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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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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7.25 18:44
최근연재일 :
2022.10.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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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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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수 :
20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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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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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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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4, 그대는 고요했다 - 2

DUMMY

'정민영 씨, 이번에 바쁘신 건 들었지만, 혹시 이번주 안에 만날 수 있을까요? 술집에서의 얘기를 좀 더 깊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호연은 이 내용을 적어놓고는 한참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의 머리에는 두 생각이 부딪치고 있었다. 민영을 보면 성가시게 될 것 같다는 생각과, 대체 민영과 우연은 무슨 사이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밖에 내리는 비가 호연의 머리를 마구 두드리는 것 같았다.


"콜록 콜록, 으, 젠장."


호연은 잘못 들이킨 담배에 기침을 뱉었다. 그는 핸드폰에 적혀진 에프터 신청을 지워버렸다. 사람에 대해 그다지 파고 들고 싶지 않았다. 4차원 적인 의문점만 가득한 여자, 우연이라지만.


그는 즉시 흡연 박스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뚫을 듯이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UFO가 바로 위에 보였다. 약간 반투명한 것이, 먹구름이 비추고 있었다.


"신기하지 않아?"


호연이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택시기사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로봇이었다. 하지 못했다가 맞는 표현이었다. 사람이 너무 시끄럽다면, 로봇은 너무 과묵했다.


그는 괜한걸 기대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는 팔짱을 끼고 UFO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택시는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빠아아앙' 하고 트럭 경적이 앞에서 울렸다. 차가 갑자기 멈춰섰고, 호연은 깜짝놀라 앞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트럭이 멈춰있었다.


"앞 차의 급정지로 잠시 정지 후 옆 차선으로 가겠습니다. 잠시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로봇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호연의 물음과는 영 다른 말이었다. 호연은 그 로봇의 말을 무시하고 앞을 한참 바라보았다.


인간과 달리 로봇은 아직까지 사고 파악이 늦었다. 앞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트럭기사가 놀란 표정으로 내리고 있었다. 승용차를 뒤에서 트럭이 박은 모양이었다. 아마 뒷자석은 다 작살이 나 있겠지. 뒷자석에 사람이 안 타고 있기를 바랐다.


"옆 차선으로 가겠습니다."


로봇은 그 말과 함께 바로 옆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덕분에 호연은 사고 현장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트럭에 부딪친 차량은 호연의 예상이 맞았다. 승용차였다. 요새 가벼운 주행감과, 적은 연비로 인기를 끌고있는 녹색 차량이었다. 하지만 호연의 예상과 다른 것이 있다면, 승용차는 뒷자석이 깔리지 않았다.


"역주행 차량이다, 야."


호연은 로봇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승용차는 앞이 박살이나 있었다. 트럭기사는 자신의 트럭 아래로 빨려들어간 듯 깔려있는 차량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검은 기름과 시뻘건 것이 땅에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호연이 말하든 말든, 로봇은 조용히 택시를 몰았다. 사고 차량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호연은 인도를 넘어 사고난 차로 접근하는 선그라스를 낀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호연은 손이 묶인 채 택시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들어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와야 했다. 옆에는 아까 말 못하는 로봇이 같이 걷고 있었다. 차라리 우연에게 돈을 받았어야 했었다.


그는 집에 들어와 택시비를 계산하고 난 다음에야 로봇을 내보낼 수 있었다. 로봇은 '즐거운 택시, 로봇 택시!' 라며 노래를 스피커로 작게 내뱉으며 건물을 내려갔다. 별로 즐거운 택시가 아니었다. 특히 사고를 목격한 이상 말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나른했다. 호연은 담배를 입에 물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옆집이 조용했다. 아마 일을 나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사람은 일을 해야지. 언제까지 허리나 놀리며 살 것인가.


호연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 부끄러워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호연은 이런 분위기에 일찍 자야 된다고 마음 먹었다. 자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었지만, 잠들 수 있었다. 우연의 집에서 잔 잠은 너무 불편했었다.


눈을 감자마자 여러 잔상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벌써 호연은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택시로봇이 아까 했던 노래가 글자가 되어 눈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즐거운 택시, 로봇 택시!'


호연은 아무 감흥없이 그 글자를 잡아 꽉 쥐었다. '빠아아앙!' 트럭 경적이 들렸다. 그는 놀라 옆을 바라보니 우연이 서 있었다. 우연은 싱긋 웃으며 그의 뺨을 손바닥으로 훑었다.


"놀랐어요?"


우연이 물었다. 우연이 밟고 있는 땅은 매우 좁았다. 둥근 원판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래에는 진애가 이를 들어내며 서 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마치 늑대 암컷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암늑대는 호연과 우연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진애의 뒤에서 혀를 할짝이는 수컷 늑대는 성진을 닮아있었다.


"우연 씨, 저 늑대들을 어찌하죠?"


호연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 우연은 깔깔 웃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쩌긴 어째요. 총으로 쏴버려야죠!"


우연은 아래에 있는 늑대를을 향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르는 총을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워우! 너무 잔인하잖아. 늑대의 머리들이 허공을 막 날아다녔다. 그중 진애의 머리도 밝은 웃음을 지은 채 날아다녔다.


호연은 그 광경을 보며 악몽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꿈속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넘겼다.


"호연 씨, 다음은 뭘 할래요?"


우연이 꿈 속에서 물었다. 호연은 그저 히히 웃으며 떠다니는 진애의 머리를 즐겼다.


"이만 일어났으면 좋겠죠?"


우연이 물었다. 우연도 머리 하나만 둥둥 뜬 채 그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어느새보니 그의 주변에는 우연 뿐만 아니라, 많은 머리들이 뱅뱅 돌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상태가 좋은데요?"


호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마치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취한 것 같았다. 꿈에 취해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연은 그 말을 내뱉은 즉시 자신의 뺨을 세게 손바닥으로 때렸다. 고통이 살갗을 타고 전해졌다. 차라리 떼어내고 싶었다.


섬세한 고통들이 뺨을 마구 가르며 지나간 후 호연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낡은 공책 한 권과 펜이 그의 앞에 있었다. 호연은 그 펜과 공책을 집어들었다. 순식간에 공책과 펜촉이 맞닿기 전 공간에 빨려들어갔다.


마구 흩어지는 글자들. UFO 가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의 눈앞을 괴롭히고 있었다. 호연은 그 UFO 를 잡아챘다.


"지금 내가 뭘 잡았는지 알아?"


UFO 가 호연을 향해 말했다.


"지금 네가 뭘 잡았는지 알려줄게. 너는 네 죽음을 잡은 거야."


우연이 옆을 지나가면서 충고하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놔요, 호연 씨."


우연이 호연의 팔목을 확 붙잡았다. 동시에 진애가 우연에게 달려들었다. 성진은 여전히 뒤에서 더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호연은, 카페 구석에 진애와 앉아있던 성진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동시에 팔목의 고통으로 호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팔목은 자신의 목에 눌려 피가 안 통하고 있었다. 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린 팔을 꽉 쥐었다. 얼마나 잤는지 감이 안 왔다.


"더······더······!"


옆집의 신음이 호연의 침대를 덥쳐왔다. 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러지 않으면 옆집 부부가 아니었다. 혹시 이사라도 가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이사를 갔다면 옆집과 호연의 오묘한 애증 관계가 깨져 서운할 것 같았다.


호연은 빠루망치를 들고 한참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두들기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오늘 하루 더이상 나갈 일도 없었다. 우연을 만나러 갈 일도 없었고, 마인석을 만나러 갈 일도 없었다.


"젠장! 씨발! 이 미친놈, 잠잠하더니!"


옆집에서 또 욕설이 터져나왔다. 호연은 빠루망치를 내려놓고는 한참 웃음을 터트렸다. 가끔 자신이 옆집 사람보다 미친놈 같다고 멀리서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것도 잠시일 뿐, 현재를 즐길 뿐이었다.


호연은 한참 웃다가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편집해야할 일이 쌓여있을 것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어제 밤에 와서 마무리 하고 잘 생각이었다.


"아무 것도 없어?"


호연은 자신의 회사 메일함에 있는 메시지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맡은 소설가들이 전부 다른 기일로 원고 제출을 늦춘 것이었다. 한두 명이면 협박을 통해서라도 내놓을 수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을 닥달하기란 번거로운 일이었다. 호연은 사과 메시지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답장을 보내주었다.


답장을 다 보낸 다음 호연은 멍하니 하늘에 떠있는 UFO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론 UFO를 통과해 땅바닥으로 몸을 추락시키고 있었다.


아마 그렇게 남은 하루를 보낼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게. 그게 그의 최고의 편안함이었다.


하지만 진동이 그의 편안함을 깨버렸다. 그는 한참 메일을 보내다가 침대에 놓여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번호를 알 수 없는 메시지였다. 호연은 한참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호연 씨, 집에 잘 들어갔나요?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해 봐요, 인터넷 메시지를 통해서요. 저번부터 느끼는데, 호연 씨는 정장에 넥타이가 어울릴 것 같아요. 다음에도 또 와요. 굳이 정장 차림으로 올 필요는 없고요. 이번과 똑같이 와도 돼요.'


긴 장문의 인터넷 메시지였다. 호연은 뭐라 답장을 해야 할 지 몰라서 한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작가의말

할머니께서 백내장 수술을 받으셔서, 놀고 있는 제가 본가로 올라왔습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요. 너무 덥네요. 집에 있으면 나태해지고. 하필 이 글 썼을 때가 한참 연애했을 때인 것 같네요. 다른 글 작가의 말을 보니 마음이 안쓰럽네요. 

오타, 문법 오류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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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 크레이터 - 1 20.02.14 22 0 12쪽
45 6, 파란 장미꽃 - 10 20.02.14 18 0 10쪽
44 6, 파란 장미꽃 - 9 20.01.17 23 0 9쪽
43 6, 파란 장미꽃 - 8 20.01.03 24 0 10쪽
42 6, 파란 장미꽃 - 7 20.01.02 22 0 10쪽
41 6, 파란 장미꽃 - 6 19.12.30 29 0 10쪽
40 6, 파란 장미꽃 - 5 19.12.24 25 0 10쪽
39 6, 파란 장미꽃 - 4 18.09.15 54 0 10쪽
38 6, 파란 장미꽃 - 3 18.09.10 85 0 10쪽
37 6, 파란 장미꽃 - 2 18.09.08 60 0 9쪽
36 6, 파란 장미꽃 - 1 18.09.05 108 0 10쪽
35 5, 달콤함 - 6 18.09.03 90 1 14쪽
34 5, 달콤함 - 5 18.08.31 91 1 9쪽
33 5, 달콤함 - 4 18.08.29 114 1 10쪽
32 5, 달콤함 - 3 18.08.27 104 1 9쪽
31 5, 달콤함 - 2 18.08.24 92 1 10쪽
30 5, 달콤함 - 1 18.08.22 75 1 10쪽
29 4, 그대는 고요했다 - 7 18.08.20 102 1 10쪽
28 4, 그대는 고요했다 - 6 18.08.17 106 0 10쪽
27 4, 그대는 고요했다 - 5 18.08.16 93 1 10쪽
26 4, 그대는 고요했다 - 4 18.08.14 106 1 11쪽
25 4, 그대는 고요했다 - 3 18.08.09 111 1 11쪽
» 4, 그대는 고요했다 - 2 18.08.05 94 1 10쪽
23 4, 그대는 고요했다 - 1 18.08.03 100 1 9쪽
22 3, 당신이라는 사람 - 5 18.08.03 135 1 13쪽
21 3, 당신이라는 사람 - 4 18.08.01 1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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