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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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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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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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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2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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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2. 결별의 시작

DUMMY

북경과 정주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인 석문石門의 한 객잔 별실에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다. 키가 작고 조금 뚱뚱하며 머리가 벗겨진 초로인과 중키에 마른 체격의 초로인이었다.

마른 체격의 초로인은 가늘고 긴 눈썹이 곧추서 있고 미간은 찌푸려져 있다. 동창의 조부태감이었다. 맞은 편의 초로인은 횡이수전주 범여극梵呂克이었다.

“부전주 일은 안타깝게 되었소이다.”

장세모 부전주가 자살했음을 알고 조부태감이 위로의 인사를 한 것이다. 범여극은 내심 언짢았다. 장세모의 치밀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죽음이 언짢았고 그걸 자극하는 눈앞의 조부태감이 언짢았다. 하지만 얼굴에 그런 내색을 하진 않았다.

“뜻하지 않게 그리 되었소. 내게 상의했더라면 그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요”

범여극이 장세모의 단독행동임을 은연중 드러내어 그 사건이 동창과 회會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어찌되었건 이십여 년간의 지난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했고, 누구보다 동창을 위해 열심히 해 줬는데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울 뿐이요”

조부태감이 장세모 건을 놓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범여극의 아쉬움보다 동창의 안타까움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최근 회에게 느끼는 섭섭함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둘의 만남 이전에 동창의 정조장과 횡이수전의 신임 부전주간에 회동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인사 자리였다. 정조장은 당연히 목걸이의 회수에 회에서 보다 전력을 기울일 것을 요청했으나 신임 부전주는 장세모가 죽음으로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아직 업무를 파악하지 못했느니 하면서 이런 저런 핑계로 정조장의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정조장은 이를 조부태감에게 보고했고 조부태감도 회의 태도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껴오던 차라 신임 전주와 자리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것인지요?”

범여극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우호적인 만남은 만남의 목적을 묻지 않는다. 이미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고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서로 마주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만난 목적을 묻는 것은 이 자리가 우호적이지 않음을 그대로 표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목걸이 회수가 너무 지지부진하여 그냥 있기 곤란할 정도가 되었소. 태감 어르신의 노여움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소.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될 듯하오”

조부태감이 불편한 상황을 직선적으로 얘기했다. 태감까지 언급함으로써 동창이 현재의 국면을 심상찮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섭섭할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목걸이를 회수하기 위해 장세모 부전주가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범여극이 오히려 조부태감에게 화살을 넘겼다. 조부태감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그러니 하는 얘기지요. 목걸이를 이용해 무림맹에서 함정을 팠소. 대체 왜 무림맹에서 목걸이를 이용해 함정을 판 것이오? 그들이 어떻게 목걸이를 안단 말이오? 문제는 또 있소. 회의 안이한 대응력이오. 장부전주 혼자만 목걸이에 매달렸을 뿐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 정도의 준비만으로 목걸이를 회수하려 했겠소? 회가 안이하지 않았다면 무능력한 것 아니겠소?”

조부태감이 내친 김에 품고 있던 감정을 토로했다.

“허허~ 조부태감께서 그 정도로 생각하시는 줄 몰랐구려. 회에서는 목걸이를 회수하기 위해 무정도와 사절을 잃었소. 게다가 회주님께서 총애하시는 삼공자까지 비명에 가고 말았소. 이제 장부전주까지 죽은 마당에 회의 안이함과 무능함을 탓하시니 실로 본인은 답답함을 금할 수 없소”

범여극이 지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속으로는 동창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아는 듯하여 뜨끔했다.

“전주께서 그리 생각하시니 과거지사過去之事에 대해 더 말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소? 앞으로의 계획이나 들어봅시다.”

조부태감의 태도가 누그러진 듯 했지만 속으로는 회의 태도에 대한 실망만이 가득했다.

“항주에서 발견된 목걸이 자체는 진짜였던 듯 하오. 아니면 장부전주가 친히 항주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오. 목걸이를 무림맹에서 보관함이 확인된 이상 쉽게 회수하기 어렵겠지만 한편으론 누가 가지고 있는 줄 알았으니 회에서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목걸이를 회수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소. 조금 더 기다려 보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오”

범여극이 하나마나 한 계획을 얘기했다. 결국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조부태감은 눈앞의 상대가 목걸이에 큰 관심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관심이 없는 자를 붙잡고 좋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마차 안에 조부태감과 정조장이 마주보고 있었다. 범여극을 만나고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조부태감이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정조장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림맹과 다리를 놓도록 하라. 무림맹이 이황야와 손을 잡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잡았다면 끊어놓아야 할 것이고 잡지 않았다면 우리와 잡도록 해야겠지. 회는 이미 너무 커버렸어. 하지만 품 안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혹독함을 깨닫게 되겠지.”

정조장은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장부전주의 죽음이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횡삼수전주 진철신秦鐵信이 얼마 전 부전주로 부임한 오환吳煥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전임 부전주 마극성은 대공자 부상 건으로 좌천되었다. 진철신은 이전에도 마극성 부전주의 치밀하지 못함을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새로 온 부전주는 기민해 보였다.

“그래, 공격 계획은 수립해 보셨소?”

진철신이 물었다.

“아직 전면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면전은 아니면서 효과는 극대화하고 마교의 소행으로 위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요인암살입니다. 마침 빈객청에 마공魔攻 계열 고수가 제법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격대상은 누구를 생각하시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출신이 아니면서 제법 명망이 있고 무림맹이 무시할 수 없는 중소형 가문과 무관의 요인들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무림맹이 암살자의 정체를 신속히 밝혀내지 못하면 가뜩이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중심이란 태생적 비난에 시달리는 무림맹 지도부에 대한 만만찮은 압박이 될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오. 하하하”

오환 부전주의 생각에 진철신 전주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확실히 전임 마극성 부전주와 비교하여 신임 부전주는 기민했다.



“들으셨습니까?”

항백이 벌컥 삼조 집무실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집무실에 있던 나머지 삼조원 모두의 눈길이 항백에게로 쏠렸다.

“들으셨냐구요? 뇌옥에 있던 범인들이 모두 자결했다고 합니다.”

항백이 재차 큰 목소리로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했다.

“무슨 소린가? 차근차근 말해보게”

두원이 항백을 진정시키듯 말했다.

“우리가 항주에서 생포해 본 놈들이 모두 독단을 깨물고 자결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린가? 우리가 생포한 후 몸은 물론이고 입안까지 샅샅이 뒤져 독단 같은 것은 없음을 확인하지 않았나?”

“그랬죠. 한데 다른 상처는 없이 시신의 얼굴이 검푸르게 변했고 입에서 미세한 핏줄기가 흘러 내린 걸로 봐서 독을 먹고 죽은 것으로 판단된답니다. 게다가 다섯 구의 시신이 모두 동일한 소견을 보이는 모양입니다. 정확한 사인死因은 의원들의 부검이 끝나봐야 알겠지요.”

모두 항백의 말에 허탈한 표정들이었다.

모처럼 확보한 단서였다.

“심각한 문제군요”

과묵한 남궁이현이 모처럼 한마디를 뱉었다.

“심각한 문제지. 무림맹 뇌옥에서 범인들이 독약을 먹고 자결을 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 특히 독약이 외부에서 반입되었다면···”

두원이 말끝을 흐렸다. 너무 민감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왜요?”

항백이 눈을 여전히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궁금하기는 경표도 마찬가지인 듯 두원과 남궁이현을 쳐다봤다.

“왜긴 왜겠어요? 그들이 먹은 독약이 어디서 생겼겠어요? 우리가 생포한 후 충분히 확인했는데 독약 같은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독약을 먹었다면 누군가 줬겠지요. 설마하니 하늘에서 떨어졌겠어요? 더 심각한 문제는 죽은 곳이 무림맹 뇌옥이라는 것이죠.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무림맹 뇌옥에 못 들어가죠. 즉, 독약을 제공한 후원자後援者가 뇌옥에 힘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무림맹내 상당한 자리에 있다는 방증傍證이죠. 또한 흉수들이 단순 세력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당수진이 문제의 핵심을 지적했다.

그제서야 항백과 경표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림에 이 정도의 세력이 있었다니 놀랄 일이구만. 더구나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다니.”

항백이 한숨을 내시며 감탄인 듯 푸념인 듯 말했다.

“그 정도 세력이라면 혹시 마교 아닌가?”

경표가 뚝 내뱉었다.

“마교는 아닌 듯 합니다.”

남궁이현이 조용히 말했고 다들 남궁이현을 쳐다보았다. 과묵한 사람의 한마디는 무겁다는 것을그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남궁이현이라면.

남궁이현이 목걸이와 관련된 이십여 년 전의 습격, 최근에 일어난 무정도, 사절의 얘기 등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소노는 목걸이와 관련된 얘기를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고, 남궁이현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항주 작전을 수행하면서 조원들도 목걸이와 관련하여 중대한 내막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 흉수들까지 자결한 이상 사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기에 향후의 적절한 대응을 위해 동료들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란 판단이 든 것이다.

“최근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 자라온 문제군. 허 참~”

두원이 입맛을 다셨다.

“뭐야 이거~ 황실까지 개입된 사건이잖아?

“아니 무정도와 사절을 꺾었다는 그 젊은 고수는 도대체 누구야?”

항백과 경표가 연신 궁금함을 쏟아 내었다.

무림맹 현무당 삼조원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사건이 단순 사건이 아니라 당금 무림의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일말의 걱정도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몸 속을 파고드는 찌릿한 전율과 흥분에 두 주먹을 불끈 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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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회오리 +2 16.12.30 3,815 57 10쪽
55 54. 궁구窮究 +5 16.12.29 3,872 57 10쪽
54 53. 숙원宿願 +2 16.12.29 3,514 54 11쪽
» 52. 결별의 시작 +2 16.12.29 4,187 55 11쪽
52 51. 멸구滅口 +4 16.12.27 4,207 57 9쪽
51 50. 위장 +3 16.12.27 3,555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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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 역습 +2 16.12.25 3,605 5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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