거야?"


"아, 우연 씨가 알려줘서 왔어. 형, 우연 씨랑 위치 공유 같은 거 하고 있어?"


호연는 우연과 그런 걸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멍하니 현진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민석 박사의 사람들이 지갑과 핸드폰은 건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호연은 핸드폰에서 앱 하나를 찾아냈다.


위치 추적 앱이 깔려있었다. 집과 연결시킬 수 있는 앱이었는데, 자녀를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끄는 앱이었다. 하지만 호연이 결혼도 안했고, 숨겨둔 자식도 없는 마당에 자신이 이런 걸 깔아놓을 리 없었다.


"이런 거 깔아놓은 적 없었는데."


호연은 술집에서 우연이 자신이 폰을 만지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아, 그때." 하고 중얼거렸다. 현진은 무슨 일이냐는 듯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형, 일단 나가자. 계속 있다가 괜히 의심 받으면 안 되니까. 일단 형 먼저 택시 타고 가."


호연도 주머니 속 기계가 의심되어 빨리 빌라를 나가고 싶었다. 현진은 호연을 빌라에서 끌고 나와 택시를 잡아주었다. 그는 호연을 태우고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호연은 출발하는 택시 안에 축 늘어져선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사람 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딱히 피울 생각은 없었다. 호연은 남은 담배 수를 확인한 다음 주머니 속에 다시 넣었다.


호연은 한참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위치 추적 앱이 교묘하게 다른 앱들 사이에 끼어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5 일 전부터 호연의 위치는 알려지고 있던 것이다. 앱에 들어가 설정을 보니 보내지는 번호는 우연의 집 번호였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호연은 그러고선 차에서 내렸다. 도착한 곳은 우연의 집 앞이었다. 그는 세대호출 버튼을 누르고 얌전히 기다렸다. 누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호연은 1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왔어요, 호연 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자 우연이 집 앞에 서 있었다. 호연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핸드폰 액정을 들이밀었다.


"이거 우연 씨가 깔은 겁니까?"


"맞아요."


"대체 왜 깔은 겁니까? 우연 씨가 제 사생활을 지켜볼 권리가 있어요?"


"구해졌으면 됐지, 왜 꼬장이에요. 현진 씨한테 전화로 다 들었어요. 이상한 사람들한테 끌려가고 있었다면서요."


"구해졌으면 됐지, 이게 문제가 아니라, 왜 있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면서 사생활을 침해하냐는 거잖아!"


호연은 거칠게 큰 소리로 말을 뱉었다. 우연은 놀라 움찔하며 자신의 앞에 지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들과의 말싸움에 슬슬 지쳐가는 호연이었다. 호연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지금도 다 보고 미리 나와있던 거잖아요, 우연 씨."


"호연 씨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없어요?"


"그런 말이 나오게 생겼어요?"


"딱 지금 얼굴보니까, 안 나오게 생겼네요."


"지금 우연 씨 얼굴 보니까, 미안하다는 말도 안 나오게 생겼네요."


호연은 우연의 말투를 따라하며 비꼬았다. 그러자 갑자기 우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호연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우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 호연 씨 화내는 거 웃으면 안 되는데, 따라하는 말투가 너무 웃겼어요."


우연이 한 쪽 다리로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며 말했다. 호연은 우연이 웃다가 쓰러질 것 같자, 그녀의 어깨를 잡고 중심을 잡아주었다.


호연은 그녀가 웃자 더 화낼 기운도 나지 않았다. 웃는 얼굴에 돌 뱉는 것은 호연에게도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제 말투가 그런 말투였어요? 웃기네요."


"말투보다는 억양이 문제죠."


"일단 들어가요. 밥은 먹었어요?"


그러고보니 아침은 먹지 않았고, 점심은, 점심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쓰러져있느라 먹을 틈이 없었다. 우연이 기절해있던 그의 배 시계에 충전기를 꽂았다. 호연은 마지못해 우연을 따라 들어갔다. 달달한 레몬 냄새가 코에 달라붙었다.


우연의 몸은 꽤 나아진 모양이었다. 절룩거리긴 해도, 목발 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호연은 괜히 몸도 아픈 우연에게 와서 심통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벽에 붙은 패널을 눌렀다. 호연의 위치가 지도에 나타나 있었다.


"안 알려줄 거예요? 왜 깔았는지."


호연이 지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핸드폰을 흔들자, 지도의 표시도 따라 움직였다. 이런 위치 추적이 있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냥 깔아놓은 거예요."


"나한테 관심 있어요?"


"어디가서 붙잡혀 죽을까봐 그러죠."


우연은 밥 한 공기와 반찬을 늘어트려놨다. 호연은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겪은 납치극은 모두 꿈 같았다. 호연은 밥을 퍼먹다가 손을 멈췄다.


"우연 씨, 전 여자친구가 납치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우연은 젓가락을 들다가 놀란 눈으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그걸 질문이냐고 하는 눈빛이었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현진이가 한다고 했어요. 경황이 없어서, 그냥 여기로 와 버렸죠."


우연은 토끼처럼 눈을 뜨고 밥을 먹지 못하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호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비난할 거면 비난해라. 이 태도였다. 어찌보면 겁 먹고 도망치듯 우연의 집으로 온 것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녀는 호연의 어깨를 쓸어주며 말했다.


"호연 씨는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괜찮아요. 다 그래요. 어쩔 줄 몰라하죠. 어휴, 옷에 모래 묻은 거 봐요. 털지도 않고 들어왔어요?"


옷을 탁탁 털어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다. 호연은 흰 쌀밥 위에 떨어진 반짝이는 모래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르륵 떨어졌다.


"호연 씨도 참기름에 밥 비벼먹어 볼래요?"


반 남은 참기름 튜브를 내밀며 우연이 물었다. 호연은 잠시 아랫입술만 뜯다가 튜브를 받아 밥에 뿌렸다. 참기름과 모래가 섞인 밥맛은 느끼했다.


밥을 다 먹은 후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호연은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누워있었다. 누가보면 친밀한 연인 사이였다. 그는 애써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연의 무릎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 여자친구에게는 왜 찾아간 거예요?"


우연이 물었다.


"제 핸드폰에 위치 추적 앱은 왜 깔은 건데요."


호연이 물음으로 답했다.


"그냥 그랬어요."


우연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호연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똑같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저도 그냥 갔어요."


"말 안해주겠다 이거죠? 말 안 하면 다리 치울 거예요."


우연이 다리를 움찔움찔 떨었다. 호연은 우연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자세를 조금 바꿨다. 창문 너머 보이는 UFO가 눈에 들어왔다.


"EMP 폭탄 알죠, 우연 씨?"


"EMP 폭탄 알죠. 왜요?"


"UFO 가 그 폭탄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모르죠."


호연은 주머니 속 작은 기계가 계속 신경쓰였다. 성진의 실험 도구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주머니 속에서 꺼내고 싶었다.


우연이 호연의 머리를 쓸으며 말했다.


"추락하지 않을까요? 추락하면 도시 하나는 망가질 것 같은데. EMP 폭탄이라도 구했어요?"


"아뇨. 그런걸 어디서 구해요."


호연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계속 주머니 속 기계가 자신이 실험 기구라고 믿어달라는 듯 허벅지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 기계를 믿을 수 없었다.


"호연 씨."


"네?"


"곧 생일이에요."


"그래요?"


"그래요, 이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따로 준비한 선물 없어요? 작가를 위해 주는 거, 그런 거요."


호연은 SNS 에서 본 우연의 생일을 떠올려보았다. 7월 언제 였더라? 영 떠오르지 않았다.


"우연 씨 생일이 언제였죠?"


"그런 것도 몰라요?"


"전 우연 씨 전담 편집자가 아니잖아요. 선물은 편집자한테 물어봐요."


"편집자 옮길래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


우연은 호연의 머리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호연은 피식 웃으며 TV 옆에 있는 달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페이지가 벌써 7 월로 넘어가 있었다. 24일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SNS와 달력이 합해져 우연의 생일을 만들어냈다.


"전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가 투덜거렸다. 제대로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었다. 진애와 만날 때도 생일은 귀찮아서 넘겨버렸었다. 억지로 챙겨주겠다는 진애가 때론 귀찮기도 했었다.


"제가 챙겨줄게요.


"챙겨주지 마요. 귀찮아요."


"이렇게 말해놔야, 호연 씨가 제 생일을 챙겨주죠."


"안 챙겨줄게요."


결국 우연은 호연을 무릎에서 떨어트려놨다. 호연은 소파에 누워 축 늘어졌다. '슬슬 일어나서 집에 돌아가야하는데.' 이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돌았지, 도통 근육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작가의말

오늘 우울한 악몽을 꾸고 새벽 4시에 일어났었네요. 물론 다시 잠들었죠. 악몽 내용은 혹시 길몽이 될 지도 모르니,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 아, 학교 수강 신청 문제로 머리 좀 앓았네요, 허허. 꿈 문제는 아니겠죠. // 일요일, 또는 월요일에 봬요.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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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 크레이터 - 1 20.02.14 22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3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5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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