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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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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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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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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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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그대는 고요했다 - 5

DUMMY

UFO 가 섬뜩한 빛을 발광하며 호연의 눈앞에서 좌우로 왔다갔다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UFO는 호연의 손을 그대로 통과시켜버렸다. 마치 빗줄기를 통과시키는 것처럼.


뒷목에 강한 타격이 있었다. 그것이 뭐였는지 호연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둔탁한 둔기로 맞은 것 같은데, 그게 옆집 부부를 괴롭히던 빠루망치가 아니기를 바랐다. 맞으면 꽤나 아플테니까.


"호연아?"


멀리서 성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호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누워있었다. 하늘에서 성진이 내려오는 걸까? 자신의 머리가 미친 건 아닐까, 심히 고민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어?"


호연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며 물었다. 약간 두통도 지릿하게 오는 느낌이었다. 성진은 우울한 눈으로 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호연에게 그 눈은 약간 비겁하게 보였다.


"그런 짓이란 어떤 짓을 말하는 거야?"


"네가 하고도 몰라?"


물어보는 성진에게 호연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 성진은 잠시 작은 빛으로 움츠리더니 다시 원래 성진으로 돌아왔다.


"나는 모르지. 네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나는 달라지니까."


호연은 살짝 몸을 일으켰다.


"꿈은 너와 너의 대화지, 성진과 너의 대화가 아니야."


성진이 빠루망치를 든 채로 중얼거렸다. 앞에 있는 빛은 성진이 아니라 호연이었다. 그리고 우연이었다. 그리고 인석이었고, 마지막은 진애였다. 가냘픈 어깨를 가진 진애.


과학자의 죽음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한 과학자는, SUV 차량에서 작은 차량에 박혀 인생을 끝냈다. 게다가 어느날보니 그는 범죄 조직을 돕던 망가진 과학자가 되어버렸다. 이 얼마나 시시한 악당인가.


호연은 바로 앞에 있는 성진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자 성진의 얼굴은 그의 생각처럼 흉측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본 영화의 악당이 딱 지금의 성진처럼 생겼었다.


"잠에서 깨려면 얼마나 남은 것 같아?"


성진의 물음에 호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당신들 뭐야!"


뒤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호연은 화들짝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양 옆에 남자들이 호연의 팔을 잡고 있었다. 지금보니 아까 강민석 박사의 무리 중 하나였다.


"호연 형! 형 맞지?"


호연을 끌고가던 남자들은 놀란 눈으로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연도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큼직한 체구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현진이냐?"


호연은 축 쳐진 목소리로 물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버버하고 혀 꼬인 말투가 나올 뿐이었다.


"깡패놈들아, 형 데리고 어딜 가려는 거야?"


현진의 뒤에는 푸른 색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같이 오고 있었다. 경찰들이었다. 현진은, 호연의 팔을 잡은 남자중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현진에게 잡힌 남성은 호연을 놓고 현진을 상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지금보니 두 사람 말고도 주변에 강민석 박사의 수족들이 꽤 있었다. 민석 박사의 무리는 현진과 경찰의 난입에 혼비백산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호연은 그중 한 명에게 끌려갈 뻔했으나, 현진이 제압해준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다.


"저기, 저기 잡아!"


"경찰이 여길 왜 와?"


"체포한다. 체포한다. 경고. 경고."


주변이 온통 시끄러웠다. 도망가는 남자들을 잡는 경찰과, 도망가는 남자들. 로봇 경찰들의 경고음. 그 와중에 진애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쓰러지기 전에 비명이 들렸는데.


"진애, 진애는?"


"진애? 형 전 여자친구 말하는 거야?"


"아까 같이 있었어. 진애가 신고해서 온 거 아냐?"


"난 모르지! 우연 씨가 메시지 남겨서 온 거야. 형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인터넷으로 메시지가 와서."


호연은 수갑을 찬 남자에게 급히 달려가서 멱살을 잡았다. 연행하고 있던 로봇 경찰은 경고음을 울리며 호연에게 물러서라고 경고했다.


"같이 있던 여자는? 어디로 갔어?"


"무슨 같이 있던 여자요? 난 몰라요. 중간에서 합류했단 말이에요."


이제보니까 아까 담배와 돈을 갈취하려던 학생중 하나였다. 호연은 그의 멱살을 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하나쯤은 진애의 행방을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전부 중간에 아저씨를 인계 받았어요. 여자는 몰라요. 교주님 쪽 아저씨들이 데리고 있을 거예요."


호연의 멱살에 잡힌 남자가 풀어달라는 듯이 말했다. 호연은 한참 그의 눈을 째려보다가 밀쳐내듯 멱살을 놓았다. 로봇 경찰은 켁켁 거리는 남자를 끌고 경찰차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경위를 묻기 위해 호연에게 다가갔지만, 호연은 급히 몸을 돌렸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직 강남은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정신없이 달렸다.


"호연 형, 어디 가는 거야!"


호연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현진과 그들이 점처럼 보였다. 뭐가 우선 순위인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성은 이미 우선 순위를 골라놓은 상태였다. 호연은 다시 진애의 집을 향해 달렸다.


어느정도 뛰자 익숙한 거리가 눈에 보였다. 진애와 함께 자주 다니던 거리였다. 아직 거의 그대로였다. 벤치는 남아있었다만, 앉는 곳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호연은 다시 달렸다. 여러 홀로그램 광고들로 정신없는 터널을 지나 어느덧 진애의 빌라 앞이었다. 담배로 반쯤 탄 듯한 폐에서 거친 숨이 마구 올라왔다. 숨이 창이 되어 뇌 한 구석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진애!"


호연은 포효하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빌라 안은 잠잠했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빌라 계단을 올랐다.


클래식 음악이 울려퍼졌다. 진애의 인터폰 멜로디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두 번째 인터폰 노래도 그대로였다. 화면에 나온 진애의 얼굴을 담은 홀로그램은 눈을 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눈이 떠지고 입을 움직이는 홀로그램이었다.


한참 음악을 듣다가 그는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과거 그녀의 집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조금 다른 것은 뒷번호였다.


11045023


문이 열렸다. 그녀의 생일과 성진의 생일이었다. 전에 비밀번호는 그녀의 생일과 호연의 생일이었다. 호연은 조심스럽게 진애라는 이름의 향수를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호연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구 배치가 모두 그대로였다. 그 대신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서류를 담았던 박스는 방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었고, 여러 서류들이 방바닥을 헤엄치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서류들이 사방으로 전진했다.


"진애! 집 안에 있어?"


호연은 진애의 이름을 부르면서 땅에 떨어진 서류를 주웠다. 생물학계론에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호연은 그 서류를 내려놓고 다른 서류를 집어들었다.


'음악과 생물의 진화에 대해.'


호연은 한참 그 서류를 바라보았다. 진애는 음악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성진도 그녀처럼 음악에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성진은 현악기 위주로 된 웅장한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호연은 거실을 지나서 한 방에 들어섰다. 거실보다 더 난장판이었다. 현미경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깨진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서랍은 열린 채로 잔뜩 헤집어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현미경을 원래 위치에 두었다.


"진애야?"


성진의 방인 것 같았다. 주로 취미 생활이나 실험을 이곳에서 한 모양이었다. 호연은 서류 중 하나를 집어 읽었다.


'프로젝트 / 음악'


이상하게 몇몇 페이지들은 뜯겨져 사라진 자국이 있었다. 호연은 그 서류를 내려놓고선 다른 서류를 들었다. 대부분 밖에 나와있는 서류들은 음악에 관련된 서류들이었다. 게다가 모두 몇 페이지 씩 누가 뜯어놓은 상태였다. 호연은 서류를 내려놓고선 천천히 성진의 방에서 뒷걸음질쳐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호연은 진애와 성진의 침실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의 방은 더 심각했다. 옷장에서 진애의 옷이건, 성진의 옷이건 다 헤집어져 밖에 널브러져 있었다. 호연은 옷가지들을 최대한 피하면서 닫혀있는 장롱의 문을 열었다.


진애는 장롱 속에도 없었다. 두려움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연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롱 윗칸을 채우고 있던 이불이 그를 덥쳐왔다. 애매하게 쌓인 이불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호연은 누가 달려든 줄 알고 깜짝 놀라 펄쩍 뛰며 물러났다.


이불이 떨어지며 펼쳐지자, 이불 속 안에 숨겨두었던 작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연은 조심스럽게 이불에 다가가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성진아······."


호연은 이불 속에 들어있는 작은 기계들을 보며 인상을 굳혔다. 기계 속 파란 선들이 규칙적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 뉴스를 생각하면, 이것이 무엇인지는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기계 중 하나를 주머니에 구겨놓고선, 기계들을 이불에 넣어놓은 채 이불을 개어 다시 장롱으로 올렸다. 그리고선 아무도 만지지 않았다는 듯이 문을 닫았다.


"형, 여기 있어?"


현관에서 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연은 주머니에 기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본 다음 침실을 나왔다.


작가의말

매번 나에게 물어보고, 정해진 답만을 하는 하루가 반복되네요. 이별병이 이리 잔인한 건지는 이미 알았지만, 다시 알아보니 더 잔인하네요.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 4 가사가 떠오릅니다. 두 번의 이별. // 문법,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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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6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5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3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4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2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1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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