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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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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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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란 장미꽃 - 9

DUMMY

'당신 집 앞 카페 좋더라.'


진애가 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자주 그의 집에 놀러오곤 했다. 호연은 그때 그 진애가 마시던 커피가 뭐였는지 떠올렸다. 카라멜 마끼야또? 그건 너무 달다고 싫어했다. 카푸치노? 좀 쓴 맛이 있다고 말했다. 바닐라 라떼? 그건 꽤 좋아했던 것 같았다. 근데 지금 이런 생각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아까 카페 안 인석을 닮은 사람을 봐서 그런 모양이었다. 호연은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한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호연은 생각을 틀어바꾸기로 했다. 내일 우연이 붕대를 푸는 상상을 했다. 그녀의 얇은 오른손이 호연의 왼손을 잡을 것이다. 붕대 너머로 느낀 촉감과는 다를 것이다. 좀 더 부드럽겠지. 그러니 오늘은 영화를 보도록 하자. 내일 늦게 일어나지 않게, 늦게까지 보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TV 를 켰다. 그리고는 영화 채널을 틀고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틈틈히 우연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말이다.


'UFO 침공,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SF 특집'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런 특집으로 옛 SF 영화를 내보내곤 했다. 호연은 시간이 12 시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우연은 이미 메시지를 끝내고 잠들어있었다. 아마 컴퓨터로 메시지를 치려면, 그것도 그거대로 귀찮겠지. 옆집도 1시간 전부터 덜컹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져 있었다.


호연은 TV 를 끄고선 몸을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한참 뒤척이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만날 인상 찡그리지 마세요. 앞으로 시간이 얼마 없는데, 즐겁게 살아야죠······.'


실체가 보이지 않는 우연이 꿈속에서 그에게 말했다. 꿈속에서 말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녀가 현진과 사고가 난 날에 떠나면서 했던 말이었다. 꿈속에서 그걸 기억해내다니. 호연은 꿈속에서 소름이 끼쳤다. 아까 자기 전 영화에서 본 내용 때문일까?


"후······."


호연은 악몽을 꾼 듯 일어났다. 그리고 한숨을 쉰 다음 한참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은 호연이 잠들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세탁기에 대충 넣어진 속옷을 비롯해서.


일어나자마자 책상 위에 꺼내진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확인했다. 우연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어났냐는 물음이었다. 10 분 전에 온 내용이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호연은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날린 후 화장실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꿈 때문일까? 호연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볼을 손으로 매만져보았다. 하도 인상을 찡그리고 다녀서 그런 건지, 원래 자신의 얼굴인지, 입꼬리가 아래로 크게 쳐져 있었다. 이마에도 약간 주름이 맺혀있었다. 나이에 비해서는 늙어보이는 느낌이었다.


호연은 한참 그렇게 자신의 볼을 만져보다가 씨익 웃어보았다. 어색한 느낌이 그의 얼굴을 덥쳤다. 입꼬리가 약간 무거운 느낌도 들었다. 그냥 볼 근육에 힘을 줘서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것 같았다. 호연은 물을 틀고선 얼굴을 세수했다.


머리까지 감은 후에 호연은 화장실에서 나와 머리를 말렸다. 우연도 씻는 모양인지, 그 메시지 이후에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호연이 머리를 다 말리고 핸드폰을 들었을 때, 핸드폰에 맞춰진 알람이 울렸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호연은 옷장을 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따져가면서 입을 옷은 많지 않았다. 5벌의 바지와, 4벌의 와이셔츠. 5벌의 검은 티셔츠. 그리고 정장 한 세트. 호연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나마 밝은 색의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병원 가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입고 갈 필요가 있으려나."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담배를 문 후, 옷장에 걸린 붉은 넥타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호연 씨는 정장에 넥타이가 어울릴 것 같아요.'


우연이 보냈던 메시지 중 하나였다. 호연은 한참 머리를 긁적이다가 넥타이를 집어들었다. 진애가 선물해줬던 붉은 넥타이. 사실 넥타이가 집에 하나 뿐이었다. 호연은 단 한 번도 면접장에 넥타이를 매고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떨어지는 면접도 많이 있었다. 호연이 출판사에 합격 한 것은 기적이었다.


붉은 넥타이는 후에 진애가 '정장에 넥타이 좀 깔끔하게 매고 다녀봐.' 하며 선물해준 넥타이였다. 우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조용히 있으면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연은 넥타이를 집어 매고는 한참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결 나은 느낌이었다.


호연은 옷 매무새를 마저 정리하고는,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약간 흐렸다. 안 그래도 UFO 가 하늘을 가려서 해가 떠도 흐린데, 날씨가 흐리니 더 어두웠다. 게다가 아침이라서 더더욱 어두웠다.


그는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가, 우산을 챙길걸, 하고 후회했다. 집에 다시 들어가서 가져올까? 그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앞에 다가오는 택시 덕에 깔끔히 생각을 지웠다.


"비 오면 편의점에서 사지, 뭐."


호연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택시를 잡았다. 그는 지하철 역으로 가며 음악을 들었다. 핸드폰을 뒤져보니, 클래식 음악을 따로 모아놓은 폴더가 있었다. 음악을 핸드폰으로 잘 안 듣다보니, 핸드폰에 어떤 음악이 있었는지 몰랐다. 아마 교양적인 활동을 하자면서 핸드폰에 막 넣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 노래도 있었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번 1 악장. 재생 시간 : 11분 08초.'


집에서 자주 듣던 음악이었다. 워낙 휘몰아치는 것 같은 음악이라서 자주 듣는 음악이었다. 태풍이 치는 것 같은 음악이었다.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피어나고, 다시 사그라들고, 거세게 일어나고.


호연은 그 노래를 틀어놓고선, 시트에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러고보니 이 음악을 누구를 통해 알게 됐더라? 혼자 어디서 듣고 알아낸 거였나? 이런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은 거의 한 번 듣고 넘어가기만 하는 장르였다. 굳이 찾아보지 않는 작품이었다.


구한 곡에서 대충 껴 있다가, 마음에 들었던 건가?


어느새 택시는 지하철 역 앞에 도착했다. 호연은 택시에서 내려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출근 시간은 넘긴터라, 역에 사람이 적었다. 노숙자들만 구석에 앉아, 아침을 간단히 입에 넣고 있었다. 호연은 그들을 무시하고 개찰구를 지났다.


우연이 가는 병원은 꽤 큰 병원이었다. 무려 역도 따로 있는 병원이었다. 다른 정형외과를 가면 되지 않냐, 하고 호연이 물었던 적이 있었다. 큰 많큼 병원비도 비싼 곳이었다. 그때 우연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제 몸인데, 작은 병원보다는 큰 병원이 낫죠.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요. 전 그래야 안심 돼요."


딱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호연은 멍하니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듣다가, 만나기로 한 역에서 내렸다. 아직 우연은 안 와 있었다. 우연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도, 핸드폰을 아직 사지 않은 우연은 받을 수 없었다. 역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우연이 언제 올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호연은 가만히 지하철 역 벤치에 앉아있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세요.'


호연의 눈에 꽃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 호연은 한참 간판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있었나? 받은 적은 있었나? 꽃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받았었다. 졸업식 같은 행사들. 이성에게 따로 꽃을 선물해주거나, 선물 받은 적은 없었다.


꽃이라는 단어, 은근히 낯선 단어였다. 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꽃집으로 발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이 인사를 건넸다. 호연은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에, 꽃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러자 꽃집 주인이 슬그머니 호연에게 다가왔다.


"혹시 꽃 선물하려고요?"


"아, 예."


꽃 선물이 처음인 호연은 어찌 주문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아는건지, 꽃집 주인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연인을 만나러 가시는 모양이세요? 그런 사람은 보통 장미꽃을 많이 사가던데. 막 시작하는 연인은 화려하게 꾸며서 가지는 않고, 붉은 장미꽃 몇 송이에 안개꽃으로 장식하더라고요."


꽃집 주인이 장미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연은 한참 장미꽃 다발을 바라보았다. 그 중앙에 파란 장미꽃이 보였다. 특이한 장미꽃이었다.


"저 장미는 뭐죠?"


호연이 파란 장미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파란 장미요? 아, 조금 안 팔리기는 하는데, 꽃말은 좋은 장미예요. ' 기적 ' 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거든요. 파란 장미는 나오기 힘들어서 그런 꽃말이 붙었어요."


"저 장미꽃 두 송이에, 파란 안개꽃으로 포장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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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7, 크레이터 - 2 22.10.04 8 0 10쪽
46 7, 크레이터 - 1 20.02.14 22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3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1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8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59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89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0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4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1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5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24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3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5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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