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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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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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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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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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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 차질蹉跌

DUMMY

항주의 한 객잔에서 창백한 낯빛의 노인이 혼자 소면 한 그릇을 조용히 먹고 있었다. 흔한 만두 접시 하나 없이 소면 하나만 있는 단출한 식사는 노인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군더더기를 무척 싫어했다. 말이 거의 없었다. 노인은 무인에게 말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겼다. 노인에게 말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교주밖에 없었다.

노인은 마교 사령주의 하나인 월광령주月光領主였다. 이십 여 년의 폐관 후 세상 구경을 위해 얼마 전 마교를 떠나 이곳 강남 동쪽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다.

월광령주는 식사를 하면서도 죽립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 죽립속의 형형한 두 눈은 객잔 구석에 있는 어느 한 탁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탁자에도 노인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식탁에는 강남에서 유명한 동파육과 맛깔스런 생선요리 두세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한 명의 노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우람한 체격에 낯빛도 불그스레해 힘깨나 써는 느낌을 줬다. 옆에는 커다란 도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노인은 폭마부爆魔斧 한당韓唐이었다.

맞은 편 노인은 조금 작은 체구였으나 단단한 근육질의 노인으로 별다른 무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다.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노인은 철풍권鐵風拳 하후성夏候成이었다.

은거한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전대前代의 고수들 두 사람이 항주의 객잔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서 들고 횡육수전주와 약속한 곳으로 가보세”

하후성이 여전히 식사를 하고 있는 한당을 다그쳤다.

“허허~ 조금만 기다리게. 오랜만에 세상에 나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쉽게 수저를 놓을 수 없구먼. 자네도 조금 더 들게”

한당이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음식을 씹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두 노인의 성격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한당이 느긋하고 하후성이 급한 듯 했다.

이윽고 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고 곧 월광령주도 조용히 둘을 뒤따라 나갔다.


항주를 벗어난 한적한 산길에 세 명의 노인이 서있다. 둘을 한편으로 하고 한 사람이 그런 둘과마주 서있다.

“누구신데 앞길을 막으시는 것이오?”

한당이 물었다.

“···.”

맞은 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우리를 알고 있느냐?”

한당과는 다르게 하후성이 반말로 거칠게 물었다.

“···.”

이번에도 말이 없었지만 노인은 가만히 쓰고 있던 죽립을 벗었다.

“가만~ 어디서 본 듯 한데. 누구더라?”

죽립을 벗은 노인을 본 한당이 생각날 듯 말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래~그래~. 그때의 마교놈이구나. 하하핫. 우리가 난주에서 본지 이십 년이 훨씬 넘었지?”

하후성이 이제야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한당의 말을 이었다.

세 노인은 구면이었다. 이십 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었다.

감숙성 난주에서 한당, 하후성과 마교도들간에 한바탕 시비가 붙어 큰 싸움이 벌어졌었다. 한창 나이였던 두 사람이 혈기왕성하던 시절이었다. 객잔에서 어여쁜 아가씨를 봤고 붉콰해진 술기운에 추근댄 것이 시비가 되었다. 어여쁜 아가씨는 월광령주가 속한 가문 소속이었기에 호위무사들이 있었고 그들과 한당 및 하후성간에 접전이 벌어진 것이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비록 그들이 마교 소속 무사들이었지만 이미 당대의 이름난 고수였던 폭마부와 철풍권의 상대는 아니었다. 호위무사들 태반이 죽었을 때 비로소 월광령주가 나타났다. 하지만 월광령주도 두 사람의 협공에 적지 않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때는 물론 월광령주가 아닌 마교 소속 유명가문의 가주家主 신분일 뿐이었다.

한당과 하후성은 접전 과정에서 그들이 마교인 줄 알게 되었다. 두 사람도 속으로는 일이 너무 커진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마교의 적으로 낙인 찍히면 강호 어디에서도 편히 살기 어려웠다. 그들은 그대로 도주했다.

비록 난주가 마교의 관할권역이었지만 마교의 본산에서는 상당한 거리에 있었다. 추격대가 구성되어 두 사람을 쫓았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경과한 뒤라 쉽게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未濟 처리 되었지만 월광령주는 내상뿐만 아니라 심상心傷도 입게 되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월광령주는 성격이 싸늘해졌고 얼마 뒤 교주의 제안을 받아 폐관에 들었던 것이다.

“설마 혼자 우리를 뒤쫓은 건가? 이십 년 사이 많이 컸구먼. 클클”

“보아하니 그냥 돌아가진 않을 것 같구먼. 어서 정리하고 가세. 자칫 늦겠네”

하후성이 빈정거렸고 한당이 서둘렀다. 본래 한당과 하후성은 정사지간의 인물들이었다. 특별히 사악한 짓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의仁義와 협의俠義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부류였다.

월광령주가 말없이 등뒤에서 검을 빼들었다.

한당과 하후성은 월광령주의 분위기에서 뭔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둘도 오래 전에 절정을 넘은 고수들이었다. 기감氣感이 긴장을 알려왔다. 상대가 자신들 못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심은 죽음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것이다. 둘은 서로 눈빛도 교환하지 않은 채 협공을 위해 신형을 허공으로 날렸다.


차아아악~

한 줄기 미풍이 소리 없이 일었건만 뒤늦게 제법 큰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솟구치는 소리다.

한당과 하후성은 의아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미풍을 느꼈건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서로를 쳐다봤고 그 소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당의 가슴에서 커다란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후성의 목이 반쯤 잘린 채 피분수가 피어 올랐다.

둘은 허무한 듯 어이가 없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떨어져 내렸다.

초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 두 사람이 월광령주의 일수一手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폭마부와 철풍권이 오지 않고 있다.

횡육수전주 유환검幽幻劍 목인선은 갈등했다. 두 사람을 조금 더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혼자 처리할 것인가?

갈등은 길지 않았다. 상대의 상태가 갈등을 불필요하게 했다.

지금 상대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입으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눈빛도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대로 두더라도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 같았다. 목인선이 나무에서 몸을 날려 묵진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묵진휘도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적이 나타났음을 알고는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검을 빼든다. 검을 빼는 것 조차 힘겹다. 빼 든 검을 의지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맞은 편에 나타난 상대는 묵진휘가 힘겹게 검에 의지해 일어서는 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묵진휘가 흐려지려는 의식을 추스러고 추슬러 눈의 초점을 잡아갔다. 고통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냥 쉬고 싶었다. 누워 자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했다. 눈 앞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잤으리라. 아마 영원히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타나 묵진휘의 잠을 방해했다.

묵진휘도 갈등했다. 다시 누워 잘까?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도 했고, 끈적거리는 아교통속에 잠겨있는 듯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을 정도로 귀찮고도 힘들었다. 하지만 눈에 힘을 주고 상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오랜 수련이 낳은 습관이고 정신력이었다. 눈에 초점을 잡아가자 다시 의식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묵진휘가 익힌 무공의 신묘막측함이었다.

묵진휘의 눈빛이 초점을 찾기 시작하자 목인선은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생각했다. 죽기 직전의 반짝임인 것이다.

“누군지 궁금할 것이다.”

목인선이 여유를 가지고 말했다. 죽기 직전의 상대방에게 자신이 누군지 알려주는 것이 강자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묵진휘는 말이 없다.

“네놈이 무정도와 사절을 꺾었다고 들었다. 그들의 복수라고 생각하려무나. 사실 복수를 하고 싶을 정도로 그들과 우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하”

말을 마친 후 유환검이 검을 빼들었다.

은백색의 얇고 조금 긴 검이다. 묵진휘도 검을 들어 상대를 겨냥했다.

상대의 검이 묵진휘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온다.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별다른 변화 없이 그냥 찔러오는 것이다. 마치 누구나 입문 시에 배우는 삼재검법의 찌르기 초식처럼.

묵진휘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한 후 상대를 베어갔다. 하지만 종내 검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왼쪽 어깨부근을 찔리고 말았다. 묵진휘가 몸을 휘청거렸다. 묵진휘가 휘두른 검에서 묵빛 기운이 일었지만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크기로 수십 여 개로 나뉜 채 허공에 뿌려졌을 뿐이다.

목인선은 회를 떠나기 전 묵진휘의 무공에 대해 들었었다. 묵진휘가 검을 휘두르면 먹빛 구름이 인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마디 정도의 크기로 허공에 흩뿌려져 있을 뿐이다. 허공에 흩뿌려져 있는 먹빛 기운의 조각들이 조금 기분 나쁘긴 했지만 내공이 충분히 운용되지 못한 탓에 구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냥 조각나 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목인선이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검을 베어갔다. 원래 목인선의 검법은 화려한 변화를 특기로 하는 것이다. 변화가 화려하고 유려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탓에 유환검이란 별호가 생겼다. 하지만 목인선은 묵진휘를 상대로 화려한 변화를 시전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이번에도 묵진휘의 가슴 부근이 베어졌고 묵진휘도 검을 한번 더 휘둘렀다. 좀 전처럼 다시 수십 개의 묵빛 기운의 조각들이 허공에 뿌려졌다.

목인선은 검을 다시 말아 쥐었다. 이번에는 끝내자 생각했다. 자신이 상대를 너무 얕잡아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마뜩잖게 여기게 되었다.

목인선이 앞으로 한발 내디디며 변화를 일으켜 검을 찌르자 세 개의 기운이 묵진휘의 머리와 가슴과 다리를 향해 동시에 쏘아졌다.

묵진휘는 세 개의 기운 모두를 피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앞 선 두 번의 베기도 힘겨운 몸부림이었다. 묵진휘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가슴과 다리와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다만 머리만 비틀어 공격을 흘린 후 마지막으로 검을 베어갔다.

다시 수십 개의 먹빛 조각들이 허공에 뿌려졌고 묵진휘는 검을 땅에 꽂은 채 쓰러지듯 한쪽 무릎을 땅에 꿇었다.

‘마지막이다’

목인선이 검을 곧추세워 쓰러진 묵진휘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이제 몇 백 개의 숫자로 늘어난 먹빛 기운들이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목인선에게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목인선이 대경실색해 쏟아져 내리는 먹빛 기운들을 막으려고 허공에 검을 수 차례 휘둘렸다. 목인선의 검에 의해 먹빛 기운들이 다시 잘게 부서졌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더욱 숫자가 늘어난 먹빛 조각들이 다시 목인선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이번에도 목인선이 먹빛 기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모든 조각들을 다 막지는 못했다. 수십 개의 먹빛 조각들이 목인선의 몸을 찌르고 베어갔다. 순식간에 목인선의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곳곳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한 순간에 처참한 몰골이 된 목인선의 두 눈은 놀람에 생기를 잃어갔다.

다시 허공에 떠 있던 묵빛 조각들이 목인선에게로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목인선은 가만히쏟아져 내리는 먹빛 조각들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생의 마지막을 의문으로 장식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목인선이 쓰러지는 것을 본 묵진휘도 곧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데 얼마 후 한 인영이 나타나 쓰러진 묵진휘를 둘러메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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