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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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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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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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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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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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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그대는 고요했다 - 7

DUMMY

이런 시간이 계속 가길 바랐던 호연은 진동에 일어났다. 핸드폰 진동이었다. 호연은 핸드폰을 꺼내 누구인지 확인부터 했다. 현진이었다. 호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도착했어, 형?"


"응, 집이야."


오늘따라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횟수가 많았다.


"방금 경찰에 신고 넣었고, 진애 씨가 민석이라는 사람들 일당한테 잡혀간 거 확실해?"


"확실하지는 않지. 나도 뒷통수 맞고 쓰러졌으니까. 수고했고, 넌 어디야?"


"차 타고 강남 뜨고 있지. 정말 저기 담 넘어서 만들어진 강남도 싫고, 담 밖 강남도 싫어. 몸 잘 추스려. 괜히 또 강남가지 말고."


호연은 친구따라 강남 가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뭐 가기 싫은데 간 건 아니지만, 강남하니 생각난 말이었다.


"너도 고맙다. 잘 들어가라."


"알았어. 끊을게?"


현진과의 전화가 끊겼다. 호연은 한숨을 쉬며 다시 우연의 옆으로 가 앉았다. 우연은 붕대찬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안 아파요."


호연은 피식 웃었다. 우연은 헤헤 거리며 팔을 흔들다가 아픈지 '앗!' 소리를 냈다.


"병원은 잘 다니고 있는 거예요?"


호연의 물음에 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소파에 놓인 호연의 폰을 가져가 만지작거렸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호연은 그녀를 말리려다 냅두었다. 핸드폰을 만지는 그녀의 표정이 천진난만했다.


"핸드폰 없으니까, 지겨워 죽겠어요. 택시 회사에서 보상해준다고는 하지만, 차일피일, 계속 미뤄가지고. 호연 씨 핸드폰 쓸래요."


"안 돼요."


"생일 선물이라 치고 쓰게 해줘요."


우연이 핸드폰을 자신의 품에 안고 히죽 웃었다. 호연은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다시 늘어졌다.


우연은 한참 핸드폰을 만지다가 물었다.


"호연 씨, 납치된 전 여자친구가, 범죄에 가담한 생물학자의 여자친구예요?"


"맞아요. 벌써 기사 떴어요?"


호연은 우연의 옆에 바짝 붙어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강민석 박사의 조직, 자신의 조직과 연관된 과학자의 여자친구 납치.' 그 기사에서 호연은 '같이 납치 당할 뻔한 남자.' 로만 적혀있었다.


우연은 한참 기사를 보다가 웹만화로 페이지를 옮겼다. 다 읽지 못한 호연은 떨떠름함을 느꼈다.


"이거 재미있어요."


우연은 뭘 봤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웹만화를 소개했다. 인기몰이 좀 하고 있는 웹만화였다. 호연도 가끔 보다가 안 보는 만화였었다.


"소설은 잘 쓰고 있어요? 에튀드 사이먼드였나요? 사이엔드?"


호연은 우연의 소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괜히 이상한 발음만 할 뿐이었다.


"에튀드 사피엔스요. 호모 사피엔스 할 때 사피엔스."


"에튀드······에튀드가 그 뜻이었죠? 연습곡?"


"맞아요."


오래전에 TV 에서 본 적이 있었다. 프랑스어를 다루는 프로였는데, 그림이나 조각의 습작, 음악에서는 연습곡이라는 뜻이었다.


"호연 씨도 한 번 봐 보세요! 물론 돈 내고요."


우연이 소파에서 앉은채 방방 뛰며 말했다. 꼭 어린 여자아이 같았다.


"인간은 태초부터 연습용으로 누가 만든 것이 아닐까? 습작 같은 거? 매일 보강해 주고 해야 하는? 그런 스토리로 만들었어요. 아직도 그 만든 존재는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들으면 깜짝 놀랄 거예요."


우연의 모습은 말할 때마다 달라졌다. 가끔은 어른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몽상에 빠진 고등학교 1 학년 소녀였다.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은 어린 소녀였지만, 그녀의 달라진 모습은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호연은 그렇게 느꼈다.


"누군지 말은 안 해도 알 것 같네요."


"누구인 것 같은데요?"


"외계인이요. 우연 씨 SF 작가잖아요."


호연이 UFO 를 삿대질하며 말했다. 그러자 우연이 '풋' 하고 웃었다. 호연은 갑자기 기분이 복잡해졌다. 지금까지의 우연은 UFO 를 보며, UFO가 영감을 내려줘요! 라고 입이 튀어나올 지경으로 얘기하던 여자였다. 그런 우연이 UFO 를 보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하고 귀엽다는 듯이 웃은 것이다. 호연은 자신이 무척 어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호연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외계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아니죠."


"그럼 뭐길래 그렇게 숨겨요?"


호연의 물음에 우연은 말해주기 부끄럽다는 듯 볼을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어린 소녀가 보이는 듯 했다. 옛 만화에 나오는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은 요조숙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심하게 자주 말괄량이가 되기는 하지만.


"그냥 우주적인 존재로만 보고 있는데, 막상 출판사가 아닌 사람한테 설명하려니까 부끄럽네요. 처음 책 낼 때 설명하는 것도 부끄러웠었는데."


"나도 편집자에요."


호연은 자신의 존재가 단순 출판사 편집자에서 일반인으로 추락한 것 같았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얻은 직업이었는데. 왠지 서운했다. 호연은 우연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호연 씨는 편집자로 안 보여요. 꿀밤 먹이는 편집자 봤어요?"


"우연 씨가 제 담당이었으면, 매일 독촉하면서 때렸을 거예요."


호연은 핸드폰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면 그 존재는 아직 생각 안 한 거네요?"


"거의 그렇다고 쳐야죠? 아니 생각을 못 한다는 게 맞네요. 적당히 표현할 단어가 없으니."


"창조주나 신, 그런 걸로는 너무 뻔하고."


"너무 뻔하죠."


우연이 UFO 를 보며 호연의 말을 따라했다.


"그래서 UFO 가 계속 눈에 가는 건지도 몰라요. 분명 저 UFO 도 외계인들만의 명칭이 있겠죠. 자신들의 언어로 된."


호연은 그녀를 한참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연은 갈 시간이 됐냐는 듯이 호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섭섭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별은 언제나 서운하고, 여운이 남아요. 한 장짜리 아마추어 시인 시처럼요."


우연이 멀쩡한 왼쪽 다리를 끌어모아 앉은채 말했다. 호연은 그런 우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여전히 새끼강아지 같았다. 호연이 쓰다듬을 때마다 손길을 따라 머리를 움직였다.


"인생을 시로 간추리면 시 한 장 밖에 안 나올 거예요."


"한 장은 나올까요?"


"태어나 / 울다 / 웃다 / 죽었다."


개는 키워보기 전까지 그 애정을 모른다? 우연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할 때는 그 느낌이었다. 우연과 친해지기 전까지는 우연이 그냥 싫고 귀찮은 존재였지만, 어느새 힘들면 찾아가는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위치 추적 앱을 깔았건, 사람을 붙였건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연은 살짝 허리를 숙였다. 우연과 호연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우연은 한참 호연을 바라보자 눈동자를 중앙으로 모으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뭐하는 거예요, 우연 씨."


"철벽 방어요."


"어떤 방어가 되는데요?"


"생각해서 뚫어봐요."


호연은 조심스레 다시 우연의 눈과 자신의 눈을 맞췄다. 우연은 아까와 같이 또 눈을 중앙으로 모았다. 호연은 조심스레 얼굴을 가까히 붙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그 부드러움. 호연의 입술이 살짝 말라서 까글까끌한 느낌도 들었다. 도발적인 여자에게는 도발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머릿속에서는 폭발이 마구 일어났다. 엔돌핀이 스포츠카 엔진처럼 마구 돌고 있었다.


입술의 부드러움은, 입술을 시작해 머리에 한 번 점을 콕 찍었다가 소뇌를 타고 전해졌다. 곧 척추를 타고 목을타고 내려오다가 몇 놈은 양 팔로 뻗고, 몇 놈은 내장 구석구석에 손을 뻗고, 나머지 놈은 양다리로 빠졌다.


응큼한 곳으로 빠지기도 했다. 그중 가장 튼실한 몇 놈은 심장을 꽉 쥐어짜기도 했다. 곧 터져서 너덜너덜해질 것 같았다. 호연은 제발 그러라고 외치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은 주체할 수 없었다.


담배보다 더 달콤하고, 갈망하던 것이었는데, 수많은 담배로 묻어버렸었다. 근데 부드러운 자극이 니코틴과 타르로 막힌 벽을, 삽으로 파내듯 뚫었다.


호연이 우연의 철벽 방어를 뚫는 순간, 호연의 모든 곳이 뚫렸다. 그렇게 상처라는 벽으로 단단히 쌓았던 독신이라는 방벽이었는데, 어이없게 그녀로 뚫렸던 것이다.


"호연 씨?"


호연과 우연의 얼굴이 다시 갈라졌다.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는 그를 우연이 불러 잡았다. 그는 놀라며 우연을 내려다보았다. 스스로 해놓고도 충격에 빠져 있었다.


"다음에 또 올 거죠?"


"또 올게요."


호연의 답에 우연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호연은 허둥지둥 우연의 아파트를 나왔다.



담배 태우고 탄 택시 속에서도 호연은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실수로 강남으로 가자고 얘기하는 건 물론, 제 건물 이름도 까먹을 정도였다.


'왜 그랬지.'


이 생각이 머릿속을 독재하고 있었다. 이 생각 외에는 하지 말라는 듯이. 호연은 핸드폰을 펼쳐 인터넷 기사를 보기로 했다.


'과학자의 여자친구 K 양, 휴대폰 전화기록 확인했지만, 위치를 알 수 없어.'


호연의 들뜨던 엔돌핀은 그새 가라앉았다. UFO 가 그들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요새들어 악몽을 너무 자주 꾸네요. 계속 전 사람이 나타나 알고 있는 내용을 뱉어요. 그때마다 망가지는 제가 참 안타깝습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나봐요. 수전증도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네요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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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 크레이터 - 1 20.02.14 22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3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1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8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59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89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4 1 10쪽
»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5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3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5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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