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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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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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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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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6. 위기

DUMMY

더 있다 가라는 우학사의 만류를 뒤로하고 묵진휘는 무한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산한지 벌써 일년이 지나고 있었다.

우연찮게 서홍과 남태혼을 만났고 목걸이를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의 기습도 받았고 무정도와 일전一戰을 벌였다. 영웅대회 비무에서 기습을 당할 뻔한 남궁이현을 도와주면서 친구가 되었고 무진신개와 소노 일행을 만났다. 사절과 격전을 벌였고 이황야와 공녀도 만났다. 그리고 이황야를 통해 우학사를 만나고 이제 자신의 내력까지 알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목걸이에서부터 자신의 내력까지 거의 모든 사건이 어떨 땐 우연을 통해, 때론 필연으로 연결되어 부지불식간에 묵진휘를 휘감아갔다.

그러는 사이 산속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하게 되었고, 묵진휘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고민과 생각들이 묵진휘를 성숙하게 만들어 갔다.

갑자기 노산에 계시는 스승님 생각이 났다. 이것들이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이었던가? 스승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단 말인가?


“휘야. 이제 세상 구경도 할 나이가 되었구나”

묵진휘가 떨어지는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떨어지던 낙엽이 멈춘 채 허공에 떠있었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시전하는 것인가? 저 어린 나이에···

하지만 그건 허공섭물과 조금 다른 것이었다. 허공섭물은 기氣로 대상 물건에 보이지 않는 힘을 직접 작용시켜 물건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묵진휘가 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허공에 있는 물체는 자연히 땅으로 떨어진다. 땅이 끌어 당기는 것이다. 땅이 허공섭물을 행하는 것이다. 무언가의 힘이 미치고 있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묵진휘는 땅이 지배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는 묵진휘의 의념만이 작용한다. 물론 아직 그 공간이 작고 약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지배하는 공간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런 발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동천의 무예만이 그 공간을 말하고 있다.

그런 묵진휘 뒤에서 조그만 웃음을 머금은 채 바라보던 스승이 불쑥 말을 던진 것이다.

묵진휘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인가 하는 의문이 담긴 눈이다.

“낙엽만 가지고 놀면 심심하지 않느냐?”

“심심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시고 풍성한 자연이 있는데 무엇이 심심하겠습니까? 저는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아니 재미있습니다.”

“허허 이 녀석아. 그건 네가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 아래 세상에는 여기에 없는 숱한 재미가 있다.”

“저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휘야···”

스승님은 가볍게 말씀하시다가 진지한 얘기로 전환하실 경우 꼭 ‘휘야’라고 묵진휘의 이름을 길고 다정하게 불렀다. 그럴 땐 묵진휘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중요한 가르침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이란 웅장하고 끊임이 없이 한결같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힘이다. 우린 다만 그 힘을 흉내 낼 뿐이지. 그 흉내만으로도 산 아래 세상을 들었다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휘야~. 자연의 한결같음이 매번 똑 같은 단순 반복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바람이 오늘의 바람과 다르고 어제의 나무가 오늘의 나무와 다르며 어제의 바위가 오늘의 바위가 아니다. 자연은 항상 변하고 있다. 그 변함으로 인해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자연의 힘을 올바르게 흉내 내려면 변화 속에서 한결같음이 창출되는 역설逆說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 구경이 필요한 게다. 세상은 네게 차이를 가르쳐 줄 것이다. 차이를 알아야 변화를 감지할 수 있고 그다음에야 한결같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스승이 말을 마친 후 묵진휘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봤다. 이 녀석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리라. 하지만 이해했다고 곧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르익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묵진휘는 그렇게 스승의 말씀을 되새기고 음미하면서 가을과 겨울을 보낸 후 하산했었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무한으로 향하던 묵진휘가 막 항주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려 할 때였다.

한적한 길가에서 중년의 두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곁에는 이제 열 살 갓 넘었을 사내녀석이 울먹인 채 서있었다.

“여보~제발 그 돈은 안돼요~”

여인이 남자의 소매를 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내가 곧 몇 배 이상으로 가져온다지 않는가? 집구석의 여편네가 이리 궁상을 떠니 내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남자가 억세게 여자의 손을 뿌리쳤고 여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자가 돌아서 가려는데 다시 여자가 주저앉은 채 남자의 바지가랑이를 붙들었다.

“나를 죽이고 가시오. 그 돈은 안되오. 흑흑흑”

“이런 미친 여편네를 봤나? 내가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고 이러는 줄 알어? 다 네 년과 씨도 다른 저 놈의 새끼까지 먹여 보겠다고 이러는 것 아녀? 어서 놓지 못해. 맞아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이야?”

남자도 악을 쓰면서 잡히지 않은 발로 여자를 떨쳐내려 짓밟았지만, 여자는 고통에 꿈틀거리면서도 종내 남자의 바지가랑이를 놓지 않고 오히려 곁에 있던 아들을 보고 악을 썼다.

“너도 어서 빨리 아버지를 잡아라. 흑흑. 아버지가 이리 가면 너나 나나 굶어 죽는다. 흐흐흑.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아버지한테 맞아 죽자. 흑흑”

여자가 울부짖으며 남자를 붙들었고 아들도 그런 여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남자의 다리를 잡았다.

“내가 왜 이 놈 아버지야? 내가 계집 하나 살려주는 셈치고 너를 데려왔는데 새끼까지 끼고 와?”

그러면서 남자가 어린 아들을 발로 사정없이 후려 찼고 어린 아들이 패대기 쳐졌다.

묵진휘는 난감했다. 사정은 익히 짐작이 갔다. 여자를 도와 남자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집안문제인데 감히 나서기가 어려웠고, 그렇다고 못 본 채 그냥 지나치기도 곤란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남자의 발에 차여 패대기 쳐지자 급히 아이에게로 달려가 아이를 부축했다. 아이 입에서는 선홍색 피가 흘러내렸다.

묵진휘가 비록 산속에서만 지내왔지만 스승으로부터 자객들의 술수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왔다. 자객들은 이와 유사한 상황을 설정하여 상대의 방심을 유발한 상태에서 곧잘 기습한다고 했다. 그런 배움 탓에 묵진휘도 순간적으로 남녀와 아이를 살폈다. 모두 무공의 흔적은 없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는 것은 어렵다. 남자는 흥분해있고 여자는 감정에 복받쳐있다. 특히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어 심신이 상당히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아이는 당장 보살핌이 필요했다.

“이건 집안 일이니 당신은 가던 길을 가시오.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오”

남자가 묵진휘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발을 들어 아이를 사정없이 후려쳐 왔다.

묵진휘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등을 돌려 남자의 발을 막았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옆구리에 낯선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날아오는 남자의 발을 손으로 일단 막았다. 무공이 실리지 않은 남자의 발을 막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묵진휘가 낯선 통증이 밀려오는 옆구리를 내려봤다. 손가락 절반 굵기의 한 뼘쯤 되는 금속 막대기가 깊숙이 옆구리에 꽂혀 있었다.

묵진휘가 손으로 금속 막대기를 잡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금속 막대기의 끝부분이 낚시바늘처럼 생겼는지 쉽게 뽑히지 않았다. 묵진휘가 이를 지긋이 깨물며 손에 힘을 줘 금속 막대기를 잡아 뽑았다. 금속 막대기가 뽑히면서 제법 큰 살점이 같이 떨어져 나와 핏물이 물줄기처럼 줄줄 흘려 내렸다.

묵진휘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제법 큰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핏물이 제법 많이 흘러내렸지만 이 정도는 중상이랄 수 없었다. 묵진휘가 상처 부위를 가볍게 점혈하여 지혈 했다. 묵진휘가 점혈 후 고개를 들어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흘러내렸다. 묵진휘가 손을 들어 사내를 쳐내려 할 그때 갑자기 옆구리 안에서 조그만 무언가가 터졌다. 폭약처럼.

묵진휘가 일순 휘청했다. 몸 안에서 폭약처럼 터진 것은 정말 폭약이었다. 금속 막대기 속이 비어있었고 그 속에 조그만 환약 크기의 폭약이 들어 있었다. 그 폭약은 수분에 닿으면 터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묵진휘의 옆구리를 통해 들어간 조그만 폭약이 묵진휘 몸 내부의 수분과 만나 터진 것이었다. 묵진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몸 속의 내장이 진동하고 일부는 큰 상처를 입은 듯 했다. 묵진휘가 급히 운기하여 상처 부위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하나의 작은 폭약이 터졌다. 묵진휘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고 입으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곧 또 하나의 폭약이 터졌다. 묵진휘의 시야가 흐려졌고 의식이 가물거렸다. 어느새 남자와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고 아이는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묵진휘 곁에 쓰러져 있었다.


남녀는 음양쌍절이었다. 그들은 무공을 몰랐다. 하지만 성정이 잔혹했고 암살에 특화된 기획력과 연기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암기 제작에 탁월했다.

음양쌍절은 항주 부근에서 똘똘해 보이는 열 살 남짓의 남자아이를 찾았다. 그리곤 부모를 협박하고 아이를 협박했다.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부모형제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그런 아이를 데리고 며칠 훈련을 시켰다. 설정한 대로 반복연습을 시킨 것이다. 아이는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고 야무져 음양쌍절을 흡족하게 했다.

묵진휘 같은 고수들은 상대의 기 상태를 읽는다. 사람에게 어떠한 의도가 있으면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 사람이 가진 기에 그 의도가 반영된다. 살기殺氣가 대표적인 기의 상태다. 그래서 음양쌍절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는 아이가 두려움에 떨도록 하는 상황을 기획했다. 그래야 묵진휘 같은 고수가 의심하지 않는다.

음양쌍절은 무공도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무리 방심했지만 묵진휘와 같은 고수를 금속 막대기로 찌르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특수한 암기를 사용했다.

묵진휘를 찌른 금속 막대기는 음양쌍절이 내폭관內爆菅이라 명명한 암기로 겉에 있는 단추를 가볍게 누르면 속에 있는 금속 막대기가 자동으로 쏘아져 나갈 수 있었고 그 금속 막대기 안에는 수분에 닿으면 폭발하는 환약크기의 폭약이 들어 있어 정말이지 필살의 암기였다.


상황은 음양쌍절이 의도했던 대로 됐다. 세 개의 폭약은 계획했던 대로 터졌다. 그 정도면 이미 몸 속의 장기가 완전히 훼손되었을 것이다. 그리하면 이미 죽은 목숨이다. 대라신선이 와도 살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음양쌍절은 의식을 잃어가는 묵진휘에게 마지막 살수殺手를 쓰지 않았다. 마지막 살수는 또 다른 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거추장스럽게 아이를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아이는 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고 그것으로 용도를 다한 것이었다. 음양쌍절에게는.

그렇게 그들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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