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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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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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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작성
18.08.2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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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달콤함 - 4

DUMMY

"아냐, 아냐."


호연은 입을 손으로 쓸면서 중얼거렸다. 자신의 손길마저도 거대한 트라우마를 달래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였다. 포장지로 둘러쌓인 라이터가 계속 눈에 밟혔다. 책을 좀 읽다가 잠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어났을 때는 아침이었다. 침대 위 놓인 책은 읽은 부위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단어만, 아니 글자만 바라보다 잠든 느낌이었다. 호연은 뒷통수를 긁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억이 밤새 뒷통수를 간지럽힌 모양이었다.


호연은 커피 머신에 물을 올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책상 앞에 앉았다. 우연에게는 여전히 메시지가 없었다.


컴퓨터를 켜보니 벌써 여러 작품들이 메일로 와 있었다. 그는 왼손 위에 턱을 괴고는 오른손으로 화면을 내렸다. 이상하게 일에 집중이 되는 날이었다. 오늘따라 글들이 편집이 필요없을 정도로 호연을 찾아왔다. 어제처럼 이상한 문양도 없었다. 어제 단 하루 컴퓨터가 이상했던 걸까?


호연은 편집하던 내용을 아래로 내려놓고선, 어제 따로 저장해두었던 문양 파일을 열었다. 몇몇 문양은 수정하지 않고 바로 붙여놓은 상태였다. 컴퓨터는 문양을 문양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컴퓨터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한참 그 문양들을 바라보다가 창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다시 편집을 계속했다.


"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호연은 계속 우연의 생각을 머릿속으로 떨쳐낼 수 없었다. '기다리면 연락을 주겠지.'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과 지갑을 챙겼다.


택시를 잡았더니,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였다. 호연은 괜히 지갑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는 로봇 택시보다는 빨랐지만, 가격이 무척 걱정되었다. 로봇과 경쟁하는 인건비라는 것은 참 비싼 것이었다. 편집일도 인건비를 많이 쳐줬으면 좋겠지만.


출근 시간을 지난 도로는 한산했다. 짐을 잔뜩 싣은 트럭이 몇 대 지나다닐 뿐이었다. 호연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UFO 가 무슨 일이냐는 듯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호연은 속으로 별 일 아니라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UFO 는 별 일 있을거라고 놀리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짜증나는 새끼였다.


호연은 차에서 내려 우연의 아파트로 향했다. 세대호출을 불렀으나, 답은 없었다. 그는 경비실을 통해 아파트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우연이 사는 층을 눌렀다.


"우연 씨."


호연은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다. 그는 한참 기다리다가 그녀의 집 철문을 바라보았다. 철문에 이리저리 긁힌 자국. 단순히 세월에 의해 긁힌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쪼그려앉아서 바닥을 바라보았다. 약간 붉은 자국이 보였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112 를 눌렀다.


경찰은 호연의 연락을 받자마자 찾아왔다. 호연은 멍한 표정으로 경비실 안에 있었다. 경비실 CCTV 를 보았으나, 어제 CCTV 는 모두 꺼져 있었다. CCTV 점검이 이유였다. 오후에 켜졌으나, 오후에는 어떤 일도 없이 잠잠했다. 시간은 호연이 약 기운에 취해 잠들었을 때였다.


"일단 문을 열어봐야 할 것 같은데, 거주자의 보호자입니까?"


경찰이 물었다.


"아, 예. 별로 안 됐지만, 그렇다고 칩시다."


경찰은 호연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기 위한 장비들이 우연의 집 앞에 늘어졌다.


"혹시 비밀번호 생각나는 것 있으십니까?"


경찰이 키패드를 보며 물어봤다. 최대한 문이 상할 일 없게 여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문이 상하면, 변상 비용을 경찰에게 청구하게 될테니까. 호연은 키패드에 손을 올렸다.


0···7···2···4···0···2···3


"어, 열렸네요. 알고 계셨네요?"


호연은 멍하니 키패드를 바라보았다. 그냥 찍어서 맞춘 번호였다. 우연의 생일과 이응에다가 그녀의 성에 붙은 이응, 그녀의 이름 속 이응 세 개를 조합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매우 쉬운 비밀번호였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경찰들이 먼저 우르르 들어갔다. 그녀의 문 앞에 있는 장비들은 죄다 쓸모가 없어졌다. 호연은 키패드를 한 번 쓸어보았다가 우연의 신발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장 앞에는 흐트러진 우연의 신발들이 있었다. 호연은 우연이 그를 만날 때 신고나왔던 한 짝 뿐인 신발을 들었다. 그 신발을 품에 안은 채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들은 신발을 신고 우연의 집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별 일 없던 모양이네요."


경찰이 와서 말했다. 호연도 인정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호연이 가고 나서 변한 건 없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경찰은 뭐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피해자가 신고 나갔을 거라 추정하는 신발입니다. 오른발이랑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어요. 아마 신발은 한 짝만 신고 나갔을 겁니다."


경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신발을 받았다. 호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는 멍하니 돌아다녔다. 아마 어제 아침을 준비해놓은 모양이었다. 다 식은 밥과 반찬들이 밖에 나와있었다. 아침도 못 먹고 어디론가 간 모양이었다.


호연은 반찬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하루종일 밖에 나와있다보니 반찬이 마르고 상해있었다. 호연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반찬들을 쏟았다.


"일단 주변 CCTV 도 전부 확인해보겠습니다. 혈액도 조금 채취해가고. 별 걱정은 마십시오. 보호자 분도 계속 피해자 분한테 연락을 해주세요."


"아, 예······알겠습니다."


잠시후 경찰은 모두 집에서 나갔다. 호연 혼자 덩그러니 집 안에 남게 되었다. 경찰들은 그녀의 머리카락도 채취해갔다. 호연은 우연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호연은 침대에 앉아 한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화장품대에는 화장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립스틱도 없었다. 호연은 일어나서 그녀의 화장품대를 손가락으로 쓸다가 그 옆에 있는 책장에서 멈춰섰다. 책장에는 여러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에튀드 사피엔스'


우연이 쓰는 책들이었다. 호연은 책 한 권을 뽑아서 침대에 앉았다. 그는 조심스레 책을 펼쳐보았다. 마치 우연의 앨범을 몰래 뒤져보는 느낌이었다. 하긴 어찌보면 앨범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소설에는 어떻게든 작가가 담기게 된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호연은 멍하니 그녀의 책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녀는 4 차원 적이었다. 일단 글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자는 볼펜 수집광이었고, 여자는 지우개 수집광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다. 햄스터가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볼펜으로 뭔가를 마구 끄적이고, 여자는 지우개로 그가 적은 글을 지우려 하고, 햄스터는 남자가 글을 적은 종이를 긁어먹으려는 글이었다. 상당히 이상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스토리는 유연하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 교육하는 길은 너무도 멀다. 물리는 것은 너무 참기 힘들다. 병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호연은 얼빠진 얼굴로 그 대목을 찬찬히 읽었다. 남자 주인공이 햄스터에게 손가락이 물리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그 이후 햄스터를 죽이려 했다. 햄스터는 여자의 햄스터였다. 햄스터를 죽이려 하면 여자가 말렸다.


중간에 SF 소설 답게 외계인 얘기도 나왔다. 호연은 대강 넘기며 어느새 4권 째 책을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호연은 4권 째 책 초반쯤을 읽었을 때 담배 생각이 났다. 그는 책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괜찮아요?"


흡연 박스 안에 들어가 있을 때, 경비원이 따라 들어와서 물었다. 호연은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짧게 고개를 저었다.


"잘 해결될 거예요. 여기 카드키요. 보니까 현관 출입 번호를 모르는 것 같던데, 이걸로 왔다갔다 하세요. 오늘 하루종일 있을 거죠?"


"아마 그럴 겁니다."


호연은 경비원이 준 카드키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경비원은 나중에 카드를 돌려달라고 하고는 흡연 박스를 나갔다. 호연은 그가 나가고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두 개비째 담배였다.


그는 두 개비 째 담배를 피우며 아파트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연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길 바랐다. 호연은 담배를 다 피우고 흡연 박스를 나왔다.


점심 햇살은 UFO 를 통과해 뜨겁게 햇살이 쏟아졌다. 차라리 저 UFO 가 그늘막이라도 되어주면 좋으련만, UFO 는 뜨거움만 쏟아내고 있었다. 물론 진짜 그늘막 역할을 하면 나무는 조금도 못 자라겠지만.


호연은 경비원이 준 카드키로 현관을 지나 우연의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장에서 집 안을 보니, 경찰들의 신발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호연은 소파 구석에 있는 로봇 청소기를 돌렸다. 로봇 청소기는 조용하게 우연의 거실을 가로질렀다. 그는 소파에 앉아 벽에 붙어있는 패널을 끌어내렸다.


작가의말

갑자기 추천수가 확 늘었네요... 감사합니다. 놀랐어요. 어제 비가 참 많이왔죠. 오늘도 카페에 오려니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여전히 꿈은 지랄 맞습니다.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 선작 추천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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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6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 5, 달콤함 - 4 18.08.29 115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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