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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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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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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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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달콤함 - 1

DUMMY

인생의 중간에는 뜬금없는 달콤함이 있다. 뜬금없는 달콤함은 미적지근하게 삶에 알게모르게 녹아들어, 어느 순간 단번에 온 몸에 흡수되는 것이었다. 뜨거운 물에 설탕을 조금씩 넣다가 단 맛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호연은 커피에 설탕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아메리카노 같은 블랙 커피에 설탕이나 시럽을 넣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인스턴트 커피는 별개였다.


이틀 전부터 그는 아침에 일어나 아메리카노로 아침의 문을 열었다. 몸이 우연에 의해 달콤해진 만큼, 입에는 쓴 맛이 필요했다. 호연은 최근에 낡은 커피 머신을 창고에서 꺼냈다.


진애가 납치된 이후 3 일이 지났다. 매스컴은 그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조용했다.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제 현진에게 들은 이야기 빼고는 어떤 소식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도 뭐 별 다른 건 없었다.


호연은 그날 아침 커피를 마시다 인터폰 소리에 놀랐다. 괜히 옆집 남자가 찾아온 건 아닐까 걱정 되었다. 그저께 안사람과 싸움 소리로 난동을 부리길래 망치로 벽을 신나게 쳤더니,


"집에 망치 안 망가졌냐, 개새끼야!"


하고 옆집 남자가 베란다에서 망치를 던지던 장면이 떠올랐다. 호연의 집에는 망치가 하나 더 늘어있었다.


"누구십니까?"


호연이 인터폰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옆집 남자가 아니더라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전 국민 흡연 대상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과, 노폐물 정화 주사를 하고 있습니다. 신호연 씨는 흡연자로, 적극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거부할 시, 과태료가 부과 됩니다."


호연은 문을 열었다. 양쪽에 두 개의 무한궤도가 달린 네모난 기계가 문 앞에 우두커니 있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면에 달린 스피커에서 딱딱한 기계 음성이 감사를 표했다. 호연은 기계를 들여보내고, 문밖을 둘러본 후 문을 닫았다. 괜히 소리를 듣고 옆집 남자가 나올 것 같았다.


호연은 1 인용 소파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길게 뻗었다. 흡연 관리 로봇은 담배로 인한 폐암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었다. 은색 네모난 기계 안에는 병원에서 쓰는 대부분의 촬영 장비가 축소화 되어 들어있었고, 수십개의 주사도 들어있었다.


"그거 또 놓을 거야?"


호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기계의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늘어트렸다. 이 주사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주사에는 담배로 인한 성분들을 소변으로 내보내게 하는 약물이 들어있었다. 몸에는 좋았다. 하지만 맞고 난 뒤 오는 빈혈과 구토감, 근육통은 폐암을 간접체험 하는 느낌이었다. 담배를 피면서 주사를 맞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건강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다만 간이 예민한 상태입니다. 주의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계가 차트표를 뽑아 하사하며 말했다. 호연은 나랏님의 기계에서 나온 차트표를 한 손으로 경건하게 낚아챘다.


"그것 참 다행이네."


전날에 홀로 맥주 한 잔을 마신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기계가 주사기를 꺼내들자, 호연은 짜증이 솟구쳤다.


"주사를 놓겠습니다."


"주사 알레르기 있다고 하면 안 놓을 거야?"


기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연이 잡소리 대신에, "예" 라는 답변을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레르기나 공포증 같은 것은 이미 보험이나 병원에 전부 기록되어 있기에, 듣는이가 사람이라도 믿지 않았다.


"예."


호연이 항복한 전사마냥 말하며 팔을 내놓았다. 얇은 주사 바늘이 들어오자, 제일 먼저 팔 쪽 근육이 반응을 보였다.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주사 바늘은 가늘어서 따끔거리지도 않았지만, 약이 문제였다.


"우연도 주사를 맞을려나?"


호연이 중얼거렸다. 첫 만남 때 담배를 피우던 우연이 생각났다. 그 얇은 손가락으로 자기 손가락 크기만한 담배를 피우던.


호연은 주사를 맞지 않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우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호연 씨?"


"나 주사 맞고 있어요."


"무슨 주사인데요?"


"담배 피는 사람들이 맞는 주사요. 우연 씨도 맞아봤죠?"


"아뇨, 그거 마약 같은 거예요? 목소리도 꼭 마약 한 것처럼 들리네, 흐흐. 농담인 거 알죠?"


그새 약 기운이 머리까지 전달된 모양이었다. 로봇은 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 쓴 주사는 잘게 분쇄해서 통 안에 넣었다.


"우연 씨도 담배 피우시잖아요. 왜 몰라요."


"저는 호연 씨처럼 헤비 스모커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담배 좀 끊어요."


차라리 호연에게 발가락 하나를 자르라고 하라. 호연은 우연을 생각해서 새끼 발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많이 생각해 볼 일이었다.


"우연 씨도 꽤 많이 피우던 것 같은데."


"별로 안 펴요. 호연 씨랑 같이 피웠을 뿐이지."


우연은 수줍다는 듯이 뒷말을 흐리며 말했다. 호연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로봇이 집을 나갈 수 있게 문을 열었다. 로봇은 앙증맞은 무한궤도를 돌리며 아파트 복도를 달렸다. 호연은 그 모습을 보다가 문을 닫았다.


"이제 갔네요."


호연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힘이 없어 부들거렸다. 심한 몸살이 걸린 느낌이었다. 약기운이 도는 게 확실했다. 머리에 지끈거림이 훨씬 심해졌다.


"그 잡혀간 사람은 소식 들었어요?"


"현진이 이놈도 잘 모르고, 뉴스도 소식이 없고. 모르겠네요."


우연의 물음에 답해줄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겨우 짜내서 말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호연의 삐뚫어짐을 고친 느낌이었다.


"우연 씨, 약 기운이 너무 도네요. 큰일이에요, 편집일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는 못 합니다. 좀 끊어도 될까요?"


"많이 심한가봐요, 그 약 기운. 담배 빨리 끊고, 쉬어요."


"언젠가는 그래야죠."


"어, 집에 누가 왔네요. 출판사 사람인가?"


우연의 폰을 통해 인터폰 노래가 들렸다. 호연은 그녀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다음 우연이 전화를 끊길 기다렸다. 그게 예의일 것 같았다. 그녀가 전화를 끊은 뒤에야 호연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당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 담배를 피우면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냥 입에 물고 까딱거리고 싶었다. 주사를 맞은 후 무료한 이 시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집해야 할 원고가 몇 개 인지도 생각하기 싫었다. '내일 다 몰아서 하자.' 이 생각만 가득했다.


아마 그 생각을 하다 잠에 들었을 것이다. 소파에서 일어나보니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다. 벌써 점심을 훌쩍 넘긴 모양이었다. 호연은 양팔을 높게 뻗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뱉었다. 몸은 꽤 개운했다. 대신 목에 가래가 끓어찼다.


"캬악, 퉷."


싱크대에 가래침을 뱉었다. 몸은 주사 덕분에 꽤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잠들었다가 점심 늦게 깨는 것은 별로였다.


'나 일어났어요, 우연 씨.'


호연이 우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다음 커피를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을 보니 원고들이 한 번 씩 둘러봐달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호연은 원고들을 하나하나 펼쳐보았다.


"이게 뭐야, 다?"


호연은 중간중간 이상한 문양으로 적힌 원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문양으로 되어있었는데, 문장 중간에 딱 껴서는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작가들이 왜 이따위 문양을 뜬금없이 넣은 건지, 화가 났다.


그가 다시 보고 놀란 것은, 그 문양은 컴퓨터로 칠 수 없는 문양이다. 호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문양과 같은 문양을 찾아보라고 했으나, 검색 시스템은 찾질 못했다.


'다시 교육하는 길은 너무도 멀다. 물리는 것은 너무 참기 힘들다. 병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호연이 문양이 적힌 문장을 인터넷에 복사해보니 글자가 정상적으로 나왔다. 호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나 소파 위에 떨어진 담배를 집어들었다. 아까 잠들기 전 입에 물었던 담배였다.


호연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처음 담배 필 때 빈혈과 비슷했다. 목을 타고 가래가 더 끓었다. 호연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곤 싱크대에 침을 뱉었다. 예전처럼 창문 밖으로 침 뱉을 멍청한 용기는 없었다.


호연은 머그컵에 있는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홀짝이며 원고를 훑었다. 다 식어서 쓴맛이 더 심했다. 그래도 일단 마셨다. 카페인과 니코틴이 섞어야 일할 맛이 났다. 과거 출판사 건물 안에서 일할 때도 커피와 담배는 필수였다. 담배는 일할 때 같이 피울 수 없었지만.


중간중간 이상한 문양을 걸러낼 때가 가장 귀찮았다. 어디서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인물이 말하는 구간에서 나오기도 하고, 배경묘사 중간에 나올 때도 있었다. 호연은 이상한 문양으로 되어있던 문장을 복사해서 다른 곳에 옮겨놓았다. 대부분 전쟁 소설에서 많이 나타났다.


'다시 교육하는 길은 너무도 멀다. 물리는 것은 너무 참기 힘들다. 병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 시들 것이다. / 거대한 빛줄기가 땅에 내려왔다. /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 / 총소리가 들릴 때.'


작가의말

은근히 몸뚱이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기도 한데요... 흠...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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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 크레이터 - 1 20.02.14 22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8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89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5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3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5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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