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086
추천수 :
45
글자수 :
203,653

작성
18.08.01 16:31
조회
101
추천
1
글자
11쪽

3, 당신이라는 사람 - 4

DUMMY

“그냥 제가 낼게요. 다음에는 호연 씨가 내세요. 그럼 되는 거잖아요?”


“엄청 단순하네요.”


그럼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둘 다 돈 못 벌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호연은 그녀를 안은 채 계단을 올랐다. 죽을 맛이었다. 우연은 안쓰럽다는 듯이 호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려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호연은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랐다.


가게 안에 들어서고 난 후에야 우연은 바닥에 발을 붙였다. 그녀는 목발도 챙기지 않고 깽깽이발로 뛰어 테이블까지 달려가 앉았다. 종업원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호연에게 손짓했다. 호연은 목발을 벽에 기대어 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냥 맥주 한 잔씩 시키죠?”


“고작 그렇게요?”


“우연 씨 술 약하잖아요?”


호연의 말에 우연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녀는 메뉴판의 ‘소주’ 글자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소주 글자에 불이 들어왔다.


“이거 주문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주문’ 버튼을 바로 눌렀다. 호연은 머리를 긁적였다. 호연은 부대찌개 버튼을 누르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우연은 “어, 나도 그거 시키려고 했는데!” 라고 하며 손뼉을 쳤다. 호연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우연은 소주 한 병을 따 호연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탕 안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미리 한 잔 하자는 우연의 제안이었다. 솔직히 호연은 기본 안주인 콩나물국과 번데기만 있어도 충분했다. 호연은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인석에게 따라주는 양의 반에 반만.


"짠, 건배해요!"


우연이 잔을 내밀었다. 호연은 가볍게 그녀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챙, 하고 청량한 소리가 호연의 귀에 맴돌았다. 우연은 다시 호연의 잔을 채워주었다.


"나 궁금한 거 있어요."


우연이 술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호연은 술병을 집어 우연의 잔을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 씨는 왜 쓴 소설을 감춰요?"


"소설 감춘 적 없어요."


"호연 씨도 작가시잖아요. 책 하나 나온 거 봤어요."


호연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우연은 베시시 웃으며 다시 술잔을 들었다. 건배를 하자는 표시였다. 호연은 찌푸렸던 인상을 풀고 잔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소설을 쓴 것도 아니에요. 딱 한 편 쓴 거기도 하고. 사실 우연 씨 앞에서는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쓴 소설였기도 하고요."


"필명을 쓰셨더라고요. 찾는데 애 먹었어요. 호연 씨도 소설 잘 쓰시던 걸요?"


그와 그녀는 잔을 맞댔다. 그리고 쭉 들이킨 후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그녀의 얼굴은 벌써 붉어져 있었다. 홍조 띤 그녀의 작은 얼굴이 심장이 고장날 정도로 귀여웠다. 심장이 뇌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두근거렸다.


호연은 그녀의 검은 단발 머리를 쓸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른 채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 이제 현실적이고 싶습니다. 비현실적인건 저랑 안 맞아요. 전 그냥 평범한 편집가예요. 물론 한때 비현실을 쫓는 문학가였지만, 이뤄지지 않는 이상은 이젠 너무 진저리가 나요."


우연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다시 안주로 눈을 돌렸다. 그녀는 콩나물국을 홀짝 홀짝 마신 후 깨작깨작 번데기를 집어먹었다. 그녀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조그마한 것 같았다.


호연은 자신이 술이 들어간 후 정신이 묘해졌음을 느꼈다. 아니면 우연을 들었을 때부터 원래 이랬던 걸지도 모르고. 호연은 방금 막 나온 부대찌개를 떠마시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오늘 호연 씨는 뭐 때문에 술이 마시고 싶던 거예요?"


우연이 다시 슬그머니 물으며 호연의 잔에 술을 채웠다. 호연은 잠시 우연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술잔에 가득 술을 채웠다. 우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못 마시겠으면 꺾어도 되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우연은 잔을 가득 채운 소주를 바라보다가 반만 마신 후 내려놓았다.


"옛날 고등학교 친한 친구와, 그에게 바람난 전 여자친구. 그 사람들 때문이에요. 오늘 그 전 여자친구가 다시 찾아왔었어요. 자기 남자친구가 죽었다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저한테 찾아왔어요."


우연은 안쓰럽다는 듯이 호연을 바라보았다. 우연은 참 풍부한 표정을 소화하는 여자인 것 같았다. 호연은 그녀의 표정 변화가 맘에 들었다.


"그 친구 아주 유능한 과학자였어요."


호연은 메뉴판에서 소주 한 병을 더 추가시켰다. 순식간에 한 병을 비웠었다. 호연은 너무 급하게 마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 친구하고는 중학교 때부터 쭉 동창이고, 친구였어요. 그 녀석은 꿈이 과학자였고, 제 꿈은 소설가였죠. 참 궁상맞고, 레고와 종이 퍼즐 같은 조합이었어요. 전혀 맞춰지진 않는데, 맞춰진듯이 계속 어울리는.”


호연은 잔에 따르고는 쭉 들이켰다. 갑자기 이상하게 술이 입에 맞지 않았다. 그는 몸을 살짝 부르르 떨었다. 우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술을 들이켰다.


“그 친구하고 갈라지게 된 계기는 아까 말한 그 바람난 여자 때문이에요.”


호연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그러자 우연이 놀란 눈으로 그의 손등을 한 번 치고는 벽을 가리켰다.


‘절대 금연’


호연은 웃음을 터트리며 테이블 위에 담배 개비를 내려놓았다. 조금 있다가 기회가 날 때 피러 나갈 계획이었다.


“3년 전이었을 거예요. 전 여자 친구와 만난 건. 직장 동료를 통해 알게 됐죠. 달콤한 여자였어요. 목소리, 행동, 입술 모든 게 달콤한 여자였죠. 당신도 직접 본다면 알게 될 거예요. 지금 저에게는 모든 것이 끔찍하지만.”


어느새 보니 테이블 위에 올려둔 호연의 담배 개비가 사라져 있었다. 그 담배 개비는 우연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담배 개비를 돌리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호연은 피식 웃고는 술을 들이켰다.


“정말 그 자체가 매력적이었죠. 그 과학자 친구한테도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줬었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정말 우스운 일이었어요.”


우연도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호연은 그녀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부대찌개에 탐스럽게 담겨져 있는 햄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동안 우연은 호연의 잔에 술을 따르며 계속 말하라는 듯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호연이 보는 그녀의 눈은 반짝였다. 마치 은하수에서 별 하나를 떼어 동공에 박아 넣은 것처럼. 덕분에 호연은 자신이 할 말을 잠시 잊었다. 그는 소주잔을 한참 돌리며 하던 대화를 기억해냈다.


“그 다음부터 둘의 만남이 몇 번 있었다고 여자 친구 입으로 직접 들었어요. 저와 친한 친구기에 별 의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냥 두 사람이 친구로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죠. 물론 길거리에서 팔짱끼며 돌아다니는 둘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말입니다.”


호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때 그 모습이 머릿속에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끔찍하지만, 이미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그 기억 한 부분을 파냈다.



당시 호연은 인석과 같이 필요한 서류를 출판사에 내고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사실 서류를 직접 가져다 줄 필요는 없었다. 단지 인석과 술을 마주하기 위해 직접 간 것이었다.


호연은 당시 진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띄엄띄엄 메시지가 왔지만, 그는 그녀가 단지 일 때문에 연락이 늦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구겨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자동으로 접혀서 주머니 면적을 최대한 차지 않하게 만들어졌으니까.


호연은 인석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흡연 부스를 찾고 있었다. 호연이 아는 그는 가급적이면 사람이 없는 흡연 부스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인석은 집중력이 심화된 상태로, 어떤 말을 걸어도 잘 듣지 못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호연은 말거는 것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다시 꺼내들었다. 핸드폰이 다시 저절로 펴졌다.


'밖에 잠깐 나와있어. 회사 미팅 때문에.'


'그래도 계속 메시지는 중간중간 가능해요, 울 자기.'


진애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호연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자판을 눌렀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해. 요새 너무 ㅂ...'


"호연, 저거 봐."


갑자가 인석이 호연을 불렀다. 호연은 쓰고있던 메시지를 멈추고 인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휘둥글한 눈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에게 낯설었다. 그가 눈을 크게 뜰 때는 야시시한 옷을 입은 여자를 볼 때나, 놀라운 창의성을 가진 원고를 볼 때였다.


호연은 자신을 방해한 놀라운 볼거리를 바라보는 인석을 향해 인상을 찡그리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내 눈이 잘못 된 걸까? 아니면 저 상황이 잘못 된 걸까?"


인석은 이상한 물음을 뱉었다. 호연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상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은 카페였다. 하얀 생크림을 머금은 초코롤빵이 맛있을 것 같은 검은 간판에 하얀 글자가 새겨진 카페였다.


그 작은 카페 안쪽 소파에 남녀가 앉아있었다. 마치 다정한 커플처럼 나란히 앉아서 이어폰을 나눠 끼우고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은 다정한 커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성진과 진애가 같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성진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호연은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다 쓰지 못한 메시지가 진애에게 전송됐다. 그녀가 핸드폰을 누르기 시작했다.


'ㅂ? ㅂ 뭐? 바쁘다고? 바쁘지.'


진애에게 메시지가 왔다. 두꺼운 가게 유리창 너머 진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성진의 팔짱을 끼었다. 성진은 멋쩍은듯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호연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구겨놓고는 마인석이 말을 걸었을 때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이 미친놈들."


작가의말

마음이 무겁고 씁쓸하네요. 글로 달래는 제가 참 안쓰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써야죠. //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 오늘 전국 폭염 경보네요. 모두 몸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프롤로그 조금 추가 했습니다. 18.08.26 49 0 -
공지 소설 장르를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18.08.25 58 0 -
공지 안녕하세요, 연재 일 수를 조정하려 합니다. 18.08.16 62 0 -
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3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5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6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9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7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6 1 13쪽
»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2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