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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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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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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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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2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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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숙원宿願

DUMMY

난향헌에도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했다.

교주가 호미를 들고 조심스레 흙을 북돋우고 있었다. 교주의 눈은 혹시 난을 상하게 할까 하는 마음에 호미를 유심히 보고 있지만, 기실 교주의 마음은 이런저런 생각에 떠돌고 있었다. 호미질은 교주가 즐기는 사색의 한 방법에 다름 아니었다.

교주의 마음이 딸 아이 유혜연에 이르자 못내 가슴이 저려왔다. 천하인이 모두 웃으리라. 마교 교주의 가슴이 저린다면. 하지만 교주도 아버지였다. 엄마 잃고 혼자 키운 딸애가 항상 교주 마음에 생채기 마냥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딸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교주는 마음 편하게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다. 한데, 최근 난주를 다녀왔던 딸아이가 상심에 잠겨있다. 그 놈이 오지 않은 탓이다. 자신의 딸에게 상심을 안긴 그 놈에 대한 분노가 순간 일었다. 마교의 전 조직을 동원해 그 놈을 찾을까 생각했다가 피식 스스로 실소失笑했다.

자신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조직을 동원할까 하는 생각도 분노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다른 대책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라도 해봐야 되나 하는 생각 끝에 유치함을 알면서 그냥 해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유치함이 겸연쩍어 피식 실소한 것이다. 천하의 교주도 딸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방안은 없었다. 유혜연 스스로 극복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아들 생각이 이어졌다. 폐관에 든 지 십 수년이 흘렀다. 물론 자신은 폐관동에 종종 들어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무공을 가르쳤다. 물론 아들도 가끔 폐관동에서 나와 가족들과의 시간을 잠시 가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 폐관기간에 비교할 때 정말 티끌만한 시간이다. 아들 입장에서는 청춘의 십 수년을 오롯이 세상과 단절한 채 폐관동에서 수련에만 매진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무공에 대한 자질이 타고 났다. 역대 교주 중 최고의 기재라고 평가 받아온 자신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녀석이었다. 그 놈도 조만간 출관하리라. 이번에는 교주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일었다.

순간 교주의 기색이 변했다. 모현이 오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모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을 알현합니다.”

교주는 말없이 여전히 땅에 쭈그리고 앉아 난을 돌보고 있었다.

“항주에서 목걸이를 두고 다시 접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황야 세력과 무림맹이 합심하여 목걸이로 그 놈들을 유인하여 다섯이나 생포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무림맹 뇌옥에서 생포된 다섯이 모두 독으로 자살하는 바람에 이황야와 무림맹은 어렵게 얻은 단서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현의 보고에 교주가 고개를 돌리며 일어섰다.

“재미있구나. 그 놈들이 무림맹에도 잠입해 있구나. 제법 만만치 않은 놈들 이로고.”

“그런 듯 합니다.”

“그 놈들은 동창과 손잡고 있을 테지만, 이황야와 무림맹이 손을 잡았다니 조금 의외군. 그렇게 쉽게 손을 잡을 무리들이 아닌데 말이야. 왜 그들이 손 잡기 어려운지 아느냐?”

교주가 불쑥 모현에게 물었다. 모현은 대답 없이 가만 있었다. 이제 그도 안다.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기실 모현은 잘 모르기도 했다.

“속이 시커먼 놈들은 서로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다. 손을 잡으면서도 다른 손으론 언제든지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손 정도는 쉽게 내밀 수 있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결탁結託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고지식하고 자존심이 센 놈들은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오래 전부터 관官과 정파무림은 불가침 관계지. 고지식한 놈들은 전통은 무조건 지키려 하지. 게다가 자존심 센 놈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먼저 그 전통을 깨려 하지 않지. 그러면 지는 걸로 받아들이니까.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손을 내밀 수 없는 관계지. 그런 그들이 손을 잡았다? 그건 두 가지 경우일 것이다. 상황이 정말 심각하거나 아니면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이거나.”

모현의 몇 마디 보고에 저간의 사정을 훤히 꿰뚫어 보는 교주였다. 모현도 보고는 자신이 하지만 항상 교주의 말을 통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이황야측의 그 젊은 고수가 다섯을 사로잡은 것인가?”

“아닙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황야나 무림맹측은 여전히 그 놈들이 누군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찾으려 할 테고 그놈들은 숨거나 위장하려 하겠지. 계속 살펴라”

교주의 명에 모현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사라졌다.

교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떠있다. 딱 한 점만이.


“태준, 천마참天魔斬의 진전은 어떠하느냐?”

교주의 목소리는 평소의 태산 같은 굳셈이 없었다. 대신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부정父情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구성九成을 보고 있습니다.”

소교주 유태준이 대답했다.

“대단한 일이다. 일찍이 네 나이 때 구성을 이룬 분은 없었느니라. 허허허. 지금부터 내 말을 새겨 듣거라”

침상에 누운 현 교주가 유태준을 지긋이 응시하다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말을 하는 목소리에는 따뜻한 부정父情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초대 교주인 천마天魔의 무공이 여럿 있고 그 중 천마참이 최고의 절기임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모르는 천마의 무공이 또 하나 있다. 파천무破天舞라 한다. 파천무의 한 가닥 춤사위가 일면 하늘이 깨진다고 전해진다. 파천무에 비긴다면 천마참은 사람을 깨뜨릴 뿐이다. 그 파천무는 천마참을 십성十成 익혀야만 익힐 수 있다. 역대 교주 어느 분도 천마참을 십성 익히신 분이 없다. 물론 각고의 노력 끝에 십성 익히신 분도 없지 않았으나 그땐 이미 너무 연로年老해져 새로이 파천무를 익힐 상태에 있지 않았다. 파천무를 익히려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전제되어야 했던 것이다. 아마 너라면 파천무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야. 네가 파천무를 완전히 익힌 다면 네 뜻이 곧 세상의 뜻이 될 것이고 감히 하늘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마교의 숙원을 달성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파천무는 익힐 수 없는 상태다. 이백여 년 전 파천무의 비급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교주의 얘기는 담담하게 계속 이어졌다.

소교주인 유태준으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천마참을 대성한 천마는 당시 천하에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마교인들은 자신들의 교주를 신神과 동급에 놓았고 천마는 능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마교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세상의 일통一統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무공을 연마했고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데 모든 정력을 다 쏟았다. 사람들은 천마가 무공에 미쳤다고 여겼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천마는 말년에 파천무라는 무공을 창안했다. 하지만 곧 그 무공을 봉인하고 다음과 같은 유훈遺訓을 남겼다.


‘천마참을 반드시 십성 대성한 후에야 파천무를 익혀라. 단, 천마참을 육십 세가 넘어 대성한다면 파천무를 익히지 마라’


‘파천무를 익히기 전에는 세상 일통에 나서지 마라’


천마 이후 교주의 자리에 오른 자들은 첨마참을 십성 대성해 파천무를 익힐 기회를 갖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천마참을 대성하기가 어려웠다. 한두 번 천고의 기재가 나타나 천마참을 대성했으나 그땐 이미 나이가 육십도 한 참 넘어 칠십에 이르렀기에 모두 파천무를 익힐 수 없었다.

허나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백여 년 전 유훈을 어기고 파천마제가 세상에 나섰다. 사람들은 파천마제가 세상을 일통하기 위해 나섰는 줄 알았지만 파천마제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바로 파천무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였다. 열쇠가 사라졌던 것이다.

파천마제에게는 의형제가 있었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한 정을 나눈 사람이었다. 파천마제는 소교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교도인 그와 허물없이 지냈고 무공도 함께 수련했다. 그는 무공에도 출중한 자질이 있었지만 머리가 더 좋았고 야망은 그 보다 더 컸다.

파천마제는 부족함이 없이 형제로서 그를 대우했지만 그는 마음이 달랐다. 자신은 교주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마교의 교주자리는 세습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파천무의 열쇠가 사라졌다. 마교가 천하 대계를 위해 모아두었던 황금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도 사라졌다.

그는 마교를 차지할 수 없으면 세상이라도 차지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마교를 떠나면서 세상을 차지하는데 필요한 황금과 의형제가 무신武神이 될 수 있는 열쇠를 함께 가지고 나왔다. 의형제가 무신이 되면 군대로서도 자신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파천마제는 그가 떠난 뒤 그 사실을 알고 스스로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며 하늘에다 복수를 맹세했지만 당장 그를 찾아 떠날 수 없었다. 당시 교주가 위독했고 그는 교주직을 승계해야 했다. 그렇게 교주가 되었고 세상을 엎을 무공을 지니게 되자 그를 찾아 세상에 나섰다.

세상에 분노한 파천마제는 세상을 피로 물들여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천마제가 스스로 다시 청해의 마교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파천마제가 단순히 마음이 변해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파천마제는 누군가에 가로막혀 마교로 돌아왔던 것이다. 파천마제는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파천무를 익히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마라’


유태준 교주가 회상에서 벗어났다.

천마참을 사십에 들면서 십성 대성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기필코 숙원을 풀리라···

오랜 추적 끝에 열쇠가 황궁에 있음을 알았다. 사람을 황궁에 투입시켜 열쇠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열쇠는 흩어져버린 상태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열쇠의 일부인 두 개의 삼각목걸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교에서 사라진 열쇠가 전대 황제의 유훈을 담고 있는 상자의 열쇠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제 목걸이를 찾는 세력은 세 곳이 되었다.

선대 황제의 유훈을 확인하려고 하는 이황야,

이황야가 유훈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현 황제,

파천무의 비급을 찾으려고 하는 열쇠의 원래 주인인 자신···

황제와 이황야 및 그 결탁 무림세력들은 자신들만이 열쇠를 찾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열쇠의 원래 주인은 자신인 것이다.

그들은 도적에 다름 아니다.

유태준 교주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사라졌다.

‘그래 지금은 지켜보며 기다리리라. 그들이 서로 싸우는 중에 열쇠가 모두 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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