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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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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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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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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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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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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달콤함 - 2

DUMMY

괜히 기분 나빠지는 대목들이었다. 이것 외에도 계속 발견됐지만, 그다지 쓸대없는 내용이었다. '세상은 아름답다.' '우주는 넓었다.' 그런 식의 내용들이었다. 호연은 따로 메모해두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수정 전 원고들을 다른 폴더에 옮겨놓았다.


"어쭈, 이거 다 짜놓았나?"


하고 의심해봤지만, 작가 중에서는 작가들을 주동할 위인이 없었다. 전부 자신의 소일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호연은 작가 하나를 의심해봤지만, 그 작가는 속세와 연은 끊겠답시고 절에 올라가 가끔 원고를 보내는 양반이었다. 물론 절에도 인터넷은 됐지만, 절에 오르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호연은 편집 원고가 어느정도 다 마무리 되어가고 있을 때, 지루함을 느꼈다. 그는 라디오를 키고선 의자에 축 늘어졌다. 의자가 뒤로 재껴지며 누울 수 있게 바뀌었다. 책상 위에 아무 무늬 없는 지포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기름 다 떨어졌을텐데."


호연은 우연의 지포라이터가 기억났다. 첫날 그 라이터를 갈취당한 기억이나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다가 책상 구석에 꽁꽁 박아둔 헌 지갑이 생각났다. 호연은 지갑을 꺼내 사진 하나를 끌어냈다. 진애의 사진이었다. 진애는 어설프게 웃고 있었다. 어설프게 웃고있다는 것은 호연의 생각이었다.


호연은 원고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도색 총을 집어들었다. 치이익 뿌려질 때마다 흰 선이 검은 라이터 위를 갈랐다. 한참 뿌렸다. 은색 잉크가 다 닳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뭐, 하나 주문해야지.


옆집에서 또다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남자가 퇴근한 모양이었다. 선을 하나하나 긋는 호연의 귀에 옆집 여자의 애교 떠는 소리가 들렸다. 늙은 고양이가 우는 소리와 비스무리 했다. 저런 목소리에 흥분을 할 수 있을까?


호연은 그림에 동그라미 하나를 멋깔나게 그려넣었다. 하마터면 옆집 여자의 목소리 덕에 타원형을 그릴 뻔했다.


한참 두 개의 동그라미 속을 거멓게 채워넣을 때 옆집 여자의 신음이 귀를 때렸다. 망치를 들고 싶었지만, 지금 이 신성한 작업을 끊기가 싫었다. 망치를 들었다면 두 개의 망치로 옆집 신음보다 멋있게 연주할 수 있을텐데.


"호랑이?"


호연은 다 완성된 라이터를 들고 중얼거렸다. 지포라이터 위에는 은색과 흰색이 애매하게 섞인 원형 물체가 있었다. 전형적으로 삽화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UFO."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검은 담뱃갑이 입을 열어 말했다. 사실 호연이 말했던 거지만.


지포라이터 위에는 창문이 두 개 달린 UFO 가 그려져 있었다. 백호를 그리려던 호연의 전 계획과는 달랐다. 은색의 큼지막한 UFO 는 마치 라이터 아래를 거대한 두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UFO 뒤의 검은 공간은 깊은 우주였다.


호연은 처음에 후광을 그려넣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후광을 넣는다면, 너무 라이터가 화려하다 못해 지저분 할 것 같았다. 단순하고 밋밋함을 원하는 호연의 스타일과는 멀었다.


호연은 라이터를 책상 위에 세워두고 문 밖으로 나섰다. 6시 반이었다. 건물 입구에는 싸구려 기계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흐린 홀로그램 광고가 나오는 기계들이었다. 호연은 기계를 발로 밟아 부시곤 마트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물건 있으십니까?"


잡화를 주로 다니는 가게에 들어서자 기계 점원이 그를 맞이했다. 호연은 점원의 머리에 있는 패널을 꾹꾹 눌렀다. 호연이 손가락으로 아무리 꾹꾹 눌러도 로봇 머리는 미동이 없었다.


'선물, 포장.'


"포장지를 고르시겠습니까?"


호연은 포장지의 종류를 보고선 한참 고민했다. 하트로 가득찬 핑크빛 포장지는 애들한테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밋밋한 무늬로 하기에는 성의가 없어보였다.


왜 포장지를 고르냐고? 물으면 호연도 얼굴을 붉히고 할 말이 없었다. 왜 UFO 를 그렸냐는 물음과 동일했다. 호연은 파란색 포장지에 흰 하트가 띄엄띄엄 들어간 포장지를 골랐다.


로봇이 가지고오자 호연은 급히 계산하고선 누가 보지도 않는데, 주머니에 구겨넣고 가게를 나왔다. 여름날의 햇살이 약하게 쏟아졌다. 아무리 UFO 가 햇빛을 투과시켜준다고 해도, 다 투과시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호연은 무심코 담배를 물었다가 라이터를 집에 말리고 온 것을 떠올렸다. 호연은 담배 한 개비를 손에 쥐고선 집으로 향했다.


"호연 씨."


호연은 여자가 자신을 부른 것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 동네에 호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아랫집 노인의 며느리인가, 싶었다.


"호연 씨 맞죠?"


호연의 예측은 빗나갔다. 정민영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피하고 싶은 사람임과 동시에, 반가운 사람이었다. 여자친구의 뒤를 파기에는 찝찝하지만, 민영은 우연에 대해 뭔가를 알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요, 민영 씨."


"기억하네요! 다행이다, 아니면 어쩌나 싶었어요."


민영은 거리를 좁혀오며 말했다. 집에서 나오기 전 거울로 본 부시시한 자신의 모습이 호연의 머리에 떠올랐다. 여자를 만나는데 달가운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손에 쥐어진 담배는 더 자신의 후줄근한 모습을 뽐내는 것 같았다.


"여긴 무슨 일이죠?"


호연의 물음에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랑 옷 좀 사고 들어가는 길이에요. 호연 씨는 여기 사는 건가요?"


"여기서 살아요."


호연은 담배 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필 포장지가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반대편 손으로 담배를 숨기고 싶었다.


"우리 이렇게 만난 거 얘기나 하죠. 마침 시간이 오늘 널널해서. 호연 씨한테 궁금한게 생겼어요."


민영이 제안했다. 호연은 머리가 복잡했다.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다고 얘기 할까? 괜히 관심쓰고 있다고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았다. 바쁜 일이 있다고 하고 도망갈까? 그러기엔 호연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러죠."



호연은 점점 석양을 조금씩 남기고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커피를 주문한 다음 종업원에게 라이터를 빌려 흡연 박스로 들어갔다. 손 안, 귀찮은 담배를 처리할 수 있었다.


호연은 흡연 박스에서 나와 다시 카페에 들어가 민영의 앞에 앉았다. 민영은 커피를 받아 홀짝이고 있었다. 호연이 앉자마자 민영이 말했다.


"술집에서 만나고 처음이죠?"


"그렇죠, 술집 이후로."


"그때 많이 무례했어요."


"다 잊어버렸죠."


호연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민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요새 별 일 없어요?"


"별 일이라면, 우연 씨 때문에 일어난 일을 묻는 겁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일을 묻는 겁니까?"


"개인적이든, 우연 때문이든요."


민영은 뭘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호연은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납치 당할 뻔 한 적이 있죠. 강민석 박사라고 알아요?"


"납치요? 강민석 박사?"


민영은 놀란 눈으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 납치 당할 뻔 했던 사람이 호연 씨에요?"


갑자기 민영은 자신의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전자노트를 꺼내들었다. 호연은 그녀가 왜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왜 강민석 박사가 납치하려 한 거예요? 혹시 그들 중 기억나는 사람이 있어요? 그들 무리 안 쪽까지 들어간 거예요? 납치된 진애 씨와의 관계는요?"


쏟아지는 민영의 질문에 호연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씩 물어봐요. 대체 왜 궁금한 건데요?"


민영은 호연의 눈을 바라보다가 핸드백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호연이 즐겨보는 신문사 명함이었다. 다른 신문사와는 달리 세세하게 사건을 따지는 곳이었다.


"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저도 꽤나 강민석을 위주로 한 테러리스트에 관심이 많아요. 같이 납치 되었다가 풀린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앓았는데, 호연 씨였나요?"


호연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궁금한 게 더 느네요, 계속. 시간 많은 거죠? 바쁘신가요?"


"아뇨, 괜찮아요. 어디서부터 질문하실 거죠?"


"일단 납치된 진애 씨와의 관계부터 물어도 될까요?"


그래, 진애. 나의 관심사 밖으로 넘어가버린 진애. 호연에게 진애는 이제 그냥 강민석 박사에게 납치 당한 불쌍한 여인 1 호였다. 1 호가 아닌 이상의 수일 수도 있겠지만, 호연에게 그녀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전 애인이었어요."


호연은 테이블을 검지로 탁 치며 말했다.


"거기는 왜 갔던 거예요? 강남하고 이곳은 거리도 꽤 있는 편인데."


"그건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나중에 천천히 말하셔도 돼요."


"인터뷰 비용은 나와요?"


민영을 어깨를 으쓱였다. 호연은 갑자기 아까운 시간을 날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납치한 지 알고 있어요?"


"이유는 몰라요. 한참 얘기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제 머리를 친 다음에 의식을 잃었거든요. 아마......."


"아마?"


작가의말

태풍이 경기도 까지 영향을 주지 못 했네요. 다행입니다.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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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6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5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 5, 달콤함 - 2 18.08.24 93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2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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