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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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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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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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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1.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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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7. 원점元點

DUMMY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 벌써 잎들이 반응하고 있다.

매일 매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순환된다. 하지만 오늘은 그대로의 어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대로는 아닌 것이다.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지각知覺하는 것으로부터 사유思惟가 시작되고 사유를 통해 인식認識의 지평地平이 넓어진다. 그리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과 통하면서 기氣의 지평 또한 넓어지고 무공도 깊어지는 것이다.

묵진휘는 그 동안 반복 속에 미세한 차이를 깨닫지 못했던 지난날을 아쉬워했다. 본래 알게 되면 몰랐던 지난 날이 부끄럽고 아쉬운 법이다.

차이를 깨닫기 시작하자 새로운 의문들이 샘솟았고 새로운 의문들을 붙잡고 사유하기 시작하면서과거 자신이 익히고 깨달았던 모든 것들이 해체되면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묵진휘는 스스로가 지난 날의 자기와 다른 자기로 재구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상처에새살이 돋으면서 치유되는 것처럼. 그러나 얼마나 발전했는가 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새로운 영역에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영역의 끝이 있을 것인가?’

묵진휘가 속으로 생각하다 피식 웃고 말았다. 어리석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반복 속에 끝이 어디 있을 것인가? 설혹 끝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새로운 영역의 또 다른 시작일 뿐인 것을···

새벽 수련과 명상에서 깨어난 묵진휘가 초옥 마당으로 들어서니 스승께서 마당을 쓸고 계셨다.

“휘야~ 밥 먹어야지.”

자신이 그렇게 밥을 짓겠다고 말씀 드려도 끝내 솥단지를 내놓지 않으시고 손수 식사 준비를 하시는 스승이셨다.


마당 평상에서 셋이 밥을 먹고 있다. 복거유도 초옥과 스승님이 익숙해졌는지 밥 먹는 젓가락 놀림이 편안하기 그지 없다.

“이 밥 먹고 내려가거라.”

“좀 더 있다 가겠습니다.”

복거유가 대화를 나누는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제 복거유도 안다. 둘은 마치 사전에 준비 대화를 나눈 것처럼 뜬금없는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복거유도 당황했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이 얘기인가? 하고 의문스러울 때도 많았다. 자신 몰래 나눈 사전事前 대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냥 둘은 그렇게 통했고 그 통함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것이다. 부러웠다.

지금 스승은 묵진휘에게 하산 하라고 하시는 거다. 묵진휘는 조금 더 있다 내려가겠다는 것이고.

“몸도 다 나았겠다. 새로운 영역도 밟았겠다. 더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 빨리 볼일 보고 빨리 오는 게 낫지?”

스승은 묵진휘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더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묵진휘가 새로운 경지에 접어 들었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히려 묵진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 빨리 하고 빨리 돌아오란 말씀까지 덧붙이신다.

“할아버지는 제가 귀찮으신가 봐요?”

묵진휘가 울상을 지으며 응석을 부렸다.

복거유가 다시 그런 묵진휘를 가만히 바라본다. 묵진휘의 가장 많이 변한 모습이 저것이다. 자신은 묵진휘가 이전에 어떤 경지였고 지금 어떤 경지를 밟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묵진휘의 겉모습 변화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산에 들어오고 얼마 뒤부터 묵진휘가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말도 많아지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그런 묵진휘의 모습이 복거유에게는 충격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바위 같은 사내가 응석을 부리다니. 스승과 함께 있으니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묵진휘의 스승이 묵진휘 없을 때 자신에게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저 놈이 농담을 다하고. 허허. 많은 발전이 있었구나. 이제 제대로 된 사람이 된 게야. 허허허’


“그래 귀찮다 이놈아. 여기 새로운 놈이 들어왔으니 이 놈 데리고 놀아보련다. 네 놈은 잠시 비켜주어야겠다.”

“알겠어요. 잘 데리고 노세요. 너무 때리지 마시구요. 복형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괜히 복형을 이곳까지 데려와선 고생을 시키게 됐네요.”

둘의 대화에 복거유는 놀라 젓가락을 놓았다.

묵진휘의 스승께서 자신을 받아준다는 말이 아닌가?

복거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얼마나 기대했던 스승인가? 자신에게는 매질하는 조교들이있었을 뿐이지 스승은 없었다.

“감동하지 말거라 이놈아. 나이 찬 놈을 정식 제자로 받긴 어렵다. 정식 제자로 받으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은 저 놈 하나로도 벅차다. 그냥 인연이 닿아 몇 수 알려줄 테니 그런 줄 알아라. 진휘와도 사형제 관계가 아니니 그냥 친구처럼 지내면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섭섭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복거유에게는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감사할 뿐이다. 스승도 복거유가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었으면 애초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리라.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복거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것 하나였다.

“네 놈이 뭐로 은혜를 갑을 것이냐? 주머니에 돈 한푼 없는 놈이. 클클”

스승이 농담으로 복거유의 감정을 진정시켰다.

스승은 어릴 때부터 키워왔던 묵진휘를 제자라기보다는 손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애틋한 마음에 항상 다정하게 대했다. 이제는 서로 간혹 짓궂은 농담도 하지만.

그런데 복거유는 경우가 달랐다. 이미 성년이었기에 핏줄이라기보다는 제자 비슷한 관계로 여겼고 그래서 다정함보다는 짓궂은 농담으로 대할 때가 더 많았다.

“어디로 갈 것이냐?”

스승이 묵진휘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몇 있습니다. 아마 무림맹에 있을 듯 합니다. 일단 그리로 가려 합니다.”

“재미있게 지내다 오느라.”

“몸조심 하시기 바라오.”

스승은 웃으며 배웅을 했고, 묵진휘는 오히려 복거유가 안쓰럽다는 듯 걱정 어린 인사를 건넸다.

묵진휘가 떠날 때 복거유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 대해 얘기해줄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이다.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할 것이다. 묵진휘도 그런 복거유의 마음을 알기에 조직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않았다.



‘원점으로 돌아왔구나’

태상호법을 통해 기습실패, 동천과 서천의 후예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 관官과의 불편한 관계 등을 보고받은 회주會主가 뒷짐을 진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새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했다.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지배하여 그 꼭대기에 서리란 야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래서 소중했던 친구들을 버리고 그 길을 걸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앞만 보며 걸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목표가 어떤 모습인지 흐릿했다. 원래 흐릿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늙어서 흐릿해진 것인지 조차 알기 어려웠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모두의 존경이 쏟아지는 정점. 그것이 자신이 생각해왔던 꼭대기였다. 지배의 의미였다. 결코 두려움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강호는 강한 자가 존경 받는 세상이다. 무인은 강함을 추구했고 강한 자를 존경했다. 자신은 충분히 강했고 충분히 존경 받을만하다 여겼다.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세상에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세상 모든 무인들을 찾아 다니며 비무를 통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중원은 넓었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기 때문이다. 무인들은 자신이 직접 보지 않으면 상대의 강함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을 통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려 했다. 그런데 무난하게 진행되던 일들이 최근 삐걱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제거하면 될 일이다. 자신에게는 그럴 힘이 충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회의懷疑가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회주가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회의를 틀어 내려는 것이다.

‘내가 많이 늙은 게야. 허허. 아직 그 친구들도 살아 있는 듯 하니 내가 예서 말수는 없지.”



‘회주가 흔들리고 있다’

태상호법이 김이 피어 오르는 찻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손은 여전히 깍지를 끼고 있을 뿐이다.

‘아직 회주가 흔들리면 안 된다. 회주의 강함을 기반으로 강력한 조직, 마교를 능가하는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주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동천과 서천의 후예라는 새로운 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어떠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력한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우선은 무림맹이 더 커져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섣불리 건드리면 정파 놈들은 무림맹을 중심으로 더욱 뭉칠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실력은 없으면서 겉으로는 어줍잖게 대의大義와 협俠만 외치고, 속으로는 돈과 명예를 쫓아 불나방같이 춤추는 같잖은 무리들. 태상호법에게는 그런 놈들이 정파였다.

‘언젠가 혹독한 맛을 보여주마.’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태상호법이 허공을 향해 이름을 불렀다.

“은균”

태상호법의 부름에 천장에서 인영 하나가 가만히 내려앉아 태상호법의 등뒤에 부복했다.

“이공자로부터 다른 소식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잘 지내는 모양이군. 호법들에게도 각자 자리를 지키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연락하지 말라 전하라.”

“복명”

천장에서 소리 없이 내려온 사내가 대답소리도 사라지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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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원점元點 +2 17.01.07 3,322 52 10쪽
67 66. 전열정비戰列整備 +2 17.01.05 3,557 52 9쪽
66 65. 난주 격돌 3 +2 17.01.05 3,177 52 10쪽
65 64. 난주 격돌 2 +2 17.01.04 3,409 51 10쪽
64 63. 난주 격돌 1 +2 17.01.04 3,358 51 10쪽
63 62. 전화위복 +2 17.01.03 3,547 53 10쪽
62 61. 접촉 +2 17.01.02 3,569 53 10쪽
61 60. 포착捕捉 +2 17.01.02 3,614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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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출전出戰 +2 16.12.31 3,693 55 11쪽
58 57. 재회 +7 16.12.30 3,740 5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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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회오리 +2 16.12.30 3,815 57 10쪽
55 54. 궁구窮究 +5 16.12.29 3,871 57 10쪽
54 53. 숙원宿願 +2 16.12.29 3,514 54 11쪽
53 52. 결별의 시작 +2 16.12.29 4,186 55 11쪽
52 51. 멸구滅口 +4 16.12.27 4,207 57 9쪽
51 50. 위장 +3 16.12.27 3,554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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